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인턴 보고서 (2001. 6. 16 / 원, 자료실사서, 19세)
 
차례 》》
자료실 만들기 / 자료 구성 / 자료 관리 / 하자에서의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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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실 만들기

2001년 초. 2001년 초. 꼴레지오 한 해 계획을 세우는 회의가 열렸다.
꼬라지 전원과 히옥, 찐빵 참석.

히옥스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칠판에 달(月)과 꼬라지들의 이름으로 나누어진 표를 그렸다. 우리는 각각 자신의 신년 계획을 말했고 듣고 있던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첨가되어 히옥스가 칠판에 그 내용을 정리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꼬라지들의 계획이 칠판에 적히고, 꼴레지오의 전체 계획도 칠판에 다 적히자 히옥스는 회의를 끝내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나는?!'하고 외쳤다. 그러자 각자의 계획에 집중하고 있던 이 나쁜 사람들은 그때서야 내가 빠졌다는 것을 인식했고 더 놀라운 것은 히옥스가 '아, 그렇구나.'하더니 조금 있다가 '너는 내 어시가 될 거니까 내가 하는 일을 같이 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러는 게 어딨냐고 외치자 표에 나의 칸이 첨가되었다.

가끔씩 나는 이 때를 생각한다. 아주 멋지고 흥분되는 계획들이 잘 정리되어 적혀있던 꼴레지오의 계획표. 그것만 충실히 실천했어도 꼬라지들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계획대로 실천한 것은 하나도 없고 새롭게 생긴 행사 위주의 일들에만 매달리다가 반년을 보내버린 나로서는 이 때를 떠올리며 슬퍼질 때가 많다. 차라리 그 때 내 계획을 따로 만들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까? 이제와서 후회는 필요 없고 암튼 그 때 만들어진 나의 계획은 두 달에 한번씩 꼴레지오 슬램 파티를 하고 매달 작은 규모의 pinkspider 영화제를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히옥스는 분기별로 중장편의 영화도 찍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정말 놀라운 계획이 아닐 수 없다.

나의 한 해가 이렇게 구상되고 난 얼마 후, 히옥스는 나와 오로라, 지지큐에게 자료실 인턴으로 일할 것을 제안했다. 세 명의 개인 프로젝트를 생각했을 때 자료실에서 일하는 건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의견이었다. 하루종일 소리도 시간도 없는 자료실의 이곳 저곳에서 끊임없이 비디오를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 히옥스가 들려주는 자료실 인턴의 하루는 언제나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 비디오를 빌려보고 간간이 책도 읽으며 세상의 모든 일을 혼자 연구했던, 고독에 도취된 나의 중학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 뒤로 이어진 끔찍했던 고등학교 시절, 불규칙하고 바쁜 행사들로 일상 없이 살아왔던 자퇴 후 일 년을 생각해보니 하자 안에서 그런 생활이 보장된 곳을, 그것도 돈까지 받으면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얼마 후 히옥스는 자료실로 쓰이게 될 106호를 보여주었다. 이미 가구들이 들어와 있었다. 멋지다는 생각 잠깐과 자료실이 열려서 내가 이 공간에 들어오게 되면 새 것의 느낌밖에 갖지 못하는 이 가구들에게 때를 입혀 주어야겠다는 생각 잠깐이 들었다. 슬픈 것은 지금 자료실은 처음의 그 느낌에서 어떤 것도 추가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 자료실 인턴 생활을 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히옥스가 언제나 말하는 것 중에 하나는 공간을 바꾸는 것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다. 라는 것인데.

