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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지난 3월부터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하자작업장학교 시즌 2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시즌2 학교를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받았고 작업장학교에서 학습을 지속하고 싶어서, 제일 중요한 이유로는 내가 만든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학교만들기팀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만들어진 학교를 3개월 동안 다니고 평가하건데 ‘학교만들기’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이 부족했고 몇 가지 오해를 한 것도 같다. 그래서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학교를 내가 만든 건지 모르겠다는 결론이다. 어쩌면 단지 만들어질 때 옆에 있었는지도. 시즌1에서는 “동족끼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래’가 되자”였다가 시즌2가 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벌새’나 ‘대작전을 펼치는’너구리가 되자”는 것이 하나의 크게 바뀌게 된 점이지만 시즌2인 지금 고래의 부족이야기도 가져가고 있고 시즌1에서도 벌새나 너구리같은 경향이 없던 것이 아니다. 시즌2가 되며 바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시즌1에서는 학교를 ‘탈’하고 어쩌면 외부의 어른들로부터의 방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 시즌2는 외부의 어른들뿐만 아니라 세계를 보려는 사람들,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학교를 만드는 당시엔 시즌1과 2사이에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지 못했고 막연히, 어쨌든 학교를 만들 것이고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든다”는 문장에만 꽂혀있었다. 지금에서야 이해는 했지만 솔직히 따라가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학교생활을 하다가 보면 하고 싶은 일은 언제하는가에 대한 생각과 일, 놀이, 학습이 같이 이루어진다는 곳에서 놀이는 대체 언제 하느냐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아직도 이따금씩 생각이 들고 익숙해졌지만 익숙해진 것만으로는 앞으로의 무언가를 더 만들어갈 우리 학교에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나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내가 살면서 대충 하지 않았던 게 하나 빼곤 없었던 것 같다. 음악으로 먹고 살 거라는 생각이 있는데도 음악에 별로 비중을 두지 않고 비중을 두지도 못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끔 학교에 있는 내 자신이 흔들린다. 분명히 더 할 수 있을 텐데 더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녹초’가 돼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항상 피곤하다. 작업장학교에 다니려면 ‘피곤’은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난 웬만하면 피곤한 건 정말 싫어했지만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졌고 특히 작업장학교에선 피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작업장학교에서는 공부, 일을 정말 빽빽하게 열심히 하고 피곤한 것은 무엇인가 제대로 하려면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는 배고파도 된다는 말이 작업장학교에선 ‘하고 싶은 것’의 자리에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나는 공부를 할 때 항상 ‘어느 정도’까지만 하면 내 자신이 만족해버렸다. 그래서 더 하지 않으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10 to 10으로 열두 시간을 지내고, 내겐 요즘 삶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도 있는 애니메이션을 하루에 한두 편씩은 보면서 나머지 자기 전까지의 시간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두는 것이 ‘어느 정도’를 의미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만 하면 안 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이 이상은 따르기 힘들다. 더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지만 지금 같은 생각은 지난 3년간 이따금씩 계속 흔들려왔던 것이라 언젠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이런 마음가짐 속에서도 이미 내 안에 확실히 자리 잡고 있는 건 있다. ‘생태주의자’와 ‘시인(揌人)’이다. 기후변화의 living literacy프로젝트를 할 때부터 나는 환경을 키워드로 삼았고 내가 버리는 쓰레기는 99%용납할 수 없었으며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생태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을 권유했다. 다른 프로젝트들을 할 때도 내가 揌人이라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으며 직접적인 행동을 할 때에는 꽤 뜨겁게 움직였다. 이런 와중에 ‘마음붙이기’라는 키워드가 나왔고 우리가 하는 일, 학습에 마음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 학교에서는 마음이 붙어있지 않으면 체력적인 문제로나 정신적인 문제로나 지내기 어렵고 심지어 버티기도 쉽지 않다. 나는 학교에 마음이 붙어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붙어있는 힘과 내 안에 있는 체력, 정신 이 세 가지의 조합으로 학교에 마음 붙이며 여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마음을 붙여야 하는 힘이 훨씬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이 이상은 힘들다. 학습 학습이란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히옥스의 ‘습’은 언제할거냐는 물음에서였다. 배우긴 했는데 익히는 것은 언제하나. 학보다 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배울 때는 그 시간 집중하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학습이 한 단어이니 만큼 습이 이어서 와야 하는데 난 아직 습과는 거리가 있다. 익힌다는 것은 반복하며 더 경험을 쌓고 결국엔 발전된 학을 할 수 있으며 내 방식으로, 나의 언어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습은 고의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작업장학교 특성상 대부분 습해야 할 것은 개인의 몫에 달려있으며 누군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선 글쓰기도 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겪고 나서 그에 대한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완성된 ‘학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글로비시 이번 학기에 한 글로비시는 일정에 있는 큰 프로젝트들의 예습, 복습의 차원이기도 했다. Who, Where, When, How, Why, What에 맞추어 리포트를 썼고 두, 세 사람씩 짝을 지어서 키워드를 뽑아 팀 리뷰, 개인 리뷰를 써보기도 했다. 생각을 정리하거나 프로젝트들을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생태주의자 나는 생태주의자다 라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라는 캠페인까지 벌여봤기 때문이다. 이 캠페인은 캐나다의 한 광고인이 만든 날인데 자신이 만든 광고로 인해 너무나 많은 소비가 있었다는 문제점을 알고서 만든 날이다. 불공정거래, 공정무역, 노동착취 등을 통틀어서 이날 하루만 소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작년에 아주 조그맣게 캠페인을 벌인 게 있는데 정말 로우퀄리티였던데다가 홍보도 잘 안 하고 학교 안에서 ‘이런 캠페인이 있다’라는 것 정도만 알리는 식으로 했었다. 하지만 이번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에는 학교 모두가 준비하고 밖으로 나갔다. 처음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기획서를 쓸 때의 키워드는 ‘생체에너지의 소비’였다. 물질적인 소비만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 속에 반하여 몸에서 음식을 섭취하면 생겨나는 인간적인 생체에너지를 대량 소비하려는 것이었다. 엄청나게 달리고 달려서 단순히 생체에너지를 소비하자는 게 나의 첫 제안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도 거치고 나니 홍대에서 하자까지 행진을 하며 생체에너지를 소비하고 행진 중에 악기를 치거나 리플렛을 나눠주며 ‘알리기’와 ‘직접행동’도 같이 할 수 있었다. 캠페인을 벌이기 전 건강한 소비는 무엇인가, 직접 손으로 사용할 것을 만들어서 물건을 오래, 소중하게 쓰게 하자 하는 질문들이나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번 캠페인은 생태주의자로서, 시인으로서 움직이게 된 것이라 준비하는 기간이 재밌었다. 정말 무엇인가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이 캠페인을 9월 달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만 했어서 나중에 가서 급하게 일을 처리한 게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더 부지런하고 상황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경험을 더 쌓고 싶다.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아까 잠깐 언급한 바 있는데 이번 BND(Buy nothing day)가 두 번째라는 것이다. 작년에 했던 프로젝트가 이어서 올 수 있게 된 이유나 계기는 무엇일까. 어떤 형식적인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지속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궁금하다. 