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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하자 인문학 5 : 애전별친愛錢別親글 수 387
온의 리뷰: 처음에 나는 쿠로코를 헬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히옥스와 타이헨 관계자들이 ‘쿠로코는 헬퍼가 아니다’ 라고 했을 때, ‘헬퍼가 아니라면 어떻게 배우들을 대해야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없지않아 있었다. 이제까지 나는 장애인들과 봉사의 관계 이상으로 만나 본 적이 없었고, 또 장애인들을 우리가 돌봐 주고 도와 주어야 하는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도 꽃동네에 갔었는데 그 곳에서는 물론 봉사자로 간 이유도 있지만, 거기서 받은 교육의 내용이 장애인들은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에 나 같은 비장애인들이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꽃동네에 있는 장애인 분들은 대부분이 갈 곳이 없는 분들이라 그렇게 교육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제까지 접했던 사회에서의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비장애인과 다를 것이 없고 똑 같은 권리를 가진다’ 라는 포장 속에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이 도와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캠페인 등에서 나오는 모습은 장애인들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또 비장애인들이 그들을 도와 주어서 그 때문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된다고 맺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장애인들에 대한 나의 인식이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하자와 타이헨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서 좀 헷갈렸다. 너무 오랫동안 장애인을 돕는 것은 오직 봉사에만 국한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우 분들이 가진 장애를 ‘불쌍하다’ 는 감정을 지우고 바라보자 그제야 헬퍼가 아닌 쿠로코, 혹은 스태프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보였다. 말 그대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이헨이라는 일본의 어떤 극단이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잘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돕는 것이었다. 이 때 돕는다는 말은 장애인을 도운다는 말이 아니라 타이헨과 우리 모두의 프로젝트를 위해 돕는다는 말이다. 물론 타이헨의 배우들은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식사나 화장실에서 도움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을 주로 도우려고, 즉 봉사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신체적 특성상 빠르고 안전하게 연극을 준비하기 위해 한 극단의 쿠로코로서, 그리고 스태프로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아직까지 내가 장애인들을 완전히 동정심 같은 것 없이 대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장애인들을 ‘불쌍하다’ 는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을 때 내가 이전까지 장애인들을 대할 때 느꼈던 불편함이나 부담감이 사라진다는 것은 확실히 느꼈다. 나는 가족여행이 겹치는 바람에 고성 공연을 갈 수 없어서(내가 쿠로코로서의 자질이 없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스태프로 있었지만, 배우분들을 접할 기회는 충분히 많았다. 그러면서 내가 이제까지 가져 왔던 많은 생각이 달라졌다. 의사소통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면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함께 웃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장애인들과 의사소통이 불편하고 힘들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들이 말을 어렵게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말에 귀를 제대로 기울이지 않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스태프들은 정말 할 게 없어서 정말로 쩌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공연이 닥쳐오니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는 건 좀 과장이고, 정말 바빠졌다. 배우들의 메이크업부터 쿠로코들이 챙기지 못하는 다른 것들을 우리가 다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것이어서 좀 정신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우리가 쿠로코 못지않게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보람찼다. 아직도 히옥스가 정말 정신차리고 열심히 해야 할 사람들은 우리들이고, 또 우리가 진짜 보이지 않는 쿠로코라고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때 스태프의 일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었는데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 준 말인 것 같다. 타이헨은 정말 어렵고 이상한 극단이지만, 이런 극단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는 게 기뻤고 앞으로도 공연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입학하자마자 한 달 남짓 간 해 온 프로젝트가 끝나서 좀 멍하기도 하다. 왠지 하자에 타이헨을 하러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입학하고 모두 함께 한 첫 번째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내서 기분이 좋다. 합숙을 하고, 계속 함께 지내며 다른 죽돌들과 하자의 문화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되었고, 또 익숙해져서 앞으로 잘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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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1 00:22:05
주님의 리뷰: 1. 배우들과 만나기 전 타이헨 극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저 사람들을 장애인이 아닌 한 명 한명의 배우로 대해야 한다는 걸 많이 강조했었다. 그런데 나는 장애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연기를 과연 배우의 연기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된다. 예전부터 동성애자나 장애인이나 기타등등은 나와 조금 다를 뿐, 다 같은 사람이란 것을 배워왔고, 가르침받았다. 장애인은 항상 불편했고, 때로는 불쾌할 때도 있었다. 꺼려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었다. 며칠 뒤, 타이헨 연극을 시작하면 나는 어두운 곳에 서서 무대 위에 있는 배우들을 보게 된다. 불빛 아래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나는 그림자의 모습을 하고 지켜보면서 2. 배우분들을 만나고 본격적인 연극연습을 시작했을 때, 처음 한동안은 불만이 많았었다. 그런데 연극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듣고 나니 충분한 동기가 생겼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게됐다. 그런데 연극을 보면 볼수록 이 연극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될지 의문이 들었다. 배우분들은 무엇을 위해 이 연극을 하는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또 이 연극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를 극복하고 연극을 하는 멋진 장애인들을 보았을 것이다. 3번의 공연을 하며 관객은 이 연극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가장 궁금했고, 불안했다. 고성 연극 때 사람들의 진지하지 못한 분위기와 군수님의 말에 기가 찼는데 3. 배우분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즐거웠다. 농담도 하고, 같이 산책도 가고 하면서 서로 친해지고, 편해졌다. 4. 그러나 가끔은 내가 너무 과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약 배우분들과 같은 나이의 장애가 없는 아줌마 아저씨들이라면 때로는 내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하게 도와드릴 때도 있었고, 동정심이라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장애인임을 과하게 의식할 때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5. 공연을 다 마치고 정리하며 내가 왜 처음 배우분들을 만난 날 리뷰할 때 배우분들 식사 도와드리는 게 즐겁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배우분들 옆에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때 많이 기뻤던 것 같다. 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 준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내 자리에서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그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다. 6. 그리고 이건 개인적으로 느낀 나의 문제 자기 할 일은 자기가 알아서 빠닥빠닥 찾아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한 번 할 일을 놓치고 나면 왠지 너무 큰 실수를 한 것 같고 그렇게 힘들고, 힘들어서 불만이 생기면 그 때 다른 사람이 해주는 충고를 삐딱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충고는 그냥 그 충고 자체를 듣고 내가 받아들일 점을 잘 수용하는 연습을 해야할 것 같다. 는 생각을
2011.03.31 09:37:05
펑크의 리뷰 처음에 타이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했을 땐 하기 싫다거나 귀찮다거나 이런 감정보다는 두려운 감정이 먼저 들었다. 내가 소록도 봉사 갔을 때 어떤 할머니 밥먹여 드리다가 목에 걸리셔서 운명하실 뻔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센병 환자와 신체장애인은 좀 틀리겠지만) 그런 안 좋은 기억도 있고 해서 또 내가 사고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에 먼저 사로잡혔던 것 같다. 그 때 내가 쿠로코가 아닌 스텝이 되었다는 소식에 약간의 안도를 했다. 물론 나중엔 스텝도 쿠로코 못지않게 배우분들과 접촉을 많이하고 힘들다는 걸 알게되었지만.. 처음 배우 분들과 연습을 했을 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레오타드로 쨘~ 갈아입고 나오셔서 바로 막 굴러다니시고 몸푸는 걸 본 것 같은데, 몸동작이 매우 자연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허브홀에서 연습할 땐 스텝이 짐풀고 잠깐 뭐 사러가고 점심 수발해 드리고 이런 일밖에 없어서 빈둥거리는 시간이 많았는데 난 오히려 그런 빈둥거리는게 더 진이 빠지고 힘들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망구의 부상으로 인해 내게 쿠로코 체험의 시간이 왔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쉴 새 없이 바쁘고 뭔가 무대뒤에 바로 있는거니까 긴장감이랄까, 이런게 계속 느껴지니까 몸은 힘들지만 스텝보다 재밌었다. 코우스에서의 연습고ㅏ 리허설, 첫번째 공연때는 내가 원래 좀 어리벙벙하고 둔한아이라서 내 할일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다른 애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나만 의자에 앉아서 멍때리고 있다가 스텝들중 한명이 '펑크야 이것좀 도와줘!' 하면 그제서야 뛰어가는 정도. 그러나 어느정도 감을 익힌건지, 아니면 할 일이 너무 많았던건지, 두번째 공연때는 휠체어 타신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나도 나름 내 역할을 찾고 열심히 뛰어 다녔다. 그리고 고성으로 떠났다. 난 풀, 승락님과 한 방을 썼는데, 승락님은 혼자서 다 하시니까 우리의 역할은 그저 같이 TV 가요프로그램을 보며 가수들 평가하는 것 이었다. 암튼 또다시 분주하게 무대셋팅을 하고 리허설을 하고 공연까지 했는데 그날 스텝들은 관중석에서 공연을볼 수 있었다.(아마 스텝의 최대 장점이 아니었을까) 공연은 정말 원더풀했고, 쿠로코들의 실수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걸리는 것은 관객중에 억지로 끌려온 단체관람 학생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진짜 시끄럽고 장애인을 비웃는 말들도 막 나와서 뭔가 짜증나고 화가났지만, 타이헨 프로젝트 이런걸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이런 공연을 학교에서 단체관람으로 갔다면 나도 똑같이 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못했다. 끝나고 개인적으로 내 전체적인 평가를 해 보았는데, 평점을 낮게 주고 싶다. 물론 모든 날에 못한 건 아니지만 할 일을 찾아 해메지 못했단점이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일주일간의 여정에도 불구하고 몸이 심하게 피곤하진 않아던 것 같다. 또 아쉬웠던 점은 초반에 정신적으로 연령이 낮으시거나 정신에 문제가 있는 분들도 아닌데 그저 말을 더듬고 힘들게 말을 하신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어린애 대하듯이 대한 감도 있었단 것이다. 물론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 것 같다. 암튼 내가 쿠로코들간의 내막을 잘 알진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꽤 성공적이었던 프로젝트였다. 장애인들에게 느껴지는 동정심같은거... 그런 건 내 생각엔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몸이 불편하신 분들 도와드리는 것뿐. 그러나 그렇게 하다보니까 너무 내가 딱딱하게 굴고 무관심 했던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워낙 방대한 프로젝트이다 보니까 한달동안 타이헨만 한 것 같다.
