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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하자 인문학 5 : 애전별친愛錢別親글 수 387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려본 적이 있다. 다행히도 그 사람이 내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올 것이라는 확신은 분명했지만 말이다. 빈손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면 빈손으로 할 수 있는 짓거리를 찾기 마련이다. 계단수를 센다던가, 벽돌의 높이를 키로 재본다든가, 벽지의 얼룩에서 사람얼굴을 찾아낸다든가, 금 안 밟고 걷기를 하는 등 초조함과 따분함을 이겨내기 위하여, 끝까지 기다리기 위하여 무던히도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보아도 만남이라는 목표가 있고 기다림이라는 과정 안에 내가 있을 때는 결국 그 모든 게 기다림을 위한 것이 되어버린다. 후에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서 디디역을 맡으신 분이 배우에게는 ‘고도를 기다리며 하는 짓거리들’ 이 제목이 될 수 있겠다고 하신 말에 정말 맞다고 느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는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되는 법이지만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이 전부다. 끝까지 고도가 누구인지, 만나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비록 연극의 끝은 있고, 책의 마지막 장도 있으나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은 1막이 끝나갈 때쯤에도 직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고, 이어지지도 않으며 분명하지도 않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떤 직업을 가졌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 역시 알 수 없다.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 역시 오직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라는 것이다. 다른 단서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기에 그들의 정체성은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밖에 설명될수없다. 그것에서 좀 더 나아간다면 각 인물의 성격 정도일까. 그들이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자기암시를 계속 하는 것은 존재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뭐든 말을 해봐’ ‘내가 이야기해줄까? ’ 라고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며 앞뒤가 안 맞는 말들을 계속 지껄이는 것은 서로를 확인하려고 너무 애써서 너무 웃기지만 너무 애처롭다. 지껄임으로써 자신의 위상과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은 포조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그는 그것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다른 이들의 말은 듣지도 않는다. 묵묵히 짐을 들고 있던 럭키도 모자를 쓴 순간 온갖 말을 쏟아내고 그것은 입이 틀어막히고 몸이 죄일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말은 딱히 들려주고자 하는 대상도 없다. 책을 읽을 때보다 연극을 볼 때 나는 차라리 디디가 반복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못했으면. 이라고 바라는 마음이 컸다. 인지하고 난 뒤의 디디역을 맡은 배우에게서 과연 고도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불안과 절망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디디가 고고보다 더 불쌍하다는 뜻은 아니다. 디디의 절망은 표현되었고, 고고는 끊임없이 자기 방어를 하고 있기에)그래서 책보단 연극의 결말이 빨리 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고도를 기다리는 일을 그만 둘지도 모르겠다는.) 책에서의 디디에게선 충격과 순응이 동시에 느껴졌다면 연극에서의 디디는 충격 후 절망이 느껴졌다. 어쩌면 이게 읽는 것과 보는 것에서 받게 되는 감정의 정도 차 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고도는 누구이며 무엇일까. 고도를 기다리느라 그들은 목 메달아 죽지도 못한다. 어쩌면 고도는 그들 삶의 이유이자 목표가 아닐까. 너무나 허무맹랑하고, 형체가 없어도 인간은 이유와 목표가 있으면 그럭저럭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 그런데 그것이 끝이 없는 기다림이라는 것, 어쩌면 고도와는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안 후에도 유효한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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