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평화를 생각하며 막연히 떠올랐던 것들은 중학 시절의 나른하고 맑은 날씨에 평상에 누워서 구름을 올려다보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평화는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고 여러 곳에서 존재할 수 있다. 평화 워크숍 시간 때 ‘꽃 할머니’라는 책을 보았는데 위안부 할머니와 어느 일본군이 나오는 책이다. 전쟁 때 어쩔 수 없이 아무 소녀나 잡아와 고통을 준 일본 군인들과 갑자기 끌려와 고통 받는 할머니 얘기는 무척 가슴 아팠다. 이 쯤 돼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고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책 속의 일본 군 나카무라도 명령을 수행한 것이었고 꽃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결국엔 둘 다 전쟁의 피해자였다.
BIPPI(B's Independent Pro Peace Initiative)는 “평화는 정부와 정부 사이의 합의, 권력을 가진 사람 사이의 합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누구나 권력을 갖게 되면 독재적으로, 폭력적으로 바뀌는 걸까.
영화 ‘디 벨레’의 실사판,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에서도 실험적으로 한 독재정치 수업에서 독재자 역할을 맡은 선생의 발언은 “학생들이 보여주는 단일화 행동을 즐겼고 독재적인 역할에 본능적으로 빠져들었다”고 증명했다. 지금은 무섭지만 나 역시 영화를 보며 실험 초기 단계에서는 한 번 쯤은 참여 해보고 싶었다.
모두가 가질 수 있는 평화의 의미는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평화는 무엇일지 생각해봤는데 평화를 정의할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와버렸다. 어디에서의 평화인지 부터가 걸린다. 정치적 평화, 종교적 평화의 차원에서 말이다.
평화는 언제 어디에서 발생하고 깨질지 모른다. 만약 갑자기 폭력이 일어났다고 해보자. 그렇담 평화가 깨진 것인가? 그럼 폭력이 일어나기 전에는 평화로웠던 것인가? 평화에 기준을 세우는 게 내키지 않는다.
평화를 정의하려고 하는 게 이상한 것인가?
평화는 지속될 수 있는 것일까.
가령 위에서 시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학생들을 뽑아서 보낸 선생도 전쟁의 피해자일까요? 학생들을 보내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