평화워크숍 브루노와 평화포럼을 하는 도중에 “평화는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두고 가는 선물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평화도 이런 건 절대 아니다. 평화는 action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평화에 대해 공부하자고 했을 때 우리는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이런 물음에 바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를 이야기 하자고 했을 때 떠오르는 각자의 이미지들은 평화라기보다는 평온함, 편안함과 더 맞는 이미지들이었다. 평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 추상적이라서 토론할 때 모두 얘기도 안 나오고 너무 어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평화적이지 못한 상황들은 무엇인지 토론을 했다. 위안부, 전쟁, 남과 북, 워크9 등 평화를 놓고 얘기할 꺼리가 너무 많았다. 평화라는 단어가 그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 있는 단어인지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단어인지의 물음도 들었다. 이것은 시각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난 평화라는 단어 자체를 추구하고 싶다. 아까 평화는 움직임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평화란 혼자만 가지면 안 된다. 그것은 평화로울 수 없다. 평화는 무엇인가와의 관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이해, 돌봄이 필요하다. 대화하고 소통하고 서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며 같은 위치에 서려고 하는 것이 평화롭기 위한 노력이다. 서있는 위치가 다르면 일방적인 관계, 그러다보니 폭력적인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선 위해 위치하는 게 중요하다. 어깨동무라는 NGO단체의 이마까라상은 ‘평화에 대한 이해’를 정말 중요시 생각하고 있었다. 남을 설득하려하지 말고 경청을 하고 속도 인식, 개념의 차이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평화 공부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리고 평화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건 세상의 약자, 소수자를 두고 섬세한 감수성을 갖는 것이다. 감수성은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키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감수성에서 정의에 대한 개념으로 확대되는 것이 계속 평화 공부에서 스텝을 밟는 것이라고 말했다. 근데 생각이 진전되고 정의를 말해야 될 때가 왔을 때 정의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세상에서는 정의를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다. 정의라는 이름 뒤에서 교활한 짓을 꾸미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의롭게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음 좋겠고 나 역시 정의를 외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평화를 더 알아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해야 한다. 평화는 이타적인 것이라 나만의 평화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쿠로코 우리 학교는 일본의 장애인행위예술극단 타이헨의 한국 엑스트라 배우의 쿠로코가 되었다. 타이헨극단은 콘트롤되지 않는 몸의 떨림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극단이다. 이번에 타이헨 극단이 할 극은 ‘황웅도 일대기’인데 일제 강점기 때 살았던 민중의 영웅이었다. 황웅도의 고향 고성에서도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한국에서도 공연을 하시는데 한국의 장애인들이 엑스트라가 되면 좋겠다고 하셔서 요즘 엑스트리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쿠로코의 일은 쉽게 말하자면 장애인 보조이다. 하지만 이 장애인은 ‘배우’다. 배우와 쿠로코의 관계에서는 소통이 정말 중요한데 쿠로코를 할 때는 상대를 존중하는 모드로 철저히 바뀌어야 한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실 때에도 동의를 구해야 하고 음식을 먹여드리거나 연습 중 이동시켜드릴 때도 항상 조심하고 눈을 맞추며 일을 해야 한다. 이런 관계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부 같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적용해야 하는 관계법이다. 연습할 때 배우들은 몸을 많이 움직이신다. 구르시고 기시고 걸으신다. 비장애인보다 훨씬 빨리 지치시기 때문에 거리가 약간 먼 곳으로 이동하셔야 하실 때는 쿠로코들이 붙어서 옮겨드려야 한다. 그래서 연습할 때는 훨씬 긴장을 해야 한다. 우리는 배우들을 안고 서는 법, 이동하는 법, 앉는 법 등 세세한 것까지 대 배웠다. 타이헨에서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해줬는데 안전, 신뢰, 예술성이다. 이 세 가지는 연습을 할 때라던가 배우들과 대화를 할 때, 간식을 먹을 때 등 무엇을 하든지 간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전문 극단과 함께하다보니 여태 살면서 이렇게 professional해져야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연출가 김만리 선생님의 앞을 지나가서도 안 되고 연습 중에는 엉덩이 붙이고 앉지도 못한다. 몸은 힘들지만 그만큼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최근에 배운 것은 쿠로코의 몰랐던 역할들인데 무대설치, 생활의 면에서도 쿠로코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담당자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쿠로코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포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진짜 무대처럼 막을 설치하고 연습한 적이 있었는데 막을 올리고 내리고, 막 뒤에서 배우들을 내보내고 들여보내고 하는 것들조차 전문적인 방법들이 있었다. 어렵지만 잘 할 수 있다. 무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의 체력, 배우들의 체력도 봐야 하는 게 쿠로코다. 배우들은 누구한테든지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체력을 다 소진하면 안 된다. 배우들의 체력의 반은 쿠로코가 짊어져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중요한 일이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정말 공부가 되는 것들이다. 감정 이입 empathy, 꽤 중요한 키워드였다. 우리가 하려는 공부들은 감정 이입이 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공부들이다. 우리는 앉아서 얘기를 줄창 하기도 하지만 행동도 꽤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행동할 때는 감정 이입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roleplay game. 나는 난민의 역할을 맡았었는데 정말 난민이 됐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정말 난민이 됐어야 했다. 정말로 상대방이 되려고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사전조사와 상상이 필요하다. simulation말이다. 사소한 것에서도 감정 이입은 중요하다. 친구와 싸웠을 때, 왜 그 친구가 화를 냈는지 암만 자기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모를 때 상대방이 되어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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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0 08:42:46
어느 나라인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옛 이야기 중에 "소름끼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사나이"에 대한 얘기가 있는데 혹시 알고 있어?
그 남자는 힘도 세고, 재치도 있고, 잘 생겼고, 유머도 있었고, 자신감과 겁나는 게 없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사람들이 "소름 끼친다"고 말하면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궁금했는데 어느 날인가는 그 궁금증으로 참을 수가 없게 되어서 길을 떠나지. 그 소름끼친다는 게 뭔지 알아내려고. 그리고 어느 나라, 어느 이름 모를 성에 도착하는데, 그 성은 도깨비와 괴물, 귀신들이 점령하고는 성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있었는데, 3일을 그 성에서 견디면 되던가... 뭐 그런 얘기였지. (자세한 기억은 실종...) 3일을 견디며 그 도깨비 같은 것들을 조종하고 있는 늙은 도깨비대장을 물리치고 (아마도 이름 알아맞추기 같은 거였나 싶은데) 성의 사람들이 돌아오고 밝은 세상을 맞이 하게 되자, 성의 사람들이 감사의 표시로 나라를 바치고 성의 공주와 결혼시킨다음 왕으로 모시게 되는데, 그 남자는 왕이 된 다음 무척 난감해 해. 왕으로서의 책임도 있고, 공주도 사랑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소름이 끼치는 게 뭔지 몰라서 다시 길을 떠나고 싶어지거든. 그 얘기를 전해들은 공주가 잠자는 왕의 침대에 한 양동이의 미꾸라지를 쏟아 부었다나. 차가운 미꾸라지들이 갑자기 몸으로 파고 들어오자 얼결에 잠에 깨면서 그 왕이 말했다지, "으- 소름끼쳐" 그래서 ever after 행복하게 살았다는. 어떤 학자는 그 이야기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학적 지성에 대한 상징적 이야기라고도 설명하더라만. 가끔 너를 보면 그 남자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네가 교회에 가서 어떤 기도를 할까. 혹은 마사키선생님의 이야기에는 어떤 화답을 할까 궁금하다. 그런 주제로 너의 글 - 나는 생태주의자다 - 이 이어지면 좋겠다. 제목은 (큰 제목/ 소제목 모두) 조금 더 생각해 보면 해. 제목과 내용이 잘 연결되는 것 같지 않고, 제목과 (글의) 소재가 혼동되어 있는 것 같아. 소재로 해도 좋지만, 이 글에서는 소재보다는 '주제'와 제목들이 연결되면 좋겠다. 소제목들을 연결하면 네 글의 제목이 이해될 정도로.
