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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1,063
<행동은 지역적으로, 호흡은 세계적으로> [글의 방향] -Living Together : 세계에 마음 붙이며 일과 공부를 결합시키기 *지금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는다. 위기의 시대가 이젠 눈 앞에 드러나고 있다. *범위 넓히며 가장 윤리적인 사실 탐색하기(평화와 나까무라) *상대의 마음과 처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 하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행한다면, 그것은 감히 하는 행동이다 …강자, 약자를 구분치 않고 만물을 위한 태도 …Buy Nothing Day -하자작업장학교는 독수리오형제고 너구리의 마을이다. 하지만 우리는 괴짜가 아니다. *'다음 단계'?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 늘 과거 죽돌들의 사건인지 사고인지 모를 일을 벌이는 것이 늘 부러웠다. *학교가 움직인다 -크리킨디의 학교 *달려가며 고통을 잊는(망각하는)체제로 가지 않기로 했다. 가는 여정엔 알고 가야할 고통과 슬픔도 같이 가는 것. …결과에서 오는 초라함.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라는 것이 뭘까. …'음악'이라는 것 하나에 종사하고 싶다는 생각은 더 이상 없다.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더 많은 수식어를 만들어내고 싶다. …기존의 체제를 알아야 바꿀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을 통한 공부와 지식공부에 기술까지 필요하다. ![]()
2010.12.09 09:39:36
심바이오시스 같은 단어를 읽을 때만 해도
어, 무브, 영어공부 열심히 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말이 너무 어려워진다. 어깨 힘을 좀 빼고... 조급하지 않게 생각하렴. 다시 목차 구성을 해보면 좋겠고. 그런데 "제"라는 게 무슨 뜻? 하나 더. 제목 정해주오!
2010.12.09 22:37:27
Symbiosis는 돈의동부터 평화워크샵까지(Living together) 가져왔던 단어입죠.
미안해요. 정말 의도하려는 내용이 어떤 단어가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먼저 쓰고 쉽게 풀어내고 하려는 작업에서 정체되어있는 내용으로 게시판에 올려서..; 물론 목차를 짜고 있는 '중'의 게시물이었습니다요. 학교 열기전에 [시즌2의 우리학교는'?]를 나누면서 동녘이가 축제를 얘기하며 '축'도 좋지만, '제'에 집중한다.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참조겸 써놓아 둔 것이예요. 수정했을 때에는 댓글로 달게요. Keep Monitoring P.S 제가 한글과컴퓨터에서 자주 워드를 하는데요 다 쓴 글을 복사해서 학교 게시판에 올리면 위 글과 같이 문장과 문장 간격이 띄엄띄엄.... 어떻게 할 수 없을까요? 혹시 아는 사람 있을까. (Mac OS가 아니어도, Window에서 해도 그렇다는..)
2010.12.17 02:29:35
<행동은 지역적으로, 호흡은 세계적으로> [1] 12.16 5:26 스스로가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보낸 시간을 되짚어보니 나는 하자작업장학교에 17살에 들어와 어느 덧 20대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을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이 이 학교에서 보냈다고 '선배님'의 위치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이 학교의 학생이라는 것은 내 또래들이고, 친구들이며 동료 작업자가 될 사람들이다. 그 중 나를 비롯한 학교를 여는데 함께한 몇 명은 Non-stop team 혹은 making school team라고 부르며 학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시즌2까지 이르렀는지를 기억하고 작업장학교의 여정에 선두로 선 사람일 뿐. 이번 하자작업장학교 시즌2에서는 누구도 우위를 가리지 않고 평등한 위치에서 함께 시작하기로 한 약속이 '같은 경험'을 하며 '공감 가능한 언어와 생각'을 만들도록 만든다. 이 말이 낯선 사람들은 '우리는 한국어와 영어를 사용할 줄 아는데 또 다른 말을 만들어낸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는 다분히 있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 말하는 개인의 언어란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말하는 스타일'과 연결지점이 있다. 그리고 분명히 다른 점은 말하는 스타일을 기반 하는 것은 스스로가 어떤 부분에 집중을 하고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 나는 어떤 말이나 어떤 것들을 이용하여 표현하는지에 있다. 이것이 내가 경험한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말하는 언어이고, 어떻게 말하는지는 그 다음의 순서이다. 지금에 와서 꺼낼 수 있는 말이지만, 그 공감 가능한 언어와 생각이라는 것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달라진다. 