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지난 3월부터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하자작업장학교 시즌 2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시즌2 학교를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받았고 작업장학교에서 학습을 지속하고 싶어서, 제일 중요한 이유로는 내가 만든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학교만들기팀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만들어진 학교를 3개월 동안 다니고 평가하건데 ‘학교만들기’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이 부족했고 몇 가지 오해를 한 것도 같다. 그래서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학교를 내가 만든 건지 모르겠다는 결론이다. 어쩌면 단지 만들어질 때 옆에 있었는지도.

 

시즌1에서는 “동족끼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래’가 되자”였다가 시즌2가 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벌새’나 ‘대작전을 펼치는’너구리가 되자”는 것이 하나의 크게 바뀌게 된 점이지만 시즌2인 지금 고래의 부족이야기도 가져가고 있고 시즌1에서도 벌새나 너구리같은 경향이 없던 것이 아니다. 시즌2가 되며 바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시즌1에서는 학교를 ‘탈’하고 어쩌면 외부의 어른들로부터의 방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 시즌2는 외부의 어른들뿐만 아니라 세계를 보려는 사람들,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학교를 만드는 당시엔 시즌1과 2사이에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지 못했고 막연히, 어쨌든 학교를 만들 것이고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든다”는 문장에만 꽂혀있었다. 지금에서야 이해는 했지만 솔직히 따라가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학교생활을 하다가 보면 하고 싶은 일은 언제하는가에 대한 생각과 일, 놀이, 학습이 같이 이루어진다는 곳에서 놀이는 대체 언제 하느냐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아직도 이따금씩 생각이 들고 익숙해졌지만 익숙해진 것만으로는 앞으로의 무언가를 더 만들어갈 우리 학교에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나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내가 살면서 대충 하지 않았던 게 하나 빼곤 없었던 것 같다. 음악으로 먹고 살 거라는 생각이 있는데도 음악에 별로 비중을 두지 않고 비중을 두지도 못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끔 학교에 있는 내 자신이 흔들린다. 분명히 더 할 수 있을 텐데 더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녹초’가 돼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항상 피곤하다. 작업장학교에 다니려면 ‘피곤’은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난 웬만하면 피곤한 건 정말 싫어했지만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졌고 특히 작업장학교에선 피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작업장학교에서는 공부, 일을 정말 빽빽하게 열심히 하고 피곤한 것은 무엇인가 제대로 하려면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는 배고파도 된다는 말이 작업장학교에선 ‘하고 싶은 것’의 자리에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나는 공부를 할 때 항상 ‘어느 정도’까지만 하면 내 자신이 만족해버렸다. 그래서 더 하지 않으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10 to 10으로 열두 시간을 지내고, 내겐 요즘 삶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도 있는 애니메이션을 하루에 한두 편씩은 보면서 나머지 자기 전까지의 시간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두는 것이 ‘어느 정도’를 의미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만 하면 안 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이 이상은 따르기 힘들다. 더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지만 지금 같은 생각은 지난 3년간 이따금씩 계속 흔들려왔던 것이라 언젠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이런 마음가짐 속에서도 이미 내 안에 확실히 자리 잡고 있는 건 있다. ‘생태주의자’와 ‘시인(揌人)’이다. 기후변화의 living literacy프로젝트를 할 때부터 나는 환경을 키워드로 삼았고 내가 버리는 쓰레기는 99%용납할 수 없었으며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생태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을 권유했다. 다른 프로젝트들을 할 때도 내가 揌人이라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으며 직접적인 행동을 할 때에는 꽤 뜨겁게 움직였다. 이런 와중에 ‘마음붙이기’라는 키워드가 나왔고 우리가 하는 일, 학습에 마음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 학교에서는 마음이 붙어있지 않으면 체력적인 문제로나 정신적인 문제로나 지내기 어렵고 심지어 버티기도 쉽지 않다. 나는 학교에 마음이 붙어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붙어있는 힘과 내 안에 있는 체력, 정신 이 세 가지의 조합으로 학교에 마음 붙이며 여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마음을 붙여야 하는 힘이 훨씬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이 이상은 힘들다.

