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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프라이넷, 그리고 테가의 언덕 소년 자연의 집으로 가다. (2000. 7. 12. 수 / 비키)
정신없이 짐을 버스로 끌고 가면서 오늘의 일정을 체크해 본다. 솔직해 다른 아이들처럼 하라주꾸나 아사쿠사, 그리고 아끼하바라로 싸이트씨잉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제 방문했던 '재팬 프라이넷'이라는 프리스쿨의 가족적인 분위기에 취한 나머지 그 곳 관장이신 히로시 코하타 아저씨한테 오늘 있을 '재팬 프라이넷'의 프리젠테이션에 꼭 가겠다고 했던 나로 인해 결국 못 갔다. 내가 재팬 프라이넷에 관해 어제 알게 된 것들은, 3년 전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코하타 아저씨의 지원아래, 25명 정도의 10∼15살의 소년, 소녀들이 학교를 안 가도 좋다는 부모의 승낙을 얻어 독서와 글쓰기 등 원하는 것들을 배우며 날마다 각자 스케쥴을 짜서 공부한다는 것이다. 웅... 어쨌든 그렇게 돼서 코하타 아저씨에게로 갔다. 갔더니 재미난 걸하고 있지 않은가? 몸의 언어라고 해야 맞나? 쿠쿠... 음악 틀어 놓고 몸을 움직이고 부대끼며 놀았다. 이땐 그래도 재밌었는데... 한참 그 짓을 하다 의자정리 하고 드디어 본격적인 프리젠테이션에 들어갔다. 야그는 재팬 프라이넷의 원조격인 프랑스의 프라이넷으로부터 시작했다. 1982년에 세워진 프랑스의 프라이넷은 공립학교의 대안학교이며,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에 규칙이 엄하고, 영국에 있는 건 그 보다 덜 하다구 한다. '재팬 프라이넷'은 프리스쿨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분위기에 코하타 자신의 맘대루 학교를 운영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쨌든 코하타 아저씨가 최소한 가르치고 싶어하는 것은 자기나라 언어와 생각할 수 있는 마인드라고 한다. 생각할 수 있는 마인드는 그렇다치고 자기나라 언어면 일어를 말하는 것일텐데 이번 아이덱에 참가하면서 느낀 것은 영어는 필수라는 것이다. 일어만 해서 어쩌겠다는 거지? 그렇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만큼 자기나라 언어조차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겠지? 거기까지 생각하니까 코하타 아저씨한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아저씨의 교육방식은 1:1교육과 스스로 교육이라고 한다. 재능교육선생인 줄 알았다.-.-; 뭐 잘만하면 좋은 방식이긴 하지... 말은 쉽다... 스스로... 1:1... 스스로... 1:1... 질의 응답시간이 되었다. 한 아저씨가 교육에 있어 대화의 중요성을 물었다. 코하타 아저씨의 대답은 언쟁을 하더라도 불만을 말하고 대화를 해야 민주적인 교육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말과 함께 프리스쿨에서도 벌이 필요하다고 보며, 학생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 여름방학 과제로 벌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써오라고 했다고 한다. 어떤 반응들이 나올지... 어쨌든 일본의 한 공립학교 선생님은 심각한 말투와 표정으로 자신은 학생들한테 자신의 의견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부모들은 그걸 싫어 하다는 것이다. 사회로 나가면 좋은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그래서 코하타 아저씨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하자, 장소나 시간을 정해서 자유롭게 토론을 하되 너무 자유로운 건 학생들한테 좋지 않다고 했다... 웅... 야그가 넘 뻔하게 가는데... 프리젠테이션 자체가, 아니 아이덱 전체가 뻔했으니 어쩔 수 없다. 이 세상의 아이들 중에는 아무 것도 안 하는 거 같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뭐라뭐라하면 "내가 뭘 하고 싶을 때까지 가만히 놔둬"라고 소리친다. 그런 아이들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거 같아 보이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선생님이나 부모들은 그 아이가 뭘 하고 싶고 뭘 잘하는지 찾아야 한다. 이때 우리는 아이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긴 줘야하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접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프리스쿨을 다니면서 공립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화를 해야한다고 코하타 아저씨가 말했다. 