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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라며 불 난 숲에 불을 끄는 크리킨디 이야기와 어떤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서로 연대하자는 너구리의 마음은 중요한 화두이다. 시즌 1을 마무리하고 시즌 2의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논스톱의 기간과 지금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며 배우고 있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경험했고 그 경험 속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다들 알고 있는 답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며 실제로 알게 된 것들을 시작으로 하여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지금 내게 남겨진 질문과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보려합니다. 목차: 1. 불이 난 숲 학교 밖을 미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아야한다. 세상의 다양한 조건과 상황이 어떻게 공감 가능한가? 평화, 공존의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save my city -> save my world. 확장, 나는 어떤 커밋트먼트가 있었다. 하겠다고 했던 이유. 2. 움직이는 학교 작업장학교 시즌1의 마무리, 확장된 문제의식에서 왜 다시 학교를 만들어야하지? 어떤 예상/목표를 가졌지? 배움의 방향을 세우기. 일상의 회복, 클래스 3. 마음 붙이기의 여정 모두가 좋아 할 수 있는 창의는 뭘까? 돌봄, 헌신, 마을. “우리”의 범위를 넓혀가는 경험은 무엇을 상상하게 했는가? 또는 무엇을 고려하게 되었나? 빌리지, 허공에의 질주 4. 같이 하는 동료로 만나기 위해서 학교 진단과 평가해보기. 새로운 사람들과 얼마만큼 했고, 하지 못했나. 무엇이 부족했고 기대는 무엇인가? 협력, 동료 5. 마지막으로 에세이를 쓰면서 들었던 생각들 ------------------------------------------------------------------------------------------------------------------------------------- 1. 불이 난 숲 시즌 1을 마무리하고, 가장 마지막에 학교만들기 팀의 멤버로 합류했다. ![]() When we meet a desert, make it a garden.
2010.12.09 22:07:34
조금 써보면 정리가 되려나, 아니면 어느 부분에서 시작 지점을 둘까? 고민하면서 목차에서 빼두었는데요, 성장과 배움 과정에서 이야길 풀어 볼까, 적극적으로 자활(창의)노동으로 넘어가볼까? 이렇게요. 음, 일단은 배움을 정리하면 될까? 싶은거였는데요, 둘 다 합쳐서 가는게 좋을텐데, 성년식부터 시작되서, 두리반 자립음악가대회, 일을 하면서 배운다는 우리의 슬로건, 어렴풋이 생각하는 것은 그런 일을 할 때 인프라와 접점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건데 "공동의 식탁!"<-아직 설명도 부족하고 거칠어요. 자활/창의 노동 탐구를 시작하기로 하면서 궁금한 것도 있고, 예를 들면 두리반에서는 자립음악가에게 음악을 한다는 것이 노동이냐 아니냐 이런걸 따지고 묻고 싶은 건 아니고요, 어떻게 자신의 일을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맥락인것인지. 한순간에 되는 일은 아니니까, 어떤 의미에서 성장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인지? 성년식 준비하면서 얘기 했지만, 사실 누가 어른인지 잘 모르겠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또 무엇인지 , 저번에 히옥스가 말씀해주셨던, 20대 담론들 거기에도 여전히 혼자서 외롭고 루저같고 앞으로 먹고 살기와 자기 삶 설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모두가 고민하는 것 같은데, 합심해서 같이 하는 일들을 상상해봐도 되지 않을까?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하고 싶은것은 뭘까? 라는 생각. 실제로 본 사람들, 지금도 하자에 끈을 놓지 않고 일을 도우러 와주는 글쎄,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일을 적극적으로 연결시켜주는 타락, 율면에서 만난 날씨,(그리고 지금도 소식을 주고 받는 "선배"그룹들) 아 이런것들을 보면서 베이스캠프가 어떤식의 소속이 있고, 마음 붙인 곳이 있는다는게 하나의 단서로써 생각되는 것도 있고요.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정리를 할 때는 갈피를 잡아야할텐데..... .