2011.03.31 09:52:30
타이헨 마지막? 리뷰 플씨 장애인을 존중하자. 장애인의 입장에서 그들을 생각해 보자. 과거 디자인 교육원에서 유니버셜 디자인을 공부하거나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한번쯤은 듣거나 보아온 말이다. 나는 그동안 옳은 말이기에 따르겠다고 생각했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 등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스스럼없이 그들을 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종의 자부심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타이헨 때 그 결심이 드러날 것이라고 나름의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허브 홀에서 처음만난 배우 분들을 보자마자 애써 시선을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한 나. 부자연스러운 그들의 행동과 걸음에 나는 큰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왜 장애인들이 언어가 유창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애경님 동림님을 제외한 한국 배우 분들은 귀를 어느 정도 주의 깊게 기울여야 대화가 가능한 분이셨다. 그랬다. 말로만 존중해봤지 실제로 그들과 이야기 한번 안 해본 나는 크게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코우스에서 리허설 하기 전까지의 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거의 휩쓸려 가다시피 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장애인들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도 새로운 경험이고 아직 연극의 내용과 그 내용에 맞는 장면이 무엇인지도 몰라 멀뚱멀뚱 연습하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진로 방해가 돼서 일본 구로코들에게 비키라는 소리나 듣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수업이 끝나고 진행되는 리뷰 시간마다 다채로운 의견을 쏟아내는 재학생 구로코들을 입이나 쩍 벌리고 쳐다봤다. 그러한 날이 계속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과연 문제가 뭘 까 생각했다. 어느 정도 반수면 상태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타이헨을 너무 복잡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그게 당시의 나에게 딱 맞는 말이었다. 재학생들의 리뷰와 타이헨 예술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같은 말에 나는 쓸데없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 부담감은 장애인 배우들을 처음 접하면서 발생한 어색한 나의 모습으로 인해 가중되어 있던 상태였다. 게다가 특정 역할이 아직 정해지지 않는 구로코였으니 가만히 놀고먹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 혹은 불안감 같은 것도 느끼고 있었고. 그런 생각만 복잡하게 하는 방식으로는 타이헨을 즐기지 못한다. 나에게 타이헨을 즐기는 것이 당장 풀어야 할 숙제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은 것이 코우스에서의 첫 연습이었다. 배우 분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는 것을 즐기려고 해보았고 연습 때 항상 주어진 역할이 없다고 불평하기 보단 잠시 여유를 즐기던지 대본을 보면서 다음 장면을 준비할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 날은 아마 워크숍을 하고 처음으로 졸지 않은 날이다. 난 일단 그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점점 나아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내 선에서는 순조롭게 진행 된 것 같다. 매 연습 때마다 주어진 역할이 없으면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던 모습은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역할이 없으면 다음 장면을 미리 생각하는 것 등으로 따분함도 달랠 겸 나름의 대비도 했다. 그렇게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첫 공연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연습 때 어느 정도 가지게 된 여유는 어디로 갔는지 내 마음속에 긴장과 흥분만이 남았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것 외에는 다른 게 생각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두 번째 공연 때는 눈에 띌 정도로 긴장감이 줄어든 내 모습을 보고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세 번째 공연을 위해 고성으로 가고 고성에서 보낸 시간은 내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이제 나도 구로코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는 생각이 들게 된 시간이었다. 배우 분들과 같이 앉아 있는 게 어느새 푸근하게 느껴졌다. 고성 공연하던 날 동림님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에 나와서 동림님은 휠체어에 난 바로 옆에 쭈그려서 같이 대화를 했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편하게 느껴졌는지. 스텝들이 하는 일이었지만 배우 분들 밥 먹는 것 도와주는 것도 내가 하고 싶어지는 시간이었고, 일본 구로코들이 잡일할 일손을 필요로 할 때 먼저 손들고 싶어지는 그런 시간이었기도 했다. 즐기는 것을 의도하여 즐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즐기게 된 것이었다.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타이헨은 나에게 있어서 경험의 성지나 다름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게 성지면 앞으로 일어날 다른 경험은 어느 정도나 수식어를 갖다 붙여할지 모르겠지만) 장애인과 말을 섞거나 같이 행동하는 것도 처음이요 연극을 준비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일본사람과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많은 대화를 한 것 도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가장 흥미로운 점 몇 가지 중 하나는 나에게 전통춤이라는 의외이자 상당히 큰 성과를 남겨주었다. 코우스 공연 때 장고춤을 담당한 재일교포 김군희 선생님이 연습하는 것을 잠깐 지켜보았는데 그게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줄이야. 전통춤의 미소와 스텝이 마냥 신기해 보였다. 고성에서는 박경랑 선생님의 싸인 까지 받고 고성 오광대의 시범 춤을 보면서 그림으로 옮기고 배우고 싶은 충동이 생겼을 정도였다. 그 외에도 아라까와 상이라는 서울을 여행하고픈 일본 구로코에게 서울에서 가볼 만한 곳을 가르쳐주거나 나처럼 만화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구로코 한분과 대화를 하면서 이러한 경험에 지금도 감사한다. 하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숙제들이 많다. 나 자신의 변화와 구로코로서 어떻게 배우들을 대해야 하는 지 등은 느껴졌지만 타이헨 예술이 정말로 무엇인지 나는 과연 타이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놀아볼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타이헨을 주제로 적어도 그림 하나를 그릴 수 있을때까지 내 리뷰는 끝나지 않을 것 만 같다.
2011.03.31 10:23:06
들풀의 리뷰
겁나게 거창한 얘기로 시작해보자 ㅋㅋ
내 생각엔, 삶은 리얼버라이어티쇼, 우리는 연기자들, 하느님은 김태호를 뛰어넘는 우주최고의 PD인거같아. 무한도전 멤버들이 여드름브레이크 미션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동차 따위를 김태호PD가 치밀하게 준비해놓듯이 "세상에 이걸 여기에 써먹게되다닠ㅋ"
그 '자아의 신화'가 우리가 만났던 신체장애인분들에게는 타이헨 연극이었던 거 같아. 아버지를 애타게 찾는 아이들의 손휘저음은 그분들이 장애를 갖고 태어나지 않으셨다면 볼 수 없었겠지. 그런 아름다움이라면.. 물론 그건 그것대로 매력있었겠지만 타이헨극단이 표현하고자 했던 황웅도의 한은 그 화려한 움직임에 가려지지 않았을까?
근데 안타깝게도 세상은 아직 그분들의 상황을 존중할 줄을 모르는 거 같아. 존중할 줄을 모르는건지 다 알면서도 지들 편하려고 그러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마지막 뒤풀이에서 창우님이 무지 멋지게 한마디 하셨잖아. ㅎㅎ폭풍감동
딱 일년만 타이헨프로젝트를 빨리 했어도 학교에 있는 지적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고성공연날에 화장실에서 승락님(아니 진석님이셨나) 레오타드를 입혀드리는데 "오늘만 하면 이제 끝이네요" 라 말씀하시는게 왜 이리 아쉬웠는지.ㅋㅋ
댓글에도 복원기능 넣어주십쇼 열심히 썼는데 날라가서 저 울컥 한번 했습니다...
