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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하자 인턴 보고서 (2001. 6. 16 / 제리, 엔지니어, 18세) 라디오하자의 일지 비슷한 것(2000년 11월) ▶ 이렇게 시작 2000년 6월 말 쯔음.. 지금은 그만둔 검정고시 학원이 끝나고 하자센터로 오는 버스 안에서 고사장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 "재식아 너가 인터넷방송 엔지니어 좀 해야겠다." 엔지니어는 내가 전부터 2, 3년 전부터 해오던 것이고 앞으로도 하려고 하던 것이니 잠시잠깐의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네"라고 대답을 한 후 통화는 끝났다. 그리고는 잠시후 하자센터에 도착해서 그것이 무언인가 알아보려 대중방으로 갔다. 가서 잠깐 얘기를 하며 그냥 인터넷방송국이구나 생각하곤 내가 할 일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내가 할 일은 엔지니어말고도 웹마스터까지 해야 한단다. 난 달랑 그 얘기밖에 없길래 그냥 그것만 "해주면" 되는 것이구나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그 날이 지나갔다. 1주 정도 뒤. 고사장이 계약서를 써야 된다고 통장과 도장을 가져오란다. 난 계약이란 말에 약간 놀라 무슨 계약이냐고 물었더니 창업 프로젝트라는 것이 있단다. 거기에서 인터넷방송을 하는데 내가 거기에서 일하게 된 것이란다. 난 또 그런 줄 알고는 아무 것도 몰라하고 있었다. 또 어느 정도 지난 뒤 난 또 궁금증이 생겨서 고사장에게 물었다. "월급은 얼마인가요?" 25만원이란다. 와~ 많이 주네.(지금 생각해보면...-_-) 하는 심정으로 있었다. 그리고는 다른 대부분의 유급인턴이 3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는 것을 보고는 나도 그럴 줄 알고 3개월이 지난 뒤 11월에 째즈 아카데미 입학에 관해서 알아보러 댕겼다. ▶ 진입 6월말이 되어 일을 시작했다. 그 때까지 난 어느 회의에도 초청받아 본적없이 어떠한 자료도 받아 보지 못한 상태였다.(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첨으로 회의에 초대받아서 회의를 들어갔는데 4Quarter어쩌구 하는 것이다. 난 그때 회의가 끝날 때까지 4쿼터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는데 끝나고 꼬치꼬치 물어보니 방송국 이름이랜다. 그렇다. 난 여지껏 방송국이름이 뭔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름은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맡은 건 엔지니어와 웹마스터였다. 난 원래 웹쪽 아니라 웹마스터엔 거의 무지했다. 내 홈페이지 만들어본 경험밖엔 없었다. 어쨌든 일은 진행되었고 웹마스터이기 때문에 사이트 제작회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곤 원의 시험방송도 진행이 되었다. 첫 녹음은 나 없이 고사장이 진행을 했고 두 번째 녹음부터 내가 참여를 했다. 두 번째 녹음은 나는 옆에서 구경을 하고 고사장이 진행을 하였다. 그러면서 고사장의 손동작과 음악이 나오고 들어가는 타이밍들을 관찰했다. 세 번째 녹음은 내가 오퍼레이팅을 하고 고사장이 내 손위에 손을 대거나 말로 가이드를 하며 녹음을 하였다. 몇 번 그렇게 진행을 하고 어느 날 고사장이 외부에 나가있어 녹음할 시간이 없게 된 날이 있었다. 그 날은 나 혼자 녹음을 했다. 그 후부턴 나 혼자 녹음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이크의 위치부터 음악의 타이밍 목소리 톤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해본 적이 없는 작업이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시험방송 몇 회를 게시판에 올려서 센터사람들에게 조언을 들었다. 시험방송이지만 홈페이지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하여 원준과 윤미가 그것을 만들어 오기로 하곤 만들어 왔는데 그것은 인터넷 피에스타 라디오페이지를 약간 변형해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맡게 되었다. 웹마스터는 나니깐... 나모웹에디터로 개인홈페이지 뚝딱뚝딱 한번 만들어본 경험인지라 홈페이지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을 상당히 하다가 원준, 윤미가 만들어온 홈페이지의 레이아웃을 조금 변경해서 올렸다. 그것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는 진이가 시험방송을 시작했다. 녹음을 하고 그것을 홈페이지에 띄우는 것도 상당한 작업량이었다. 그 작업들을 나무린씨의 컴퓨터에서 눈치봐가며 하다가 인터넷방송을 위한 새로운 컴퓨터가 들어왔다. 