2010.12.21 03:04:40
제목: 지난 3월부터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하자작업장학교 시즌 2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시즌2 학교를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받았고 작업장학교에서 학습을 지속하고 싶어서, 제일 중요한 이유로는 내가 만든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학교만들기팀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만들어진 학교를 3개월 동안 다니고 평가하건데 ‘학교만들기’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이 부족했고 몇 가지 오해를 한 것도 같다. 시즌1에서부터 2까지 이어져오는 프로젝트도 많고 프로젝트의 내용이 달리 변화도 없다. 조금 더 빡세진 것 같다는 느낌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학교를 내가 만든 건지 모르겠다는 결론이다. 굳이 만들었다고 치고 무엇을 했는지 말해보자면 9월 달에 들어온 죽돌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어디서 무엇을 할지 발판을 만들어준 것 같다. 우리가 시즌1에서부터 학교만들기 시즌을 거쳐 이어온 프로젝트들로 말이다. 논스톱멤버(시즌1에서부터 같이 있던 멤버)들은 일본의 장애인극단 타이헨과 극 하나를 만들려고 하고 있는데 9월이 지나니까 신입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현재 ‘생태’라는 키워드를 가져가고 있는 것도 지난 시즌부터 가져온 것이고 논스톱 멤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서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지금 같이 공부하고 있는 것들을 신입생들에게 쥐어줬다. 학교의 철학을 이어왔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굳이 우리 손에 만들어진 학교나 시즌2로 불리지 않아도 될 이유다. 신입생들보다 먼저 있던 사람으로서의 내 평가를 하자면 내가 누군지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너희를 보여 달라고 했다는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못한 것이 있다. 이것은 항상 내 평가를 할 때면 점수를 깎어먹을 것 같다. 또 기획이나 작사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해 본 반면에 원래 하던 역할을 웬만큼 하지 못했다. 악기 연습이나 가르쳐주는 역할에서 말이다. 안타깝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대부분 성취할 수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쿠로코로서의 역할은 성취를 해도 3월이 돼서야 가능하고 bnd 캠페인도 일단은 무사히 끝났지만 매년 열리는 행사니 다음 행사 준비를 해야 하기도 하고 생태공부를 하며 할 수 있는 운동들이 bnd만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광범위 하다. 생태나 평화문제는 너무나 어렵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아직 우리 손이 뻗치지 않는 곳이 너무 많다. 공부에는 성취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성취감이 없으니 공부하기가 힘든 것 같다. 그래서 학습 면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시즌1에서는 “동족끼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래’가 되자”였다가 시즌2가 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벌새’나 ‘대작전을 펼치는’너구리가 되자”는 것이 하나의 크게 바뀌게 된 점이지만 시즌2인 지금 고래의 부족이야기도 가져가고 있고 시즌1에서도 벌새나 너구리같은 경향이 없던 것이 아니다. 시즌2가 되며 바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시즌1에서는 학교를 ‘탈’하고 어쩌면 외부의 어른들로부터의 방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 시즌2는 외부의 어른들뿐만 아니라 세계를 보려는 사람들,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학교를 만드는 당시엔 시즌1과 2사이에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지 못했고 막연히, 어쨌든 학교를 만들 것이고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든다”는 문장에만 꽂혀있었다. 지금에서야 이해는 했지만 솔직히 따라가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학교생활을 하다가 보면 하고 싶은 일은 언제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고 일, 놀이, 학습이 같이 이루어진다는 곳에서 놀이는 대체 언제 하느냐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나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내가 살면서 대충 하지 않았던 게 하나 빼곤 없었던 것 같다. 음악으로 먹고 살 거라는 생각이 있는데도 음악에 별로 비중을 두지 않고 비중을 두지도 못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끔 내가 학교에 있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더 할 수 있을 텐데 더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녹초’가 돼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항상 피곤하다. 작업장학교에 다니려면 ‘피곤’은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난 웬만하면 피곤한 건 정말 싫어했지만 학교에 있는 게 웬만한 것도 아니고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졌다. 작업장학교에선 피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작업장학교에서는 공부, 일을 정말 빽빽하게 열심히 하고 피곤이라는 것은 하려고 하는 게 무엇이든지간에 제대로 하려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는 배고파도 된다는 말이 작업장학교에선 ‘하고 싶은 것’의 자리에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이 들어간다. 나는 공부를 할 때 항상 ‘어느 정도’까지만 하면 내 자신이 만족해버렸다. 그래서 더 하지 않으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10 to 10으로 학교에서 열두 시간을 지내고 집에 돌아와 애니메이션을 하루에 한두 편씩은 보면서 나머지 자기 전까지의 시간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두는 것이 ‘어느 정도’를 의미한다. 더 재밌는 것을 만들고 확실히 움직이기 위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시점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만 하면 안 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더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지만 앞으로 발을 디디면 이런 생각은 잊어야 하는데 이따금씩 떠오를 때마다 흔들려지기 때문에, 흔들리는 나로 인해 주변에 걱정이 되기 때문에 언젠간 과감히 포기하거나 확실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생태주의적 시인 나는 생태주의자다 라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생각하는 생태주의자가 뭔지 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어쩌다 환경이 아닌 ‘생태’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을까. “내 생각엔 환경이라는 말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여 인간을 ‘둘러싼’ 환경으로서의 자연을 설명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생태”는 인간 또한 자연계의 일부로서 모든 생명체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난 학기 에세이에 썼다. 환경도 생태계의 한 부분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생태주의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Buy Nothing Day’라는 캠페인까지 벌여봤기 때문이다. 이 캠페인은 캐나다의 한 광고인이 만든 날인데 자신이 만든 광고로 인해 너무나 많은 소비가 있었다는 문제점을 알고서 만든 날이다. 불공정거래, 공정무역, 노동착취 등을 통틀어서 이날 하루만 소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작년에 아주 조그맣게 캠페인을 벌인 게 있는데 너무 급하게 해서 퀄리티도 낮았던 데다가 홍보도 잘 안 하고 그저 학교 안에서 ‘이런 캠페인이 있다’라는 것 정도만 알리는 식으로 했었다. 하지만 이번 BND에는 학교 모두가 준비하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행진을 하며 누구라도 행렬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처음 BND기획서를 쓸 때의 키워드는 ‘생체에너지의 소비’였다. 물질적인 소비만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 속에 반하여 몸에서 음식을 섭취하면 생겨나는 인간적인 생체에너지를 대량 소비하자는 제안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도 거치고 나니 홍대에서 하자까지 행진을 하고 악기를 치며 생체에너지를 소비하고 소리를 치거나 선언문 읽기, 리플렛을 나눠주며 ‘알리기’와 ‘직접행동’을 병행할 수 있었다. 캠페인을 벌이기 전 건강한 소비는 무엇인가, 직접 손으로 사용할 것을 만들어서 물건을 오래, 소중하게 쓰게 하자 하는 질문들이나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번 캠페인은 생태주의자로서, 시인으로서 움직이게 된 것이라 준비하는 기간이 재밌었다. 정말 무엇인가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이 캠페인을 9월 달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만 했던 것이라 나중에 가서 급하게 일을 처리한 게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더 부지런하고 상황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경험을 더 쌓고 싶다.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아까 잠깐 언급한 바 있는데 이번 BND가 두 번째라는 것이다. 작년에 했던 프로젝트가 이어서 올 수 있게 된 이유나 계기는 무엇일까. 어떤 형식적인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지속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알고 싶다. 평화 브루노와 평화포럼을 하는 도중에 “평화는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두고 가는 선물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평화도 이런 건 절대 아니다. 평화는 action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평화에 대해 공부하자고 했을 때 우리는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이런 물음에 바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를 이야기 하자고 했을 때 떠오르는 각자의 이미지들은 평화라기보다는 평온함, 편안함과 더 맞는 이미지들이었다. 평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 추상적이라서 토론할 때 모두 얘기도 안 나오고 너무 어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평화적이지 못한 상황들은 무엇인지 토론을 했다. 위안부, 전쟁, 남과 북, 워크9 등 평화를 놓고 얘기할 꺼리가 너무 많았다. 평화라는 단어가 그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 있는 단어인지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단어인지의 물음도 들었다. 이것은 시각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난 평화라는 단어 자체를 추구하고 싶다. 하지만 요즘은 폭력적인 것을 주위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쟁의 산물인 어린이들의 총싸움놀이, 남녀노소 다 하는 컴퓨터 전쟁게임, 그리고 날이 갈수록 ‘ㅆ’의 발음은 강해지고 이 같은 욕은 심지어 인사 대신으로도 쓰인다. 평화는 움직임을 갖는 것이다.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내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내 주위에서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평화는 하나만 있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반드시 관계 지을 것이 필요하다. 관계 속에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이해, 돌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선 위치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위치에 있으면 상대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있으니 상대를 더 수월히 알 수 있고 일방적인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서로 거리낌을 없앨 수 있다. 같은 위치에 서보려는 것, 평화를 위한 첫 스텝이라고 생각한다. 어깨동무라는 NGO단체의 이마까라상은 ‘평화에 대한 이해’를 정말 중요시 생각하고 있었다. 남을 설득하려하지 말고 경청을 하고 속도 인식, 개념의 차이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평화 공부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것 역시 같은 위치에 서면 알 수 있는 것이다. 