어찌됐건 그 날 밤 자료실의 문에 때를 입히는 오로라를 지켜보면서 아무튼 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꼬라지들이 단체로 교보에 몰려가서 책을 산 날은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500만원이 있단다.라는 히옥스의 말과 함께 꼬라지들은 샤샤샥 흩어져서 책을 고르기 시작했는데 책은 '산다'기 보다는 서점을 '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열심히 골라보았으나 정작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책을 고르지 못했다. 나중에 계산하는데 모여서 서로가 골라온 책을 봤는데 같은 시간에 우리가 고른 양과 히옥스가 고른 양의 차이를 보고 깨달았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듯이 책도 많이 본 놈이 잘 산다. 겹치기로 고른 것과 히옥스가 제발 이것만은. 이라고 말한 진중권의 책말고는 우리가 고른 것 그대로 다 살 수 있었다. 나중에 교보의 직원들이 커다란 수레차 몇 대에 우리의 책들을 옮겨갈 때도 뿌듯한 기분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료실에 도착해서 책을 꽂아놓고 보니 삼분의 일도 안 차더라. 자료실이 이렇게 큰 줄은.

책을 산 여세를 몰아서 우리는 자료실에 대한 꿈같은 구상들을 많이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자료실의 업무가 단순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우리가 열심히 하지 못해서 제대로 못 보여줬기 때문인 것 같다. 오로라 표현처럼 '비즈니스'를 하려 마음 먹으면 끝도 없는 게 또 자료실이다.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담당이었던 비디오 쪽에 집중해 보련다.

▶ 자료 구성

지금 자료실에 있는 비디오는 709개다. 이 중에서 히옥스가 기증한 게 255개. 대부분 복사 테입으로 구하기 힘든 자료들이 많다. 이것들은 히옥스가 마킹을 내키는 대로해서인지 통일되지 않고 아예 라벨이 떨어진 것도 꽤 있다. 자료실 오픈을 하기도 전에 기증받은 것인데 나는 아직도 라벨을 새로 만들어 붙이지 않았다. 기증한 비디오를 관리하는 나의 태도에 심각하게 반성을 하고 있다. 그밖에 조한과 지지큐와 종우씨가 기증을 했고 은하씨는 구하기 힘든 비디오 자료를 복사해서 자료실에 놓으라고 빌려주는 형태로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모두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했다. 땡큐 노트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고. 아무튼 이런 식으로 기증 받은 테입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구입신청을 한 것이다. 여기에는 오로라가 만든 자료실 마크를 붙여두었다.

자료실에는 공테입들이 많이 있다. 영상방의 종우씨가 유택상 선생님으로부터 시중에서 팔지 않는 자료들을 빌려다가 복사하겠다고 말해서 대량으로 구입한 것이지만 아직 되지 않고 있다. 복사할 수 있도록 비디오 데크 두 대와 모니터를 영상방에서 가져와 설치하는 것은 했지만 그 후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지도 않았으니 나도 할 말은 없다.

앞으로도 예산이 나올 때마다 계속 구입을 할 것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구입할 때마다 왕창 들어오게 되어서 등록하는 일도 왕창 생긴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깨달은 것인데 들어왔을 때 그냥 다 해버리는 것이 제일 현명한 방법이다. 새털같이 많은 날이 있는데 뭘. 하면서 미루게 되면 사람들이 계속 이용을 하니깐 나중에는 순서가 엉망진창이 되고 뭐가 뭔지 모르게 되면 하기가 싫어진다. 이런 이유로 안 한 것이 보고서를 쓰는 오늘까지 미뤄져서 부끄러운 보고서를 쓰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 자료 관리

우리의 자료 관리 계획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턴 스스로가 자료에 대해서 빠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끔, 특히 자료실 초반에 재밌는 거 뭐 없어요? 라고 비디오 가게 주인한테 묻듯이 묻는 사람이 있어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아무튼 나의 경험으로도 비디오 가게나 서점 주인이 가장 만만하게 보이는 순간이 무어무어 있나요?라고 물어봤는데 주인이 무어무어를 모르고 있을 때다. 그 때문에 나는 강박적으로 누군가 자료에 대해 물어보면 바로 대답할 수 있거나 재빨리 찾아 줄 수 있도록 연습은 좀 했었다. 하지만 많은 양의 비디오를 보지는 못 했다. 자료를 많이 봐서 알게되면 자료의 배치도 나름의 주관을 살려 재밌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심지어 지금은 어떤 비디오가 없어져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가나다순으로 배열해 놓았다.