2011.03.31 10:29:40
쿠로코 워크숍 진행 중에 나나이 상이 이런 말을 했다. 당신들은 헬퍼가 아닌 쿠로코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땐 대수롭지않게 넘겼지만 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말 핵심적인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떤 연민에 의해 움직이는 봉사자가 되선 안되었고, 타이헨에서 강조하는 ‘프로’가 되기위해 쿠로코라는 역할에 충실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봉사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배우분들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고, 꼭 그만큼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확신이 있을 것이었다. 내가 그분들의 옆에 갑자기 다가가 필요이상의 도움을 준다면 좀 어리석은 일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다고 쿠로코가 되지도 못했다는거다. 배우들에게 필요이상으로 차갑게 대했고, 나 지금 기분 안좋아요 라는 기를 내 주위에 만들어서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했던 것 같아서 아쉽고 죄송하다. 음.. 비유하자면 온도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장애인분들이 배우로 다시 태어나듯이 나도 쿠로코로 다시 태어났어야했는데 나는 너무 기존의 내 모습 그대로 행동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감정을 돌보느라 쿠로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렇게 한번에 두가지 일을 못하는 걸 보면 내가 어리긴 어리구나 느낀다. 모든 일정의 끝자락, 일촌식당에서 식사를 할때 방송국 pd가 무엇을 느꼈냐고 물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변한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내가 변했다.”라는 말을 할 때 너무 부러웠다. 더 많이 긴 리뷰를 써보고 싶다. 하지만 그건 개인적으로 쓰고 나 혼자만 보고싶다.
2011.03.31 10:58:47
푸른의 리뷰:
시작하기 전에 사실 나는 걱정이 앞섰었다. 그 순간의 공연을 위해서 참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걸 알기 때문에 몇주 남지 않은 시간에 껴서 페만 끼치는건 아닌지 걱정했었다. 덤덤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돌본다는것과 굉장히 거리가 먼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는것도 누군가를 돌본다는것도 나에겐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일이다. 장애인분들과 만난다는 생각에 '쿠로코'가 아니라 '돌봄'을 먼저 생각하면서 긴장했었었다. 내가 자신없는 부분이니까. 처음에 쿠로코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도 내가 왜 된거지..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라는 생각을 했었고 헬퍼와 쿠로코의 차이를 잘 몰랐었었다. 장애인이니까 '돌봄'이 필요할테니까 먼저 다가가야 할테니까 라는 생각들 때문에 어딘가에 휩쓸리는 느낌으로 쿠로코연습을 시작했던것 같다.
처음으로 배우분들의 연기를 눈앞에서 보았을때는 적어도,감정을 전달하는데 몸이 불편한것은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는걸 느꼈다. 또 그들도 그들의 몸을 이용해서 색다른 동작을 만들 수 있고 그 동작들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비장애인들이 흉내낼 수 없는 움직임' 이라는 문장이 온몸으로 다가왔달까. 일주일동안의 합숙을 하고 세 번의 공연을 하면서 가까이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무관심' 했던 나에게 신체에 불편함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 분들이 가까이에 있고, 또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라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였고, 내가 굉장히 작은 세상에서 살아왔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몸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같은 땅에서 다른 세계를 살아야 하고 이 분들은 공연이 끝나면 다시 그 분들의 세계로 , 나는 나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이 . 처음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쿠로코 일도 익숙해져 갔지만 검은 천뒤에서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였다. 불필요한 행동들과 말을 없에고 그 불필요함의 기준을 잡아내는 것이 어려웠다. 여태까지 대부분의 나는 배우는것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일'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행동들이였다. 어떤 공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들이 많았고 움직임들도 약속되어 있는것이 많았다. 그래서 갑자기 공간에 대한 책임감과 약속들이 늘어나서 당황했었다. 이게 맞는건지 확신이 없어서 우물쭈물 했던 적도 많았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적응해 갔지만 그런 부분들이 많아서 좀 아쉽고 앞으론 ' 행동을 하는것' 에 대해 더 생각해봐야겠다. 언제 일본쿠로코분한테 '존경'에 대한 코멘트를 받은적이 있었다. 그 코멘트를 듣고 '이분들이 신체에 불편함이 없는 일반배우분들 이셨다면 나의 행동은 달랐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대답은 yes였다. 무대를 동경하는 내가 배우들 앞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다거나 웃는것과 같은 행동을 하는것은 아마 일어날 수 없는 행동들이 였을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럼. 배우로서 대한다는건 뭐고, 장애인으로서 대한다는건 뭘까 라는 고민이 생겼고, 그 고민을 꽤 오래 잡고 있었다. 그냥 장애인분들을 돕는 것은 도덕심과 동정일 수 있는, 봉사활동이라고 불리는 종류의 행동이지만 쿠로코로서 배우분들을 대하는 것은 우리가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쿠로코로서 예술을 위해,극을 위해 그분들을 돕는것이고 그것이 그분들이 배우가 되고 내가 쿠로코가 되는것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고성에서 이 생각을 정리했었는데 그때부터 배우분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쉬워지고 더 이상 '돌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닳았다. 나는 중간중간 '우리'라는 생각을 했었었다. 히옥스가 말씀하신게 계속 머리속에 남아있었고 잊을만하면 떠올랐다. 우리의 첫번째 프로젝트였고,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서로의 소통?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정말 우리가 우리였나.라는 의문점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래서 쉬는시간때 잠시 무대뒤에서 나오면 관객석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보면 더 속상해 했었고 정말 우리가 소통하고 있는게 맞나. 스태프와 쿠로코로 나뉘어져 있지만 한 팀으로써 움직이고 있는게 맞나 라는 속상한 감정들이 가끔가끔씩 올라왔었다. 각자가 열심히 하고있지만 그것으로 끝인걸까. 그러면서 너무 정신없이 .너무 빠르게. 너무 큰 프로젝트가 다가온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알고 조금 더 준비가 되있을때 다가왔었다면 더 잘해낼 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무대를 만나는것은 즐겁고 설레이는 일이다. 그 무대에 대한 무의식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배우가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좋았다. 하자가 좋았던 이유중 하나인 '다양한경험' ,'내가 생각할 수 없었던 경험'들을 해나가고 있는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2011.03.31 22:41:49
아이의 리뷰: 첫감정 어쩌면 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쉽게 보았고 그러기에 설레이고 재미있겠다 흥미롭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난 첫 프로젝트라 일단 분위기나 어떻게 해나아가는지에 대한 관찰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약 스탭과 쿠로코를 고르라 하면 스탭을 하려고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쿠로코에 뽑히자 조금은 당황했고 어떻게할지 감이 안왔다. 첫 연습때는 긴장을 못하고 집중도 못하고 그냥 나에게 언젠가는 다가올 주어진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방해가 되기도하고 지적을 받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다음 연습에는 주어진 일을 마냥 기다리는 것보단 찾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일본쿠로코들에게 나도 할줄안다! 이런걸 보여주고 싶기도 한것 같다 무튼 나의 생각은 곧 전달이 되었고 어느 덧 이름도 불리우며 작은 일부터 해나아가기 시작했다. 배우들과의 만남 솔직히 나에게 말을 먼저걸고 나도 다가갈수 있었던 사람은 동림님과 애경님 덕분이였다. 난 애경님과의 첫 만남이 레오타드를 입여드리는 일이였다. 손이 불편하셔서 많이 당황했고 좁은 공간이라 힘겨웠다. 그러기에 애경님에 대해 잘알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레오타드를 어떻게 입히는 지 보며 애경님에게 가장편하고 빨리 할수있는 방법을 찾아 애경님 몸에 대해 잘 파악해야 했다. 어쩌면 그렇게 백스테이지에서 큰 비중이아니라서 이런 것들을 좀더 신경쓸수 있었던것 같다. 배우들과의 소통을 시작하면서 많이 혼란스러웠다. 어떤 것들이 배려이고 어떤 것들이 쓸때 없는 배려인지를 판단을 못했었고, 내가 너무 배우분들께 지나친 친절을 오바로 승화 시키고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코우즈미 상께서도 나에게 말씀하신게 있어서 그거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고민과 생각이 많았지만 그것들을 좋게 소화를 못시키고 그냥 편한대로 했던게 아닌가 싶어 아직도 많이 나의 준비가 서툴렀구나 싶기도 하고 조금 더 생각뿐아니라 몸소 실천하는것도 익숙해 져야 겠다 느꼈다. 하지만 그 합숙동안 장애인들에게 느낀 감정이 가까워지면서 달라졌다는것 또 장애인들에게 배우는 점 또한 많았다. 솔직히 빠른 일정속 배우분들과 이야기 할때는 느긋하고 기분이 좋아서 좀 가까이 갈려했던 부분이있다. 그래서 그런지 히옥스가 했던 말에 많이 찔렸고 더욱 혼란스럼과 동시에 생각을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따. 황웅도 잠복기 리뷰 집중하지 않으면 무엇을 뜻하며 무엇을 표현하고자하는 걸 못알아 들을것이다. 그만큼 집중력과 관촬력 그들의 연기에 빠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체적으로 워낙 배우분들이 표정연기와 몸짓 연기가 감동을 주었으며 무엇을 뜻하고 자를 말했었다. 레오타드의 색깔로써 역할이 바뀜을 알게 해주었고 레오타드로써 신체의 움직임을 더욱 정확히 보여주었다. 황웅도와 김홍주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속의 또다른 움직임이 하나의 예술이 되었고 그 이야기 속에 또 많은 이야기가 있어 재미있었다. 흥미로운 움직임였다. 나도 쿠로코가 아닌 관객으로써도 보고싶다. 나는 배우들도 멋있었지만 맨처음 바다 강 땅 산을 천으로 표현하는 쿠로코들도 멋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즈음 항상 무언가가 다가오길 기다리고 그것에대한 욕망과 환상 등 이런 만족감에 빠져 설레이고 즐거웠다. 하지만 이젠 첫프로젝트를 정리중이니 이 만족감과 환상을 같이 정리하려한다. 그래서 이번엔 머릿속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아닌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또 이젠 설레임만 가지고 있기보단 마음 정리나 다짐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야 겠다고 느꼈다. 느끼기 뿐아니라 실천을 해야할 시기인것 같다. 아직 나의 작은 고민을 가지고 더 생각하고 나를 바라보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리고 너무 시끄럽고 낙천적이기만 한 나를 좀 자제도 해야겠다 ㅋㅋ 조금더 생각을 하고 쓰고 싶었지만 뭔가 머리속이 꽉차서 좀 더 말하고자하는게 정리가 안됐다. 다음에 또 생각이 나면 리뷰를 추가 하겠습니다.