그 컴퓨터에서 관한 모든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디제이가 스크립트를 쓰고 난 홈페이지를 관리하는데 역시 한 대가지고는 부족했다. 그래도 별 대안없이 나는 틈틈히 컴을 쓰고 가끔 자리를 피해주며 다른 한 명은 무린형의 컴퓨터를 쓰고 원은 다른 곳에서 스크립트를 썼다.(정보기획팀이라던가 하자콜레지오방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됨). 사이트 제작회의는 사람들이 의견충돌이 많은 듯 했다. 모두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인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정말 산으로 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무린씨가 우리의 배에서 내렸다. 자기가 내린 건 아니고 무슨 일을 잘 해내지 못해서 제외되었다. 라디오팀에 배치된 인력하나가 도중하차한 것이었다. 어쨌든 배가 산으로 가서 사이트가 가망없게 나왔다. 테크노풍의 옛 전축같았다. 디자이너가 신경질적이라 무서워서 그 사이트가 별로라는 말은 못해보고 그냥 넘어갔다. ▶ 문제의 시작 사이트가 어땠든간에 드디어 우리의 정식 홈페이지가 나왔다. 그때부터 시험방송은 끝나고 제대로된 방송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우주인과 원준이가 합세하고, 하자힙합 찢어버려팀들도 디제이로 나섰다. 그때부터 나는 죽어났다. 날마다 거듭되는 밤색작업과 업데이트 밀림들이 시작된 것이었다. 흐흑. 낮에는 녹음을 하고 밤에는 홈페이지 업데이트를 했다. 사실 그때까지 난 업데이트 할 줄도 몰라 사이트는 1회에서 더 이상 업데이트 되지 못하고 있었다. 일주인지 이주인지가 가고 웹마스터 교육을 가키에게서 받았다. 간단히 업데이트를 하는 방법만 배웠는데, 밤샘작업의 연속이었다. 라디오방송국이 아닌 일반 홈페이지를 코딩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해야 했기 때문에 매일 그 복잡한 페이지하나를 더 만드는 것이었고, 지난 방송들을 축적하는 작업도 더해졌기 때문에 일이 배로 늘었다. 그래서 난 메인 방송인 원의 방송을 거의 매일 녹음하고 일주일에 세 번정도 진이 방송을 녹음하고 일주일에 한번 원준이의 방송과 우주인의 방송을 녹음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업데이트를 했다. 여러 개를 해야하는 날도 있었고 한 개만 하는 날도 있었다. 거기에다가 매일 밤을 새진 못해서 밀리기까지 했으니 밤샘은 매일이었고 매일 밤 새는 건 무리여서 업데이트는 계속 밀려만 갔다. 그러던 중에 20대인 한숨이란 사람이 디제이를 하고 싶다고 고사장과 연락이 되었다. 한숨은 20대였고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에서 일하는 회사원이었지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 받아들이자였던 그 때 시스템으로 그냥 받아 들였다. 물론 싫지도 않았고. 한숨까지 합세하여 나를 고생을 시켰다... 도중에 디제이들과의 충돌도 많았다. 주로 녹음시간이 제대로 안지켜지는 것과 스크립트 안써온 것 정도였는데, 녹음시간이 안 지켜지는 것은 나도 잘 지키지 않았고, 디제이들은 거의 벼락치기로 스크립트를 썼기에 녹음시간이 1시간 이상 밀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린 씨디와 엠피쓰리를 동시에 틀었는데 모든 오퍼레이팅을 내가 하니깐 디제이가 어떤 부분에 음악이 들어가길 원하는지 내가 정확히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이와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일단 내 근무시간과 진이 녹음시간이 처음부터 맞질 않았다. 나는 시간외 근무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스러운 것임을 보여주는 것마냥 근무시간외에 진이의 녹음시간이 떡하니 잡혀있었다. 그리고 또 원테이크로 가야 편집하는 것이 편한데 진이는 실수하면 엔지를 바로 바로 냈다. 사실 엔지가 나도 그냥 가는 것이 자연스러울 때도 있고 어색하지 않을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난 피곤해지는 것이었고 진이는 실수를 함으로 미안해져서 틈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옛날 일이라지만. 처음엔 편집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원의 방송을 처음 편집할 땐 1시간 쯤 걸렸다. 그런데 본 방송에서 인터뷰를 방송 중에 넣게 되자 인터뷰 첫 편집 때는 8시간인가가 소요되었다. 그 날은 쫌 과장하면 거의 사경을 헤매는 날이었다. 8시간 편집에 코딩해서 웹에 올리기 까지 해야하니... 웹이 하자의 인트라처럼 프로그래밍이 되어있었다면 하루에 몇 시간씩 걸리는 업데이트는 피할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날 대중음악방에 무급인턴이 한명이 왔다. 