공짜 비디오/도서 대여점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대여료로 돈 대신 코멘트를 받았다. 지금은 오로라가 코멘트 용지도 따로 만들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멋지고 다양한 코멘트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것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코멘트 써오라고 종이까지 안겨주는 우리의 대여법을 낯설어하는 사람들에게 벽보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면 코멘트의 내용이 더더욱 형편없어지는 것은 당연할 텐데 운영 첫 달에만 코멘트를 꼼꼼히 읽어보고 정리를 했고 나머지 달에는 사실 잘 읽어보지도 않았다.

제목: 자료실 비디오 1월을 돌아본다

하하하. 여러분의 귀염둥이, 자료실의 그녀(그녀였단 말인가!), 원 올시다.
여러분과 함께 한 자료실, 그 지난 1월을 돌아볼까요..? 싫어요..?
참 많은 분들이 자료실에 오셔셔 영상자료를 이용하셨습니다.

그 분들의 대략적인 특징을 살펴본다면, 처음 오시는 분들은 보통, 특히 여자분일 경우, 대부분 먼저 보시는 것이 '감각의 왕국'인 것으로 들통 났습니다. 제가 안보는 것처럼 하면서 유심히 보았던 게지요. 특히 저랑 친분이 좀 있는 분들은 자신이 그것을 먼저 선택한 것에 대한 기나긴 이유를 달면서, 되도록 구석 쪽에 앉으려 애쓰면서, 영문자막임에도 궁시렁 거림 하나 없이, (하긴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 보고 나가시는 것이지요.

'감각의 왕국'을 이미 떼신 분들의 경우, 훨씬 더 많은 이유와 망설임 끝에 다음 작품으로 '베드타임 스토리'를 선택하시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잘 모르시는 거 같아서 말씀드리자면, 저희 자료실에는 그 비슷한 자료들이 꽤 많답니다. 추천을 한다면, '데미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에로띠끄'..등을 들 수 있지요. 특히 '에로띠끄'는 참 괜찮습니다. '감각의 왕국'보다 유쾌하고, 다양하지요.

그런 비디오방 분위기에 지친 분들의 다음선택은 '열혈남아'. 진짜 많이들 보시던데 왤까요? '열혈남아'의 높은 인기율에는 과연 왕가위시리즈를 빠방하게 준비해야 할건지, 아니면 성냥코트선글라스 홍콩시리즈를 준비해야 할건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성냥코트선그라스 홍콩물은 안 좋아하지요. 비단 날리는 무협시리즈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2월에는 무협의 세계에 푹 빠져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특히 임청하 시리즈와. (발음에 유의하시고)화양연화. 꼭 마련토록 하지요.(물론 카피본.)

그 다음 인기리에 방영된 종류로는. 애니메이션을 들 수 있습니다. 토토로네 회사에서 다닥다닥 나온 각종 작품들, 현재 9개쯤 보유하고 있는데 특별히 꼽을 것도 없이 정말 다양하게 틀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글자막이 있음에도 커버에는 다 일본어인지 한자인지, 암튼 그래서 제가 대여를 해주고 싶어도 그 제목이 뭔지 정확히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이죠. 특히 '붉은 돼지'같은 경우, 저는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그것이 '붉은 대지' 인줄로만 알고 살아왔습니다. '돼지'일 줄은, 그것도 빨간 돼지도 아니고 붉은 돼지라니. 제목 참 장엄하지 않습니까?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만화에 실제로 돼지가 나온다는 사실. 말도 하고 비행기도 타더군요.

한편, 이쁜 케이스에 담겨있지 않다는 이유로, 재미로는 막상막하인데도 잘 안 틀어지고 있는 '추억은 방울방울'. 많이들 봅시다. 그 영화에 아기 희옥스가 출연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방울로 출연한 것일까요..?(아핫! 내가 했지만..)