 

 

학습

학습이란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히옥스의 ‘습’은 언제할거냐는 물음에서였다. 배우긴 했는데 익히는 것은 언제하나. 학보다 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배울 때는 그 시간 집중하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학습이 한 단어이니 만큼 습이 이어서 와야 하는데 난 아직 습과는 거리가 있다. 익힌다는 것은 반복하며 더 경험을 쌓고 결국엔 발전된 학을 할 수 있으며 내 방식으로, 나의 언어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습은 고의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작업장학교 특성상 대부분 습해야 할 것은 개인의 몫에 달려있으며 누군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선 글쓰기도 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겪고 나서 그에 대한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완성된 ‘학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글로비시

이번 학기에 한 글로비시는 일정에 있는 큰 프로젝트들의 예습, 복습의 차원이기도 했다. Who, Where, When, How, Why, What에 맞추어 리포트를 썼고 두, 세 사람씩 짝을 지어서 키워드를 뽑아 팀 리뷰, 개인 리뷰를 써보기도 했다. 생각을 정리하거나 프로젝트들을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생태주의자

나는 생태주의자다 라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라는 캠페인까지 벌여봤기 때문이다. 이 캠페인은 캐나다의 한 광고인이 만든 날인데 자신이 만든 광고로 인해 너무나 많은 소비가 있었다는 문제점을 알고서 만든 날이다. 불공정거래, 공정무역, 노동착취 등을 통틀어서 이날 하루만 소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작년에 아주 조그맣게 캠페인을 벌인 게 있는데 정말 로우퀄리티였던데다가 홍보도 잘 안 하고 학교 안에서 ‘이런 캠페인이 있다’라는 것 정도만 알리는 식으로 했었다. 하지만 이번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에는 학교 모두가 준비하고 밖으로 나갔다.

처음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기획서를 쓸 때의 키워드는 ‘생체에너지의 소비’였다. 물질적인 소비만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 속에 반하여 몸에서 음식을 섭취하면 생겨나는 인간적인 생체에너지를 대량 소비하려는 것이었다. 엄청나게 달리고 달려서 단순히 생체에너지를 소비하자는 게 나의 첫 제안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도 거치고 나니 홍대에서 하자까지 행진을 하며 생체에너지를 소비하고 행진 중에 악기를 치거나 리플렛을 나눠주며 ‘알리기’와 ‘직접행동’도 같이 할 수 있었다. 캠페인을 벌이기 전 건강한 소비는 무엇인가, 직접 손으로 사용할 것을 만들어서 물건을 오래, 소중하게 쓰게 하자 하는 질문들이나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번 캠페인은 생태주의자로서, 시인으로서 움직이게 된 것이라 준비하는 기간이 재밌었다. 정말 무엇인가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이 캠페인을 9월 달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만 했어서 나중에 가서 급하게 일을 처리한 게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더 부지런하고 상황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경험을 더 쌓고 싶다.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아까 잠깐 언급한 바 있는데 이번 BND(Buy nothing day)가 두 번째라는 것이다. 작년에 했던 프로젝트가 이어서 올 수 있게 된 이유나 계기는 무엇일까. 어떤 형식적인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지속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궁금하다.

 

평화워크숍

브루노와 평화포럼을 하는 도중에 “평화는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두고 가는 선물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평화도 이런 건 절대 아니다. 평화는 action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평화에 대해 공부하자고 했을 때 우리는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이런 물음에 바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를 이야기 하자고 했을 때 떠오르는 각자의 이미지들은 평화라기보다는 평온함, 편안함과 더 맞는 이미지들이었다. 평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 추상적이라서 토론할 때 모두 얘기도 안 나오고 너무 어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평화적이지 못한 상황들은 무엇인지 토론을 했다. 위안부, 전쟁, 남과 북, 워크9 등 평화를 놓고 얘기할 꺼리가 너무 많았다. 평화라는 단어가 그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 있는 단어인지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단어인지의 물음도 들었다. 이것은 시각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난 평화라는 단어 자체를 추구하고 싶다.