그러더니 공립학교를 다니면서 프리스쿨을 다녀야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공립학교를 다니지 않는 나로서는 동조를 할 수 없는 맥락이었다. 공립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건 좀 아니라고 본다. 이 문제는 여러 텔레비젼 프로그램 같은데서 많이 다루어진 주제라 할 수 있는데 그 만큼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자유"라 함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걸 무작정 하고 가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코하타 아저씨는 말한다. 또, "서로 행복해야한다"고 덧 붙여 말하는 귀여운 아저씨. 누군가가 코하타 아저씨의 꿈을 물어보았다. 아저씨의 꿈은 뭘까? 궁금해하던 나는 내심 기뻤는데, 첫 번째 꿈은 프리스쿨을 만들어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장소를 만들고 공립학교와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것. 두 번째는 50살∼72살, 22년 동안 일본에 일어 학교를 만드는 것이란다. 어떤 사람은 15살에 프리스쿨을 마치고 공립학교로 돌아갈 때 성공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저씨는 학생한테 좋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매우 성공적이라고 했다. 내가 물어본 건 회원 등록 비와 학비를 보고 나서였다. 회원비만 5,000엔, 학비 한 달에 45,000엔... 애가 생각할 땐 비쌌다. 그래서 물어봤지... 일본에선 비싼 게 아니냐구... 그랬더니만 일본의 입시학원의 학비는 두 시간에 25,000엔이라며 비싼 게 아니란다... 그리하여 할 말을 잃고 조용히 있었다. 돈에 민감해진 나... 역시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생각을 달리하게 되는 동물이었단 말인가? 그렇게 좋게 보이던 귀여운 아저씨가 괴물로 보이다니!...-.-;... 어쨌든 오전 스케줄은 이래저래 끝났고 점심 밥 먹고 나서 뭘 들어야 할지 망설이며 이 문 저 문을 기웃거리다가 중국의 부등교생과 교육에 대한 컨퍼런스에 들어가자는 조한의 말에 동의하며 들어갔는데... 모두 일본 사람 뿐이라 영어 통역이 없는 게 아닌가? 그래도 나는 틴즈비즈 기사의 껀덕지가 필요했기에 표정이 무지 코믹하게 생긴 인상 깊은 통역 할아버지의 통역을 들으며 어떻게 해서든 들으려고 노력했다. 이제부터는 그 노력의 대가라 할 수 있다. 1966년으로 시작해서 1978년까지 인구들이 도시로 모이기 시작했고, 1979년에 도시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도시인구수를 조절하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길 원하는 학부모들로 인해 불가능했다. 취업난도 생겼다. 한 소녀는 부모가 주는 압박감을 견디다 못해 수면제를 과다복용 죽을 뻔한 사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공부를 더 많이 하기보다는 죽기를 원했다. 1978년 고등 교육이 가능해졌는데 고등 교육을 받아야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교육비도 늘었다. 많은 부모(90%)들은 자식들이 대학에 가길 원한다. 중학교는 40%, 고등학교는 30%, 대학교는 5%정도가 다니고 있고 1985년에는 16/1000이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30년간 교과서가 바뀌지 않았고 입시전쟁을 통해 소수의 학생만이 대학에 갈 수 있다. 교육은 대학에 들어가는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것이 돼버렸다. 대학 입시만이 공부하는 이유가 되었고 저녁 먹으러 집에 왔다가 다시 학원으로 가는 고등학생들은 자정이 되기 전에 자기 힘들다. 초등학생들은 방과후 과제를 안 해도 된다고 정부가 말했다. 학생들은 너무 많은 억압으로 인해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부모는 자식과 병원 가는 게 다반사가 되었다. 자살률은 90년대 들어 늘어났다. 1992년에 할머니한테 공부를 안하고 노는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던 한 소녀가 시험을 망친 날 집에 돌아와 수면제를 먹고 죽었다고 한다. 모범적인 학생이었는데 부모나 선생들은 자연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한 초등학생은 점수가 항상 낮아 병원에 가 봤지만 의사는 정상이라고 했고 수학과 과학 과외를 받았지만 성적은 좋아지지 않았다. 읽기를 할 때면 늘 아팠고 그런 애를 병원에 데려가 보면 특별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 병 환자였던 것이다. 1980년 고입시험이 바뀌었다. 정부는 지식뿐이 아닌 독립심과 창조성을 중요시 여기게 됐고 2001년에는 교과서를 바꾸고 1학년과 2학년은 과제가 없어지고 고입시험만 보게 했다. 