모모모는(이름을 잊어버렸다.) 나와 동갑이었는데 음향엔지니어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가 모모모는 하는일없이 대중방에서 낮잠자고 놀고 심심해하다가 고사장이 라디오하자에 내가 과로하는 것을 어떻게 해보려 라디오하자에 투입시켰다. 그래서 난 모모모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모모모는 왠지 의욕이 없는듯했다. 결국은 난 가르치는 일만 늘어났고 일이 줄지는 않았다. 모모모가 하자에 있은지 한참되서 세번쯤 녹음에 들어왔을 때 모모모는 서울에 메이져 녹음실에 오디션을 봐서 그곳에 들어가버렸다. 결국 짧은 만남이 되어버렸다. 참 재미없었나 보다. 그 후엔 내가 녹음실에서 실제로 녹음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없어져 버렸다. 원준이는 이제 방송을 안한다고 한다. 사실 디제이들이 그만둔다는 얘기는 처음은 아니었다. 처음에 나와 메인 디제이인 원만 돈을 받는 것을 보고도 불공평하게 생각하고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사실 돈을 주어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제발 시켜달래서 한 것도 아니고 라디오하자쪽에서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니 돈을 줘야하는 것도 맞다. 그리고 다른 디제이들이 생각하기에 같은 디제이인데 메인이란 이유로 원이만 페이를 받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일 것이다. 결국은 할 수 없이 다 주더라. 어쨌든 결정적으로 원준이는 그 문제로 그만 둔 건 아닌 것 같다. 자기가 듣기에 자신에 방송이 맘에 안드는데 그것을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혹은 그것을 바꾼다거나 아니면 자신의 특성들을 활용한 방송들을 만드는게 쉽지가 않아서 실패를 경험하곤 바로 나간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 프로그램을 만들 때 디제이가 피디며 작가의 역량을 다 소화하지 못해 마구리로 방송을 만들고 자신이 재미없음을 느끼고 떨어져 나가지 않게 디제이가 라디오 프로 하나를 만들때 케어해 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다.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경우였던 것 같다. 우주인도 자기 방송이 맘에 들지 않자 프로그램 개편 중이라는 이유로 녹음이 중단되었다. 원의 경우에는 조금씩 개편을 가하면서 그것을 방송으로 녹음을 했다. 원도 그 개편시간이 짧진 않았다. 두 세 번에 걸쳐서 변형되었기에 그 변화를 시키는 시간동안은 녹음을 하지 못했다. 한숨은 이유가 좀 달랐다. 직장인이기에 회사 일이 너무 바빠져서 녹음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안을 생각해낸 것은 집에서 집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녹음을 한 후에 그것을 라디오하자 컴퓨터로 전송하는 것이었다. 물론 음질은 떨어지겠지만 하자센터에 오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집에서 녹음한 것을 두개 받았지만 라디오하자 전면중단과 다름없는 상태로 진입하면서 그것들은 들어보지도 않았다. 진이는 꾸준히 계속 녹음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근무시간과 진이의 하교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매우 가끔 하게 되서 나는 가끔 진이의 방송만 녹음하게 되었다. 사실 모두가 자신의 방송에 지겨워했었던 것 같다. 라디오가 그런 상태에 들어가자 고사장은 라디오하자의 문제점을 살피게 되었다. 그래서 가장 눈에 보이는 문제점인 홈페이지를 바꿔 보자를 일단 얘기하였다. 그리곤 우린 베어스 타운에 콘도로 워크샵을 갔다. 대중음악작업장과 라디오하자의 워크샵이었는데 대부분 대중음악작업장 얘기였고 라디오하자에 관해 결정난 것은 사이트를 바꾸자였고, 아까 말했던 이젠 가버리고 없는 모모모를 라디오 엔지니어 교육을 해서 나의 작업을 줄이자. 또 나에 관한 것은 녹음실 일에서 손을 떼고 라디오하자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문제가 되었던 나의 근무시간 문제를 모모모를 통해서도 해결하고 여태까지 내일이었던 웹마스터와 엔지니어 중에 웹마스터 부분은 따로 한명을 뽑아서 내 일을 줄이자로 얘기가 되었다. 결국 모모모가 떠났고, 웹마스터로는 전에 우경이가 돈을 준다는 나의 유혹에 웹마스터 시켜줘 시켜줘 했기에 우경이를 추천해서 우경이를 웹마스터로 앉히는 것으로 진행이 되었다. 사이트 뒤집기는 우리의 사이트를 디자인한 유창재씨는 퇴사하였고 하자의 웹디자이너는 공석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디자인을 바꾸진 못하고 사이트 구조만 바꾸게 되었고 역시나 그전과 같은 모습이었고 문제의 업데이트는 우경이가 시험이니 뭐니 계속 미루는 바람에 그대로 밀려있는 상태였다. 