시대의 변화의 행렬에 따라오지 않는 것들은 진부하게 만들어 버리는 만큼 변화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21세기에는 급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가장 큰 고용실업 문제의 시대, 기후변화의 시대, 자연을 도시로 뒤집어 엎어버리려는 시대에 살아간다. 기후변화가 무엇이냐고 묻는, 혹은 묻지 않는 내 친척이나 가깝지만 먼 주변을 보면 정말 이건 위기 중 위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엉덩이에 불이 났는데 뜨거운 것을 느끼지 못 한다'는 어느 내 친구의 표현이 알 맞는 것일까? (송아지가 더 내 친구보다 더 잘 느낄 것이다.) 기후가 이상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어느 때가 가을인지 봄인지 그 경계는 느슨할 정도이며 여름에는 지나치게 덥고, 겨울에 지나치게 춥다. 그리고 '왜 이러지?'라고 의문을 품으며 버티거나 에어콘이나 히터로 일시적인 문제해결을 하며 한 시름 놓으면 이것이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음에 찾아오기를 기약한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두 가지 뉘앙스의 '어떻게 하면 좋지?'를 생각한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황스러움도 경험하고, 의식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시도해본다. 그 여정에는 안데스 산맥의 원주민들에게 내려오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 : 크리킨디’와 산업개발로부터 스스로의 마을을 지키고 떠들썩하게 대작전을 벌이며 즐겁거나 슬픈 일에도 서로를 북돋는 위로하는 축제를 벌일 수 있고 떠나간 이들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너구리도 있으며 많은 이상적 형태들이 이 학교를 지속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갭을 줄이기란 쉽지 않은 것이니 만큼 새해가 다가오기 전에 중간점검을 해보자. 지난 3개월간 어떤 학교에서 무엇을 해왔는지, 적어도 1년 이상 함께 할 동료들과 이 학교를 이해 가능하고 설명 가능한 학교로 만들 것인지. [학교 만들기] '자기주도적 학습'과 '프로젝트학습(learning by doing)을 학습 원리로 2001년 9월 10일에 시작한 하자작업장학교가 지난 2010년 3월 28일에 마지막 학생들의 수료식과 동시에 학교의 문을 닫았다.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하기 싫은 일도 할 거다’, ‘일 하면서 배운다.’ 등 당시의 슬로건은 그대로 지속하면서 경험과 재능이 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대안'이라는 다른 경험의 판에서 학습해온 사람들이 공공성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면 어떨까? 하는 발상이 오늘날 이 학교를 다시 개교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학교 만들기 Non-stop팀에는 대안학교 출신, 탈학교 출신, 홈 스쿨러 출신도 있다. 모두 일반적 제도로부터 사회로 유도되기를 거부하며 다른 방법으로 참여하고자 하여 작업장학교 시즌2의 문을 여는데 함께 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많은 것들을 실험해왔다. 개발에 의해 억울하게 위기에 빠진 홍대의 두리반에 스태프로 조력하기, 4대강 반대/문수스님 추모공연, 성년식을 맞이하여 20대가 된 하자의 주민들을 축하하기 등이 있다. '사회'라고 말해왔던 그 현장들은 정말로 어떠한지 경험하면서 내 주변과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 의식하려고 노력했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성년식이나 여성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추석이라든지 일상의 회복을 시도하고 사회적 참여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체감하려고 했던 시도는 이번 시즌2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1년전 '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이라는 강의에 참여하면서 그때도 우리 사회를 얘기했지만 당시엔 주워들은 것, 검색해서 찾은 지식들을 기반 하여 말을 했지만 분석과 관찰로만 '사회'를 말하는 것은 단호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나는 이제야 조금 입이 텃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학교를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과정 중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두어야 했던 멤버도 있고 각자의 이해범위에 미치지 않은 일들도 많아서 고생하고 스스로의 능력 부족을 실감하며 조급했던 적도 있다. 심신의 유지를 위해서 생활의 리듬도 가꾸어 가야했지만 해야 되는 일들이 일이 쉽지 않아 이것도 저것도 신경 쓰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 '이럴 때 일수록 크리킨디의 마음을 잃지 말자!' 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봐도 '크리킨디는 고작 그것밖에 못 했어'라고 되돌아오는 심각한 상황도 있다.