2010.12.18 04:50:46
1. 불이 난 숲 연대 문화학 협동과정 -근대의 장례식을 누가 치를 것인가?- 에서 <청소년이 감지하는 추방권력>이라는 제목으로 히옥스와 르포작가 김순천 선생님의 강의가 있었다. 각자 자신의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로 진행된 이 강의에서는 청소년이 겪고 있는 삶에 대해, 소위 “10대/청소년”안에 있는 다양한 분류에 대해 설명한다. 그것을 통해 두 사람은 우리의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삶의 태도에 기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 우리가 겪고 있는 불행을 직면해야한다고. 바로 내가 겪었던 그 세상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에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삶들이 같이 살아가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또, 그 사람들의 삶의 공간으로 들어가서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많이 느끼고 고민된다. 뉴스에서 본 것도 아니었고 책도 아니었으며 누가 주목하지 않았던, 존재 자체조차도 아리송한 그런 삶의 공간으로 쉼 없이 찾아다녔다. 너무 “센” 경험들만 골라서 하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두 눈을 감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정선의 탄광촌도 그렇고, 태국의 메솟도, 4대강 공사가 한창인 낙동강도, 팔당지역도, 장애인의 신체 자체가 예술이라던 타이헨 극단도, 한 여름 도심 돈의동 쪽방에서도 이렇게 현실과 마주했을 때는 우리가 배워왔고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훨씬 복잡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무기력해질 수 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뭔데? 라며 자책 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럼에도 내게 그것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궁리하며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나한테는 만남을 통한 배움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들이 처한 상황이 불쌍해서, 내가 그 사람들 보다 조금 더 나으니까, 라는 식의 굉장히 “착한” 생각으로 위에서 베푸는 봉사가 아니다. 만남을 통해서 그들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기꺼이 함께 하자며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을 하면 될 것이다. 내게 이런 일과 배움이야 말로 내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이자 의지이다.
시즌 1의 학교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 하자작업장학교가 (일반)학교에 있는 학생들에게 대안의 형태를 보여줄 수 있었나? 어떻게 생각하니?”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자문하게 되었다고. 메솟으로 현장학습을 갔을 때, 미국 GED를 준비하는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 친구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교를 졸업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질문하게 되었다. 졸업반이었던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었는데, “가능한 빨리 이곳을 떠나서 다른 삶을 살고 싶어.” 나는 그렇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라고 되물었고, 그렇다고 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마음이었다.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사실은 그때는 종업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고,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누렸던 행복도 있었지만, 동시에 더 험난한 세상을 알게 되면서 어딘가 한구석이 개운치 못했다고 할까. 가끔은 내가 당했던 고통이나 갑갑증을 느꼈던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직도 대학이 희망이라고 오매불망 생각하는 또는 아예 난 끝났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내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나의 모습과 메솟에서 만났던 친구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대안이라는 말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학교를 탈하고 또 다시 다른 학교인 이곳에 있는 의미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특권이라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자문하게 되었다. 혹시 나도 욕심 많은 거인처럼 나의 담장을 높게 더 높게 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학교 만들기 팀에 마지막으로 참여했다. 어떤 종류의 책임감도 있었고, 더 질문해보고 싶었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생각하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었으니까 끝까지 가보겠다는 결심도 했다. 학교를 만드는 기간 돌아보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 하지만,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불이 난 숲에서 여전히 자신의 발등만 쳐다보고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일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 숲 속에서 가장 깊은 곳까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들어가는 일을 할 수 있었다. 학교를 만드는 논스톱의 기간이 일단락되고 시즌2에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함에도 더 견고해진 사실은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는 혼자만의 외롭고 괴롭고 지겨운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관계 맺으며 나누고 함께 하는 삶의 방법을 배워야한다. 나는 크리킨디의 이야기의 시작도 결말도 아닌 그 연장선상에 있다. 때문에 나와 너와 학교는 작은 부리로 물 한 방울씩을 나르며 같이 숲의 불을 끌 더 많은 타인을 만나야한다 3. 마음 붙이기의 여정 계속 ing
2010.12.19 22:03:29