인터넷으로 공부할 기회를 더 주고 학생에게 대학입시, 취업, 건강,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중에 중요하고 선생님, 부모님이 원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와 선생님들은 잘 모르고 있다. 부모가 과제를 더 늘이도록 선생님께 말하고 학원이나 과외를 하게 만든다. 과거에는 초등학교에서 고등 교육을 어떻게 받는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대학은 어떻게 끝내는지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학생들이 친구들과 가족원을 죽이는 일이 늘었다. 그 후 부모들은 자식들이 무서워 잔소리가 줄어든 듯 싶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학교를 못 가는 아이들이 많다는데 있다. 초등학교는 너무 비싸서 희망이고 뭐고 없다. 정부가 학비를 대줄 수 없다고 한다. 이웃나라한테 펀드를 받들려고 하는데 그 만큼 중국 정부가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 못하고 있고 가난하기 때문이다. 프리스쿨이 있느냐는 물음에 학원 같은 게 있다고 한다. 어찌됐든 결론은 중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문제에 꼬여있다는 것이다. 상황들이 모두 비슷비슷해서 어느 나라 얘길 하는지 모를 정도다... 컨퍼런스 장에 있던 사람이 말한 단어가 생각난다... Hopeless... 오늘의 스케줄은 거기까지이고 그 다음엔 테가로 옮겼다. 한 방에 네 명씩 자던 우리들 열두 명을 한 방에 몰아넣고 자게 했던 그 곳. 웅... 그리고 사람들의 비꼬는 회의... 유치유치한... 회의... 그 회의로 말할 것 같으면 일본 도쿄 슈레 측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청소를 하는 게 테가의 규칙이며 10시에 소등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 발단이었다. 서양사람 중 어떤 사람(정확히 서머힐의 여선생이었다)이 비꼬는 말투로 걸레랑 빗자루는 어디 있냐며 나는 타월과 칫솔밖에는 없다면서 생쑈를 했던 회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결국 사람들이 청소를 안해서 도쿄 슈레만 뼈빠지게 비참하게 청소를 해야 했었다는 후문... 아! 청소를 하면 할인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정했다는 도쿄 슈레... 음... 난 어느 편도 들 수 없다. 둘 다 일리가 있으므로... 어찌됐든 피곤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테가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조용히...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여유가 생기기도 했지만 조금씩 지쳐가기도 했다. 도쿄슈레는 이번 기회에 일본 사회가 대안교육-프리스쿨이나 프리스페이스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기를 원했다고 하는데, 일반인들이 너무 많이 참여한 탓에, democratic education을 시행하고 있는 외국인들끼리 오붓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마저도 가질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같은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문화마다 지역마다 다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던 외국인들은 작년 서머힐에서의 작고 소박한, 그러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친근한 파티가 많았던 아이덱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댔다. 테가의 식당. 올림픽센터에서 테가로 옮겨온 우리는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불편한 점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불편한 것은 그보다 빡빡하기만한 규율때문이었다. 이만한 규율들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 그러나 더더욱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그러한 일본인들을 비웃고 창피를 주는 몇몇 서양인들 때문이었다. 분명 일본인들도 자유와 민주를 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규율의 학교를 뛰쳐나와 프리스쿨에 와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자율은 서양의 자율과는 다르다. 몇몇 서양인들이 다른 나라의 문화와 규범, 처해있는 상황을 고려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태도를 내비쳐 우리를 분개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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