2010.12.18 10:04:54
<행동은 지역적으로, 호흡은 세계적으로> (2) 12.18 1:01 스스로가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보낸 시간을 되짚어보니 나는 하자작업장학교에 17살에 들어와 어느 덧 20대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을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이 이 학교에서 보냈다고 '선배님'의 위치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나를 비롯한 몇 명은 학교를 여는데 함께한 몇 명은 Non-stop team 혹은 making school team라고 부르며 학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시즌2까지 이르렀는지를 기억하고 작업장학교의 여정에 선두로 선 사람일 뿐. 이 학교의 학생이라는 것은 내 또래들이고, 친구들이며 동료 작업자가 될 사람들이다. 이번 하자작업장학교 시즌2에서는 누구도 우위를 가리지 않고 평등한 위치에서 함께 시작하기로 한 약속이 '같은 경험'을 하며 '공감 가능한 언어와 생각'을 만들도록 만든다. 이 말이 낯선 사람들은 '우리는 한국어와 영어를 사용할 줄 아는데 또 다른 말을 만들어낸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는 다분히 있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 말하는 개인의 언어란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말하는 스타일'과 연결지점이 있다. 그리고 분명히 다른 점은 말하는 스타일을 기반 하는 것은 스스로가 어떤 부분에 집중을 하고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 나는 어떤 말이나 어떤 것들을 이용하여 표현하는지에 있다. 이것이 내가 경험한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말하는 언어이고, 어떻게 말하는지는 그 다음의 순서이다. 지금에 와서 꺼낼 수 있는 말이지만, 그 공감 가능한 언어와 생각이라는 것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달라진다. 시대의 변화의 행렬에 따라오지 않는 것들은 진부하게 만들어 버리는 만큼 변화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21세기에는 급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가장 큰 고용실업 문제의 시대, 기후변화의 시대, 자연을 도시로 뒤집어 엎어버리려는 시대에 살아간다. 기후변화가 무엇이냐고 묻는, 혹은 묻지 않는 내 친척이나 가깝지만 먼 주변 친구들을 보면 정말 이건 위기 중 위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엉덩이에 불이 났는데 뜨거운 것을 느끼지 못 한다'는 어느 내 친구의 표현이 알 맞는 것일까? (송아지가 더 내 친구보다 사태를 더 잘 느낄 것이다.) 기후가 이상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어느 때가 가을인지 봄인지 그 경계는 느슨할 정도이며 여름에는 지나치게 덥고, 겨울에 지나치게 춥다. 그리고 '왜 이러지?'라고 의문을 품으며 버티거나 에어콘이나 히터로 일시적인 문제해결을 하며 한 시름 놓으면 이것이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음에 찾아오기를 기약한다. 이 시점에서 나는 두 가지 뉘앙스의 '어떻게 하면 좋지?'를 생각한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황스러움도 경험하고, 의식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시도해본다. 그 여정에는 안데스 산맥의 원주민들에게 내려오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 : 크리킨디’와 산업개발로부터 스스로의 마을을 지키고 떠들썩하게 대작전을 벌이며 즐겁거나 슬픈 일에도 서로를 북돋는 위로하는 축제를 벌일 수 있고 떠나간 이들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너구리도 있으며 많은 이상적 형태들이 이 학교를 지속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갭을 줄이기란 쉽지 않은 것이니 만큼 새해가 다가오기 전에 중간점검을 해보자. 지난 3개월간 어떤 학교에서 무엇을 해왔는지, 적어도 1년 이상 함께 할 동료들과 이 학교를 이해 가능하고 설명 가능한 학교로 만들 것인지. [학교 만들기] '자기주도적 학습'과 '프로젝트학습(learning by doing)을 학습 원리로 2001년 9월 10일에 시작한 하자작업장학교가 지난 2010년 3월 28일에 마지막 학생들의 수료식과 동시에 학교의 문을 닫았다.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하기 싫은 일도 할 거다’, ‘일 하면서 배운다.’ 등 당시의 슬로건은 그대로 지속하면서 경험과 재능이 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대안'이라는 다른 경험의 판에서 학습해온 사람들이 공공성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면 어떨까? 하는 발상이 오늘날 이 학교를 다시 개교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내가 학교 만들기 팀에 가담하기로 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대안 중학교를 다닐 나이부터 지금까지 일반학교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일반적인 제도에서 '탈'했지 학교라는 공간에서 '탈'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내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 경험들을 스스로 재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생각하면 이미 만들어진 곳은 없다. 나한테 적합한 공간은 내가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내가 이 학교 만들기 팀에 가담하기로 한 결심한 가장 큰 이유이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많은 것들을 실험해왔다. 