그 상태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웹방 판돌이나 정보기획팀 판돌들이 당시에 '잘할거야, 하면 잘해' 이런 투로 얘기하더니 이럴 줄이야.. 라디오하자가 잘 안되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조한이나 종휘형이 자꾸 얘기를 걸어왔다. 내용은 그냥.. 뭐.. 라디오하자 잘해보자 였다. 그래서 그것도 상당히 오랜 시간후에 결정이 났다. 조한이 게시판에 띄우기로 라디오하자 10대 사장체제로 변신! 담당 판돌은 휘로 결정되었다. 사실 얘기는 이렇게 짧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길다. 조한은 대중음악방의 문제점이 뭐냐고 미팅을 했고 종휘형은 라디오하자가 어떻게 나갈거냐 때문에 밖에서 상당히 많이 만났다. 그런데 내용이 일일이 생각나진 않네.. 역시 일지는 몰아서 쓰면 안된다. ▶ 십대가 해보기 그래서 나름대로 진행을 시작했는데, 도중에 시민의 날 기념 신촌젊은문화축제 기획단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그 축제중에 피씨방 습격사건이란 프로그램을 우리보고 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피씨방 습격사건은 피씨방을 다른 문화공간으로 바꿔보자 뭐 이런 것으로 이해되는데 라디오하자의 디제이들이 피씨방에서 오프라인 이벤트를 하면서 그것을 온라인으로 생중계 하는 것이었다. 허접하게 할려면 그냥 하지만 그게 아니라 잘해보자 아니면 우리가 부하가 너무 많이 걸리면 우왕좌왕 일만 많이 하고 행사는 볼품없이 될테니 원이 주최측에 작가를 붙여 달라고 요구했다. 사실 이 피씨방 습격은 원이 맡아서 원이 이끌고 가고 있었다. 또 디제이는 원, 우주인, 진이 그리고 내가 하게 되었다. 원준은 관심없단다. 그래서 하기싫은 사람빼고 하자! 로 갔고 한숨은 회사일로 바쁠 것 같아 부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말이라도 해볼걸.. 재밌어 했을 수도 있고 아님 도와 줄 수도 있었을텐데.. 어쨌거나.. 작가가 오기 전엔 거의 회의가 없었고 한 번인가 두 번 있었던 거 같다. 주최측에서 기획서를 요구해 어거지로 썼다. 다른 애들은 자기가 하던 방송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갔고 나는 방송을 해보지 않아서 내 기획서를 보면 거의 무슨 말인지 알수가 없었다. 사실 그 내용은 정해진 내용없음 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곧 작가가 왔는데 원하고만 얘기하고 우린 왔는지도 모르다가 어느날 작가와 함께 회의를 했는데 작가가 매우 실망스러워했다. 우리는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고 다들 하기 싫어 죽으려는 분위기였다. 그 상황을 뒤집은 건 작가였다. 모두의 컨셉들을 골라내고 구체화시켰다. 그렇지만 나의 말이 안되는 컨셉은 어찌하지 못했다. 한 가지 고친 건 내가 조용한 노래를 한다고 하자 축제 분위기나는 신나는 노래로 하라고 한 것! 그런데 우리는 행사 1주일전에도 준비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인터뷰니 뭐니 다 정하고 공연할 사람, 홍보, 방송시간같은 것을 정했는데 홍보 같은 건 이미 시간이 없었고 행사 중 이벤트 같은 건 대부분 꽝나서 된게 없었다. 그리고 작게 조촐하게 통기타연주를 할 사람을 주위사람중에서 물색했다. 작가의 친구에게까지 전화를 해봤지만 되지 않았고, 그건 정하지 못했다. 결국 정한 것은 디제이별 방송시간과 순서, 그리고 어쨌든 사람이 있으면 통키타 공연을 하는 것이고 없으면 못한다였다. 방송은 윈앰프방송으로 실시간 방송을 하기로 했는데 거기는 키리라는 인터넷방송국에서 협찬을 받았다. 하나라도 꽝이 안났으니 참 다행스런 일이었다. 다음 번 회의는 채팅으로 하기로 했다. 사실 회의가 아니라 시험방송을 해보기로 한 것인데 다들 준비가 미흡한 관계로 역시나 계획대로 하지 못했고, 내가 테스트로 키리의 방송서버에 접속해봤지만 당일 날만 열어주는지 서버에 접속하지 못했다. 우리의 스크립트는 게시판에 써서 작가가 고쳐주는 방식으로 하였다. 채팅으로 회의를 하는 효과는 별로였다. 그것도 행사 하루전날 채팅으로 하는 회의는 정말 별로였다. 모여서 이것저것 준비해야 하는데 서로 답답해했다. 스크립트를 고치는 것은 작가가 봐줘서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채팅에서 정한 것은 행사당일 오전에 오프닝멘트들을 미리 녹음을 해가자는 것! 별로 말은 안되지만 필요하다면 해야쥐... 그리고 채팅을 하다가 전체축제 기획자인 김형기씨를 만나서 당일날 믹서를 준비해야 된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오.. 믿을만하지 못한 나의 준비성. 대중방에 고사장이 퇴근을 해서 믹서는 당일 오전에 빌리기로 하고 난 그날 밤에 스크립트를 다 완성하고 오프닝,클로징 시그널음악을 만들고 잠이든 시각은 다음날 아침 9시였다. 