1. 불이 난 숲 연대 문화학 협동과정 -근대의 장례식을 누가 치를 것인가?- 에서 <청소년이 감지하는 추방권력>이라는 제목으로 히옥스와 르포작가 김순천 선생님의 강의가 있었다. 각자 자신의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로 진행된 이 강의에서는 청소년이 겪고 있는 삶에 대해, 소위 “10대/청소년”안에 있는 다양한 분류에 대해 설명한다. 그것을 통해 두 사람은 우리의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삶의 태도에 기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 우리가 겪고 있는 불행을 직면해야한다고. 바로 내가 겪었던 그 세상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에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삶들이 같이 살아가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또, 그 사람들의 삶의 공간으로 들어가서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많이 느끼고 고민된다. 뉴스에서 본 것도 아니었고 책도 아니었으며 누가 주목하지 않았던, 존재 자체조차도 아리송한 그런 삶의 공간으로 쉼 없이 찾아다녔다. 너무 “센” 경험들만 골라서 하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두 눈을 감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정선의 탄광촌도 그렇고, 태국의 메솟도, 4대강 공사가 한창인 낙동강도, 팔당지역도, 장애인의 신체 자체가 예술이라던 타이헨 극단도, 한 여름 도심 돈의동 쪽방에서도 이렇게 현실과 마주했을 때는 우리가 배워왔고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훨씬 복잡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무기력해질 수 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뭔데? 라며 자책 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럼에도 내게 그것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궁리하며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나한테는 만남을 통한 배움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들이 처한 상황이 불쌍해서, 내가 그 사람들 보다 조금 더 나으니까, 라는 식의 굉장히 “착한” 생각으로 위에서 베푸는 봉사가 아니다. 만남을 통해서 그들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기꺼이 함께 하자며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을 하면 될 것이다. 내게 이런 일과 배움이야 말로 내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이자 의지이다. 2. 움직이는 학교
시즌 1의 학교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 하자작업장학교가 (일반)학교에 있는 학생들에게 대안의 형태를 보여줄 수 있었나? 어떻게 생각하니?”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자문하게 되었다고. 메솟으로 현장학습을 갔을 때, 미국 GED를 준비하는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 친구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교를 졸업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질문하게 되었다. 졸업반이었던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었는데, “가능한 빨리 이곳을 떠나서 다른 삶을 살고 싶어.” 나는 그렇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라고 되물었고, 그렇다고 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마음이었다.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사실은 그때는 종업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고,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누렸던 행복도 있었지만, 동시에 더 험난한 세상을 알게 되면서 어딘가 한구석이 개운치 못했다고 할까. 가끔은 내가 당했던 고통이나 갑갑증을 느꼈던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직도 대학이 희망이라고 오매불망 생각하는 또는 아예 난 끝났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내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나의 모습과 메솟에서 만났던 친구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대안이라는 말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학교를 탈하고 또 다시 다른 학교인 이곳에 있는 의미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특권이라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자문하게 되었다. 혹시 나도 욕심 많은 거인처럼 나의 담장을 높게 더 높게 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학교 만들기 팀에 마지막으로 참여했다. 어떤 종류의 책임감도 있었고, 더 질문해보고 싶었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생각하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었으니까 끝까지 가보겠다는 결심도 했다. 팀이 꾸려지고 나서, 영상, 디자인, 공연 이런 세 갈래에서 모인 우리는 이전에 갖고 있는 분야의 벽을 허무는 일부터 그렇게 다시 새로운 공간에서 서로의 이해와 역할을 다시 세우는 것 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앞으로 삶을 꾸려갈 때 내가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동료로 무엇을 생각하고 배워갈지 어떤 일을 기획하고 어디까지 함께 할지 학교는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말이다.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면서 그리고 공연을 다니면서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매체는 아니었다. 병아리가 달걀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매체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그것 너머, 매체가 발현해야할 내용에 집중하게 되었다. 내가 학교를 넘어선 사회적 기여나 공감에 따라 움직이고 상상을 하기 시작했으면, 그리고 학교도 각기 다른 계층과 마음 쓰이는 곳으로 유연하게 흐름에 따라 움직여 줘야한다. 학교를 만드는 기간 돌아보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불이 난 숲에서 여전히 자신의 발등만 쳐다보고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일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 숲 속에서 가장 깊은 곳까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들어가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일을 통해서 노래를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학교 너머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학교를 만드는 논스톱의 기간이 일단락되고 시즌2에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함에도 더 견고해진 사실은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해야한다. 우리는 혼자만의 외롭고 괴롭고 지겨운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관계 맺으며 나누고 함께 하는 삶의 방법을 배워야한다. 학교는 크리킨디의 이야기의 시작도 결말도 아닌 그 연장선상에 있다. 때문에 작은 부리로 물 한 방울씩을 나르며 같이 숲의 불을 끌 더 많은 타인을 만나야한다.
