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들, 인사 그리고 "내년 팔레스타인에서 만납시다" (2000. 7. 15. 토 / 캔디)

드디어 마지막 날이 되었다. 어제 밤에 늦게 잠을 잔 덕에 8시가 넘어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오늘이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가슴으로 다가오지가 않았다. 마지막은 아닐거야 라는 근거 없는 확신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밥을 먹으러 갔는데 웬일인지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놀라움! 

내가 밥을 잘 못 먹는 건 일년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밥을 먹고있는데 낮 익은 꼬마 하나가 다가왔다. 리르였다. 이스라엘에서 온 개구쟁이... 어제 밤늦게까지 같이 놀았는데 얘도 우리랑 헤어지는 게 아쉬웠나 보다. 밥을 다 먹고(잘 넘어가든 안든 어쨌든, 난 밥은 '다' 먹는다 ^^) 따뜻한 물을 받으러갔는데 갑자기 리르가 와서 내 다리를 붙잡고 내 발 위에 앉아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건 정말... 

9시30분 체육관에서 Grand Finale을 시작했다. 개회식 사회를 봤던 유이와 유지가 다시 사회를 봤다. 다음 IDEC 개최국인 이스라엘부터 참가국별로 올라와 이번 IDEC에 대한 소감과 함께 작별인사를 했다. 굉장히 더운 날씨였고 체육관에 에어콘을 안 틀어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루룩 흐르는데 아무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았다. 우리들 모두 밖에 잔디밭으로 나가 기념촬영을 했다. 슈레 친구들이 미리 준비해둔 `IDEC` 이라는 라인을 따라(어제 우리들이 담배에 대해서 회의를 할 때 슈레 친구들이 욌다갔다 하면서 만들어 놓은 것) 참가자와 스텝들 모두가 모여 사진을 찍었다. 부랴부랴 옥상에 올라가 카메라에 담아보니, 정말 멋진 그림이다. 셔터 돌아가는 소리가 찰칵찰칵 상쾌하다.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 차안에서 먹을 도시락을 받아 가는데 히토미가 갑자기 나를 안고 울기 시작한다. 정말이지... 점심 도시락도 넘기기 힘들게 되어버렸군...

도쿄로 돌아가는 버스는 막히지 않고 잘 달려주었다. 창 밖으로 서울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달라 가슴이 뛰는 그런 풍경들이 흘러갔다. 나로 하여금 학교를 거부하게 만든 이유들은 어쩔 수 없이 내게 영향을 끼쳤고 난 아직 그 영향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세상을 학교 삼아 살아가기 위해 책가방 속에 꼭 챙겨 넣어야 할 건 오픈 마인드다. 하지만 이건, 내 가방 속에 들어있지 않을 때가 많고, 내 마음을 둘러싼 단단한 껍질은 사람도 사물도 마음속으로 들어올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아무 것도 배울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작년에 참가한 일본 부등교 캠프와 이번 IDEC, 또 앞으로 참가하게될 많은 free school 대회들은 내가 책가방 속에 오픈 마인드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건 알고 있어도 갖기 힘든 것인데, 대부분에 경우 나는 내 마음이 닫혀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세상이 닫혀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나에게 free school 대회는 윽박지르지 않는다. 바라보고 있으면 그 마음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지는 오픈 마인드의 친구들이 재미있는 일들을 만들어 나를 초대한다. 머릿속으로 계산하거나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새 내 마음은 열려져 있다. 이 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내가 어디에 있든지 말이다. 이 넓은 세상은 나의 학교다. 

공항이다. 이제 정말 돌아가는구나! 한국에 돌아가면 서점 도매상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종류의 일과 내가 알지 못하는 삶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1501.jpg아이덱 최고의 인기였던 우파티나스스쿨의 말로위는 부드러운 미소와 아름다운 몸(게다가 그의 레게풍의 머리)을 가진 소년이었다. 우파티나스스쿨은 worldwide real education network를 제안했던 사람들 중 하나인 짐 코너가 선생님으로 있는 학교인데, 짐 코너는 예수처럼 생긴 얼굴에 너무나 선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고 게다가 채식주의자여서 초식동물을 대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젊은 남자였다. 그런데 그는 고아들을 데려가 가르치고 있다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세상엔 참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했다. 아이덱 내내 우리는 말로위도 고아일까? 하는 물음을 가졌지만 물어보지는 못했다.




1502.jpg그랜드피날레. 피곤에 지쳐서 눈이 퀭하게 들어간 도쿄슈레의 아이들도 이순간 만큼은 감동적인 표정으로 피곤도 잊은 것 같다. 가운데 회색셔츠를 입은 사람이 도쿄슈레의 교장인 오구치상. 불평많던 서양인들도 잠잠하다. 밖에서는 이스라엘 랍비처럼 생긴 하데라스쿨의 한 선생님이 연주하는 기타와 이스라엘 민요가 간간이 들렸다. 그와중에도 우리는 전날의 담배워크숍의 결과를 발표하고 말았다.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 이성적일까 스스로 반성하면서도 모두들 어쩌면 이렇게 감상적일까 당황스러워하면서 보고 있었다. 그들이 나눈 '우정'과 '커뮤니케이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특히 그 서양인들은 감상적인 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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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단체사진이 된 아이덱이라는 글자. 이런 사진을 찍게 하다니 일본사람들은 귀여운 생각을 참 잘도 하지... 하고 누군가가 말했다. 사람들이 손을 들고 환호할 때 모두들 이견없이 한 마음이 되었다고 느꼈다면 과장된 것일까. 그제서야 아, 우리는 문제많은 제도교육의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한 섬세하고 예민한 개성의 소유자들이었지 하는 생각이 났다. 그런 점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좋은 친구'들이 아닌가.

1504.jpg우리는 다시 테가에서 올림픽센터로 돌아와 다시 하루를 묵은 다음 서울로 돌아왔다. 스케줄에서 벗어나 도쿄의 대학로라는 시부야와 도쿄 서양현대미술관 등을 다닐 수 있었던, 오랜만에 가진 한가로운 시간들이었다. 사진에는 우리 다섯 외에도 캔디, 양상 그리고 간디학교의 혜정이 보인다.








1505.jpg왼쪽부터 히로유키 아오키, 하태욱, 양상이다. 우리의 통역사들! 혼다회사의 모터사이클 디자이너이자 도쿄슈레에 다니는 아들을 둔 맘씨 좋고 웃음이 넉넉한 히로씨를 우리는 혼다라고 불렀다. 혼자 독학했다는 영어가 매우 수준급이었다. 런던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는 하태욱씨는 '좋은 사람'의 모델같았다. 영어 동시통역을 해주느라 땀 좀 흘렸지. 그리고 우리의 양상. 일본어통역은 영어가 서툰 일본에서 쉴새없는 일감이었다. 논문 쓰느라 우리와 동행했던 (사진에는 유감스럽게도 빠져있다) 연대 대학원의 종희씨가 가끔 일본어통역을 도와주기도 했지만, 역시 양상의 통역은 미안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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