원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 와서 날 깨우고 녹음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다음날 원이 깨워서 일어났더니 오후 1시였다. 행사장에 3시에 도착해야 되는데 1시에 깨우다니.. 11시에 깨우기로 했는데 1시에 깨웠다고 신경질은 조금 내긴 하였는데 내가 피곤할까봐 늦게 깨웠다니 화는 낼수 없고 언능언능 녹음에 들어갔다. 어짜피 작가도 좀 늦게 왔다. -_-; 진이는 또 무슨 일이 있는지 화를 돋구는지 학교행사가 있다고 어디 좀 멀리 가서 바로 신촌으로 온댄다. 그래서 원과 우주인의 시그널과 전체 방송 시그널을 녹음했다. 녹음하는 중에도 PD의 역할을 작가가 다했다. 결국은 3시 30분에 출발을 했다. 장소를 미리 확인하고 가지 않고 약도도 준비해가지 않아서 가서 우리는 또 피씨방을 찾는데 해맸다. 통키타 공연은 네바다의 껌이 3시 30분에 하기로 했는데 일찍 도착해서 피씨방에서 3시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단다. 우리는 도착하니 시간은 4시였다. 또 이리저리 셋팅을 하고 방송국에서 취재를 오고 난리를 쳤다. 안그래도 늦게 도착해서 정신없어 죽겠는데 촬영을 하러 와서 참 괴로웠다. 나를 들들 볶는 중이었다. 셋팅이 다되니 5시.. 껌은 명동에서 공연이 있다고 그냥 가버렸다. 그냥 가는 것에 화가 났지만 2시간이나 기다렸고 공연이 있다니 할말이 없어 그냥 보냈다. 그래서 우리의 피씨방 문화를 바꿔보자는 쫑이 났고 그냥 윈앰프 방송만 진행했다. 방송이 딜레이되고 홍보가 너무 안되서 청취자가 거의 없었다. 채팅방을 열어놓고 했지만 요새 채팅하면서 방송하는 CJ(Chatting Jockey)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 방은 1명쯤 들어 왔다 나갔다 했다. 피씨방 내부에서 전단을 돌려도 피씨방 사람들은 오락하기에 바빠서 관심이 없나 보다. 작가는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우리 채팅방을 채웠고 그래서 청취자는 3명정도 되었다. 한 명은 친구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고 참 재밌게 갔다. 결국 작가의 친구 서너명과 우리가 게임방에서 트는 것 2개까지 포함해서 최대 청취자가 12명이었다.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는데 방송국 사람들 항상 그렇듯이 방해를 하는 것이 역시 오늘도 계속되었다. 너무너무 귀찮아서 일이 많을 땐 카메라나 감독한테 약간의 신경질까지 냈다. 그래도 나중에 안정이 좀 되고 다른 CJ가 방송을 해서 내가 좀 시간이 날 때는 화가 좀 풀려서 인터뷰를 해줬다. 그래도 안해주면 쫌 그러니깐. 쩝. 어쨌거나 그렇게 사람없이 이끌어 갔는데 내 방송을 할시간이 되니 8시였다. 원래 우리 프로그램은 4시부터 8시까지여서 게임방 장소대여가 8시까지만 되어있었다. 그래서 결국 난 말 한 마디 못 내보내보고 그냥 돌아왔다. 사실 나한테는 첫 방송이었다. 난 디제이가 아니라 엔지니어였기에 한번도 해보지 않은걸 그렇게 열심히 준비까지 했는데 그냥 가는 건 좀 아까웠지만 뭐.. 할수 없지 하며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그런 경우에 웃는 얼굴로 끝내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뒷탈이 없지.. 하여간 PC방 사장은 큰 판을 돌릴 줄 모르는 사람같다. 그리 크지도 않지만 나같으면 1시간 더 주는 거 그냥 좀 해주겠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단 이런 쪽에서 무슨 행사를 할 때 다 그 피씨방을 찾아가게 기회를 이용할 수도 있을텐데.. 나같으면 그렇게 해서 동호회나 클럽같은데서 신촌에서 뭐만 하면 그 피씨방을 이용하게 하겠다. 요새 정기모임이나 번개 같은 것도 많은데... ▶ 라디오하자 새로 만들기 피씨방 프로젝트도 끝나고 이제 다시 라디오하자에 전념했다. 여러 번의 회의 끝에 결론은 '라디오하자를 이노베이션하는 것이 아니라 라디오방송국을 새로 만들자. 그리고 라디오방송으로 가되 멀티미디어로 소리뿐 아니라 영상, 그림, 사진 등을 방송 이곳 저곳 필요한 부분들에 넣자. 그리고 종휘씨와 원, 내가 사장의 역할을 맡아서 하고 돌리는 건 원과 내가 하자활용하는 문제, 하자시스템 문제, 돈 문제 같은 것들은 종휘씨와 의논하자'로 결정되었다. 그후로 '아~ 잘해보자! 새로운 마음으로!'를 다짐하며 전념하였다. 우리는 라디오 방송국이 잘되기 위해서는 좀 대중적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느낌에 여태까지의 방송들은 소수의 10대들만이 들음직한 방송이었다. 그래서 다수의 십대들이 듣게 하기 위해선 우리 방송을 같이 만들면서 코멘트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이왕이면 경험도 있는... 그래서 떠올린 사람이 신촌축제 때도 같이 했던 강민정씨다. 