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을 기억해 주세요'
사진전 <버마, 희망을 말하다>는 지난해 11월 유해정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이상희 변호사가 우연히 버마에 방문하면서 기획됐다. 이들은 지난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여행을 다니다 만난 한 태국 인권운동 활동가의 제안으로 우연히 버마에 가보고, 난민으로 살아가는 버마 사람들의 현실을 목도하게 됐다고 한다.
유해정 활동가는 "버마의 심각한 상황을 보다 널리 알리고 싶어서 이 사진전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부터 모금활동 등을 통해 구입한 학용품, 모깃장 등을 들고 지난 2월 사진작가인 김영란 씨와 초등학교 선생님인 황지성 씨와 함께 지난해 1월 버마를 다시 찾았다.
이 사진들은 이들이 한 달간 버마 사람들과 지내며 주고 받은 공감과 연대의 이야기다.
<프레시안>은 '인권영화제' 측의 허락을 얻어 이 사진전의 소개하는 글과 사진의 일부를 전재한다.
사진전 <버마, 희망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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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권영화제 |
난민캠프, 피난민들이 살고 있는 버마 정글, 그리고 버마 심장부인 양곤과 만들레이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그들의 바람은 너무나도 단순했습니다. '우리들을 기억해 주세요'.
60년 이상의 내전, 40년 이상의 군부 독재가 버마 사람들의 미래를 빼앗았지만, 그들을 지탱해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희망'과 그 '희망'을 현실화해 줄 연대였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사진전을 준비했습니다. 버마 국경을 넘은 난민들과 버마 국경까지 어쩔 수 없이 도망나온 피난민들의 삶, 그리고 그들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는 사연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들의 삶을 통해 슬픈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과 폭력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맞서 싸우는 인권운동이, 물리적 거리라는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여러분들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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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권영화제 |
태국 북부 메솟에서 차로 3시간을 달려 검문소 6곳을 통과하고 나니 차는 좁은 산길로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강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이 작은 모에이(Moei)강을 경계로 땅은 태국과 버마로 나뉩니다. 차에서 내려 보트로 강을 건너고 가파른 언덕을 지나 레퍼허 마을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 남짓. 대나무로 지은 버마의 전통가옥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레퍼허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건 5년 전. 그들은 모두 지난 40여년 동안 버마 군부독재의 소수민족 탄압 정책의 피해자들입니다. 버마 군인들에 의해 집이 불타고, 가족이 살해당하고, 개발과 점령이란 미명하에 강제노동과 강제이주를 당해 고향을 빼앗긴 사람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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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권영화제 |
레퍼허에서는 누구나 하루에 두 끼를 먹습니다. 손님에겐 계란 후라이가 특식으로 주어지지만 이 마을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추장격인 양념 하나로 밥 한 공기를 해치워야 합니다. 아이들은 때론 나뭇잎을 따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정과 연민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우리네 개떡은 어른 아이 모두에게 '별미' 중 별미이지만, 합창대회 상품으로 탄 손바닥만 한 개떡을 누구랄 것도 없이 엄지손가락만큼 떼어 스무 명의 친구들과 나눠먹을 줄 아는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재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노랫소리 하나에도 전멸 당할 수 있는 마을에서, 언제 버마군이 휘두르는 폭력의 희생자로 사라질지 모를 현실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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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권영화제 |
버마 정부의 소수민족 배제 정책에 순응하며 폭력에 비굴해지면 지금보단 편히 살 수 있을 텐데, 고국을 버리고 태국으로 넘어가 난민캠프에서 살면 조금 갑갑해도 언제 버마군이 쳐들어오나 맘 졸이지 않아도 될 텐데 그들은 자유와 버마를 갈망합니다.
5년 동안 3번의 버마군 침입을 경험하면서 마을은 전소되고, 정글에서 며칠 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었으면서도, 그들은 카렌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존엄성과 해방된 세상을 위해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준비합니다. 아이들 역시 그곳에서 평화를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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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권영화제 |
"군인이 될 거예요" 꿈이 뭐냐는 질문에 한 꼬맹이가 자랑스럽게 답합니다. 옆에 있는 친구의 꿈도 같습니다. 이제 열 살로 보이는 친구들입니다. 레퍼허 교장선생님 레인보우의 꿈도 군인이 되는 거였답니다. 집을 불태우고, 가족과 이웃을 때린 버마군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서였답니다. 하지만 총으로는, 죽임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습니다.
해서 그는 사람들을 모으고, 마을을 건설하고 학교의 지붕을 올렸습니다. 몇 년간의 노력 끝에 마을이 조금씩 변하고 사람들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가난과 버마군의 폭력을 목격한 아이들이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복수를 위해 군인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가끔씩 절망에 빠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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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권영화제 |
억지로 끌려간 아이가 더욱 많겠지만 서도 버마 정규군에만 18세 미만의 소년병이 5만~8만 명에 이른답니다. 반군 진영엔 어느 정도의 소년병이 있는지 확인되지 않지만 채 10살도 안된 아이들이 소년병이 되겠다며 군 막사를 기웃거리는 것은 여기서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분쟁의 고통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 많은 버마인들이 태국 국경을 넘습니다. 5만 여명의 버마 난민들이 가로 2km, 세로 0.5km의 난민촌에서 살아갑니다. 사생활이 없을 만큼 비좁은 땅에서 이들은 벌써 스무 해를 넘게 살았습니다. 언제 다시 떠나야 할지 몰라 챙긴 피난 꾸러미들은 아직 풀지 못했습니다. 태국 경찰의 허가 없인 난민촌에서는 단 한걸음도 나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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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권영화제 |
난민촌 밖의 삶은 버마로의 추방이든지, 아니면 평생에 걸친 불법체류자 신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도 아이들은 자라납니다. 긴 기다림 속에 길어 온 물 한 동이의 목욕에 감사하고,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있음에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자신의 무게보다 무거운 대나무를 옮기면서 환하게 웃습니다.
태국에는 '전쟁은 수천 번 일어났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아름답다'는 노래가 있습니다. 왜냐고 물어보니 누군가 답하더군요. 아이들이 꿈을 꾸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버마의 아이들이 지금 꿈꾸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렇게 주어진 공간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더불어 삶을 아는 아이들이기에 그들은 버마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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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권영화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