이제 방향을 틀어서 대여순위를 보겠습니다. 항상 열심히 다양하게 자료실을 이용하시는 윤태형씨가 다섯 개 대여로 역시 1위를 달리고 있던중, 꼬라지 엠티 관계로 자료실이 2박3일 안 열었을 때, 우주인이 한꺼번에 6개를 빌려가는 도발행위로 1위자리를 가볍게 탈환한 듯 보였으나. 갔다와 보니, 그 동안 비디오는 안보고 컵라면만 먹었는지 감상 소감이 전부 '어쩌다보니 못봤어요', '자막이 없어 못 봤어요' 뭐 그런 것들뿐이더군요. 결국 우주인이 대여한 6개중에 본거라곤 '곰돌이 푸'와 '슬램'뿐. 이왕 이미지 구겨진 김에 확 그냥 가버리라고 우주인의 '곰돌이 푸'를 본 소감을 발표하겠습니다. <난 푸가 이렇게 느끼할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귀엽긴 하더만.>

와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라디오하자가 망한 것에는 제 탓만 있는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과연 코코봉고는 괜찮은 걸까요..? 이렇게 되면 대여순위 1위의 영광은 누구에게 돌아가게 되는 건지 암담합니다.. 하긴 근데 그게 뭐 중요할까요? 상품이 있는 것도 아닌데.

대여순위 1위의 비디오를 봅시다. 치열한 접전 끝에, '붉은 돼지'와 '마녀의 우편배달'이 같은 표를 얻었습니다. 몇 표냐구요..? 아핫! 놀랍게도. 두 표입니다. 2 표. two 표. 여러분! 자료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또한 애매한 것이. 윤태형씨가 마녀의 우편배달을 두 번 빌려가셨는데. 새로 들어온 뉴스에 따르면 두 번 다 못 보셨다고 합니다. 붉은 돼지의 경우를 보면. 라바가 한 번, 태형씨가 한 번인데. 둘 다 봤을지 어땠을지 제가 알 게 뭐란 말입니까. 결국 이 또한 1위를 가리기 어렵게 되었군요.

마지막입니다. 아.. 저 오늘 너무 무리하는 거 같습니다. 감상 소감 1위를 발표하고 전 이만 총총하지요. 1위는 그냥 제가 제 맘대로 뽑았습니다. 불만인가요?

* 수상자 *
이름 : 정해영(하자총서땜에 뽑은 건 아닙니다. 결코!)
아뒤 : sophisto

* 수상작품 *
이름 : 버스를 타라
감독 : 스파이크 리

* 수상작 *
(긴장하시고.. 두구두구두구..)
내용 : 평등...

수상소감은 리플로 달아주시길 바랍니다. 마감은 일요일까지입니다. 그럼 여러분 2월에 봐요.

(하자 게시판에 원이 썼던 글)

지금 다시 읽어보니 왜 이렇게 오버를 했지..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 때는 오픈 첫 달이라서 이용자가 너무 없었다. 그래서 분위기를 띄워야겠다는 의지로..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지 매달 계속 리뷰를 했으면 재밌었겠다는 생각에 후회가 가슴을 치는군. 

앞에서 말한 우리의 가장 큰 계획, 인턴이 자료에 대해 빠삭해진다.는 비단 누가 물어볼 때 빨리 대답해주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다. 나에게는 매달 pinkspider 영화제를 하겠노라는 구상이 있지 않았던가. 나는 이 영화제를, 여는 주체의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나며 (10대 여성) 영화에 대한 글과 슬램으로 풍성한 작은 파티가 되게 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영화제를 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게으름 탓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자 내 안에 컨텐츠가 없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꽤 힘들었는데 소녀들의 페미니즘을 하면서 많이 해소되었다. 아직도 내 안에 든 게 없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제쯤에는 작은 시작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솔직히 나는 자료실을 열심히 홍보해서 사람들이 바글거리게 하려는 욕심은 처음부터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일요일 같은 때에 사람이 많아지면 좀 괴로웠다. 요즘 드는 생각은 자료실이 환영합니다! 누구나 오세요! 분위기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오기가 싫어지거나 오래 못 있는 분위기가 되면 안 되겠다..는 정도.

