고정희시인과 남도

먼저 나의 이야기를 꺼내자면, 나는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고향도 전남이고 조부모님도 전남에서 사신다. 나의 조상은 대대로 전남에서 터를 이루며 사셨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남도는 특별하다.
남도를 생각하면 사람들의 정, 인심이 떠오른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각나고 아버지, 어머니가 떠오른다. 남도는 고정희에게도 특별한 곳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 고정희의 시 중 <남도행>은 남도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묻어있다.


남도행

                                        - 고정희

칠월 백중날 고향집 떠올리며
그리운 해남으로 달려가는 길
어머니 무덤 아래 노을 보러 가는 길
태풍 셀마 앨릭스 버넌 윈이 지난 길
홍수가 휩쓸고 수마가 할퀸 길

삼천리 땅 끝, 적막한 물보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마음을 주다가
문득 두 손 모아 절하고 싶어라
호남평야 지나며 절하고 싶어라

벼포기 싱싱하게 흔들리는 거
논밭에 엎드린 아버지 힘줄 같아서
망초꽃 망연하게 피어 있는 거
고향 산천 서성이는 어머니 잔정 같아서

무등산 담백하게 솟아 있는 거
재두루미 겅중겅중 걸어가는 거
백양나무 눈부시게 반짝이는 거
오늘은 예삿일 같지 않아서
그림 같은 산과 들에 절하고 싶어라
무릎 꿇고 남도땅에 입맞추고 싶어라


고정희 시인은 이 시를 쓰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생각해본다. 고정희 시인에게 남도는 어떤 곳이었을까?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일까?
살다가 문득 생각나고 그 곳을 생각하면 위안과 힘을 얻는 곳이 고향이라 생각한다.
특히 시에서 '무등산 담백하게 솟아 있는 거 / 재두루미 겅중겅중 걸어가는 거 / 백양나무 눈부시게 반짝이는 거/오늘은 예삿일 같지 않아서/그림 같은 산과 들에 절하고 싶어라/무릎 꿇고 남도땅에 입맞추고 싶어라.' 이 연은 고정희 시인의 해남 또는 남도 땅 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 고향에 대한 애정 또는 그리워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득 두 손 모아 절하고 싶어라'라는 행은 애정을 넘어서 신성하게 까지 느껴진다.

나는 고정희 시인의 <남도행>을 읽으면서 시와 내 기억이 겹쳐져 떠오른다. 고단한 서울생활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길. 영등포역에서 기차에 몸을 싣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높은 건물과 아파트에서 넓은 평야로 바뀌고, 5시간 30분 후 여수역에 내렸을 때 느껴지는 바다냄새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나는 천리향 향기, 변함없는 집, 나를 맞아주는 어머니를 보고 그동안의 고단함이 풀리고 안정과 편안함을 느낄 때, 그동안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도 모를 때 마음이 꽉 찬 거 같다. 남도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포근하고, 안락하고, 행복한 기억들이다. 그리고 그립다. 멀리 있어도 그 곳이 내 눈앞에 선명히 보이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남도행> 시 에서 남도의 바람, 공기, 햇살, 냄새를 느낀다.
고정희 시인에게 남도가 어떤 곳인지 더 이상 죽은 이에게 물을 수 없지만 우리는 고정희 시인이 남긴 시를 보면서 고정희 시인에게 남도가 어떤 곳이었는지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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