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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녘:
작년 5월, 아무 것도 모르고 타이헨 극단과 만나고 워크숍에 참가했던 신체 장애인들을 처음으로 만났었다. 어쩌다보니 그날 배우를 들어서 옮기고 레오타드로 갈아 입히는 등, 쿠로코의 일까지 해보게 되었었다. 그날 5시간동안의 워크숍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는 몸이 녹초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 팀이 이야기하는 신체표현이니, 예술이 뭔지 잘 이해도 안가고 타인을 돌본다는 것이 너무나도 지치는 경험이어서 내게는 쿠로코 일이 조금 흥미롭고 새로운 경험이긴 했지만, 자체가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후에도 타이헨 팀과 엑스트라 배우부들을 만날 때마다 부담감이 느껴졌지만 그 횟수를 거듭해나갈 수록 점점 내 몸이 이 일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갔다.
김만리 선생님의 생각은 확고했다. 헬퍼가 아니라 쿠로코다, 장애인 연극 아니고 타이헨 예술이다. 신체 장애인들이 연극을 한다는 것에 처음에는 동정심을 통해 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 예술을 통해 만나는 공간과 시간에서는, 각각이 배우이고 쿠로코이다. 자신의 신체의 추함을 긍정하고 오히려 예측불능, 통제불능의 움직임이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다고 한다. 그 안에서 쿠로코는 배우를 아티스트로 만들며 연극을 이루는 존재이다. 그것이 전제였기에 크게 혼란스러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 구나;
타이헨프로젝트 동안 쿠로코로서의 내 감정과 개인으로서 감정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쿠로코의 일은 '동정'이나 순간적인 '감동'으로는 움직여질 수 없었고, 또한 오랜시간 만남으로써 생긴 '정'으로 일하는 방식을 만들어가면 안 됐다. 비장애인 쿠로코와 장애인 배우는 무대가 완성되기까지 사회의 기존 규범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존 규범에 대해 도전하며 새로운 존재방식을 내보인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의 조건 안에서 장애인은 그들에게 맞는 생활을 위해 비장애인과 '함께 살기'를 필요로한다. 그렇지만 비장애인의 역할은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타이헨프로젝트 동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협동작업이 되어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무대에 대해 집중을 했던 것 같다.
- 홍조:
나는 누군가를 보살펴 주고 보살핌을 받는 경험이 굉장히 익숙하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보살핌을 받았고, 조금 컸을 때는 새로 태어난 동생을 돌봤고 부모님의 손을 도왔고, 내가 거의 다 성장했다고 느꼈을 즈음, 병약해진 할아버지는 나와 다른 가족들의 간호 속에서 돌아가셨다. 그런 보살핌은 내게 있어 동정도 자원봉사도 아니었고,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어렸을 때는 주고받는 것이 명확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지만 오히려 그것이 익숙했고 순환되고 있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고 지금은 명확하게 그렇다고 생각한다.
배우와 구로코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로코의 구로코가 있는 것처럼, 무엇을 돌보는 일은 더 많은 사람이 하면 할수록 좋다. 우리는 서로를 계속 돌볼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우리는 똑같이 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내가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을 또는 노력을 해야 한다. 조심하고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를 가질 줄 알아야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장애인도 있고 비장애인이 있고, 배우도 있고 구로코도 있고, 나는 밀가루와 계란을 못 먹고 망구는 베지테리언인 등, 이런 일들이 밖으로 꺼내지고 서로가 알게 되고 더 잘 함께 하기 위해서 방법을 찾으려고 고민하고 심지어 잘 챙겨주는 모습도 보면서 서로가 이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였고, 이제 이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무브: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정말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표현이 등장햇다'라고 인터뷰를 하면서 말했었다. 그만큼 상대와 하나의 과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야 했다. 내가 일을 할 때마다 늘 추구하는 목표는 '조급하지 않게, 섬세하게 한다'이다. 타인의 속도와 나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공동 작업을 하게 되었다. 목표 면에서는 잘 학습이 된 것 같다. 쿠로코의 일을 통해서 생많은 것들이 생각났다. 평소라면 감추고 싶은 부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추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나는 존재를 감춰보려고 했던 적이 없던 것 같다=신체나 결여가 없다는 생각에 한 번도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전에도 얘기했듯이 [같음의 개념으로 부터 차이와 억압이 발생한다]라는 말이 이번 워크숍에서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사실 MaD에서 배웠던 것이지만 개념적으로는 이해 했으나 그에 뒷받침해줄 경험이 없었다.)
