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도착!, 무서웠던 YoYoGi Park (2000. 7. 8. 토 / 부희)

김포공항에서 나리타공항으로, 나리타공항에서 올림픽센터로 이동한다. 처음 타 본 비행기. 그런데 비행기를 타는 건 너무 귀찮은 게 많다. 버스나 기차를 타는 것과는 달리 이것저것 준비해야 하고, 적어야 하고, 확인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심지어 여행사 직원의 실수로 나는 필요도 없는 병무신고까지 하느라 전날까지 뛰어다녀야 했으니까 이렇게 도쿄에 와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우왕좌왕하는 사건들이 많았다.

아무튼 조한 선생님, 통역을 담당해준 양선미 누나, 지원이와 함께 나리타공항에 도착했을 때, 2월에 하자센터를 다녀간 도쿄 슈레(Tokyo Shure)의 스탭과 학생이 마중 나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오지(Oji) 도쿄 슈레의 아사쿠라 가게키 선생님과 수나가 유이지였다.) 그들이 준비한 버스를 타고 올림픽 센터로 향했다. 저녁쯤 올림픽 센터에 도착하니 먼저 온 꼬라지들, 민희, 남이, 비키, 캔디와 희옥스, 그리고 간디학교의 혜정이가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걱정했던 것처럼 먹기 어려운 일본음식이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맛있고 푸짐한 음식에, 특히 자몽쥬스가 인상적이었다. 

저녁에 사람들과 산책을 나갔는데 어쩌다보니 혼자 걷고 있었다. 낮에 도착했을 때 근처에 너무 예쁘게 보여서 들어가보고 싶었던 공원이 생각나 찾아 들어갔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공원은 젊은이들의 공원으로 유명한 요요기파크였다. 가던 길에는 문이 없어서 담을 넘어 들어갔는데 좀 음침하게 느껴져서 혼자 온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낮에 봤던 예쁘고 큰 개나 새들은 찾을 수가 없었고 곳곳에 모여서 불꽃놀이를 하거나 시끄럽게 떠들거나 하는 한국공원의 밤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는 일본젊은이들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디선가 쿵쿵거리는 음악소리가 들려서 그쪽으로 계속 걸었는데 그게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혼자 기타를 치거나 구석에서 트럼펫을 불거나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올림픽센터로 돌아가려고 돌아섰는데 아무래도 길을 잃은 거 같았다. 갑자기 공원에 있는 모든 게 무서워져서 발걸음을 빨리 했지만 공원을 빙빙 돈 건지 분명히 앞으로만 걸었는데도 아까 봤던 기타 치는 두 소년이 또 보이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주인공이 헤매던 호러영화들 몇몇 장면들이 떠올랐다. 공원 지도를 봐도 알 수가 없어서 빙빙 도는 걸 두 번이나 하고서야 방향을 알아차리고 올림픽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무서운 밤이었다. 하자친구들에게는 자세한 얘기 없이 잠을 청했다. 피곤한 하루였다. 그러나 내일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된다.

0801.jpg날씨가 좋지않아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조금 일찍 도착했던 한국과 이스라엘팀들은 하염없이 다른 참가자들을 기다려야 했다. 8년전 초대개최국이었고, 2001년 개최국인 이스라엘은 가장 많은 일행들과 왔다.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지만, 처음부터 우리에게 호감을 보여준 키부츠 지역의 Eynot Yarden School에서 온 Gadi Lahav교장을 만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그는 아이덱 기간 내내 우리를 반겼고, 결국은 하자센터와 '교환학생'을 하면 어떻냐는 제안을 해왔다.







영어의 장벽이 드러나기 시작한 Marion Hall의 첫 회의, 야마치 군과의 만남
(2000. 7. 9. 부희)


일정이 시작하는 날이다. '어린이와 함께 만들고 어린이가 만들고'라는 주제로 시작하는 토론회가 있었다. 오늘 일정의 모든 것이 올림픽센터를 떠나 시내중심가인 긴자의 마리온 아사히홀에서 이루어 졌다. 북치는 소년, 소녀들이 나와서 북을 치는 것으로 아이덱 개최를 자축하는 공연이 있었고, 도쿄 슈레 학생들의 현대화된 전통춤이 선보여졌다. 이 전통춤은 우리들의 초대로 나중에 서울의 유스 페스티발 2000의 무대에도 올려졌다.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몇 가지의 소개가 있었고 간디의 증손자인 아룬 간디의 강연이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건 꼭 아침 조회때 교장선생님이 훈화를 듣는 느낌이었지만, 비폭력적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부분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현재의 어떤 교육도 일상생활에 퍼져 있는 폭력성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일반화된 규율로 아이들을 훈육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개인들과 구체적인 만남 속에서 민주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실제로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어떻게 아이중심의 교육을 실천했었는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그저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그 간디는 참 좋은 사람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간에게 분노라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우며 때로 정당하기까지 한데 문제는 그러한 분노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것은 흥미로운 지적이었다. 아룬 간디의 말이 있고 나서는 대안학교들의 설립자나 교장들의 토론회, 그리고 아이들의 토론회가 이어졌는데, 이때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이때를 시작으로 IDEC기간 내내 영어의 중요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얘기는 뭔가 다른 말이 나올까 기대했는데 대충 짐작하기로는 전에 도쿄 슈레 아이들을 만났을 때 들었던 말들과 너무 비슷한 말들이라, 지구 모든 곳이 우리 나라와 비슷한 그런 문제들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지만 좀 짜증스럽기도 하고 지루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토론이 끝나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일본의 춤추는 아이들이 나와서 끝을 장식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럿이 일렬로 서거나 원을 만들거나 하면서 율동을 하며 노래했는데 의자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일어나서 율동을 따라했다. 별 것 아닌 것이면서도 사람들이 많이 즐거워했고 그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우 즐거워하며 즐겼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점심은 긴자의 음식점에서 샤브샤브를 먹었다. 뜨거운 국물에 얇게 저민 쇠고기를 데쳐 먹는 음식이었는데 양이 적은 것만 빼면 괜찮은 음식이었다. 오는 길에 다카라주카라는 극장을 구경했는데 조한과 희옥스는 매우 즐거운 표정이었다.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극단의 극장이라는데 우리 나라의 국극 비슷한 것인가 보다.