아까 평화는 움직임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평화란 혼자만 가지면 안 된다. 그것은 평화로울 수 없다. 평화는 무엇인가와의 관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이해, 돌봄이 필요하다. 대화하고 소통하고 서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며 같은 위치에 서려고 하는 것이 평화롭기 위한 노력이다. 서있는 위치가 다르면 일방적인 관계, 그러다보니 폭력적인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선 위해 위치하는 게 중요하다. 어깨동무라는 NGO단체의 이마까라상은 ‘평화에 대한 이해’를 정말 중요시 생각하고 있었다. 남을 설득하려하지 말고 경청을 하고 속도 인식, 개념의 차이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평화 공부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리고 평화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건 세상의 약자, 소수자를 두고 섬세한 감수성을 갖는 것이다. 감수성은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키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감수성에서 정의에 대한 개념으로 확대되는 것이 계속 평화 공부에서 스텝을 밟는 것이라고 말했다. 근데 생각이 진전되고 정의를 말해야 될 때가 왔을 때 정의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세상에서는 정의를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다. 정의라는 이름 뒤에서 교활한 짓을 꾸미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의롭게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음 좋겠고 나 역시 정의를 외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평화를 더 알아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해야 한다. 평화는 이타적인 것이라 나만의 평화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쿠로코

우리 학교는 일본의 장애인행위예술극단 타이헨의 한국 엑스트라 배우의 쿠로코가 되었다. 타이헨극단은 콘트롤되지 않는 몸의 떨림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극단이다. 이번에 타이헨 극단이 할 극은 ‘황웅도 일대기’인데 일제 강점기 때 살았던 민중의 영웅이었다. 황웅도의 고향 고성에서도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한국에서도 공연을 하시는데 한국의 장애인들이 엑스트라가 되면 좋겠다고 하셔서 요즘 엑스트리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쿠로코의 일은 쉽게 말하자면 장애인 보조이다. 하지만 이 장애인은 ‘배우’다. 배우와 쿠로코의 관계에서는 소통이 정말 중요한데 쿠로코를 할 때는 상대를 존중하는 모드로 철저히 바뀌어야 한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실 때에도 동의를 구해야 하고 음식을 먹여드리거나 연습 중 이동시켜드릴 때도 항상 조심하고 눈을 맞추며 일을 해야 한다. 이런 관계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부 같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적용해야 하는 관계법이다.

연습할 때 배우들은 몸을 많이 움직이신다. 구르시고 기시고 걸으신다. 비장애인보다 훨씬 빨리 지치시기 때문에 거리가 약간 먼 곳으로 이동하셔야 하실 때는 쿠로코들이 붙어서 옮겨드려야 한다. 그래서 연습할 때는 훨씬 긴장을 해야 한다. 우리는 배우들을 안고 서는 법, 이동하는 법, 앉는 법 등 세세한 것까지 대 배웠다. 타이헨에서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해줬는데 안전, 신뢰, 예술성이다. 이 세 가지는 연습을 할 때라던가 배우들과 대화를 할 때, 간식을 먹을 때 등 무엇을 하든지 간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전문 극단과 함께하다보니 여태 살면서 이렇게 professional해져야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연출가 김만리 선생님의 앞을 지나가서도 안 되고 연습 중에는 엉덩이 붙이고 앉지도 못한다. 몸은 힘들지만 그만큼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최근에 배운 것은 쿠로코의 몰랐던 역할들인데 무대설치, 생활의 면에서도 쿠로코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담당자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쿠로코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포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진짜 무대처럼 막을 설치하고 연습한 적이 있었는데 막을 올리고 내리고, 막 뒤에서 배우들을 내보내고 들여보내고 하는 것들조차 전문적인 방법들이 있었다. 어렵지만 잘 할 수 있다.

무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의 체력, 배우들의 체력도 봐야 하는 게 쿠로코다. 배우들은 누구한테든지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체력을 다 소진하면 안 된다. 배우들의 체력의 반은 쿠로코가 짊어져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중요한 일이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정말 공부가 되는 것들이다.

 

감정 이입

empathy, 꽤 중요한 키워드였다. 우리가 하려는 공부들은 감정 이입이 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공부들이다. 우리는 앉아서 얘기를 줄창 하기도 하지만 행동도 꽤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행동할 때는 감정 이입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roleplay game. 나는 난민의 역할을 맡았었는데 정말 난민이 됐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정말 난민이 됐어야 했다. 정말로 상대방이 되려고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사전조사와 상상이 필요하다. simulation말이다. 사소한 것에서도 감정 이입은 중요하다. 친구와 싸웠을 때, 왜 그 친구가 화를 냈는지 암만 자기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모를 때 상대방이 되어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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