개발에 의해 억울하게 위기에 빠진 홍대의 두리반에 스태프로 조력하기, 4대강 반대/문수스님 추모공연, 성년식을 맞이하여 20대가 된 하자의 주민들을 축하하기 등이 있다. '사회'라고 말해왔던 그 현장들은 정말로 어떠한지 경험하면서 내 주변과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 의식하려고 노력했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성년식이나 여성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추석이라든지 일상의 회복을 시도하고 사회적 참여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체감하려고 했던 시도는 이번 시즌2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1년전 '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이라는 강의에 참여하면서 그때도 우리 사회를 얘기했지만 당시엔 주워들은 것, 검색해서 찾은 지식들을 기반 하여 말을 했지만 분석과 관찰로만 '사회'를 말하는 것은 단호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나는 이제야 조금 입이 텃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학교를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과정 중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두어야 했던 멤버도 있고 각자의 이해범위에 미치지 않은 일들도 많아서 고생하고 스스로의 능력 부족을 실감하며 조급했던 적도 있다. 심신의 유지를 위해서 생활의 리듬도 가꾸어야 하지만 해야 하는 일들이 일이 쉽지 않아 이것도 저것도 신경 쓰기 어려운 상황도 많았다. 내 경우에는 '이럴 때 일수록 크리킨디의 마음을 잃지 말자!' 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봐도 '크리킨디는 고작 그것밖에 못 했어'라고 되돌아오는 심각한 상황도 적잖게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학교는 약 5개월간의 준비기간과 함께 새로운 화두를 가지고 학교를 열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 학교를 설명하기란 참 어렵다. 짧게 설명하기에도, 길게 설명하기에도 쉽지 않다. 그런데 어쩌다가 '독수리 오형제를 키우는 학교이다'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우연찮게 발굴한 표현이지만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이 시대에 선뜻 세상을 구하려는 영웅은 없다. 독수리 오형제사이에는 각자의 포지션이 있고 동료관계가 있으며 뜻을 모을 수 있는 의지와 사건을 타개하는 지혜가 있다. 그리고 연령대는 청소년이다.(..농담이다.) 아직도 함축적인 내용을 내포하는 단어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독수리 형제들에 가깝다. 개교한지 근 3개월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어떻게든 학교가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3개월의 과정중간에 튕겨져 나가는 학생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이 학교의 정체성은 우리가 마음먹은 만큼 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생각해본다. 아직 학교는 더 짜임새있게 만들어 한다. [크리킨디의 학교] 시즌2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만나는 사람들에게 크리킨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대다수는 감동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다는 것, 설령 그 부분이 협소하고 미미한 것이라도 과정을 거치는 것. 감동의 지점은 아마 '스스로의 능력을 재고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불이 난 숲은 내 숲임과 동시에 모두의 숲이며 불이 다른 곳까지 번져나가기 전에 막는 것, 이것이 자기근거와 동기를 부여하고 마음을 붙이게끔 만드는 것 같다. 이 과정에는 선뜻 누구라도 하기 어려운 일을 찾아 주도적인 참여에 마음을 쓰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목표는 좋다. 하지만 크리킨디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나에겐 쉽지 않았다. 한 가지 예로 들자면 지난여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작업장학교는 종로구의 쪽방촌에서 폭염이 노인건강에 끼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 전문연구팀을 도와 2주일동안 온도조사를 했다. 쪽방이란 겨우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정도의 작은 방을 의미한다. 또한 창문도 없고 공동부엌 공동화장실 공동샤워실을 써야 하는 그런 방들이고 좁은 골막을 따라 따닥따닥 옆으로 붙어있거나 위로 쌓여있는 그런 집들이 모인 장소가 바로 쪽방촌이다. 보통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면 집 밖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행동요령이지만 그곳은 되려 집 안이 더 뜨거울 정도로 쪽방촌 지역은 매우 뜨거웠다. 그래서 쪽방촌 같은 특정 지역에는 주의보가 발령될 때 어떤 다른 사항을 넣어야 한다든지, 어떤 복지가 더 필요한지 등 개선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일정 기간, 일정 시간대에 찾아가 온도를 측정하고 돈의동 사랑의 쉼터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여부를 확인한 60대[확인좀...] 이상 어르신들의 혈압과 체온 측정을 했다. 이 온도재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이른 아침이나 뜨거 낮이나 할 것 없이 술 취한 아저씨들을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그분들이 화내고 싸우는 소리를 항상 들을 수 있었고 때로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집 앞에서 하루 종일 난동을 부리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그런 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있어야 하는 어르신들의 상황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공황상태에도 빠지곤 했다. 