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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1,063
난 주위 눈치를 봤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연극을 하고 있었다. 결국 변명을 하며 나만 알 수 있는 말만 하며 자기연민에 빠졌고, 무기력해졌다. 내가 해야할 일을 해야함을 알다. 하자에 와서 배운 것이 있다면, 가장 먼저 말해야 할 것이 이것인 것 같다. 난 아무것도 시작하지도 않은채 거드름만 피우고 있었다. 하자에서는 설거지를 스스로 한다. 집에서 안하던 설거지를 하다보니 뭔가 느껴지는 게 있달까, 당연히 해야할 것이었는데...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거야. 그동안은 단순히 '나중에 뭐가 되야지' 하는 초급적인 생각밖에 못했다. 그야말로 달콤한 꿈이었다. 그러나 내 인생이다. 난 살아있고, 살아갈 거다.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거기에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친구들이 있어. 주위에 누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을 배려해 생각해 본적은 없는 것 같다. 적당히 예의만 갖추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기에. 그거로 좋은 건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연극일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렸을 적을 떠올리게 됐다. 그떈 아무 거리낌이 없었는데. 지금의 나는 예의를 알고, 그떄의 나는 진심을 알고. 결국 그 절충점을 찾아가는게 나를 알아가는 것이고, 또 거기에 대한 책임을 아는 것이 철이 드는 것이리라. 공연팀으로서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공연팀에 들어간 것은 내가 딱히 음악에 조예가 깊다거나 '음악 아니면 안돼'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자에 3팀이 있고, 그 중에서 그나마 공연팀에서 뭔가 할 수 있겠구나,싶어서 들어간 것이다. 공연팀은 모두 악기 하나씩 잡고 있다. 무브,쇼,동녘은 기타를 칠 줄 알고, 오피는 젬베와 기타 타악기에 소질이 있다. 우리 공연팀은 브라질리언 퍼커션이라고 브라질 악기(북)로 연주하는 팀이라고 한다. 난 수루두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왠지 큰게 마음에 들었다. 몇 번 안돼지만 같이 연습하는 시간도 가졌다. 물론 아직 잘 맞지는 않을지 모른다. 합주한다는 것. 각자 맡은 파트가 있고 그걸 제대로 연주하며 같이 맞추는 것. 공연한다는 건 그런 것같다. 나잠은 소리를 공기의 진동이라고 했다. 알고있던거였지만 다시 들으니 새롭게 다가왔다. 우리의 공연은 공기를 타고 관객의 귀로 들어간다. 우리는 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외국인이 옆에 앉는다. 영어마을에 가는 거겠지. 말을 걸어볼까? 아니, 싫어할 거야. 아니, 그건 내 생각이 아닐까? 오히려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는게 더 불편하지 않을까? 그럼 말을 걸어볼까? 잠깐, 왜 옆에 앉은 사람이 외국인이란 것 만으로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아니, 다른 사람이 앉아도 마찬가진가? 그보다, 왜 말 거는 거에 왜 이리 신경 쓸까? 애초에 왜 말 걸지? 무슨 말을 하지? 샌들은 나에게 안어울리니까 신으면 안된다고 히옥스가 말했는데. 그럼 운동화는 어울리나? 어울리지 않는 샌들을 계속 신고 다니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난 그다지 의미따위 두지 않았는데. 그저 편할 뿐. 눈에 띄었을 뿐. 단지 그 뿐. 왜 다들 샌달 신지 말라 그러지? 나에게 샌달 신는 거란 뭐지? 내가 샌달 신는 것은 나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 내가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 것은? 꼭 멋을 알아야하나? 멋을 낼 줄 아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일까? 서로를 배려하는 것일까? 디자인을 배웠지만, 내가 옷을 잘 못 입는 건가? 하자 작업장 학교란 곳은 독수리 5형제를 양성하는 곳인가? 난 독수리 5형제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가?
평화 워크샾의 일환으로 쿠로코 워크샾을 했었다. 일본을 좋아하던 나는 일단 일본사람들이 온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좋아하기에 더구나 그게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면야 . 쿠로코로서 일한다는 것.
2010.12.09 10:13:41
구로코워크숍은 평화워크숍의 일환이 아닌데.
그것은 '통합'의 키워드 속에서 생각해보고 있는 프로젝트라네. 그런데 히게오, 우리가 어제 나눴던 얘기도 사실 좀 전달이 안된 것 같아, 이 (수정된) 글을 읽어보니. 우선 제출해야 하는 것은 에세이의 목차와 글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개요여야 하지. 글에 대해서는 두 가지만 덧붙여볼게. 일단 너의 샌들. 네가 샌들을 신고, '츄리닝'을 입고 다니는 것, 헝클어진 머리 그런 등등은 네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지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야. 초기 죽돌들이 '스타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둥 그랬었다는 얘기 때문에 헷갈렸나? 그 죽돌들이 치열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애썼다는 것 ('고래이야기' 같은 것도 그래서 만들어졌었잖니) 그 얘기를 해주려고 했던 것인데. 영상, 사운드, 디자인. 그런 작업을 하다보면 어떤 내용도 그것을 담는 그릇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잘 알게 돼. '허식'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는 건 이미 얘기했지. 우리의 삶의 형식이 어때야 할까 이 부분은 계속 탐구중이고, 기후/평화/통합(다양성) 등의 문제에서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되길 바라고 있지만 우리가 색깔, 소리, 시선 등을 연습하면서 그 형식이 좀 더 다채롭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 또한 함께. 그러나 무엇보다 네가 아침에 일어나 깨끗이 씻고, 하루를 시작할 힘을 주는 양식을 얌전히 먹고, (네 말대로 설거지도 잘 해두고) 단정히 깨끗한 옷을 입고,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무슨 만남이 있을까 설레이며 기분 좋게 집을 나설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아직은 너무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들이 서로 그런 마음으로 모여서 아침모임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은 아마 적어도 우리에겐 최고의 시간들이 되겠지. 편한 옷에, 편한 태도에, 편한 생각에 길들여지지 않길 바란다.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이 크리킨디나 구로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함께 있으면서 속을 내보이고, 이러저러 실수와 시도를 연발하며, 고락을 같이 나눌 동료로 지낼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기 어렵다. 두 번째는, '난 괜찮은데, 왜 그러지?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잖아'라는 태도도 곤란하다는 것 생각해줬으면. 말했듯이,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잖아"라는 건, 아주 째째한 설명인 것 같다. 폐만 안끼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서는 눈을 맞추고 손을 내밀면서, "지금부터 옷을 갈아입혀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당신은 무대의 배우로, 예술가로 변하시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하기 어렵다. 폐를 끼칠 때도 있어. 서투른 시도를 해야할 때도 있고, 잘 모르는 일도 해봐야 할 때가 있고, 그러다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내가 상처를 입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굳은 살도 생기고, 무던해지기도 하고, 내공도 생기고... 폐를 "안 끼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아주 적극적으로 "하려고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해. 독수리5형제든, change maker든, 크리킨디든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사람이라는 것. 아무튼 히게오, 여전히 네가 그간의 수업과 프로젝트를 통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네 생각 속에서 너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궁금하다. 왜 자꾸만 다른 세계로 가버리지? 학교와 학교의 사람들 사이로 오렴. 그런데 눈치라든가, 연극을 했다든가, 자기연민/무기력 이런 얘기는 무슨 뜻일까. 너의 연극은, 너의 역할은 뭐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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