- 쇼:
리뷰시간에 우리가 이야기 하게된 pity는 내 머리, 감정, 마음속에선 떠난 지 오랜 것 같다.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전반적인 맥락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속에선 pity와 같은 동정심은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쿠로코 역할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들었던 생각들 중 생활보조와, 무대 위에서 함께 구로코 역할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일들을 empathy나 pity를 떠나서 함께 사는 사람으로, 같이 극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로서 (우리의 위치는 같은 극을 만드는 배우와 쿠로코의 위치였으니깐) 해야 하기 때문에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은 타이헨 프로젝트가 한 단락 마무리 된 시점에서 기존에 있던 배우분들이 아닌 다른 비슷한 장애인 분들을 만났을 땐 난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지가 고민이었다. 하지만 지금 정리된 생각으로 우리가 현 사회속에서 표준화된 인간으로서가 아닌 함께 살기를 생각하고 타이헨 프로젝트 기간동안 해왔던 일들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리되었다. 사회 안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그래서 뭐가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우리가 고민하는 다양성의 범위를 좀 더 넓혀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동정하고 싶지 않다.
- 씨오진:
기본적으로, 눈 앞의 장면을 만들어 나가는 데 근거없는 책임감을 느꼈다. 먼저 해야할 일을 인식했고,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함께 일해야 할 사람들이 장애인 배우와 일본인 쿠로코라는 것을 파악하고나니 어떻게 소통해야 할 것인가에 꽤 오래 고민하게 되었다. 생각은 많이 했지만 일을 하면서 어떤 종류의 불편함이나 다른 감정이 새어들면 쿠로코로써 어떤 캐릭터를 입게 되는것같아 얼른 지우려고 했고,그게 어려우면 스스로에게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한다고 되뇌이곤 했다. 리뷰 때엔 동정이란 단어에 대한 헷갈리는 생각을 두서없이 얘기하긴 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니 난 장애인들에 대한 동정조차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 였으니, 무관심이었다는 게 맞다. 그러다보니 배우분들과 일을 하면서도 그저 함께 장면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그들만의 표현과 다름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표현과 다름이 비장애인인 나의 관점에서 불편하고 부자연스럽게 보일 때에는 동정이 끼어들기도 했다. 장애인이 내 인생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여러번의 리허설과 세 번의 리허설을 거치면서 그들의 신체적 표현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그런 동정은 사라지고 쿠로코로써 배우들과 함께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작은 뿌듯함이 대신 들어왔다.
- 영서:
일단은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 이해하고 열심히 했다기보다 열심히 해가면서 이해해갔달까..
- 푸른:
처음에는 두려워 했고, 그 후에는 담담한 편이였던것 같다. '작업 '을 한다는것이 어떤 공간에 대한 책임감이 부여되는것 같아서 긴장도하고 틀리면 어쩌지 하면서 두려워도 했었다. '일'을 잘해야하고, 잘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에 바빠서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을 느낄 틈이 없었던 것 같아서.흠.글쎄요. 오히려 배우분들과 많이 친해지지도 ,무대뒤에서 많이 잘하지도 않고 그냥.중간정도의 감정으로 .중간정도의 느낌으로.
- 선호:
첨엔 좀 장애인을 대한다는게 두려웠지만, 이내 익숙해짐... 근데 장애인분들을 구로코들이 둘러싸고 작은 말만해도 뒤집어지는 풍경들을 보고 나 자신도 겪으면서 느낀 건, 음... 만약 저분이 비장애인이거나, 혹은 자폐거나 했다면 지금 우리가 웃고있을까? 이런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똑같이 대하진 못할 것 같았고, 그래서 혼란이 많았다. 난 왜 웃은걸까? 장애를 가짐에도 그런 말을 한게 기특해서? 이런 생각을 하니 스스로가 가소롭기도 했고, 아무튼 이렇게 해서 나에게 혼란이 찾아왔슴다...ㅠㅠ 한편으론 나나이상이 한 번 강조한 적이 있었던 건데, 헬퍼가 아닌 구로코로서 일해라. 이런거였다. 헬퍼와 구로코는 어떻게 다른걸까? 이런걸 많이 고민했었다...
