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have self-confidence? (2000.7. 10 / 민희)
요요기 파크, 노는 애들의 천국. 어제는 테크노 리듬이 흐르고 땅 가득 꿈틀대던 사람들, 젊은애들 틈에서 춤을 추고, 거리에 나와 기타 치고 노래부르는 사람들 앞에 앉아 노래를 들었다. 요요기, 어느 곰 이름쯤을 떠올리게 하는 요요기 파크는 이국(異國)을 나에게 팍팍 실감시키며 나를 즐겁게 했다.
어디를 가든 다같이 노래를 부르기 좋아하고 손으로 만들기를 보여주고 자주 같이 웃는 우크라이나의 STORK FAMILY SCHOOL 사람들은 노래 부른다.
THE WORLD IS GREAT, MY FRIEND
SOME PEOPLE LIVE SO FAR APART
SO LET US SEND MESSAGE OF LOVE FROM HEART TO HEART
ACROSS THE SEAS AND OCEANS
SOME PEOPLE LIVE SO FAR APART.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사람들이 민주교육을 위해 도쿄에 있다. 아이덱의 일정은 도쿄슈레의 욕심 때문인지 어제와 마찬가지로 빡빡하게 진행된다. free school과 democratic school 개념 사이에서 혼란을 겪어가며, 피드백이 느린 그 많던 참가자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어가며 나는 그렇게 회의를 보낸다. 각국의 프리스쿨 프리젠테이션 시간에 우리는 하자센터와 자신들의 얘기를 하고 난 다음 잔뜩 가져온 홍보 스티커를 나눠주며 유스 페스티발 2000과 아시아 유스 포럼에 대한 소개를 한다. 같은 시간대의 중첩된 프리젠테이션들 때문에 밀도 있게 다른 여러 나라 학교와도 소통이 일어날 수 없는 프리젠테이션이지만 이후에 시간이 지날수록 워크숍과 세미나에서 다뤄진 중국이나 대만 등의 각 아시아 나라의 교육 현실은 서양과 비교할 수 없이 우리와 서로 비슷한 데가 많다는 점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확인을 할 수 있다. 아시아 10대들이 같이 공유할 문제점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오후 시간. 하자를 재밌게 알리자는 취지에서 우리가 영화("The Big Adventure in Haja")까지 찍어간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별로 모으지 못 했던 우리의 프리젠테이션과는 달리 민주교육의 이름으로 역사가 긴 섬머힐 스쿨 워크숍 시간에는 많은 참가자들이 모인다. 그들의 섬머힐에 대한 궁금증과 동경에 가까운 감정은 진지한 그 분위기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섬머힐 스쿨엔 200 여개의 규칙이 있다. 그들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자신과 모두를 위해 규칙을 지켜가며 자유를 누린다. 자유를 책임진다. 각국의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학교라면 공통적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것이 학교 자체의 관리와 정부의 압력 사이에서의 갈등일 것이다. 그 동안 간섭을 않던 행정기관이 섬머힐의 수업에 대한 간섭을 하자 섬머힐은 소송을 제기했고 그리하여 섬머힐 스쿨과 정부 사이엔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섬머힐 스쿨의 정부와의 마찰에 대한 대응은 거기 모인 데모크래틱 스쿨들 사이에서 귀중한 판례가 될 것이다. 가까이 앉아 통역을 해주는 조한의 목소리가 더욱 안 들리게 되는 때쯤 나는 그 방을 빠져 나와 판토마임 룸에 갔다.애들 노는 건 우크라이나건 일본이건 한국이건 같은 것 같다. 삐에로 분장을 하고 마임을 하는데 아이들은 마음놓고 즐거워한다. 아이들과 놀 수 있었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아이덱은 for children이라는데 그 children들은 아침 미팅에 절대 보이지 않고 워크숍에서도 좀처럼 만나지지 않는다. 오 아쉬워라.
1921년 A. S. Neill이 창시했다는 영국의 서머힐은 환경친화적이고 아이중심적인 대안교육의 대표이면서, 80년이나 된 역사로 인해 주목을 끌었다. 마치 성례순례를 하는 듯한 태도로 모인 사람들. 교육에 대한 한 수 가르쳐주려는 듯한 태도의 영국인 여선생. 우리가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했을 때 모여든 사람들이 일본인 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작은 방에 모여든 사람들의 열기는 어리둥절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서머힐의 선생님인 Ian이 작년 정부와 벌였던 법정투쟁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서머힐의 자연주의, 민족주의 교육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관료들은 감찰을 끝내고 돌아갈 때마다 서류에 아주 형식적으로 '변기부족'이라고 적어 넣었다는데, 그때마다 화장실을 증축한 덕에 학생들은 현재 거의 개인용 변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라고 하면서 박장대소를 한다. 어딜가나 관료들은 비슷한 걸까?
좌충우돌, 도쿄 슈레와 하자센터 (2000. 7. 11 화 / 지원)
일본에 온지 3일이나 지났지만 난 전혀 즐겁지 않았다. 어제 처참하게 망가진 하자 팀 프리젠테이션의 기억, 마치 미션스쿨 기숙사(프리스쿨 대회였는데도!)에 온 듯한 억압적인 분위기, 언어의 문제와 나의 게으름이 가져다준 '나는 뭔가 모르고 있다'는 느낌들이 나를 숨막히게 했다. 오늘쯤에는 정말 꼭 우리를 제대로 표현해보고 싶었고 집중할만한 무언가를 갖고 싶었다.