그런 생각으로 지난 6개월을 돌아볼 때 가장 아쉬운 것은 각 작업장들과의 의사소통이다. 예를 들면 헤드셋이 부러져서 새 것으로 교체할 때 꽤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동안 인턴들의 개인 이어폰을 갖다놓아서 이용을 못하는 일은 없었지만 아무튼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내가 부지런히 뛰어다니지 않은 것도 있고 운영지원부가 늦게 구입해준 이유도 있다. 자료실의 비디오 이용 시설은 특히 사운드 면에서 그리 좋은 편은 아닌데, 이것도 구입시기에 영상방, 꼴레지오, 운영지원부가 의사소통이 서로 꼬여서 그랬다고 들었다.

하자신문에서도 자료실의 홍보를 해야하지 않느냐며 기사를 써볼 것을 제안했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자료 정보는 센터 내 네트워크로 언제나 볼 수 있었지만 자료실 사이트를 일찍 만들었으면 자료실과 하자 전체와의 의사소통에 분명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하자의 일곱가지 약속 중의 하나인 '정보와 자원은 공유한다'의 살아있는 사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지난 6개월을 돌아보고나니 참 괴롭다. 지난 시간 동안 분명히 나는 달라졌지만 나의 변화가 얼만큼이나 자료실과 함께였는지를 생각하니 답답해진다. 이 지경이 되자 하자에서의 인턴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하자에서의 인턴

작년 여름인가. 십만원 비디오 페스티발의 최소원씨가 하자에 와서 여름 프로젝트의 타이틀이었던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기'라는 문장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더니 '항상 고민하던 부분인데요, 저두 이거(여름 프로젝트) 들으면 그렇게 되나요..'하고 농담하던 모습도.

요즘 나는 엄마로부터 거의 돈을 받지 않고 있다. 게다가 밖에 나와서 지낸다. 이런 돈에 대한 실질적인 필요 때문에 사실 나는 하자에서 인턴이 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별로 생각해보지 않고 약간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면이 있다. 지금의 나는 돈 버는 시장의 눈으로 봤을 땐 열등 인자인 것을 알기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삼일 내내 두 개의 인턴 보고서에 매달리고 난 지금은 좀 진지한 마음이다.

내가 하자의 인턴인 것은 나와 하자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자는 말 그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곳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내 돈을 갖다 부어야 한다는 보통의 생각과는 달리 하자에서는 돈을 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자의 인턴제도가 조심해야 할 것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쓰는 구조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턴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고 돌린다. 이 과정에서 하자의 첫 번째 약속,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해야 하는 일도 할 거다'가 필요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인턴은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이 하자의 발전과 연결이 되느냐 하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쯤에서 '하자는 물론 좋은 곳이지. 하지만 사회도 그럴까'를 걱정해주듯 말하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는 과연 (정확히 어딘지 모를)그 사회라는 곳에서도 내가 하려는 일이 사회 발전에 매우 필요하다고 말하며 돈을 받아낼 수 있을까. 다행히도 내가 일하는 곳인 하자는 그 일을 해냈고 매년 해내고 있다. 그것도 정부의 돈을 받는다. 그리고 하자의 인턴인 나는 하자를 통해 정부의 돈을 받는다. 이 정도의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디에 있던 간에 나를 믿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자의 센터장은 연세대 교수인 조한이며 판돌이 중에 대학 안 나온 사람 하나 없지 않냐고 묻는다면? 자신의 창업 이유로 이 문제를 제기한 퀸 오로라를 지켜보라고 말하면 될 것 같다. 하자에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배운 사람들이 그 사회인지 어딘지에 나가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는지 지켜보라고 말하면 충분한 대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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