강민정씨는 우리와 일하는 것을 즐겁게 생각했고, 잘 맞으며, 우리를 맘껏 갈궈줄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방송국에서의 경험도 있으니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마음에 약간 걸리는 것은 아직 하자센터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하고 하자센터의 이미지랑 쫌 맞지 않는 것 같은 것이 걸리긴 했다. 어쨌거나, 강민정씨를 원도 맘에 들어했기에 우리는 강작가를 끌어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코멘트보다는 처음에 방송 컨텐츠를 기획할 때 우리와 함께 하기로 하고 제안을 했다. 강민정씨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틀 후에 답을 주겠다고 했다. 그 대답을 할때 반응과 표정은 이미 승낙을 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판돌인 종휘씨에게 우리가 작가가 필요해서 사람을 구해서 얘기를 해 논 상태임을 말하고 그 외에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일단 CD에 우리가 여태까지 방송했던 것을 넣어서 100장쯤을 만들어 설문지와 함께 돌려 여태까지 방송했던 것들에 대한 평가와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에 대한 10대의 관심도와 취향을 조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른 자잘한 내용들을 전달했다. 우리는 그전에 돈과 관련된 예산일에 신경을 너무 썼기에 많은 것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만나서 생각한 날도 얼마 안되는데 대부분은 예산 얘기를 했으니 모자랄 수밖에 그 날 전달한 내용은 정말이지 부실했다. 그걸 깨달은 건 그것을 종휘씨에게 얘기하면서 알았다. 나는 종휘씨가 어떠한 대답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쏙 빼놓았었다. 종휘씨는 원과 나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그림을 듣고 싶어했다. 사실 라디오방송국이 잘되려면 방송이 좋아야 되는데 헛것들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난 방송보다는 기획일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로 그것을 빼놓았다는 얘기는 아니고, 약속을 잡아놓고 그때까지 일을 하다보니 미쳐 하지 못했다. 그리고 물론 난 특별한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종휘씨가 우리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원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상당한 고민거리였다. 질문내용은 방송을 하면서 경영에도 참여하는 DJ가 될 것이냐 아니면 경영을 할거냐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방송은 그냥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내 관심은 기획자의 역할에 있었다. 그래서 난 경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라 기회가 왔나 했더니 가는게, 또다시 해본 것들 재미있지 않은 것들로 돌아가라고 하기 때문에 고민이었던 거다. 아이들이 기회를 찾아 다니지 않고 기회는 항상 오고 잡기만 하면 되게... 젊어서 고생은 사서 안해도 되는 것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했건만 그런 얘기를 하니 고민이 좀 되었다. 더군다나 웹마스터를 하라고 한다. 사실 여태까지 이름만 웹마스터였지 웹마스터에 일을 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그걸 하란다. 다들 내가 할 줄 아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웹을 배우면 좋긴 좋지만 그 일을 맡고 나면 시간에 쫓겨서 배울 시간이 없어져 버린다. 어쨌건 내가 별로 재미있어 하지 않는 일이다. 엔지니어도 마찬가지다. 엔지니어는 재미없다기보단 재미있지는 않다. '라디오엔지니어'말이다. 참 심심한거 같다. 어쨌거나 샘플씨디에 대해선 종휘형은 내 방송도 넣으라고 했다. 그래서 겸사겸사해서 내 방송도 반응을 알아보란다. 그래서 난 씨디에 넣기위해 내 방송을 다시 녹음하여야 했다. 내 시험방송을 녹음하는 것은 정말 무슨 내용이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컨셉도 없고 무슨 내용으로 갈지, 어떤 분위기일지 전혀 정해놓지 않은 상태. 컨텐츠가 없는 상태에서 곡만 뽑아 들고 녹음실로 들어가서 녹음을 하는 것이 전부다. 난 모든 곡을 다 조용한 곡들을 뽑아서 갔다. 내가 참고한 방송은 SBS FM에서 하는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방송은 내 또래 애들이 정말 좋아하는 방송인데 선곡들이 다 조용한 노래들, 흘러간 노래들이다. 