2011.03.31 22:46:28
별의 리뷰 나는 이번 타이헨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많이 느꼈던 부담이라던가 걱정 같은 감정을 많이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긴장 같은 것 또한 없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뭔가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타이헨 프로젝트가 대체 뭘까?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애초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란 뭐지? 이것 저것 생각해 봤지만 결국 머리만 아프지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데,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 한다는 것이 매우 버거웠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 가장 최대의 고민은 스태프로서의 고민, 예술에 대한 고민, 배우들과의 관계에 관한 고민보다 나의 생각에 대한 고민이었다. 프로젝트 내내 생각을 단순히 하려고 해도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고 깊게 생각을 해도 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 그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리고 이 고민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만이 아닌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고민이다. 난 좀 더 뭔가 느끼고 깨닫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아서 너무 답답했었다. 타이헨 프로젝트로 인해 이것저것 몸도 움직이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언가를 얻고 또 예술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기도 하고 난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걸까 아주 많은 생각들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 잘못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고쳐야겠다 라고 마음 먹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 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아직도 나는 생각을 오래하고 잘할 수 있게 연습 중이다.
2011.03.31 22:50:34
미난의 리뷰
처음 일을 시작 했을때는 뭐가 뭔지 하나도 알수가 없었다. 단지 일을 할 뿐이였다. 그러다가 점점 타이헨 극단의 연극을 접하게 되며 나도 모르게 스테프로서의 역활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또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도 점차 하게 되었다. 처음에 했었던 생각을 써보자면, 일본 대지진이라는 자연 재앙과 연관지어 그들의 극단을 보게 되었다. 재앙 때문에 그들이 불쌍해 보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열심히 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황웅도 잠복기의 대본을 보게 되었다. 읽어도 읽어도 그 연극의 의미를 알수는 없었지만 내용 파악은 할수 있었다. 히옥스에게 '그것이 인간이다' 라는 김만리 선생님의 연극에 대한 의미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의미를 잘 못 받아드려서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왜 똑같은 인간을 돕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과 함께 일을하고자 하는 의지도 떨어졌다. '그래도 프로젝트니까' 라는 생각으로 하던 중 어쩌면 내가 장애와 비장애라는 딱 나눠저버린 틀, 고정관념이 박혀버린건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봉사라는 말을 하지 않고 나를 위해 나의 성장을 위해 돕는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타이헨 프로젝트는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무사히 끝나지 않은 것 같다. 타이헨 프로젝트 리뷰는 이것으로 끝내지만 장애와 비장애의 대한 정리는 따로 해볼 필요를 느낀다.
끝
2011.03.31 22:52:30
타이헨 리뷰
2011.03.31 23:04:47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해 중간 에세이에 적었다. 그 이후부터 그 의문에서 충분히 벗어나올 정도의 느낌이 들었다. 타이헨 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쿠로코의 역할까지 이해하고 공연에 임했던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3월부터 같이하게 된 친구들까지 합류하면서 공연을 만들어 가는데 훨씬 수월해졌다. 새로온 친구들도 몇몇은 쿠로코의 일손도 맡아 했고 그 이외에 다른 친구들은 쿠로코의 쿠로코인 스태프 역할을 맡아서 했다. 처음엔 다들 방황했지만 점차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듯 했다. 연습 끝나고 리뷰할 때 새로온 친구들이 타이헨 연극을 보지 못하고 장애인이란 단어 개념 속에 박혀있던 이야기들을 계속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쿠로코의 역할을 맡으면서 바뀌어 가는 장애인에 대한 생각들을 꺼내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좋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그것에 생각이 매몰되어 버려서 크게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했다. 물론 나도 초등학교때나 중학교때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 불쌍하다는 동정심만 느껴지지 않았지만 점차 자원봉사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내가 저 자리에서 지금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를 듣는 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이 고민을 하면서 그들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그 상태에서 처음 쿠로코 워크숍에 참여했다. 쿠로코의 마음이 그리 어렵게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그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와 좀 더 크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연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카야노상을 옮겨드릴 때 신속하게 움직여야 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실수로 겨드랑이 쪽을 잡아 옮겨드렸다. 카야노상은 내게 바로 지적을 하며 이렇게 하면 아프다라는 표현을 하셨다. 그 순간 나는 그들을 배우로서 존중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렇다고 해서 동정심을 느낀다는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내가 배우들을 존중하고 있지 않았는가에 대해 어렴풋하게 쓴웃음을 짓게 했던 것이다. 타이헨 프로젝트가 앞으로 더 참여하는 것에는 보류를 했으면 한다. 타이헨 프로젝트를 몇 달동안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처음 시작했을때는 누구도 잘 모르는 극단과 그 안에 역할들이었기 때문에 잘 모르고 시작했지만 한번 해본 지금의 상태로선 잘 모르겠다.