평화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 일단은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 띄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버리니 평화적인 것, 평화적이지 못한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행동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감수성은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키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평화라는 화두를 걸고 일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공부하고 있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와 관계되어있는 사람들이든 무엇이든 같은 위치에 서려고 노력하고 싶다. 쿠로코 일본의 장애인행위예술을 하는 타이헨이라는 극단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와 추함의 패러다임을 신체장애인의 예술을 통해서 바꾸려고 하고 싶으신 것 같다. 콘트롤되지 않는 몸의 떨림, 예상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말이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누가 이런 것을 상상이나 할까. 용기 있는 극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이헨의 한국 엑스트라 배우의 쿠로코가 되었다. 내가 하는 쿠로코의 일은 쉽게 말하자면 장애인 보조이다. 하지만 이 장애인은 ‘배우’다. 배우와 쿠로코의 관계에서는 소통이 정말 중요한데 쿠로코를 할 때는 상대를 존중하는 모드로 철저히 바뀌어야 한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실 때에도 동의를 구해야 하고 음식을 먹여드리거나 연습 중 이동시켜드릴 때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이런 ‘관계’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부 같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적용해야 하는 관계법이다. 상대에게 경청하는 것,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는 것 등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여태 잘 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너무나 일상 적이라고 생각하던 것에 집중을 하면서 실행하다 보니까 말이다. 전문 극단과 함께하다보니 여태 살면서 이정도로 professional해져야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연출가 김만리(타이헨 대표) 선생님의 앞을 지나가서도 안 되고 연습 중에는 엉덩이 붙이고 앉지도 못한다. 몸은 힘들지만 그만큼 배울 수 있는 게 많았다. 최근에 배운 것은 쿠로코의 몰랐던 역할들인데 무대설치, 생활의 면에서도 쿠로코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담당자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쿠로코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포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진짜 무대처럼 막을 설치하고 연습한 적이 있었는데 막을 올리고 내리고, 막 뒤에서 배우들을 내보내고 들여보내고 하는 것들조차 정해진 방법들이 있었다. 어렵지만 잘 할 수 있다. 무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의 체력, 배우들의 체력도 봐야 하는 게 쿠로코다. 배우들은 누구한테든지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체력을 다 소진하면 안 된다. 배우들의 체력의 반은 쿠로코가 짊어져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중요한 일이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학, 습 / 학습 학습이란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히옥스의 ‘습’은 언제할거냐는 물음에서였다. 배우긴 했는데 익히는 것은 언제하나. 학보다 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배울 때는 그 시간 집중하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학습이 한 단어이니 만큼 습이 이어서 와야 하는데 난 아직 습과는 거리가 있다. 익힌다는 것은 반복하며 더 경험을 쌓고 결국엔 발전된 학을 할 수 있으며 내 방식으로, 나의 언어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습은 고의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작업장학교 특성상 대부분 습해야 할 것은 개인의 몫에 달려있으며 누군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선 글쓰기도 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겪고 나서 그에 대한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완성된 ‘학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맺으며 하자에 3년씩이나 있었고 이제는 다음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겐 아직도 다음단계라는 것은 발견하지 못한 신대륙이다.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작업장학교는 내용은 비슷하겠지만 해보지 못했던 형태의 것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정적으로 해야 하고 모두가 분발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분발할 수 있을까. 혹시나 내가 녹초가 돼본다면 다음단계로 넘어가도 될 것 같다. 나를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녹초가 된다는 것은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녹초가 돼보면 나의 역량을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못 하는 일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작업자로서 꼭 알아야 할 것이 자신의 역량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그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단계로 발을 디뎠다가 나 뿐 아니라 단계 자체가 무너져 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나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2010.12.21 11:07:00
제목: 지난 3월부터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하자작업장학교 시즌2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시즌2 학교를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받았고 작업장학교에서 학습을 지속하고 싶어서, 제일 중요한 이유로는 내가 만든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학교만들기팀에 뛰어들었다. 지금 만들어진 학교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닐 만 하다고 생각한다. 논스톱 죽돌(시즌1부터 지금도 있는 사람)로서는 9월 달에 들어온 죽돌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어디서 무엇을 할지 발판을 만들어준 것 같다. 논스톱멤버들은 일본의 장애인극단 타이헨과 극 하나를 만들려고 하고 있는데 9월이 지나고 신입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현재 ‘생태’, ‘평화’라는 키워드를 가져가고 있는 것도 논스톱 멤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들여다보게 하려고 한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지금 같이 공부하고 있는 것들을 신입생들에게 쥐어줬다. 9월 달에 들어온 사람들은 왜 논스톱 멤버가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생각해봐줬으면 한다. 논스톱으로서의 내 평가를 하자면 내가 누군지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너희를 보여 달라고 했다는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못한 것이 있다. 이것은 항상 내 평가를 할 때면 점수를 깎아 먹을 것 같다. 또 기획이나 작사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해 본 반면에 원래 하던 역할을 웬만큼 하지 못했다. 악기 연습이나 가르쳐주는 역할에서 말이다. 안타깝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대부분 성취하기 힘든 종목의 공부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쿠로코로서의 역할은 성취를 해도 3월이 돼서야 가능하고 bnd 캠페인도 일단은 무사히 끝났지만 매년 열리는 행사니 다음 행사 준비를 해야 하기도 하고 생태공부를 하며 할 수 있는 운동들이 bnd만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광범위 하다. 생태나 평화문제는 너무나 어렵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아직 우리 손이 뻗치지 않는 곳이 너무 많다. 공부에는 성취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성취감이 부족하니 공부하기가 힘든 것 같은 문제점이 있다. 시즌1에서는 “동족끼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래’가 되자”였다가 시즌2가 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벌새’나 ‘대작전을 펼치는’너구리가 되자”는 것이 공식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지만 시즌2인 지금 고래의 부족이야기도 가져가고 있고 시즌1에서도 벌새나 너구리같은 경향이 없던 것이 아니다. 시즌2가 되며 바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시즌1에서는 학교를 ‘탈’하고 어쩌면 외부의 어른들로부터의 방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 시즌2는 외부의 어른들뿐만 아니라 세계를 보려는 사람들,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학교를 만드는 당시엔 시즌1과 2사이에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지 못했고 막연히, 어쨌든 학교를 만들 것이고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든다”는 문장에만 꽂혀있었다. 지금에서야 이해는 했지만 10 to 10하기 쉽지 않다. 학교생활을 하다가 보면 하고 싶은 것은 언제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고 일, 놀이, 학습이 같이 이루어진다는 곳에서 놀이는 대체 언제 하느냐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나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내가 살면서 대충 하지 않았던 게 하나 빼곤 없었던 것 같다. 음악으로 먹고 살 거라는 생각이 있는데도 음악에 별로 비중을 두지 않고 비중을 두지도 못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끔 내가 학교에 있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더 할 수 있을 텐데 더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녹초’가 돼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항상 피곤하다. 작업장학교에 다니려면 ‘피곤’은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난 웬만하면 피곤한 건 정말 싫어했지만 학교에 있는 게 웬만한 것도 아니고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졌다. 작업장학교에선 피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작업장학교에서는 공부, 일을 정말 빽빽하게 열심히 하고 피곤이라는 것은 하려고 하는 게 무엇이든지간에 제대로 하려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는 배고파도 된다는 말이 작업장학교에선 ‘하고 싶은 것’의 자리에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이 들어간다. 하고 싶은 것은 언제 하나 생각하던 중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작업장학교에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 일치되는 점이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찾아내고 싶고 만족스러운 일치점이 나왔으면 좋겠다. 생태주의적 揌인 나는 생태주의자다 라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생각하는 생태주의자가 뭔지 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어쩌다 환경이 아닌 ‘생태’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을까. “내 생각엔 환경이라는 말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여 인간을 ‘둘러싼’ 환경으로서의 자연을 설명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생태”는 인간 또한 자연계의 일부로서 모든 생명체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난 학기 에세이에 썼다. 환경도 생태계의 한 부분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생태주의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Buy Nothing Day’라는 캠페인까지 벌여봤기 때문이다. BND캠페인을 벌였다는 것 자체도 생태주의자 데뷔라는 큰 의미가 될 수 있지만 캠페인을 통해서 나의 이름의 ‘揌’자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이 캠페인은 캐나다의 한 광고인이 만든 날인데 자신이 만든 광고로 인해 너무나 많은 소비가 있었다는 문제점을 알고서 만든 날이다. 