어느 하루는 이 기간 동안 자주 마주치던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거의 만취상태인 아저씨와 또 대면하게 되었다. 돈의동 쪽방촌은 복잡한 골목길로 되어있어서 돌아가도 종종 마주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한 번은 시간이 없어 우회하지 않고 그대로 직진을 했는데, 결국 불편한 자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 프로젝트 팀이 돈의동에 자주 들락날락 거린다는 것은 그 대상이 아닌 다른 분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누구는 도와주고, 누구는 도와주지 않고'라고 말 하면 나로썬 당연히 '우리측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뭐라 말씀드릴 것이 없네요.'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찰의 지점은 여기였다. '너는 뭐냐?'고 윽박지르는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중이고, 특정 다수를 위한 것이 아닌 불특정 다수와 내 주변을 비롯한 세계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나는 무엇인가? 옆 사람도 못 구하는 처지에서 세계를 구하려고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의도를 그분께 설명해드리려니 소귀의 경 읽기에 가깝고 시간도 여의치 않아서 애써 상황정리하고 자리를 뜨려 했지만 자칫했다가는 폭력사태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나는 나에게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는 아저씨에 대한 혐오감과 한심함이 느껴져 화가 나 그 자리에서 그대로 노려보게 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이 점점 불거지면서 우리가 자리를 뜨는 것으로 일단락 마무리 되었지만, 나는 그 날의 리뷰 시간 때 차마 그때의 감정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지 못 했다. 왜냐하면 날마다 어르신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크리킨디의 마음을 갖고 행동하자는 마음가짐이 누군가를 함부로 미워해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계시민으로서 자라나기를 원하며 이해의 범위를 넓혀가려고 노력하는데 고작 옆 사람도 이해 못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마지막 날, 여느 때와 같이 반대편 골목으로 우회해서 들어가는데 다시 그 아저씨와 대면하게 되었다. 잔뜩 긴장하고 경계했다. 그런데 "나 같은 놈은 쓰레기니까 신경쓰지 말고 노인분들이나 잘 돌봐드려."라고 했다. 그대로 뒤돌아서는 그분을 보면서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다행이라서 마음이 편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미워했던 그 아저씨에게 미안해지고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쪽방촌을 드나들면서 우리는 "동정심"pity과 "공감"empathy를 혼동하지 말자. 그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쪽방촌의 안에서 이 두 단어가 도저히 구분이 안 되고 "인류애"를 가지려고 생각했는데 한 인간에 대한 증오심조차 해결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혼돈과 패닉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런 결과에서 오는 나 자신에 대한 초라해지는 마음은 내가 하는 일마다 '고작 이것밖에?'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이런 슬픔을 넘는, 고통을 넘는 문화와 일상을 갖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말은 술을 먹어 취하여 망각하고 싶은, 그런 고통의 회피의 의미가 아니다. 어떤 슬픔을 넘는다는 것은 해소할 줄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작업장학교가 가는 길에는 알고 가야할 고통과 슬픔도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이 신조가 '센 경험'을 하게끔 만들어 곤란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공익'이라는 일을 하는 한 불가피한 상황은 외면하지 않겠다. 이런 크리킨디 학교에서 어떤 수식어가 붙은 크리킨디가 되고 싶은지는 아직도 고민이지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음악에만 맹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부터 아버지가 '대학을 가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 있을 만큼 공부해라'라고 누누히 말 했다. 기술에 매몰하는 테크니션이 되지는 않지만 그만큼 노련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 정말 하고자 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싶다. [Living Together : 세계와 마음 붙이며 일과 공부를 결합시키기] *지금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는다. 위기의 시대가 이젠 눈 앞에 드러나고 있다. *범위 넓히며 가장 윤리적인 사실 탐색하기(평화와 나까무라) *상대의 마음과 처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 하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행한다면, 그것은 감히 하는 행동이다 …강자, 약자를 구분치 않고 만물을 위한 태도 …Buy Nothing Day 하지만 우리는 괴짜가 아니다. *'다음 단계'는 뭘까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 늘 과거 죽돌들의 사건인지 사고인지 모를 일을 벌이는 것이 늘 부러웠다. *학교가 움직인다 [평가] 1) 공연팀 + 세 팀 미확정) 프로젝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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