2011.03.31 23:10:24
타이헨을 마무리하면서- 공연을 마치고 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마무리 미팅을 하거나 리뷰를 얘기할 때 계속 처음을 되돌아보려고 한 것 같다. 새로 타이헨 프로젝트 함께 하게 된 죽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전의 나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제일 처음, 배우를 안전하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들어서 옮기는 것을 몸에 익히고, 그 다음은 타이헨 예술에서 중요한 역할일 수 밖에 없는 쿠로코로서의 마음가짐, 행동수칙 같은 것을 하나 둘씩 깨달아갔었다. 이전까지는 내 삶에 존재하지 않던 종류의 신체적 움직임이었고, 몇 개월의 연습을 거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이를 예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장애인 분들을 신체적 결함을 지닌, 혹은 의존적일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닌 비장애인과는 다른 가능성을 가진 ‘배우’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번 세 번의 공연을 거치면서는, 어느 특정 씬이 아닌 연극전체적인 흐름과 호흡을 읽어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된 것 같다. 쿠로코로서 내가 맡은 역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막(curtain)에 대한 배움도 있었다. 배우를 등/퇴장시키고, 무대 위와 뒤를 분리해주는 막은, 타이헨 예술에 있어서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배우의 신체적 조건을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배우가 어떤 방식으로 무대로 등장하고 퇴장하는 가에 따라 막을 다루는 요령 또한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배우와 같은 눈높이에 위치한 채 연극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통제불능, 예측불가의 움직임의 예술인 만큼, 정해진 동작으로 막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막을 잘 다루려 해도 매번 새로운 느낌이어서, 일본인 쿠로코들에게 많은 지적과 코멘트를 받기도 했다. 매번 달라지는 설명에 일관성이 없는 것 같다고 느낀 적도 있었지만 곧 상황에 따라 변화해야 하는 막의 형태를 캐치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공연 기간에는 주로 내가 쿠로코로써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떻게 하면 다른 쿠로코들과 호흡을 더 잘 맞출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에 몰두했다. 서울과 고성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타이헨 프로젝트에 대한 뒤돌아 보면서, 새삼스레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관계’라는 단어이다. 타이헨 극단에서는 누누히 쿠로코와 배우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몇몇 죽돌이 보인 ‘돌봄’의 태도와, ‘함께 살기’ (living together), 우리 사회에서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2011.03.31 23:21:01
게스리뷰 처음 쿠로코 워크숍을 할 때에는 엄격한 주의사항과 함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서 많이 긴장했었다. 그리고 긴장한 만큼 쿠로코로서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일을 무사히 끝내기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었다. 첫인상은 어떻게 보여야 할지, 장애인을 돕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협력한다고 생각하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 뜻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지, 내가 할 일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나서기 위해 직접 뛰어들어봐야 할텐데 혹시나 다른 사람에게 방해는 되지 않으련지, 아니면 방해가 되더라도 나중의 결과를 위해 일단 부딫혀봐야 할지 등등. 고민을 했고 그 고민을 통해 얻은 결론을 실천으로 옮겼었다. 나 혼자 했던 고민이였던 만큼 그 것이 옳은 것이였는지는 잘 모른다. 설사 그 고민이 틀렸던 것이라도 생각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라 여기고 꽤 꿋꿋히 실천 해나갔었다. 그렇게 했건만, 끝내 내가 했던 고민은 혼자한 것이라는 허점을 들어내고 말았다. 나는 어쩌면 가장, 아주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선 장애인 배우에 대해 내 감정이 어디로 치우치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고 당연히 내 감정을 다스리거나 바꾸는 작업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공연의 기본이 되는 ‘대본’ 을 외울 생각을 못했다는 것. 그럼 결과는 뻔했다. 배우들이 가끔 상황에 어긋나는 요구를 할 때면 단호하게 거절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만 했던 나였기에 ‘그럼 상황에 얼만큼 어긋나야 그 요구를 거절할 수 있나?’ 같은 확고한 기준치를 정해지 못했었고, 대본을 외우지 못했기에 공연 중에서도 대본을 보느라 바뻤던 것 같다. 그래서 한번이였지만 대본보느라 내 할 일을 놓친 적도 있었다. 나는 이랬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위 같은 상황을 과연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라고 단순 위로 할 수 있을 까?, 애초 내 생각이 너무 앞서갔던 것은 아니였을까?.. 물론 위의 실수를 한번 했기에 나는 앞으로 이같은 실수를 다시는 번복하지 않도록 항상 인식하면서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위같은 실수를 하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는가?, 그 뜻은 내가 항상 생각을 너무 대강 한다는 게 된다. 왠지 너무 자책 글 처럼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래도 글을 정리하면서 생각도 함께 정리된것 같아서 마음은 좀 가벼워졌다. 그럼 이제 히옥스가 던진 네 가지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정리해 볼까. 1. 쿠로코는 무엇인가 쿠로코란, 타이헨 예술에서 돕는 자가 아닌 협력자, 배우를 위하는 자가 아닌 지켜보는자. 라고 생각한다. ‘배우를 위하는 자’ 란 뜻은 곧 배우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고 위해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배우를 배우가 아닌 장애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들 생활의 불편함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동정심을 갖게 되기가 싶다. 그렇기에 쿠로코로서 배우와 붙어서 생활하게 되는 만큼 동정심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배우를 장애인으로 생각하길 원치 않았고 상당히 잘 알려진 예술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로 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얼마만큼 잘 실천되었는지는 미지수 이다. 2. 나의 감정은 어디로 향해 있는가? 나는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임하는 자세가 자원봉사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난 자원봉사를 했던 것 같다. 상황에 따라서 배우들의 요구를 적당히 거절할 줄 알면 구로코로서 동정심 없이 임하고 있단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것이 아니였다. 진짜 이들을 장애인이 아닌 배우라고 생각 했으면 나는 이들에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했을까? 감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것도 아녔다. 나는 결국 동정심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왜 이들을 배우로 보지 못했을까... 3. 타이헨 예술이란?/ 그리고 예술이란 무엇인가? 타이헨 예술이란, 존재의 다양성을 이해시키려고 실천하는 예술 예술이란 자신의 철학을 담은 메시지를 풀어놓은 것. 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정리를 해야 겠다. 이번 황웅도 잠복기 타이헨 프로젝트는 정말로 고됬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라 느껴졌고,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볼 여유도 없다고 느껴졌을 만큼 바빴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바빴던 것에는 내가 내 할 일을 항상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겠지? 기쁘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그룹을 이끌어 나갈 줄 알고, 또 이끌어 주는 것에 대해 자신을 맞출 줄 알며 상황을 정확히 따라와주는. 김만리 선생님과 일본 쿠로코 분들, 그리고 배우분들과 인연이 닫게 된 것에 대해 보람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끝내고 하는 ‘뒷풀이’ 의 즐거움을 깨닳게 되었다. 고됬지만 보람찬 일을 마치고 난 뒤의 해방감은 물만 먹어도 취하게 하는 데 충분했다. 그리고 합숙까지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아빠가 따라주셨던 맥주 3잔은 술자리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었다. 공연을 통해 얻은 배움 말고도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얻은 거 같다. 합숙하면서 한번도 집에 가고싶단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보람을 느낀다.
2011.03.31 23:27:40
쿠로코 리뷰
-나에게 쿠로코란 무엇이었을까
첫 공연 날 긴장감에 심장이 펄떡펄떡 뛰었다. 쿠로코 프로젝트를 하면서 연습 날에도 늘 긴장을 하긴 했지만 그것은 내가 실수를 해서 욕을 먹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었다면 공연 날이 닥쳤왔을 때 다가오는 긴장감은 관객들이 공연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설렘에 가까웠다. 그리고 막 뒤에서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동안의 내 시각은 관객의 시각이 되어있었다. 막 뒤에서 움직일 때마다 극의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은 그 장면들이 무대 위에 그것 자체로 나갈 수 있기 위해서라는 생각에 더 이상 내 존재감은 필요치 않았다. 그래서 쿠로코를 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어떠한 의문이나 고민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설렘 그 자체로 극이 무대 위로 나가고 있다는 것, 그거 하나만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사실 쿠로코란 무엇인가, 어떤 자세로 극에 임하고 배우를 대해야 했나 하는 고민은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따로 말로 설명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극에 임하는 자세도 배우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극이 진행되고 있다는 설렘 하나로 설명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절대로 내가 완벽히 잘해냈다는 뜻은 아니다. 실수도 많이 하고 종종 쿠로코로서 존재감을 죽이지 못하기도 하고 배우분들을 대하는 행동거지도 잘못되어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 자세와 마음가짐의 틀 안에서 어떤 개념적인 경계를 정하는 행동거지 이지. 쿠로코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은 극에 대한 설렘 하나로 설명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내가 쿠로코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서 고민해보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작업장학교 학생으로서는 쿠로코 프로젝트가 어떤 경험이 되었고 어떤 생각으로 이어나갈 것인가. 이미 공연이 끝나고 쿠로코가 아닌 작업장 학교 학생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나는 그 전보다 그 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쿠로코라는 존재가 아닌 나라는 존재로 살아갈 때 이 경험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가 하는 고민 말이다. 그래서 쿠로코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니 ‘함께 살기’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게 됐다. 쿠로코를 하는 동안에 우리가 소위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배우로 대하고 함께 극을 만드는 것에 대해 했던 고민을, 배우가 아닌 사람으로 대하고, 함께 극이 아닌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함께 한다는 것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내 개인적으로 쿠로코 프로젝트를 하면서 심하게 헷갈렸던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였다. 안경 낀 사람이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 하는 논란이 있었고, 사람 중에 체력이 허약해서 오래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신경 써드릴 부분이 조금 더 많거나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다르게 살아가고 있고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똑같이 살아가야 한다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다. 평등과 평균은 확실히 다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똑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다르지 않다고 우길 것이 아니라 그 다름에 경계를 만들어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들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고 계속 하고 싶고 우리는 해야 한다.
2011.03.31 23:28:56
타이헨 워크숍을 마무리하며, 고성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타이헨 프로젝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5월에 정립회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공연을 성사시키기까지 쿠로코의 일에 정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생각이 시작되면 그 생각 속에 빠져서 지금 하고 있는 일까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선은, 몇 가지의 질문을 가지고 있되, 지금 하고 있는 일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관찰해보고 알아보려고 했다. 생각은 이 일이 마무리 지어졌을 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 보이지 않는 사람, 남을 보이게 하는 사람, 그리고 예술, 내가 처음 접했던 타이헨 예술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우선 그것은 배우들을 위한 것이었음으로 자신의 추함을 긍정하라, 누구보다 자유로운 신체를 새롭게 해석 해보아야한다고 말한다. 그렇듯 나는 자꾸 억압하도록 강요받았던 장애가 있는 신체의 예측 불가능성- 흔히 말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신체-이라는 것이 이 타이헨 극단, 그 극단이 하는 예술에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신체가 표현하는 예술이 잘 보일 수 있도록 하는 쿠로코라는 보이지 않은 존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쿠로코였다. 쿠로코의 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막 뒤에서 배우들을 무대로 이끄는 것이다. 그리고 쿠로코와 배우는 극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은다. 장면은 배우들의 몫이라면, 장면과 장면 사이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쿠로코의 몫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쿠로코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심지어 쿠로코는 막 뒤에서 연극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배우들 보다 잘 알고 있지만, 무대 위에 설수 없다. 타이헨의 예술은 마치 낮과 밤이 있어야 하루가 흘러가는 것처럼 다른 위치에서 배우와 쿠로코의 완전합체로 이루어진다. 2. 관객은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내가 타이헨 예술에 대해 그리고 쿠로코에 대해 보다 많은 이해와 해석을 덧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첫 만남 때부터 연출가가 장애인 배우들에게 설명했던 것을 듣고 그것을 토대로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그 후 별다른 의심 없이 쿠로코라는 전혀 다른 역할에 집중해서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쿠로코라든지 장애인의 신체가 어떻다느니 새로운 세계라느니 이런 이야기들을 설명하기 전에 연극을 본 후 관객들에 머릿속을 쳐야하는 것이다. 관객석에서 처음 이 연극을 접한 사람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이번 황웅도 잠복기, 타이헨 프로젝트를 통해서 전혀 연결지점이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만날 수 없었고 보일 수 없었고, 마주친 적 없어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들을 2시간 남짓 바라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자신들 모르게 고정되고 경직된 시선에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타이헨 극단이 만드는 공연은 배우 쿠로코 스태프 관객 모두 다 함께 했던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마주했던, 관찰하고 지켜보았던 그 순간이 무엇이었는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것 이다.