불공정거래, 공정무역, 노동착취 등을 통틀어서 이날 하루만 소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작년에 아주 조그맣게 캠페인을 벌인 게 있는데 너무 급하게 해서 퀄리티도 낮았던 데다가 홍보도 잘 안 하고 그저 학교 안에서 ‘이런 캠페인이 있다’라는 것 정도만 알리는 식으로 했었다. 하지만 이번 BND에는 학교 모두가 준비하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행진을 하며 누구라도 행렬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처음 BND기획서를 쓸 때의 키워드는 ‘생체에너지의 소비’였다. 물질적인 소비만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 속에 반하여 몸에서 음식을 섭취하면 생겨나는 인간적인 생체에너지를 대량 소비하자는 제안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도 거치고 나니 홍대에서 하자까지 행진을 하고 악기를 치며 생체에너지를 소비하고 소리를 치거나 선언문 읽기, 리플렛을 나눠주며 ‘알리기’와 ‘직접행동’을 병행할 수 있었다. 캠페인을 벌이기 전 건강한 소비는 무엇인가, 직접 손으로 사용할 것을 만들어서 물건을 오래, 소중하게 쓰게 하자 하는 질문들이나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번 캠페인은 생태주의자로서, 시인으로서 움직이게 된 것이라 준비하는 기간이 재밌었다. 정말 무엇인가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이 캠페인을 9월 달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만 했던 것이라 나중에 가서 급하게 일을 처리한 게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더 부지런하고 상황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경험을 더 쌓고 싶다. 무엇 때문에 생태계를 지키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가이아 이론을 댈 수 있다. 지구는 단순히 기체에 둘러싸인 암석덩이로 생명체를 지탱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이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지키듯 지구를 사수하려는 것이다. *가이아 이론: 가이아(Gaia)란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지의 여신을 부른 이름으로서, 지구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이것에 착안해서 러브록은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신성하고 지성적인 즉, 능동적이고 살아 있는 지구를 가리키는 존재로 가이아를 사용했다.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아까 잠깐 언급한 바 있는데 이번 BND가 두 번째라는 것이다. 작년에 했던 프로젝트가 이어서 올 수 있게 된 이유나 계기는 형식적인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지속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생각해봤다. 누군가에게 감동울 주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이 이 프로젝트를 또 하기를 원하는 것과 내 의지가 지속성에 힘을 더해주는 것 같다. 평화 브루노와 평화포럼을 하는 도중에 “평화는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두고 가는 선물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평화도 이런 건 절대 아니다. 평화는 action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평화에 대해 공부하자고 했을 때 우리는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이런 물음에 바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를 이야기 하자고 했을 때 떠오르는 각자의 이미지들은 평화라기보다는 평온함, 편안함과 더 맞는 이미지들이었다. 평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 추상적이라서 평화적이지 못한 상황들은 무엇인지 토론을 해봤는데 위안부, 전쟁, 군부독재, 민주주의 등 평화를 놓고 얘기할 꺼리가 너무 많았다. 평화라는 단어가 그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 있는 단어인지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단어인지의 물음도 들었다. 이것은 시각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난 평화라는 단어 자체를 추구하고 싶다. 하지만 요즘은 폭력적인 것을 주위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쟁의 산물인 어린이들의 총싸움놀이, 남녀노소 다 하는 컴퓨터 전쟁게임, 그리고 날이 갈수록 ‘ㅆ’의 발음은 강해지고 이 같은 욕은 심지어 인사 대신으로도 쓰인다. 평화는 움직임을 갖는 것이다.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내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내 주위에서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평화는 하나만 있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반드시 관계 지을 것이 필요하다. 관계 속에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이해, 돌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선 위치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위치에 있으면 상대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있으니 상대를 더 수월히 알 수 있고 일방적인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서로 거리낌을 없앨 수 있다. 같은 위치에 서보려는 것, 평화를 위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어깨동무라는 NGO단체의 이마까라상은 ‘평화에 대한 이해’를 정말 중요시 생각하고 있었다. 남을 설득하려하지 말고 경청을 하고 속도 인식, 개념의 차이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평화 공부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것 역시 같은 위치에 서면 알 수 있는 것이다. 평화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 일단은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 띄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버리니 평화를 위한, 깨뜨리고 갈등을 조장할 빌미가 되는 것들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동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감수성은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키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평화라는 화두를 걸고 일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공부하고 있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와 관계되어있는 사람들이든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같은 위치에 서려고 노력하고 싶다. 쿠로코 일본의 장애인행위예술을 하는 타이헨이라는 극단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와 추함의 패러다임을 신체장애인의 예술을 통해서 바꾸려고 하고 싶으신 것 같다. 콘트롤되지 않는 몸의 떨림, 예상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말이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누가 이런 것을 상상이나 할까. 용기 있는 극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이헨의 한국 엑스트라 배우의 쿠로코가 되었다. 내가 하는 쿠로코의 일은 쉽게 말하자면 장애인 보조이다. 하지만 이 장애인은 ‘배우’다. 배우와 쿠로코의 관계에서는 소통이 정말 중요한데 쿠로코를 할 때는 상대를 존중하는 모드로 철저히 바뀌어야 한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실 때에도 동의를 구해야 하고 음식을 먹여드리거나 연습 중 이동시켜드릴 때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이런 ‘관계’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부 같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적용해야 하는 관계법이다. 상대에게 경청하는 것,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는 것 등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여태 잘 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너무나 일상 적이라고 생각하던 것에 집중을 하면서 실행하다 보니까 말이다. 배우와 영어로 대화한다고 했을 때 "Let"이라는 단어가 항상 사용될 것 같다. 전문 극단과 함께하다보니 여태 살면서 이 정도로 professional해져야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연출가 김만리(타이헨 대표) 선생님의 앞을 지나가서도 안 되고 연습 중에는 엉덩이 붙이고 앉지도 못한다. 몸은 힘들지만 그만큼 배울 수 있는 게 많았다. 최근에 배운 것은 쿠로코의 몰랐던 역할들인데 무대설치, 생활의 면에서도 쿠로코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담당자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쿠로코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포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진짜 무대처럼 막을 설치하고 연습한 적이 있었는데 막을 올리고 내리고, 막 뒤에서 배우들을 내보내고 들여보내고 하는 것들조차 정해진 방법들이 있었다. 어렵지만 잘 할 수 있다. 무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의 체력, 배우들의 체력도 봐야 하는 게 쿠로코다. 배우들은 누구한테든지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체력을 다 소진하면 안 된다. 배우들의 체력의 반은 쿠로코가 짊어져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중요한 일이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학, 습 / 학습 학습이란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히옥스의 ‘습’은 언제 할 것이냐는 물음에서였다. 배우긴 했는데 익히는 것은 언제하나. 학보다 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배울 때는 그 시간 집중하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학습이 한 단어이니 만큼 습이 이어서 와야 하는데 난 아직 습과는 거리가 있다. 익힌다는 것은 반복하며 더 경험을 쌓고 결국엔 발전된 학을 할 수 있으며 내 방식으로, 나의 언어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습은 고의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작업장학교 특성상 대부분 습해야 할 것은 개인의 몫에 달려있으며 누군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선 글쓰기도 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겪고 나서 그에 대한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완성된 ‘학습’을 하고 싶다. 나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 있다고 들었다. 나는 컴퓨터도 잘 다루고 노래도 잘 하고 키도 크고 타국의 언어도 잘 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어서 부정을 하기보다는 나를 이렇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학습을 통해서. 맺으며 움직이는 것은 3년 동안 했다. 이제는 움직이게 하고 싶다. 기획을 하고 싶다. 지금 가지고 있는 책임감과는 다른 종류의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이 생각하고 많이 알아야 한다. 더 분발해야 한다. 혹시나 내가 녹초가 돼 본다면 나는 기획해도 된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녹초가 된다는 것은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녹초가 돼 보면 나의 역량을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못 하는 일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작업자로서 꼭 알아야 할 것이 자신의 역량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노력이야 여태 해왔지만 어느 선 이상으로는 힘들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조금 더 나와의 시간을 보내고 관리를 잘 하는데도 녹초가 돼 보고 싶다. 그리고 쌓고 싶던 경험들을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기획을 하고 싶다. let은 다음 에세이에 쓰기로 예고하며 아주 짧게 넣었고.
2010.12.22 05:55:40
let이 뭔지 잘 모르겠어서, 예고로도 부족한 듯해. 좀더 설명해주면 좋겠고,
가이아이론은 맥락적으로 자연스럽지가 않네. 다르게 쓰거나 빼거나? 타이헨극단이 마주하고 서 있는 것이 '외모지상주의사회'는 아니고, 타이헨극단이 부딪치는 상식(/대중)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네가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소제목들은 문장으로 바꿔봐도 좋을 것 같아. 지금은 좀 나열적인데, 소제목들을 문장들로 바꿔놓고, 그 문장들 사이의 논리적 고려를 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좀 빠진 내용이 보일 것도 같은데... 그건 그렇고 '움직일' "시"는 지금의 네게 아주 잘 어울리는 단어인 것 같다. 그 "시"를 가지고 제목을 만들어볼 수 있을지?
2010.12.22 07:17:47
움직이다. 다음 에세이는 움직이게 하다. 어때?