저녁 식사 후, 희옥스와 선미누나는 대표자 회의에 참가해야 한다고 해서, 모두들 일요일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파티를 한다는 요요기 파크로 갔다. 어제 들었던 그 소리의 정체도 알게 되었다. 공원 한 구석에서 디제이들이 디제잉을 하고 그 앞에서 사람들이 재밌게 춤추고 놀고 있었다. 한국, 일본 디제이들, 춤을 추는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들이 별로 다른 모습이 아니어서 그 비슷한 모습이 또 한번 신기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 곳은 우리 나라에도 있을 법한 평범한 공원인데 그렇게 파티하는 걸 보니까 우리 나라도 공원에서 이런 파티 있으면 진짜 재밌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 하자의 디제이가 된 지원은 그 모든 소리를 녹음하겠다고 MD를 꺼내들고 다닌다. 서울에 돌아가면 자기 프로인 4QUARTER(radio.haja.net)에서 이곳에서 녹음한 소리들을 테마로 한 방송을 계획 중이라고 한다. 그 애는 이런 평범한 공원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라면서 매우 즐거운 표정이다. 조금 구경을 하다가 공원의 다른 곳을 돌아다니니 힙합 디제잉을 하는 것, 통기타들고 노래를 하는 것, 밴드가 공연하는 것, 북을 치고 플룻을 부는 것 등 공연장도 아닌 곳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연주하고 즐기는 그런 모습 많이 볼 수 있었다. 스타일은 다들 다르지만, 저마다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자기가 하는 것을 즐기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0901.jpg이스라엘의 하데라스쿨, 영국의 샌즈스쿨, 인도의 버터플라이스툴의 청소년들이 나와서 '어린이들이 만들어 나가는 교육'을 주제로 자신들의 경험을 발표했다. 작년에는 가장 재미있는 코너였다는데, 마리온에 모인 8백명 가까운 청중들에 질린 탓인지 세 아이들은 그 다지 적극적인 토론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아이덱 기간 중 등록했던 일본인 수는 천 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일본도 교육문제가 심각한 줄은 알지만, 교육관계자가 아닌 학부모 등의 일반대중에게서 이만큼 교육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욕구를 보게 된 것은 뜻밖이었다. 




0903.jpg알고 있는 영어단어들은 물론 손짓, 발짓이 다 동원된 힘겨운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곳에서 얼마나 얻어갈 수 있느냐는 바로 그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어려운 대화상대는 일본의 청소년들이었는데, 미국영화도 안봤단 말일까? 어째서 간단한 인사말도 알아 듣지 못한단 말일까!하고 한탄했지만, 곧 그것은 감탄으로 바뀌게 되었다. 아이덱이 끝날 무렵 일본의 청소년 스탭들은 비록 간단한 단어들이긴 했지만, 우리에게 영어로 말을 건네왔던 것이다. 





0902.jpg가운데 길다란 노랑머리 소년으로 보였던 사토시 야마치군. 알고보니 그는 스물 세 살이나 된 청년이었다. 십년이나 길렀다는 머리가 눈에 띄기도 했지만, 가장 춤을 잘 추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쨌든 곧 하자에서 열릴 유스페스티벌 2000의 무대에서 춤을 추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실제로 서울에 와서 춤을 추게 되었다. 매우 내성적이라는 그는 춤을 출 때의 격렬한 태도와는 달리 무대밖에서는 매우 수줍음을 타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야마치군은 이때가 대중앞에서 춤을 춘 첫 무대였는데, 우리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게 되어 무척 놀랐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0904.jpg 이스라엘의 전통춤. 가운데 열 살 짜리 꼬마 리르(Lir)는 아이덱 내내 남이의 바지자락을 잡고 따라다녔다. 종이접기를 매우 좋아하고 잘 하는 리르 덕분에 우리 모두는 종이꽃, 종이새, 종이탁자 등을 하나씩 가지게 되었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꼬마였다.







0905.jpg다카라주카 극단의 포스터 앞에서 지원의 포즈. '하이틴 로맨스'에나 나옴직한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극단의 뮤지컬들은 비교적 중하층계급의 주부들에게 매우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부들은 시장가는 척 장바구니를 팔에 끼고 값비싼 선물을 사들고는 이 극장을 찾아와 남자주인공역을 하는 여배우들에게 바친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6-8만원하는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이 극장은 연일 만원이라고 하는데, 가부장적인 남편과 자식들에게 질린 주부들은 부드럽고 낭만적인 노래를 부르는 이 남장여자들을 진짜 남자들보다 더 동경한다.




0906.jpg다카라주카 극장 앞에서. 유스페스티발 2000의 홍보사절이라는 임무를 띄었던 우리 다섯 사람만이 찍힌 유일한 사진이다. 홍보사절로서 우리는 준비해간 자료와 일회용 사진기를 아이덱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면서 각자 고국에 돌아가게 되면 그곳의 일상과 활동을 찍어 우리에게 보내달라는 부탁을 했다. 왼쪽부터 지원, 비키, 부희, 남이, 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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