2011.03.31 23:29:47
지난 5월 장애인들 대상으로 하는 신체표현 워크숍에 예비 쿠로코로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레오타드를 갈아입혀드리는 일만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타인의 옷을 갈아입히는 것과 같은 신체접촉은 그리 낯 설은 일은 아니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 매달 한 번씩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런 일은 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기분 좋은 일이거나,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특히나 스스로 움직임을 제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접촉은 더 조심스러웠다. 완전히 행위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런 차원에서 김만리 선생님께서 워크숍의 시작부터 공연을 하기까지 계속 하셨던 당부의 말은 ‘봉사 차원의 일이 아니다. 한 명의 배우로 존중해야 한다.’였다. 그 말은 돌봄을 하는데 있어서 강제적인 일의 진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셨던 것 같다. 절차와 동의 없이 상대를 도와준다는 것은 폭력성을 띄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쿠로코란 아무도 모르게 도와주는 슈퍼맨 같은 존재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떤 사소한 일을 진행하더라도 소통은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장애인 복지관에 격리되어 생활하게 된다.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체적 결여를 지닌 사람들은 같지 않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장애인이란 비장애인들이 만든 틀 안에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변을 당해야 한다. 사회는 그런 그들을 스스로 무언가를 제어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짐이 된다고 생각 하는 것일까? 어떻게 같이 살아가면 좋을까?
그래서 타이헨 워크숍의 PPT중 ‘추함을 인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몸동작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표현 한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신체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절대로 이행할 수 없는, 일반인/정상인들은 시도조차 불가능한 예술이 등장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김만리 선생님은 ‘장애인 예술이 아니고 타이헨 예술이다’라는 말씀을 거듭 강조하셨다. 그게 뭘까?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을 빼고 어떤 독보적인 부분은 뭘까? 아마도 그간 얘기가 많이 나왔던 ‘무엇이 美’냐는 질문이 아닐까? 치장이 강조된 표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소우주, 즉 ‘신체’가 중요한 타이헨 극단. 이 그룹의 예술이란 장애인이라는 것의 존재는 결여가 아닌 변형으로 유일무이함으로써 다시 존재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끊임없이 Positioning을 하면서 개인의 매체를 제외하고 얼마만큼 일을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상대의 작업을 얼마만큼 이해를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의 감각을 더 키워야 하는 것인지.
2011.03.31 23:31:18
타이헨 예술은 통제불능하고 예측불능한 신체장애인의 움직임이 우리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물을 수 있는 예술이라고 한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신체가 극복의 대상이라서 장애인연극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함을 긍정하고 오히려 그 자체의 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장애인연극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예술이 미와 인간이 대체 무엇인지를 물을 수 있다고 한다. 작년 5월, 아차산 정립회관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타이헨 극단과 만나고 워크숍에 참가했던 신체 장애인들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우리는 배우를 들어서 무대 위로 옮기거나 레오타드를 갈아입히는 일까지 해볼 수 있었다. 우리도, 배우들도 서로 어색해했지만 그것에 담겨진 의미는 배우가 레오타드를 입고 자신의 신체를 내보이며 무대 위로 올라가 연기할 수 있는 예술가로서 변모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비가시화된 존재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삶의 조건이 대부분의 비장애인에 맞춰져있고 사람들의 인식 등이 장애는 보기 흉한 것이므로 장애인이 모습을 드러내면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해하며 시선을 어쩔 줄 모른다. 정립회관에서의 워크숍에서는 심지어 바깥에 처음 나왔다고 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불쌍한 일이고, 마땅히 동정해주어야 하고 장애는 이겨내어서 '보통 사람'과 별 다를 것 없이 되어야 하는 극복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눈이 안보이거나 손가락이 네개인 사람이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훌륭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에 감동한다. 하지만 타이헨 예술에서는 오히려 그들의 신체의 움직임이 그들만이 표현 가능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타이헨 예술의 전제에서 장애인들의 신체는 그 자체가 예술적이므로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연기자가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새로운 존재방식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예술 세계에서 비장애인은 검은 옷을 입고 막 뒤에서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쿠로코가 된다. 예술의 전제 위에서 쿠로코가 되는 비장애인들은 극 안에서 배우를 스탠바이시키고 의상을 갈아입히고 소품을 움직이는 역할을 맡는다. 비장애인은 배우가 되기에 자격미달인 셈이며, 배우의 존재감을 무대에서 나타내기 위해 뒤에서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우리에게 쿠로코 일을 가르치면서 극단 측에서 계속 강조했던 것은 쿠로코가 장애인을 예술가로서 거듭나게 함으로 배우를 예술가로서 존경하는 태도로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속, 정확, 안전이라는 행동 수칙 하에 움직이는 것은 예술가에 대한 존경과 타인을 돌본다는 것에 대해 진지함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상식적인 우리의 이해와는 전혀 반대의 이해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역할이 이 예술세계에 존재하고 있다. 쿠로코는 스테이지 위로 배우들을 내보네는데, 무대와 무대 뒷쪽 사이에는 검은 막을 사용한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질문 가능한 연극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예술적 경험을 하게 하는 동안, 극단은 그 사람들이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무대 위에 펼쳐놓는 것 같다. 쿠로코는 그 세계를 막과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통해 매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예술은 발레같이 정제되고 훈련된, '인간의 것'이 아니길 소망하는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근본적이고 개성적인 인간 자체의 움직임이며 한마디로 '이것이 인간이다.' 배우들의 신체와 그 움직임이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과 너무나 다르지만, 그 다른 것이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인간이나 아름다움의 전제를 다시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어쩌면 언젠가는 낯설다고 표현할 게 아니라 우리가 다양성이나 인간이라고 부르는 정의에 더욱 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고려를 해야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2011.03.31 23:40:55
레오의 review. 타이헨 프로젝트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과연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작업장 학교에 들어선지 3주밖에 안됬고 물론 작업장 학교의 분위기 또한 잘 파악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신입생들과 재학생들 사이에 느껴지는 갭(Gap) 때문에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덧 타이헨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판돌들은 우리가 배우들에게 진정한 배우로서의 대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매사에 잘 익숙해지는 편이어서 배우분들을 대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타이헨 극단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중 하나는 바로 '레오타드'이다. 레오타드를 입으면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이 다 드러나게 된다. '보통 사람들도 레오타드를 입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있는데 몸이 온전치 않은 배우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조금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쿠로코/스태프 들은 모든 것이 beauty 를 위해서라며 모든 배우분들께 레오타드를 입히셨고 나는 일본쿠로코의 차가운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실제로 본 무대에 선 쿠로코들의 모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쿠로코들은 물론이고 내가 학교에서 봐왔던 죽돌들의 행동 하나 하나에도 진지함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쿠로코의 3대 원칙(정확, 신속, 안전)에 따라서 행동하는 냉혈인 같았다. 하지만 무대가 아닌 곳에서의 쿠로코는 정말로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공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배우들의 몸짓은 바로 '구르기' 이다. 구르기는 참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굴러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구를때마다 어깨, 무릎, 발목 등이 땅에 부딛히기때문에 오래 구르다 보면 멍이 들거나 생채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배우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엇이 그들을 저렇게 열정적으로, 또는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내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스태프로 있던 동안 아쉬웠던 건 대부분의 시간을 스태프와 쿠로코들이 따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쿠로코가 연습을 하는 동안에 스태프들은 다음 쉬는 시간을 준비해야 했고 쉬는 시간이 돌아오면 스태프가 배우분들을 돌봐드려야 했다. 다시 말하자면 쿠로코들은 무대 위에서 장애인 분들을 배우로서 대하면 되었고 스태프들은 배우들이 무대에서 내려온 후에 배우분들을 '돌보아야' 하는 느낌이었다. 고성에서의 공연은 생각보다 잘 끝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1번의 기회밖에 없었다. 고성에서의 관객은 대부분 학생이었고 그 중에서도 거의 보든 학생들이 억지로 끌려온 듯 했다. 공연 도중에는 장애인들을 비웃는 목소리가 들리고 핸드폰으로 문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많이 보여서 화가 났다. 억지로 학생들을 끌고 온 학교측도 원망스러웠다. 만약에 다시 타이헨 공연을 한다면 나는 스태프나 쿠로코가 아닌 관객으로서 공연에 임하고 싶다. 스태프나 쿠로코가 아닌 관객만이 이 공연에서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다.