-------------------------------------------------------------- 움직이다 지난 3월부터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하자작업장학교 시즌2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시즌2 학교를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받았고 작업장학교에서 학습을 지속하고 싶어서, 제일 중요한 이유로는 내가 만든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학교만들기팀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지금 만들어진 학교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름 다닐 만 하다고 생각한다. 시즌1에서는 “동족끼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래’가 되자”였다가 시즌2가 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벌새’나 ‘대작전을 펼치는’너구리가 되자”는 것이 공식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지만 시즌2인 지금 고래의 부족이야기도 가져가고 있고 시즌1에서도 벌새나 너구리같은 경향이 없던 것은 아니다. 시즌2가 되며 바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시즌1에서는 학교를 ‘탈’하고 어쩌면 외부의 어른들로부터의 방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 시즌2는 외부의 어른들뿐만 아니라 세계를 보려는 사람들,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학교를 만드는 당시엔 시즌1과 2사이에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지 못했고 막연히, 어쨌든 학교를 만들 것이고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든다”는 문장에만 꽂혀있었다. 지금에서야 이해는 했지만 역시 10 to 10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학교생활을 하다가 보면 하고 싶은 것은 언제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고 일, 놀이, 학습이 같이 이루어진다는 곳에서 놀이는 대체 언제 하느냐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나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내가 살면서 대충 하지 않았던 게 하나 빼곤 없었던 것 같다. 음악으로 먹고 살 거라는 생각이 있는데도 음악에 별로 비중을 두지 않고 비중을 두지도 못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끔 내가 학교에 있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더 할 수 있을 텐데 더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항상 피곤하다. 작업장학교에 다니려면 ‘피곤’은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난 웬만하면 피곤한 건 정말 싫어했지만 학교에 있는 게 웬만한 것도 아니고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졌다. 작업장학교에선 피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작업장학교에서는 공부, 일을 정말 빽빽하게 열심히 하고 피곤이라는 것은 하려고 하는 게 무엇이든지간에 제대로 하려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는 배고파도 된다는 말이 작업장학교에선 ‘하고 싶은 것’의 자리에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이 들어간다. 하고 싶은 것은 언제 하나 생각하던 중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작업장학교에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 일치되는 점이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찾아내고 싶고 만족스러운 교착점이 나왔으면 좋겠다. 논스톱 죽돌로서 작업장학교 시즌2에 다니고 있는 나를 평가하다 논스톱 죽돌(시즌1부터 지금도 있는 사람)로서는 9월 달에 들어온 죽돌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어디서 무엇을 할지 발판을 만들어준 것 같다. 논스톱멤버들은 일본의 장애인극단 타이헨과 극 하나를 만들려고 하고 있는데 9월이 지나고 신입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현재 ‘생태’, ‘평화’라는 키워드를 가져가고 있는 것도 논스톱 멤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들여다보게 하려고 한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지금 같이 공부하고 있는 것들을 신입생들에게 쥐어줬다. 9월 달에 들어온 사람들은 왜 논스톱 멤버가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생각해봐줬으면 한다. 내가 누군지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신입생들에게 너희를 보여 달라고 했다는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작업장학교에서는 분위기는 그러기 힘들지만 아무튼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자에는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이 있는데 자기가 이 금지되어 있는 것에 대해 뒷받침되는 의견이나 생각이 있으면 얼마든지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못한 것이 있다. 이것은 항상 내 평가를 할 때면 점수를 깎아 먹을 것 같다. 또 기획이나 작사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해 본 반면에 원래 하던 역할을 웬만큼 하지 못했다. 악기 연습이나 가르쳐주는 역할에서 말이다. 안타깝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대부분 성취하기 힘든 종목의 공부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쿠로코로서의 역할은 성취를 해도 3월이 돼서야 가능하고 BND 캠페인도 일단은 무사히 끝났지만 매년 열리는 행사니 다음 행사 준비를 해야 하기도 하고 생태공부를 하며 할 수 있는 운동들이 BND만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광범위 하다. 생태나 평화문제는 너무나 어렵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아직 우리 손이 뻗치지 않는 곳이 너무 많다. 공부에는 성취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성취감이 부족하니 공부하기가 힘든 것 같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움직이는, 움직임을 만드는 움직일 揌인 나는 생태주의자다 라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생각하는 생태주의자가 뭔지 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어쩌다 환경이 아닌 ‘생태’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을까. “내 생각엔 환경이라는 말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여 인간을 ‘둘러싼’ 환경으로서의 자연을 설명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생태”는 인간 또한 자연계의 일부로서 모든 생명체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난 학기 에세이에 썼다. 환경도 생태의 한 부분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생태주의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Buy Nothing Day’라는 캠페인까지 벌여봤기 때문이다. BND캠페인을 벌였다는 것 자체도 생태주의자 데뷔라는 큰 의미가 될 수 있지만 캠페인을 통해서 나의 이름의 ‘揌’자가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이 캠페인은 캐나다의 한 광고인이 만든 날인데 자신이 만든 광고로 인해 너무나 많은 소비가 있었다는 문제점을 알고서 만든 날이다. 불공정거래, 공정무역, 노동착취 등을 통틀어서 이날 하루만 소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작년에 아주 조그맣게 캠페인을 벌인 게 있는데 너무 급하게 해서 퀄리티도 낮았던 데다가 홍보도 잘 안 하고 그저 학교 안에서 ‘이런 캠페인이 있다’라는 것 정도만 알리는 식으로 했었다. 하지만 이번 BND에는 학교 모두가 준비하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행진을 하며 누구라도 행렬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처음 BND기획서를 쓸 때의 키워드는 ‘생체에너지의 소비’였다. 물질적인 소비만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 속에 반하여 몸에서 음식을 섭취하면 생겨나는 인간적인 생체에너지를 대량 소비하자는 제안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도 거치고 나니 홍대에서 하자까지 행진을 하고 악기를 치며 생체에너지를 소비하고 소리를 치거나 선언문 읽기, 리플렛을 나눠주며 ‘알리기’와 ‘직접행동’을 병행할 수 있었다. 캠페인을 벌이기 전 건강한 소비는 무엇인가, 직접 손으로 사용할 것을 만들어서 물건을 오래, 소중하게 쓰게 하자 하는 질문들이나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번 캠페인은 생태주의자로서, 시인으로서 움직이게 된 것이라 준비하는 기간이 재밌었다. 정말 무엇인가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이 캠페인을 9월 달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만 했던 것이라 나중에 가서 급하게 일을 처리한 게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더 부지런하고 상황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경험을 더 쌓고 싶다. 약간 늦은 질문이지만 무엇 때문에 나는 생태계를 수호하려 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지구를 ‘그냥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사키 선생님은 인간은 지구의 자식이라고 하셨다. 인간은 공기, 바다가 원천인 물을 마시고 땅에서 자란 식물, 그 식물들을 먹은 생물들을 먹으며 이 영양분들이 결국은 뼈, 피와 살이 된다고 하셨다. 부정할 수 없는 논리다. 나도 생태계에 속해 있으며 항상 보호받고 돌보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태계를 지키는 이유는 이런 논리다 라고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있다. 가이아이론. 지구는 단순히 기체에 둘러싸인 암석덩이로 생명체를 지탱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이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지키듯 지구를 사수하려는 것이다. *가이아 이론: 가이아(Gaia)란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지의 여신을 부른 이름으로서, 지구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이것에 착안해서 러브록은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신성하고 지성적인 즉, 능동적이고 살아 있는 지구를 가리키는 존재로 가이아를 사용했다. 평화를 쫓다 브루노와 평화포럼을 하는 도중에 “평화는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두고 가는 선물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 평화는 action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너무나 추상적으로 평화에 접근했던 우리는 평화라는 단어가 그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 있는 단어인지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단어인지의 물음도 들었다. 이것은 시각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난 평화라는 단어 자체를 추구하고 싶다. 하지만 요즘은 폭력적인 것을 주위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쟁의 산물인 어린이들의 총싸움놀이, 남녀노소 다 하는 컴퓨터 전쟁게임, 그리고 날이 갈수록 ‘ㅆ’의 발음은 강해지고 이 같은 욕은 심지어 인사 대신으로도 쓰인다. 평화는 움직임을 갖는 것이다.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내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내 주위에서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평화는 하나만 있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반드시 관계 지을 것이 필요하다. 관계 속에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이해, 돌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선 위치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위치에 있으면 상대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있으니 상대를 더 수월히 알 수 있고 일방적인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서로 거리낌을 없앨 수 있다. 같은 위치에 서보려는 것, 평화를 위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어깨동무’의 이마까라상은 ‘평화에 대한 이해’를 정말 중요시 생각하고 있었다. 남을 설득하려하지 말고 경청을 하자. 속도 인식, 개념의 차이를 알려고 노력하자는 것들은 평화 공부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것 역시 같은 위치에 서보면 자연스레 발견되는 문제점일 것 같다. 