그래도 애들이 듣는 이유는 정지영씨의 목소리가 좋기 때문이었는데 내가 그 방송을 따라한다고 한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참 웃기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때 난 그렇게 했다. 조용한 노래들을 가지고 빈 녹음실. 아무도 없는 녹음실에서 녹음을 했다. 말을 자꾸 버벅대고,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하면서도 어색했다. 어쨌건 멘트도 생각나는대로 했던 말 계속하면서 다하고 방송을 끝냈다. 그것을 CD로 만들어서 내가 아는 사람들을 듣게 한다고 생각하니 참... 창피했다. 어쨌거나 그 CD는 80장정도 제작되어서 돌려졌다. 총 4트랙으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는 원의 방송했던 것 중에서 변영주 감독을 인터뷰한 인터뷰 내용이고, 두 번재 트랙은 원의 방송 4회중에 일부분을, 세 번째는 이 씨디제작을 위해서 앞으로 할 방송을 미리 녹음해본 Sex Interview가 들어있고, 마지막 트랙은 내 방송이 들어있다. 설문내용은 인터넷으로 라디오 들어봤나요, 어디가 좋던가요 등의 인터넷라디오방송에 대한 설문이고, 또 하나는 녹음되어있는 방송의 선곡은 어떤가요, 분위기는 어떤가요, 내용을 알겠나요 등의 우리 방송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원래 계획은 씨디를 돌리고 10일 만에 설문지를 다 회수하는 것이 계획이었지만 잘 걷히지도 않았고 잘 뿌려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설문지를 회수하는 것이 어렵고 멀리사는 애들을 위하여 라디오하자사이트 문을 닫고 그곳에다 설문을 할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들어 버렸다. 간단하게 CD내용을 인터넷상에서 들어 볼 수 있고 설문내용을 답을 할 수 있게 꾸며 놓았다. 그리고 원래는 10월 말까지 사이트기획과 필요한 사람들 섭외하는 것들과 원의 방송이 확정을 짓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하나도 해내지 못하고 11월이 왔다. 결국 우리는 다시 추진력있는 종휘씨의 진행아래서 계획을 잡아나갔다. 그래도 대충 방송의 윤곽이 드러난 것은 강민정씨가 작가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강작가가 원의 방송을 좀더 구체적으로 계획 잡을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우린 시동을 걸기 위해 기름을 거의 채우고는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전에 질문한 경영에 대한 문제 얘기가 나왔다. 난 하고 싶은 일을 해보려고 경영으로 참가하고 싶다고 얘길 했다. 그러나 결국 엔지니어와 PD를 하면서 DJ를 하기로 되었다. 그래서 내 방송도 강작가와 함께 준비했다. 내가 얘기를 자꾸 꺼내자 강작가는 나의 시니컬한 말투에서 정확하게 뽑아내어 TV가요프로그램을 잼있게 꼬는 그런 프로그램을 얘기했다. 내가 들어도 재미 있을 것 같아서 그걸로 결정을 하고, 내가 세부안을 짜오기로 했다. ▶ 이렇게 마무리 몇 일이 지났는데 원이 조금 꼼지락꼼지락하고 하는 듯 했다. 난 개인적인 고민이 있나보다 하고 그냥 넘겼는데 몇일이 또 지나고 슬쩍 말을 했다. 원이 말하길, 원이 생각했던 것하고는 너무오래 긴 시간동안 달랐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이렇게 할 수 없이 계속하는 것도 아닌거 같다고 한다. 그것이 갈등이 된다고 한다. 종휘씨는 원이 고민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서는 지금은 힘들지 않게 놔주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또 한가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도 하자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말도 공감한다고 하고는 원을 라디오하자에서 빼내었다. 그리고 라디오하자는 이제 메인DJ가 부재중이니 잠정중단을 선포했다. 그리고 잠정중단을 하면 급여가 당연히 나오지 않아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당연한 것임에도 달래듯이 말하고는 라디오하자를 잠정중단 시켰다. 그리고는 나중에 하자콜레지오의 경영학부를 위해서 또 하자 창업프로젝트 평가를 위해서 모두들 일지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한 얘기에 의해서 쓰고 있다. 나의 기억력이 어찌나 후졌는지 많은 사건들이 시간과 관계없이 엉켜있음에 안타까운 맘을 끝으로 끝. 하자에서의 인턴쉽(2001년 6월) ▶ 창업프로젝트 2호 라디오하자의 창업 실패, 뭐가 문제야? 일지는 저번에 썼는데 평가서는 어떻게 써야할지... 일단 라디오하자 중단 시기에 이렀을 때를 중심으로 글을 쓴다. 