"democratic conference"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매일 아침마다 벌어진 정체불명의 "대표자 회의". 궁금한 게 많아서 자주 배고픈 하자 친구들은 매번 거의 전원이 그 회의에 참석했고, 자잘한 안내사항만을 전한다던 그 대표자 회의에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들이 오간다는 사실에 경악하곤 했다. 11일 아침에 모인 대표자 선생님들께서는 아이들끼리 모이는 시간이 너무 없지 않았느냐며 시간을 마련해주자고 했다. 나는 '이건 또 웬 초등학교 수학여행?'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른 나라가 우리보다는 훨씬 민주적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좀 더 오래 지켜보고 그 속에서 교훈을 찾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일본 프리스쿨 탐방을 갔고 나와 희옥스는 조한의 "School Refusal and Education in Korea"라는 제목의 강의에 참여했다. "하자 센터"같은 형태의 대안학교가 생기게 된 한국의 상황과 전망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는데, (적어도 내 생각에는)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어제 오리엔테이션과 마찬가지로 일본사람들만이 와 있었다. 나도 패널로 참가해서 앞에 앉아 있었는데 얘기를 들으면서 끊임없이 한 생각은 "도대체 왜 우리행사에는 일본사람들만 와서 들을까?" "왜 이 사람들은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까?" "내가 재밌게 생각하는 하자센터의 장점들이 왜 이 사람들에겐 먹히지 않을까?" "그럼 이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대안학교는 어떤 걸까?"하는 것들이었다. 하자 홍보비디오를 보고 나서 내가 뭔가 말할 시간이 왔다. 나는 내가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죄다 질문했고 내가 생각하는 그들과 나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얘기했다. 진심으로 하는 얘기는 십중팔구 재미있는 법이다. 사람들이 나의 궁금증과 내가 느끼는 차이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 것이 느껴졌고 강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날 저녁, 어른들이 아침 미팅에서 만들어준 "아이들끼리의 회의"에 갔다. 아침에 그렇게도 democratic하던 서양 선생님들네 아이들은 찾을 수도 없고, 자리를 채우기 위해 가벼운 설명 속에 "동원된 듯한" 일본아이들만이 잔뜩 앉아있었다. 그 중에 외국 사람이라곤 하자 친구들뿐이었으니, 당연히 우리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나는 매일 아침의 그 불쾌한 "대표자 미팅"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통역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영어를 조금 하는 비키가 앉아있을 뿐. 민감한 이야기를 해야했던 나는 불안했고 상황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기다렸다가 나중에 얘기하고 싶었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뭔가 얘기할만한 사람은 우리뿐이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비키를 통해 "이 회의가 생기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하고 싶다"로 입을 열기 시작했지만 도쿄 슈레 아이들은 예의 그 하나마나한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교과서 같은 이야기'와 '딱딱하게 굳은 표정'속에는 두 가지 코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일본인들이(최소한 도쿄 슈레 친구들이) 다른 아시아인들에게 은근히 내비치는 자만심이고 다른 하나는 서구인들이 도쿄 슈레 아이들에게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던 무시에 대한 피해의식 같은 거였다. 하자 친구들은 이미 그 문제에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였기 때문에 도쿄 슈레의 그 과민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섬세하게 꺼내졌어야 할 이야기가 점점 깊은 오해 속에 꼬여가고 있었다.
헉! 이게 아닌데! 난 도망갈 거야!! "미안하다. 지금은 통역자가 없고 우리는 매우 긴장하고 있어서 내 뜻을 제대로 말할 수가 없다. 계속 오해하게 될 것 같으니 다른 얘기부터 먼저 하자"는, 그럴 뜻은 물론 없었지만 결과적으론 다소 건방지고 반민주적인 대사를 남기고야 말았다. 결국 애들은 회의를 중단하고 밖에 나가서 달리기 게임과 불꽃놀이를 하며 놀았다. 나는 계속 찜찜한 기분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막 재미있는 척하며 함께 놀았는데 놀다보니 꽤 즐거웠다. 도쿄 슈레 아이들이 낯설 정도로 순진하게 노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저 애들이 바란 것은 '컨퍼런스'를 통한 거창한 성과가 아니라 아이들끼리 함께 할 수 있는 이 만큼의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부등교문제(학급붕괴문제)에 관한 워크숍에는 여전히 일본인들로 가득 했지만 (서양인들은 정말 아시아에는 관심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자센터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매우 흥미를 보였다. 정보시대, 기술문명의 시대라는 맥락을 놓치지 않는 하자센터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놓아키우기'를 표방하는 서구식 자유주의와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미카코 이와모토는 도쿄슈레의 졸업생이고 지금은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아이덱 기간 중 미카코와 같은 친구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아르바이트로 먹고 살고 특별히 거창한 꿈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인지, 부모들도 학교를 그만 둔다고 했을 때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된다. 학교를 그만 둔 아이들은 한국과는 달리, 자신이 불량하거나 탈선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 사회나 어른들에게 무언가를 증명해보여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마음 편히 살고, 이런 대회에 자원봉사 겸해서 하루나 이틀쯤 참가하는 것이 보람 있다. 아이덱은 일본인들에게는 무척 높은 입장료를 받았기 때문에 미카코와 같은 사람이 기간 내내 참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덱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 중 하나였다.
남이와 혜정이 방문했던 일본의 프리스페이스(Free Space for Children). 대안교육을 표방하는 프리스쿨과 달리 프리스페이스는 일종의 '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1985년 도쿄슈레가 설립된 이래, 일본에는 프리스쿨과 프리스페이스가 날로 늘어가고 있다. 현재 부등교학생들(우리 말로는 자퇴생)의 수는 10만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