2010.12.19 23:53:04
3. 마음 붙이기의 다음 여정 아직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정말 신기한 것은, 그런 일들을 해오면서 조금 달라진 나 자신이다. 하면 할수록 “열정”이라는 것이 어디선가 꿈틀한다. 나는 죽어다 깨어나도 그렇게 될 일이 없으니 불쌍한 사람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그래서 하고 나서 뿌듯한 보람은 아니다. “만약에 저 일을 내가 겪었다면?” 이라고 생각했다. 또는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주는 것이다. 시대의 영웅의식이 아니라 시대의 주인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작업장학교에서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세계를 구하는 시인”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그렇다. 다른 존재와 친구 맺고 따뜻한 마음으로 노래하고, 보듬어주는 것. 사실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면에서는 단단히 마음먹고 기꺼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고민은 가지고 있었다. 생각과 마음은 딱 동요되었는데,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나의 학기를 계획하는 것은 또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계기가 있었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밥벌이”의 맥락에서 <두리반>이라는 굉장히 특수한 공간에서 열렸던 51+자립음악가대회와 캠페인의 맥락과 할 수 있는 일로서 메솟 친구들을 돕자고 시작한 텀블러와 수저집 창업 활동이었다. 남을 돌보기 위한 일과 나를 돌보는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 한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정말 개인적인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함께 나눠야 할 것이었지만 두 가지를 같이 고민하여야 했다. 개인적 삶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회적 삶에 손을 뻗어야 했고, 다시 사회적인 삶은 개인적 삶에서 사고 해봐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먹고사는 일과 학교를 따로 놓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문화작업을 하는 게 자신의 자립과 굉장히 별개라고 생각할 수 있던 게 아닐까? 라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의견이 잘 생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고, 스스로 시작단계라며 더 많은 실험들을 생각해 내고 싶다. 내가 마주 하고 있는 모든 문제가 외면 할 수 없고, 나 자신의 문제며, 그것을 해결할 사람도 나라는 책임 의식과 만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어떤 식일지 또한 기대된다. 정성을 담은 형식(의례, 문화)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 학교가 잘하는 혹은 잘하려고 하는 일중에 하나다. 표현되지 않으면 나눌 수 없기 때문에 형식을 만든다는 것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들은 혼자 일 때 보다 더 창조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으며 나뿐만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보탬이 된다. 이런 일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생기고 지속가능한 형태로 우리 옆에 자리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나는 창의 노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창의 노동은 조용한 혁명이다. 삶의 전반적인 모든 것을 재구성하는 것.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다. 세계를 구하는 시인이 되겠다던 사람이 먼저 지쳐 나가 떨어져 버리면, 결코 세계는커녕 당장 내 눈앞에서 벌어진 돌발 상황에 올바르게 대처 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졌을 때, 그래 이것은 현실이다. 남을 돌보기 위해서는 자신도 함께 돌봐야한다. 내 일상도 새롭게 구상해야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무엇을 지속가능하게 할 것 인가? 고민하고, 그러면서 자립과 공생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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