라디오하자가 개편될 때 고기모씨가 퇴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죽돌-판돌관계 문제로 인해 사직하며 이 사실의 공론화를 요청한다" 결국은 라디오하자의 문제지점은 죽돌과 판돌간의 공동작업에 있었다. 이것이 10대와 20대의 세대간의 공동작업에서의 문제점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하자안의 약간 다른 특수성으로 하자에서의 죽돌과 판돌의 파트너쉽으로 얘기가 빠지게 된다. 이 얘기는 예전에 많았으니 일단 제쳐두고. 일단 라디오하자는 인간관계에서 빚어진 문제점으로 실패한 회사이며,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성공적인 프로젝트이다. 내가 하자프로젝트로 들어온 첫 시작이면서 그 프로젝트가 소통의 문제로 실패했다. 사실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었던 사람은 라디오하자에서 나 뿐이였다. 내가 어떻게 좀 했더라면 잘되었을까? 모든 디제이들과 만나고 사장과 만나고 중간통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다. 사실 소통이란 얘기가 나오기까지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 메인디제이말고는 방송에 대해서 코멘트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 역할도 내가 해줄 수 있었던 부분이고... 사실 난 위에 보고서에서 보듯이 채용과정에서부터 나는 그냥 녹음을 해주고 올려주는 일만 하면 되는 사람이었다. 어떤 필요가 있었던 내가 느낄 때 그랬고 그 필요가 공식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오지도 않았다. 사실 그것을 내가 catch해서(한글로 쓰니 이상해서) 맞쳐 주었어야 했지요. 저는 라디오하자를 할 때 정말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어요. 참여도 정말 그냥 테크니션으로 참여하였죠. 하자로 깊숙이 들어왔지만 정말 많은 것을 보지 못했죠. 사실은 창업당시에도 지적을 한거지만 판돌이가 주체가 되어서 십대 창업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에 참 안될 것 같다는 말에 모델케이스를 만든다는 말로 받아쳐서 그냥 잘 되길 바랬는데, 라디오하자나 명함하자나 지금 확실한 모델케이스를 보여준 것 같아요. ▶ 하자, 프로젝트, 인턴, 업그레이드 여기서 인턴이란 부분이 생각나는데. 하자에서 인턴은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라 한다. 난 뭘하든지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는 편인데, 물론 인턴도 그렇다. 그런데 인턴은 일을 하면서 배운다고 했을 때의 배움이란 뭘 배우는 것일까를 다시 생각해본다. 업무보조인턴. 라디오하자에서는 (초기에는) 어찌보면 업무보조인턴이었던 것 같다. 물론 창업프로젝트에서 어떤 프로젝트 진행하고 기획을 해야하는 인턴이지만, 이 문서에서 보듯이 (초기에) 난 단지 그냥 "일"을 하는 인턴이었을 뿐이다. 물론 일을 배우기도 하는데, 그걸로 될까? 일을 배우는 것은 어디 가서 일을 하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 뭘 배울까? 뭘 배울까? 다른 것이 있을 것 같은데. 영준씨의 "업무보조인턴을 인정하자"라는 말이 글을 쓸 때부터 반짝반짝했어요. 지금 외부에서 대학에서는 센터에서 실습을 하고 싶어하는, 자원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대학생이 참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도 십대가 그 일을? 이왕이면 센터의 아이들에게 돈벌이를 주자라는 것이라면 그 부분에서는 좋지만. 뭔가 배운다면 그래도 하자센터에서 뭔가를 배운다면 한 작업장에서 "작업자"이던 아이들이 작업자인 동시에 "기획자"가 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인턴쉽을 거치면서 해야 되는게 아닐까요? 죽돌이들이 바뀌는 모습을 보아도 그 계기가 결코 업무보조인턴은 아닌 것 같아요. (쓰다보니 말투가 바뀌었네요. 한 눈 팔았다 다시 써서 -_-; 이해하세요.) ▶ 담당판돌 창업프로젝트에서 전 담당판돌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하며 제대로 배우지 못했죠. 원이의 보고서를 읽어보면 참 그랬던 것이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을 뿐이지 케어해줄, 어긋나게 가고있을 때 멈춰 세워줄 "담당"판돌이 없었어요. 내가 안보이는 것을 보고는 앞으로 볼 수 있는 더듬이를 갖게 해줄 담당판돌이 없었죠. 그냥 그랬다구요. 흐지부지 하게 끝나는 글이 또 하나 늘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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