아 그리고 다른 구로코들과 힘을 맞춘다는게 짜증나기도 하고 힘들었다. 꾸사리 먹은 날은 괜히 더 짜증나고 그래서 배우들한테도 신경질적으로 대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죄송합니다... 제가 어렸네요..
- 신상:
사람을 만난다면 감정은 그 사람한테 가는 것 같다. 내가 그 사람이랑 얘기를 하면 그 사람한테 얘기를 말함과 동시에 내 감정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쿠로코를 하면서 배우 분들과 얘기 할 때가 있는데 그때 감정을 전달한다는 것을 많이 느낀 것 같다.
- 아이:
솔직히 말하자면 배우들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해주고 싶었다. 배우들의 발목이나 무릎 치료를 몇번했는데 매번 까지면서 딱지가 생기고 멍이들어 힘들어하시는 배우분들을 봤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냉철하게 판단하고 무대를 올리기가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마음먹고 선뜻 말하기도 어려웠고, 거절하거나 그런걸 쉽게 못했다. 그래서 거부를 하더라도 조심스럽고 배려해주는 식으로 말을 했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그 혼잡한 속에 그것에 대해 또 혼잡해지기 가 어려워 쉽게 생각하려고 했던것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한가지는 분명한것은 다른 어른들에게 하는 행동과 다른게 없었으며 배우분들을 존중하는 마음은 언제나 들었고 배울점도 많았다고 생각했다.
- 플씨:
내가 쿠로코를 했을 때 배우들을 대하는 방식은 '그들은 그저 쿠로코라는 것이 필요한 연극배우'였다. 이게 옳은지 그른지는 판단이 안 선다.
- 펑크:
난 스테프여서 잘 모르겠고 다른 쿠로코들에 비해 배우분들과 말도 별로 안하고 그다지 친해지지도 않아서 근데 동정심... 이라기 보단 그냥 몸이 불편하시니까 내가 도와드려야 겠다... 이런 생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할아버지나 할머니 힘드시니까 밥상 차려드리는게 동정심 때문은 아니잖아요? 전 그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생활 같이 할 땐 대충 그렇고 공연이나 연습땐 그저 공연이 잘 되도록 열심히 뛸 뿐이지요.. 따지고 보면 너무 무감정..? 무관심 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냥 그랬어요 결론은 별 혼란이나 거리낌 같은게 없었다. (내 자신이 동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분명 스스로 혼란을 느끼겠지만 그런게 전혀 없네요)
- 주님:
딱히 동정이라고 특별히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식사보조 해드리면서 '얼마나 불편하실까'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래서 더 도와드리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도와드리고 싶었다. 내가 싫어하는 감정 중 하나가 동정심이고,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불쌍하다'이다. 남이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갖거나 그런 말을 한다면 내가 스스로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싫어한다. 그런데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 중 하나가 동정심이고, 의도적으로 삼키려 가장 노력하는 말은 '불쌍하다'이다. 그런데 타이헨 연극 연습 동안은 스스로 동정이라는 기분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처음에는 얼마나 불편할까, 생각하는게 설마 동정심인가 혼란스럽긴 했지만 동정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물론 내가 배우분들 보조해드리면서 '배우가 연극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할 수 있게 내가 최선을 다해 도와야한다'라는 비장한 마음가짐을 가졌던 건 아니다. 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음 그냥 평소에 사람들을 배려하던 나의 깊은 배려심의 일부였던 것 같다.
