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하자 인턴보고서 (2001. 6. 16, 디자인실장, 남이, 18세)

요즘 들어 나에게 가장 큰 화두는 내 힘으로 먹고 살기와 진로문제이다. 그 중에서도 부모님께 더이상 경제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필요한 돈을 내 힘으로 충당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10대가 자기 힘으로 먹고 사는 데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아쉽게도 무언가를 배우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하자센터의 경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기'의 타이틀을 내걸고 이와 관련된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10대 창업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두 개의 사업이 출발하였다. 명함하자와 라디오하자.
두 사업은 10대에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기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수입 창출면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6월까지 파티 기획 스탭으로 일하고 있던 나는  명함 디자이너로서의 제의를 받고 같이 일하게 되었다.  명함 샘플 만드는 일, 주위를 소재를 잘 가공하여 디자인에 활용하는 방법, 편집디자인의 기초격인 레이아웃 잡기 등등을 차례차례 익혀 나갔다. 명함 샘플이 만들어지자 여러가지 홍보 수단을 통해 명함 사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돈을 받고 명함을 만들어 주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명함 사업을 무엇이었나.

괴롭고 빠져나가고 싶은 이미지가 넘친다. 학교에 가기 싫은 아이가 학교 기둥에 묶여있는 격이랄까? 비유가 너무 심한가?

때로는 명함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이 지나친 스트레스가 되었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묶여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피곤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하나의 약속이라고 볼 수 있는 업무들을 처리할 때 옳바르지 못했던 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을 어겼고, 그들에게 정신적, 시간적 피해를 입혔으나 아직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명함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일했던 다른 친구들 또한 약속을 어기는 일이 빈번해 졌고 점점 더 해이해 졌다. 어떤 한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업에 대한 개념자체가 불분명한 탓도 있었던 것이다.  창업이란 어떤 의미인지, 그 프로젝트를 통해 나 자신은 어떤 역할을 하고 발전할 수 있을지 등등에 대한 전망이나 계획이 부족했다. 동기부여 자체가 외부에서 된 느낌이다. 내 자신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계약직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고 어떠한 노력이나 시도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명함을 만들기 원하는 명함 수요자들과의 관계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나에게 잘 맞는 일이라고 느껴졌지만 실무 부분에서 약속 지키기와 명함 개발이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양한 계층, 다양한 요구 등에 박자를 맞추어가며 디자인을 권하기도 하고 이미 있던 샘플 외에 새로운 디자인을 원하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사람 만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수동적인 태도는 큰 문제였다. 내 사업, 혹은 우리 사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과 더불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행동하기보다는 돈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생과 마찬가지로 사업이 망하든지 흥하든지를 따지지 않았다. 명함 사업을 통해 할 수 있었던 여러가지 경험은 활발하게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예를 들어 릴레이 명함 인터뷰의 경우 명함을 매개로 하는 인터뷰였는데 1회로 끝나 아쉬운 감이 있다. 명함 하자 명함북이라든지 명함에 들어가는 로고를 모으는 일 등의 재밌는 프로젝트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깝다.

명함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나에게 생긴 버릇이 있다. 디자이너에게는 정보 수집이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어딜 가든지 명함을 신경쓰게 되는 것이다. 명함첩을 만들어 음식점의 명함, 한 사람의 여러 종류의 명함, 전문직 종사자의 명함 등을 따로 모으게 되었다. 그것을 가지고 디자인 분석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같은 파스타 전문점인데 명함이 주는 느낌이 A라는 업소는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반면, B라는 업소는 후진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잘된 디자인이 주는 느낌이나 명함을 받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영향, 디자인에서 강조되어야 할 부분 등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가 있었다. 또한 명함 샘플을 만들고 샘플을 만들기 위한 재료등을 찾아가면서 디자인의 소재를 선택하고, 소재를 알맞게 활용하는 법, 소재를 가공하는 여러 도구를 익힐 수 있었다.

지금까지 명함사업이 내게 준 역기능만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였는데 사실 명함 사업을 통해 얻었던 교훈과 후회되는 점들과는 다르게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자기 힘으로 먹고 살기의 처음 시작,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7월 명함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고정적인 수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아서 썼었다. 그러나 명함 사업을 계기로 부모님으로부터 조금이나마 경제적 독립을 하게 되었고 이것으로 부모님께 신뢰감을 줄 수 있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10대와 어른의 차이는 일을 남겨두고 그냥 가느냐, 아니면 밤새도록 일을 해서 제 시간에 해결하느냐라고.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사람은 책임감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책임감과 자발성. 이 두 가지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임과 동시에 나와 같은 10대들이 창업을 하고 하자에서 또다른 창업 프로젝트가 만들어질 때에 꼭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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