2011.03.31 23:49:27
나는 스태프일을 하면서 장애인분들과의 소통이나 파트너관계를 갖는데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는게 어렵지는 않았다.장애인분들이 항상 밝고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또 나의 실수를 용서해주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편하게 대해주셔서였던거같다.뒷정리나 배우분들의 생활 보조나,무대 세팅 또는 메이크업 같은 일들을 하면서 평소의 습관이나 어떠한것에 대한 편견 때문에 실수도 했고,순간 순간 집중하고 귀기울이지 않으면 놓치는것들이있는데 그게 나의 실수를 만들어내는 이유였다. 그때마다 지적도 받고 다른 죽돌들은 어떻게 하나 보기도 하면서 잘못을 뉘우치기도 했다.그후 난는 스태프일을 하면서 스태프로서의 일에 몰두하려고 했고 실수도 하지 않으려했다.한 단체에 소속해있다고 생각을 하고 이 단체에 피해를 줄수 있는일은 하지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애인분들을 그냥 배우로 생각하고 장애인, 비장애인을 떠나서 그냥 배우와 스태프의 관계를 가지고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을 할수있게 돕는게 나의 임무?라고 생각을 했다.이번 프로젝트를 하하는건 내가 장애인들을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려는 것 때문도 아니고 봉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장애인들을 보면서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장애인분들을 볼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분들은 연극을 하는 배우들이다 라고 계속 되세기게됬는데 갑자기 그 사실이 마음에 와닿았던건 우연히 공연을 관객석에 앉아서 보았을때었다. 무대위에서 장애인분들이 열심히 극과 연기에 몰두해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그때의 깨달음이 공연 일정 동안에 내가 스태프일을 하는데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도움이 되었다.
스태프는 쿠로코의 쿠로코였고 무대에 오르거나 극에 출연하지도 않지만 스태프의일들도 매우 중요함을 느꼈고,스태프로서의 자부심을 가졌다. 이것도 내가 일을하는데에 어떠한 도움이 되었던거같다.
첫번째 프로젝트라 어리둥절 하기도 하고 특히 공연은 한번도 해보지않아서 낯설기도 했고 합숙이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 그때의 생각과 느낀점을 되돌이켜보면 나 개인은 이 프로젝트를 하는동안 시간을 헛되이 보낸게 아니고 몸만 움직이는게 아니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동안 내가 전보다 어느정도 성장하게 된것 같다.
2011.04.01 00:00:58
인균의 리뷰 학교를 들어오기 전 설명회 때 처음으로 “황웅도 잠복기”라는 작품을 알게 된 것은 아니고, 장애인분들을 도와 공연을 하는 것이 학교 일정에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듣질 않아서 “아~그냥 그런 활동도 하는 구나.” 라고만 생각했고 앞으로 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또 어떤 일도 하는 구나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이 학교에서 “황웅도 잠복기”라는 작품을 진행하기 전에는 장애인분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 길거리에서 장애인들 지나가면 비웃고, 장애인들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는 줄 알았고, 이런 일을 내가 꼭해야하나 왜하는가라는 생각을 했고 장애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황웅도 잠복기”란 작품의 스태프로 일을 하면서 많은 점을 느끼게 됐고, 배운 것도 많았다. 모든 장애인이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다수의 장애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나와 무엇이 다른 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장애인과 나의 다른 점은 크게 다른 게 아니라 신체적으로 불편할 뿐이지 나랑 크게 다르진 않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아예 뒤바뀐 것 같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장애인 분들을 봉사활동 차원에서 Helper가 되는 게 아니라 배우로 써 존중을 해주고 배려를 해줘야 된다는 점에서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아직도 그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합숙을 하기 전부터 몸이 좀 안 좋았는데, 합숙을 하면서 최대한 아픈 것을 참고 일을 하려고 했지만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많이 열심히 안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성하고 있다. 그리고 삼성동 “코우스”에서 공연일정에 마지막 날 전까지는 장애인분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었고, 무슨 일을 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당일 공연일정 끝날 때 까지 흡연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삼성동에서의 몇 일간은 그런 약속을 했건 안했건 신경 안 쓰고 담배를 폈는데. 다시 일을 열심히 하면서 그런 약속을 한 이유를 계속 다시 생각해보니 장애인분들을 배우로써 존중해주고 배려해준다는 입장에서 내 몸에서 담배냄새가 난다는 것 자체가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담배를 안 핀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안 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합숙 마지막 날 학교에서 단체로 온 학생들이 많이 떠들고 배우분들을 비웃고 떠드는 것을 보고 마음 한편으로 화가 많이 나긴 했지만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 활동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돼서 제게 많은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2011.04.01 11:38:31
Taihen project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던 서울/고성 공연을 마치면서 작년 5월부터 시작했던 타이헨의 프로젝트의 대장정 역시 함께 마무리 지었다. 5월부터 함께 시작하면서 이 극단을 통해 많은 의문들을 얻게 되었다. 학교가 가지고 있는 3가지 중 함께 살기와도 많은 연관성을 볼 수 있었고, 특히 pity와 empathy와 같은 동정, 감정이입과 같은 단어들이 많이 개입 되었고, 그 안에서 내가 가지고 있었던 장애인에 대한 인식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극을 준비하면서 실질적인 쿠로코 역할을 하기에 바빠 순간 순간 놓치고 온 것들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고, 거의 막바지에 들어서 우리가 해왔던 일들이 어떤 일이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정리하게 되는 것 같다. Kuroko 공연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쿠로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자원봉사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역할을 잊고 너무 불필요하게 많이 챙기려고 하는 것 같다.’ 단순히 자원봉사자들처럼 움직여선 안되고 극을 만들어 가는 한 명의 배우로써, 쿠로코로써의 마인드 셋이 필요하다. no volunteer, We are kuroko.' 쿠로코를 시작하고 함께 일을 맞춰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작년 5월, 우리는 아차산에 위치한 장애인복지시설 정립회관을 방문했다. 거의 아무것도 모른 체 방문했던 그곳에선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신체표현 워크숍이 진행 중이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분들을 옮겨드리고, 레오타드를 입혀드리는 작업을 했다. 아직 처음이었고, 이 일이 어떤 일 일지 아무런 감도 못 잡고, 자원봉사자의 위치에서 배웠던 것이 첫 기억이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의미와 맥락들을 이해해 가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단순히 봉사자, 자원 활동가의 위치에선 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한 부분이 바로 마인드 셋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봉사자의 생각, 역할이 아닌 쿠로코로써의 움직임이 필요 했고, 우리들의 임무는 옷을 입혀드리고, 극의 원활한 순환을 위해 스텐바이를 시키는 실질적인 일도 있었지만, 그들을 배우로써 승화시키는 어떻게 보면 의식적인 일 또한 쿠로코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전반적인 생각들을 뒤집어야 했다. 그리고 백스테이지에서 보이지 않는 역할을 했지만, 우리도 극을 진행시키는 한명의 배우였고, 자신을 이 처럼 만드는 과정 또한 중요했던 것 같다. empathy / pity 작년 5월부터, 그리고 이번 서울/고성 공연을 준비하면서, 타이헨 극단이 가지고 있는 어떤 예술성에 집중했다기 보단 개인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인식되고 있는 difference에 집중했던 것 같다. 우리가 했던 일이 우리가 말하는 비장애인들과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었고,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비가시화된 존재,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서 인식되어 온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단순한 감정변화로 인한 동정과, 연민의 정 때문이 아닌 같은 극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로써, 같이 살기를 고민하는 사람으로 함께 만나려고 노력했다. 함께 공연을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우리가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세상 속에서 불편하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보고 우리는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우선이지 않나 싶다. 쪽방촌의 경험과, 이전의 개인적인 경험이 지금의 나에겐 이렇게 말해준다. 나는 동정하기 싫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고 싶지도 않다. 이번 매솟의 여행을 통해서 공명이란 단어를 알게 되었고, 그전엔 감동이란 단어를 사용했던 것처럼 나는 단순한 감정변화로 인한 pity로서 움직이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 지금의 개인적인 결론이다. 그리고 타이헨의 경험이 포함된 이 순간엔 우리가 이제는 경험으로써 얻어진 마음가짐으로 이어나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만들어왔고, 서울과 고성의 공연으로 한 단락이 마무리 된 이 프로젝트를 앞으로 어떻게 이어나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속에 확실한 것은, 개인적으로 계속 하고 싶다. 작업장학교가 아니었으면 하기 힘들었을 이 경험이 나에겐 특별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쿠로코로써의 경험은 우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이 극단을 통해 보게 되었던 경험들이 앞으로는 어떤 경험으로써 자리 잡는 것이 아닌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사회의 한 자락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한 편으로 든다.