평화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 일단은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 띄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버리니 평화를 위한, 깨뜨리고 갈등을 조장할 빌미가 되는 것들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동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감수성은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키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평화라는 화두를 걸고 일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공부하고 있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와 관계되어있는 사람들이든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같은 위치에 서려고 노력하고 싶다. 쿠로코는 쿠로코다. 일본의 장애인행위예술을 하는 타이헨이라는 극단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와 추함의 패러다임을 신체장애인의 예술을 통해서 바꾸려고 하고 싶으신 것 같다. 콘트롤되지 않는 몸의 떨림, 예상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말이다. 타이헨 극단이 부딪히는 상식의 세계는 무엇일까. 어째서 저런 예술관이 나온 것일까. 신체 장애인들의 연기로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라는 질문이 있는데 아직은 질문뿐이다. 우리는 타이헨의 한국 엑스트라 배우의 쿠로코가 되었다. 내가 하는 쿠로코의 일은 쉽게 말하자면 보조해야 할 것이 방대한 장애인 보조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지만 쿠로코는 쿠로코다. 달리 뭐라 칭할 말이 없다. 우리가 보조해야 할 장애인은 ‘배우’다. 배우와 쿠로코의 관계에서는 소통이 정말 중요한데 쿠로코를 할 때는 상대를 존중하는 모드로 철저히 바뀌어야 한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실 때에도 동의를 구해야 하고 음식을 먹여드리거나 연습 중 이동시켜드릴 때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이런 ‘관계’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부 같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적용해야 하는 관계법이다. 너무나 일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집중을 하면서 실행하다 보니까 상대에게 경청하는 것,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는 것 등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전문 극단과 함께하다보니 여태 살면서 이 정도로 professional해져야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연출가 김만리(타이헨 대표) 선생님의 앞을 지나가서도 안 되고 연습 중에는 엉덩이 붙이고 앉지도 못한다. 몸은 힘들지만 그만큼 배울 수 있는 게 많았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은 쿠로코의 몰랐던 역할들인데 무대설치, 생활의 면에서도 쿠로코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담당자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쿠로코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포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진짜 무대처럼 막을 설치하고 연습한 적이 있었는데 막을 올리고 내리고, 막 뒤에서 배우들을 내보내고 들여보내고 하는 것들조차 정해진 방법들이 있었다. 어렵지만 잘 할 수 있다 라고 하고 싶지만 어려운 게 또 있다. 무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의 체력, 배우들의 체력도 봐야 하는 게 쿠로코다. 배우들은 누구한테든지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체력을 다 소진하면 안 된다. 배우들의 체력의 반은 쿠로코가 짊어져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중요한 일이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학, 습을 했던 나, 학습을 하고 싶은 나 학습이란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히옥스의 ‘습’은 언제 할 것이냐는 물음에서였다. 배우긴 했는데 익히는 것은 언제하나. 학보다 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배울 때는 그 시간 집중하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학습이 한 단어이니 만큼 습이 이어서 와야 하는데 난 아직 습과는 거리가 있다. 익힌다는 것은 반복하며 더 경험을 쌓고 결국엔 발전된 학을 할 수 있으며 내 방식으로, 나의 언어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습은 고의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작업장학교 특성상 대부분 습해야 할 것은 개인의 몫에 달려있으며 누군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선 글쓰기도 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겪고 나서 그에 대한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완성된 ‘학습’을 하고 싶다. 나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 있다고 들었다. 나는 컴퓨터도 잘 다루고 노래도 잘 하고 키도 크고 타국의 언어도 잘 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어서 부정을 하기보다는 나를 이렇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학습을 통해서. 맺으며 움직이는 것은 3년 동안 했다. 이제는 움직이게 하고 싶다. 물론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 옆에는 항상 내가 있을 것이다. 기획을 하고 싶다. 지금 가지고 있는 책임감과는 다른 종류의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이 생각하고 많이 알아야 한다. 더 분발해야 한다. 혹시나 내가 녹초가 돼 본다면 나는 기획해도 된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녹초가 된다는 것은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녹초가 돼 보면 나의 역량을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못 하는 일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작업자로서 꼭 알아야 할 것이 자신의 역량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노력이야 여태 해왔지만 어느 선 이상으로는 힘들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조금 더 나와의 시간을 보내고 관리를 잘 하는데도 녹초가 돼 보고 싶다. 그리고 쌓고 싶던 경험들을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기획을 하고 싶다. 시도 쓰고 노래도 부르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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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지난 3월부터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하자작업장학교 시즌 2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시즌2 학교를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받았고 작업장학교에서 학습을 지속하고 싶어서, 제일 중요한 이유로는 내가 만든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학교만들기팀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만들어진 학교를 3개월 동안 다니고 평가하건데 ‘학교만들기’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이 부족했고 몇 가지 오해를 한 것도 같다. 시즌1에서부터 2까지 이어져오는 프로젝트도 많고 프로젝트의 내용이 달리 변화도 없다. 조금 더 빡세진 것 같다는 느낌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학교를 내가 만든 건지 모르겠다는 결론이다.
굳이 만들었다고 치고 무엇을 했는지 말해보자면 9월 달에 들어온 죽돌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어디서 무엇을 할지 발판을 만들어준 것 같다. 우리가 시즌1에서부터 학교만들기 시즌을 거쳐 이어온 프로젝트들로 말이다. 논스톱멤버(시즌1에서부터 같이 있던 멤버)들은 일본의 장애인극단 타이헨과 극 하나를 만들려고 했었는데 9월이 지나니까 신입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현재 ‘생태’라는 키워드를 가져가고 있는 것도 지난 시즌부터 가져온 것이고 논스톱 멤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서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지금 같이 공부하고 있는 것들을 신입생들에게 쥐어줬다. 학교의 철학을 이어왔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굳이 우리 손에 만들어진 학교나 시즌2로 불리지 않아도 될 이유다.
신입생들보다 먼저 있던 사람으로서의 내 평가를 하자면 내가 누군지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너희를 보여 달라고 했다는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못한 것이 있다. 이것은 항상 내 평가를 할 때면 점수를 깎어먹을 것 같다. 또 기획이나 작사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해 본 반면에 원래 하던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 악기 연습이나 가르쳐주는 역할에서 말이다. 안타깝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대부분 성취할 수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쿠로코로서의 역할은 성취를 해도 3월이 돼서야 가능하고 bnd 캠페인도 일단은 무사히 끝났지만 매년 열리는 행사니 다음 행사 준비를 해야 하기도 하고 생태공부를 하며 할 수 있는 운동들이 bnd만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광범위 하다. 생태나 평화문제는 너무나 어렵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아직 우리 손이 뻗치지 않는 곳이 너무 많다. 공부에는 성취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성취감이 없으니 공부하기가 힘든 것 같다. 그래서 학습 면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시즌1에서는 “동족끼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래’가 되자”였다가 시즌2가 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벌새’나 ‘대작전을 펼치는’너구리가 되자”는 것이 하나의 크게 바뀌게 된 점이지만 시즌2인 지금 고래의 부족이야기도 가져가고 있고 시즌1에서도 벌새나 너구리같은 경향이 없던 것이 아니다. 시즌2가 되며 바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시즌1에서는 학교를 ‘탈’하고 어쩌면 외부의 어른들로부터의 방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 시즌2는 외부의 어른들뿐만 아니라 세계를 보려는 사람들,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학교를 만드는 당시엔 시즌1과 2사이에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지 못했고 막연히, 어쨌든 학교를 만들 것이고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든다”는 문장에만 꽂혀있었다. 지금에서야 이해는 했지만 솔직히 따라가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학교생활을 하다가 보면 하고 싶은 일은 언제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고 일, 놀이, 학습이 같이 이루어진다는 곳에서 놀이는 대체 언제 하느냐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나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내가 살면서 대충 하지 않았던 게 하나 빼곤 없었던 것 같다. 음악으로 먹고 살 거라는 생각이 있는데도 음악에 별로 비중을 두지 않고 비중을 두지도 못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끔 내가 학교에 있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더 할 수 있을 텐데 더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녹초’가 돼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항상 피곤하다. 작업장학교에 다니려면 ‘피곤’은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난 웬만하면 피곤한 건 정말 싫어했지만 학교에 있는 게 웬만한 것도 아니고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졌다. 작업장학교에선 피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작업장학교에서는 공부, 일을 정말 빽빽하게 열심히 하고 피곤이라는 것은 하려고 하는 게 무엇이든지간에 제대로 하려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는 배고파도 된다는 말이 작업장학교에선 ‘하고 싶은 것’의 자리에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이 들어간다.