- 온:
처음에 나는 일단 입학 초기이기도 해서 정확히 타이헨이 어떤 곳이고 쿠로코들은 뭘 하는지 잘 몰랐다. 뭘 하는지 몰랐다기보다는 쿠로코로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 같은 것을 몰랐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고성 공연과 가족 여행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자진해서 스태프가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처음에 허브홀에서 연습할 때는 스태프들이 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 정말 버려진 느낌을 받았고, 할 일이 없어 아무 생각 없이 놀다 보면 논다고 욕먹기 마련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가끔 감정이 격해질 때면 ‘아무 생각 없이 하자는 대로 하고 있잖아, 일반 학교랑 다를 게 없어’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아직 배우 분들을 접하기 이전이었고 타이헨에 대한 지식이 있기 전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허브홀 2층에서 있었던 히옥스의 명강의로 인해 생각이 점차 바뀌게 되었다. 타이헨 극단의 취지는 ‘장애인도 이런 것을 할 수 있다’ 가 아닌, ‘바로 이게 인간의 모습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히옥스가 ‘진짜로 힘내서 열심히 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너희 스태프들이다’ 라는 말에 혼란스러움 속에서 무언가를 잡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히옥스를 비롯한 타이헨 관계자 분들이 절대 봉사자의 마음으로 임하지 말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장애인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저 사람들은 도와 주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어쩌라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함께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웃다 보니 알게 되었다. 봉사자의 마음을 가지지 말라는 것은 그들을 돕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다. 배우 분들은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연극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우리가 돕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을 동정심 같은 것을 가지고 바라보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냥 불편한 것을 도우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이렇게 이해했는데, 만약 내 친구가 팔이 부러진다면 그 친구는 세수하는 것도, 물건을 드는 것도 힘들 테니 내가 도와 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고 불쌍해라, 쯧쯧쯧’ 하는 생각을 하며 아기처럼 대하지는 않는다. 만약 내가 그렇게 대하면 친구도 기분 나쁠 것이다. 타이헨의 배우들을 대할 때는 정말 이렇게 대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은 분명 신체의 일부가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우리가 그 사람들을 동정할 이유도 없다. 그들은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이제 온 몸으로 느껴진다. 물론 아직도 그 느낌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이 접해 보면서 이 생각이 더 확실해질 거라고 믿는다.
- 숑:
글쎄요?????????????????????? 봉사를 하는 마음 가짐으로는 절대 이 프로젝트를 잘 해나아갈수 없다는 김만리 선생님의 말씀에, 왜 그럴까 생각을 쪼~오끔 해봤는데 보통 학교에서 봉사활동 같은걸 체험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장애인이 아니라는것에 감사하면 살아야 한다는것을 깨닫고,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어쩌면 동정심을 생기게(?) 하는 목적도 있지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면 안된다고 하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항상 편한 마음으로 일을 했습니다. 스태프일을 하면서 나는 장애인분들이 배우로써의 역할을 잘 할수있게 협조를한다는 마인드(?) 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별:
봉사활동과 배우로서 대한다는 것 그것의 차이점에 대해서 딱히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것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의 문제였다. 나의 이러이러한 모습이 봉사활동 같은 모습을 연출할 것이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여 버려서 생각하지도 못하고 이것저것 다 하다 보니 다 저질러 놓고 내가 이런 행동을 했었구나. 라고 후회하곤 한다. 사실 그 행동이 어떤 느낌의 봉사활동 같은 느낌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좀 더 디테일한 생각으로 머리 속에 딱딱 정리 해놓고 싶은데 그 것도 잘 되지 않고.. 내가 소록도에 다녀 와서 그런지, 장애인 이라던가 겉모습이 우리와 다른 사람에 대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겉모습에 대해 안 좋게 바라보기 때문에 생긴 상처’가 크기 때문에 나는 그 것을 안 좋다고 생각하지도 말아야 하고 표현하지도 말아야 해. 라는 생각이 커서 왠지 나도 모르게 좀 더 상냥하게 대하게 되고 계속 신경 쓰게 되고 오버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 공룡:
그냥스탭으로서 열심히 일하자는 마음이였다. 열심히 일해서 배우분들 구로코들이 연극에만 몰두할수있게 하자 이런 감정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 미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무엇일까.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경계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장애인라는 단어 자체에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봉사라는 말은 시간이나 여러가지를 내어준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자원활동 이란 말을 쓴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아직도 햇갈리지만 나와 배우들의 관계는 내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내주는 것(봉사)이 아니라 나의 성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자원활동) 일로서 만난 관계라고 생각 하려고 한다 또한 생각하는 것 보단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복잡하게 만든 것은 '안전' 이였다.
꽃동네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고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예전에 깨달았는데, 단지 열심히 하려는 의욕에 침착함이나 옛 경험들이 눌렸지 않았나 싶다.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의외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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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임하는 자세가 자원봉사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난 자원봉사를 했던 것 같다. 상황에 따라서 배우들의 요구를 적당히 거절할 줄 알면 구로코로서 동정심 없이 임하고 있단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것이 아니였다. 진짜 이들을 장애인이 아닌 배우라고 생각 했으면 나는 이들에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했을까? 감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것도 아녔다. 나는 결국 동정심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