2011.04.01 21:35:28
타이헨프로젝트리뷰 _구나 타이헨극단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 5월 즈음 아차산에 있는 정립극장에서였다. 영문도 모른 채 찾아간 그곳에서 우리는 '쿠로코'라는 역할을 덥석 맡게 되었다. 그리고는 레오타드라는 신체모양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옷을 장애인 배우분들에게 입혀드리는 과정을 돕게 되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괜찮으세요?" "아프지는 않으세요?"라고 배우의 상태를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옷을 입힌다는 것, 그 대상이 신체장애인일 경우에는 어느 정도 힘을 주어야 하는 것인지 내게 익숙한 감각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장애인과 직접적인 접촉을 한다는 것 또한 낯선 일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소히 "일반인"이라 불리며 그들을 돕는 일에 참여해봤다. 그 일은 내가 정해진 표준임을 내세우면서 누군가를 "돕는"행위에 대해 회의감를 느끼게 했으며, 이 일이 내 보람과 혹은 동정심으로 행해진다면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타이헨극단의 '쿠로코'는 역할이 확실했다. 자원봉사도, 헬퍼도 아니었다. 쿠로코라는 역할을 통해 장애인과 만난다는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접촉이라기 보다, 배우와 쿠로코라는 명확한 관계가 주어져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작업장학교가 타이헨극단의 예술작품에 참여함으로써 지닌 최종적 책임은 "쿠로코와 배우"라는 각각의 위치에서 아름다운 무대를 만드는 데에 있었다. 무대 위의 배우는 '장애인도 할 수 있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김만리선생님은 오히려 '이것이 인간이다'라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장애인예술이 아니다. 타이헨예술이다" 라고 소개되었던 극단의 원칙 또한 또렸했다. 너무나 생소했던 타이헨극단의 예술이라는 것, 그리고 쿠로코의 역할은 아직까지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를 질문을 하게 한다. 이 경험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존중하고, 같이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에 대해 이해하는 경험이기도 했다. 아마 타이헨프로젝트가 지난 5월의 체험 한 번으로 마무리되었다면 '자원봉사' 혹은 하나의 흥미로운 체험으로만 기억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2011년 타이헨 한국공연프로젝트가 일단락 마무리되는 과정까지 참여함으로서 '인간' '아름다움'과 같은 큰 개념에 대해 '기존 생각'에서 벗어나 다시 접근해보게 되었다. 물론 아직 굉장히 어려운 주제이므로 앞으로 타이헨프로젝트가 '인문학공부'로서 내 삶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으로 더 다양하게 이해되길 바란다. 쿠로코 쿠로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협동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무대의 한축을 떠받치는 중요한 캐릭터였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즉 그림자배우의 존재로 눈에 띄지 않으며 무대위에서 어떤 특정한 캐릭터를 갖지 않는다. 신속하게, 정확하게, 안전하게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신체표현 예술에 잘 집중할 수 있기까지의 전반적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다. 쿠로코가 안전하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는 '배우'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무대에 올리는데 있었다. 배우를 들고 이동할 시 배우가 아픔을 느끼는 것, 혹은 벽에 부딪치는 것 등의 사소한 실수는 백스테이지에서 스탠바이 중인 배우들에 대한 존중의 문제로 이어졌다. 쿠로코의 역할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쿠로코의 행동이 언제 어떻게 배우들 상태에 영향을 주는지는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반복적인 연습과 생활개호를 통해 조금씩 감을 잡게 되었다. 배우들 생활개호를 담당하는 것은 쿠로코의 기본적인 역할이었다. 지난 몇차례 황웅도잠복기 공연 연습기간 동안 우리는 배우들의 생활부분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이 담당하고 인는 배우의 건강상태부터 기본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 알고 존중하는 것은 배우와 쿠로코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부분이었고, 배우의 개인적으로 존중해야할 범위와 침해하지 말아야 할 범위의 경계를 지키는 것 또한 중요했다. 그리고 쿠로코로서 배우들의 관계는 각각의 역할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지 개인과 개인으로서가 아니었다. 무대 뒤의 배우에게, 또는 함께 숙박을 할 시 배우에게 다가가야할 나의 자세는 '쿠로코'로서였다. 아마 나를 비롯해 많은 쿠로코들이 생활개호부분에 있어서 '쿠로코'와 '자원봉사자' 사이에서 혼란을 겪은 듯한데, 타이헨프로젝트 동안에 쿠로코와 배우는 함께 연극을 만들어가는 주된 축으로서 각각의 신체적 조건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러므로 쿠로코와 배우 모두 각각의 역할을 갖고 만났다는 것이 프로젝트 동안 우리들이 지켜야 할 약속같은 것이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쿠로코'로서 참여해온 타이헨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타이헨극단의 공연은 기존 사회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규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고 제안을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정해진 것' 기존이 되어버린 규범에 대해 다시 질문을 하는 것이었고, 인식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타이헨극단의 예술에서 배우는 결핍된, 부족한 것이 아닌 그 존재자체가 새로운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신체표현자가 된다. 그러므로 쿠로코는 배우에 대해 '장애인'으로서 먼저 정의하기 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신체조건에 대해 이해하고, 장애인들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존중하면서 그들이 무대 위에서 신체표현 예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움직여야했다. 비장애인이 주류로 살아가는 현재 사회에서 쿠로코역할을 통해 비가시화된 존재로, 그렇지만 그 역할 또한 주된 축으로 공연을 떠받치는 책임을 갖게 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다양한 존재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는지, 서로를 존중하고 돌봐야 하는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살기'라는 키워드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의 조건'에 생각해보는 계기 또한 되었다. 이 질문과 생각꺼리들이 멈추지 않고 앞으로의 많은 경험 안에서 더 다양하게 해석되며 이해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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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의 리뷰:
타이헨 연극단 안에서 쿠로코를 하게 되었는데,
그 연극단 안에서 쿠로코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또 배우 분들이랑 어떻게 사이를 좁혀나가야 하는지 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초반에는 황웅도 잠복記라는 연극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지 못해서 일본 쿠로코 분들한테 맞고, 야단을 맞아가면서 그렇게 처음을 시작했다. 근데 솔직히 일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배우 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려웠다. 무대 뒤에서의 일은 스텐바이를 하는 부분이나 내용들을 외우고 있으면 되지만,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배우 분들의 컨디션 조절이 필요한 것이었다.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합숙 때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는데, 어떻게 배우 분들을 대해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합숙 전에 일본 쿠로코 분들이 Helper가 되지 말고 쿠로코가 되라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서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대안학교를 다녔을 때, 학교에서 단체로 장애인들을 도와주러 갔었는데, 그때 같이 생활했던 장애인들의 이미지가 계속 생각이 나서 힘들었다. 쿠로코처럼 대하라는 것이 장애인을 비장애인처럼 대하라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했고, 배우다운 것이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도 했다. 결국 답을 못 찾다가, 그냥 해달라는 것, 원하시는 것을 다 해드렸다. 그렇게 타이헨 공연이 끝날 때 까지 Helper의 느낌이 나게 생활을 했다. 위에 숙제에서도 비슷하게 말했듯이 공연이 다 끝나서야 나는 쿠로코라는 것이 장애인인 배우들을 더욱 더 배우답게 만드는 것이 쿠로코의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신기(?)하게 느꼈던 건
배우 분들이 직업을 찾고 있거나 혹은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되게 신기함을 느꼈다. 내가 자원봉사자로 갔었을 때 눈에 보이던 장애인들은 놀기에 바쁜 장애인들이었는데 타이헨 연극단을 하면서 알게 된 배우들은 정말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신기했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되게 부정적인 이미지나 단어들이 많이 떠올랐다. 하지만 비장애인과 별 다를 것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모여서 저녁을 먹었을 때 창우님이 하셨던 말이 생각이 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해야 되는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연극은 한번으로도 만족한다.”라고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이 얘기를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이때부터 좀 복잡했던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나 편견이 완전히 뒤바뀌었고, 장애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마무리를 하자면 쿠로코라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딱 꼬집어서 말해 줄 수 없지만,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조금이나마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나한테는 색다른 경험이었고, 내가 갖고 있는 좀 더 넓게 좀 더 다르게 생각하게 해줄 수 있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