나는 공부를 할 때 항상 ‘어느 정도’까지만 하면 내 자신이 만족해버렸다. 그래서 더 하지 않으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10 to 10으로 학교에서 열두 시간을 지내고 집에 돌아와 애니메이션을 하루에 한두 편씩은 보면서 나머지 자기 전까지의 시간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두는 것이 ‘어느 정도’를 의미한다. 더 재밌는 것을 만들고 확실히 움직이기 위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시점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만 하면 안 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더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지만 앞으로 발을 디디면 이런 생각은 잊어야 하는데 이따금씩 떠오를 때마다 흔들려지기 때문에, 흔들리는 나로 인해 주변에 걱정이 되기 때문에 언젠간 과감히 포기하거나 확실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학습
학습이란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히옥스의 ‘습’은 언제할거냐는 물음에서였다. 배우긴 했는데 익히는 것은 언제하나. 학보다 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배울 때는 그 시간 집중하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학습이 한 단어이니 만큼 습이 이어서 와야 하는데 난 아직 습과는 거리가 있다. 익힌다는 것은 반복하며 더 경험을 쌓고 결국엔 발전된 학을 할 수 있으며 내 방식으로, 나의 언어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습은 고의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작업장학교 특성상 대부분 습해야 할 것은 개인의 몫에 달려있으며 누군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선 글쓰기도 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겪고 나서 그에 대한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완성된 ‘학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나는 생태주의자
나는 생태주의자다 라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생각하는 생태주의자가 뭔지 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어쩌다 환경이 아닌 ‘생태’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을까. “내 생각엔 환경이라는 말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여 인간을 ‘둘러싼’ 환경으로서의 자연을 설명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생태”는 인간 또한 자연계의 일부로서 모든 생명체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난 에세이에 썼다. 환경도 생태계의 한 부분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생태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Buy Nothing Day’라는 캠페인까지 벌여봤기 때문이다. 이 캠페인은 캐나다의 한 광고인이 만든 날인데 자신이 만든 광고로 인해 너무나 많은 소비가 있었다는 문제점을 알고서 만든 날이다. 불공정거래, 공정무역, 노동착취 등을 통틀어서 이날 하루만 소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작년에 아주 조그맣게 캠페인을 벌인 게 있는데 너무 급하게 해서 퀄리티도 낮았던 데다가 홍보도 잘 안 하고 학교 안에서 ‘이런 캠페인이 있다’라는 것 정도만 알리는 식으로 했었다. 하지만 이번 BND에는 학교 모두가 준비하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행진을 하며 누구라도 행렬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처음 BND기획서를 쓸 때의 키워드는 ‘생체에너지의 소비’였다. 물질적인 소비만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 속에 반하여 몸에서 음식을 섭취하면 생겨나는 인간적인 생체에너지를 대량 소비하려는 것이었다. 엄청나게 달리고 달려서 단순히 생체에너지를 소비하자는 게 나의 첫 제안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도 거치고 나니 홍대에서 하자까지 행진을 하며 생체에너지를 소비하고 행진 중에 악기를 치거나 리플렛을 나눠주며 ‘알리기’와 ‘직접행동’도 같이 할 수 있었다. 캠페인을 벌이기 전 건강한 소비는 무엇인가, 직접 손으로 사용할 것을 만들어서 물건을 오래, 소중하게 쓰게 하자 하는 질문들이나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번 캠페인은 생태주의자로서, 시인으로서 움직이게 된 것이라 준비하는 기간이 재밌었다. 정말 무엇인가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이 캠페인을 9월 달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만 했던 것이라 나중에 가서 급하게 일을 처리한 게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더 부지런하고 상황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경험을 더 쌓고 싶다.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아까 잠깐 언급한 바 있는데 이번 BND가 두 번째라는 것이다. 작년에 했던 프로젝트가 이어서 올 수 있게 된 이유나 계기는 무엇일까. 어떤 형식적인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지속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알고 싶다.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는 몰라도 나를 바꿀 순 있다.
브루노와 평화포럼을 하는 도중에 “평화는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두고 가는 선물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평화도 이런 건 절대 아니다. 평화는 action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평화에 대해 공부하자고 했을 때 우리는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이런 물음에 바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를 이야기 하자고 했을 때 떠오르는 각자의 이미지들은 평화라기보다는 평온함, 편안함과 더 맞는 이미지들이었다. 평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 추상적이라서 토론할 때 모두 얘기도 안 나오고 너무 어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평화적이지 못한 상황들은 무엇인지 토론을 했다. 위안부, 전쟁, 남과 북, 워크9 등 평화를 놓고 얘기할 꺼리가 너무 많았다. 평화라는 단어가 그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 있는 단어인지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단어인지의 물음도 들었다. 이것은 시각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난 평화라는 단어 자체를 추구하고 싶다. 하지만 요즘은 폭력적인 것을 주위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쟁의 산물인 어린이들의 총싸움놀이, 남녀노소 다 하는 컴퓨터 전쟁게임, 그리고 날이 갈수록 ‘ㅆ’의 발음은 강해지고 이 같은 욕은 심지어 인사 대신으로도 쓰인다.
아까 평화는 움직임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내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내 주위에서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평화는 하나만 있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반드시 관계 지을 것이 필요하다. 관계 속에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이해, 돌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선 위치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위치에 있으면 상대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있으니 상대를 더 수월히 알 수 있고 일방적인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서로 거리낌 없을 수 있다. 처음에는 같은 위치에 서보려는 것, 평화를 위한 첫 스텝이라고 생각한다.
어깨동무라는 NGO단체의 이마까라상은 ‘평화에 대한 이해’를 정말 중요시 생각하고 있었다. 남을 설득하려하지 말고 경청을 하고 속도 인식, 개념의 차이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평화 공부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것 역시 같은 위치에 서면 알 수 있는 것이다. 평화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 일단은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 띄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버리니 평화적인 것, 평화적이지 못한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행동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감수성은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키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평화라는 화두를 걸고 일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공부하고 있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와 관계되어있는 사람들이든 무엇이든 같은 위치에 서려고 노력하고 싶다.
쿠로코
일본의 장애인행위예술을 하는 타이헨이라는 극단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와 추함의 패러다임을 이 예술을 통해서 바꾸려고 하고 싶으신 것 같다. 콘트롤되지 않는 몸의 떨림이 아름답다고 하신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누가 이런 것을 상상했을까. 용기 있는 극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이헨의 한국 엑스트라 배우의 쿠로코가 되었다. 내가 하는 쿠로코의 일은 쉽게 말하자면 장애인 보조이다. 하지만 이 장애인은 ‘배우’다. 배우와 쿠로코의 관계에서는 소통이 정말 중요한데 쿠로코를 할 때는 상대를 존중하는 모드로 철저히 바뀌어야 한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실 때에도 동의를 구해야 하고 음식을 먹여드리거나 연습 중 이동시켜드릴 때도 항상 조심히야 한다. 이런 ‘관계’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부 같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적용해야 하는 관계법이다. 상대에게 경청하는 것,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는 것 등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여태 잘 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너무나 일상 적이라고 생각하던 것에 집중을 하면서 실행하다 보니까 말이다.
전문 극단과 함께하다보니 여태 살면서 이정도로 professional해져야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연출가 김만리(타이헨 대표) 선생님의 앞을 지나가서도 안 되고 연습 중에는 엉덩이 붙이고 앉지도 못한다. 몸은 힘들지만 그만큼 배울 수 있는 게 많았다.
최근에 배운 것은 쿠로코의 몰랐던 역할들인데 무대설치, 생활의 면에서도 쿠로코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담당자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쿠로코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포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진짜 무대처럼 막을 설치하고 연습한 적이 있었는데 막을 올리고 내리고, 막 뒤에서 배우들을 내보내고 들여보내고 하는 것들조차 전문적인 방법들이 있었다. 어렵지만 잘 할 수 있다.
무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의 체력, 배우들의 체력도 봐야 하는 게 쿠로코다. 배우들은 누구한테든지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체력을 다 소진하면 안 된다. 배우들의 체력의 반은 쿠로코가 짊어져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중요한 일이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맺으며
하자에 3년씩이나 있었고 이제는 다음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겐 아직도 다음단계라는 것은 발견하지 못한 신대륙이다.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작업장학교는 내용은 비슷하겠지만 해보지 못했던 형태의 것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정적으로 해야 하고 모두가 분발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분발할 수 있을까. 혹시나 내가 녹초가 돼본다면 다음단계로 넘어가도 될 것 같다. 나를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녹초가 된다는 것은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녹초가 돼보면 나의 역량을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못 하는 일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작업자로서 꼭 알아야 할 것이 자신의 역량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그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단계로 발을 디뎠다가 나 뿐 아니라 단계 자체가 무너져 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나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