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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지오에서의 "인턴 프로젝트" ▶ 문제의식의 형성 :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기? 펀드레이징 파티를 했던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7월에 도쿄에서 있을 IDEC(International Democratic Education Conference)에 참가하기 위한 여비와 참가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였다. 사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콜레지오=인문학그룹"이라는 생각 속에 있었고, 청소년에게의 인문학이란 digital literacy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배우고 훈련받은 인문학을 하자의 죽돌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골몰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내가 배웠던 인문학이란 현실로부터의 '거리두기'distancing가 필연적인 조건이었다. 펀드레이징 파티의 결과로, (디지털) 정보시대와 지식 기반 사회라는 맥락 읽기는 하자가 '직업체험센터'라는 점과 더불어 '후기자본주의사회'라는 맥락의 추가가 덧붙여 졌다. 이후로 나는 하자센터가 <청소년><직업><체험> 센터라는 것을 잊은 적이 없다. "현실"이란 거리두기와 참여하기 사이의 그네타기식 흔들림swaying의 어느 지점엔가 있다고 믿는다. 펀드레이징 파티 자체는 엉성한 발음의 슬램, 조악한 실사합성애니메이션, IDEC 참여에 대한 의의와 필요성을 역설한 프리젠테이션, 당시까지만 해도 다과회이상의 파티가 없었던 하자에, 새로운 분위기의 '와인파티'로 구성되어 있었고, 꼬라지들이 제작한 하자에서는 오히려 튈 법한 소박한 파티초대장과 그 그림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수준은 비록 뛰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했지만,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하자의 친구로 초대된 사람들은 호의적이었다. 부희의 별로 쉽지 않은 리듬을 타고, 원은 tough한 skin-head rocker같은 음유시인의 강한 카리스마를 선보였고,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한 민희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그림 그리고 시 쓰는 민희가 등장한 셈이었다. 슬램과 영상은 자신들을 표현하고 의사소통의 욕구/내용을 전달하는데 제법 그럴싸한 방법으로 보였고, 2000년 콜레지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체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두 달 전에 있었던 안티패션쇼 퍼포먼스와 더불어 펀드레이징 파티는 꼬라지들에게 콜레지오에서 스스로 배워야 할 것들에 대한 대략의 감을 잡을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다. 물론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또 이 때 콜레지오의 무급 인턴들(해외 교류팀)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얘기하게 될 것이다. 파티의 음식을 준비했던 예경과 일본에 함께 간 양상이다. 이후 유스페스티발을 통해 만나게 된 리바이와 다니엘, 허귀연이 있고, 예경을 통해 예린이 왔다.) 물론 그 파티만으로는 여비를 충당하지 못해, 아시아 유스 페스티발의 기획팀으로부터 문화사절단의 자격을 얻어 비행기값을 마련했으며, 또 몇 군데(MBC, 한겨레, 우리교육, 문화일보)에 써주기로 한 기사의 원고료로 여비를 충당했다. 꼬라지들로서는, 한번도 가 본적이 없어 멀게만 생각했던 외국여행을 어찌되었든 '벌어서' 간 셈이다. 꼬라지들만의 아이디어와 힘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지만 그런 기회에 아이들은 좋은 기획이 있다면 제 돈을 들이지 않고도 외국에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자의 아이들은 대개 돈이 없지만 그렇다고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도 아이들이 제 돈 들여 외국에 가는 것에 비판적이다. 물론 평소에 절약하여 여비를 마련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벌어 저축하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그 저축하는 동안 아이들이 포기해야 하는 문화적 향유의 '권리'와 기회는 모은 돈이 가질 수 있는 의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아끼고 자신의 욕구와 감성을 절제해야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는가가 모두 중요하다. 그리고 하자센터의 아이들에게 '문화자본'의 축적에 대한 감각을 갖게 하는 것은 실물자본의 축적에 대한 것보다 훨씬 더 시급하다. 십대들이 스스로 의미 있는 자원이 되고 그 가치를 가늠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은 하자 인턴 프로젝트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사족. 하자센터와 그 구성원이 가진 문화자본의 유형에는 minority의 감수성과 PC적 감수성도 포함된다. 이것을 간과하는 순간 하자센터의 존립근거는 힘을 잃고 만다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나는 하자센터가 아이들에게 '기획'과 그 언어의 힘을 통해 국내외 여러 곳을 여행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힌트주기를 원한다.(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글에서 얘기하려고 한다.) 퀸 오로라의 도쿄디자인 페스타 참가와 춘천 아티스트 벼룩시장 참가, 그리고 소녀들의 페미니즘 기획팀의 두 번에 걸친 해남 여행, 대중음악작업장의 전주영화제 공연은 바로 그러한 '기획'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일본에 가기 직전에 기획부에서는 내놓았던 창업 프로젝트 두 개가 바로 진행되었다. 콜레지오에서는 남이와 원이가 각각 명함하자와 라디오하자에 인턴으로 참여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남이, 원, 제리의 보고서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만 덧붙이면 나는 그것을 끝내 죽돌들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했는데, 기획부의 안은 '판돌 창업 프로젝트'였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판돌의 창업'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명함숍의 renovation 결과에서 드러나겠지만,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다. 아무튼 작년 10월에서 12월까지 3개월간 지지큐와 오로라는 스낵바 코코봉고에서 부사장이 되었는데, 스낵바에서 지내는 동안 두 사람은 음식만들기보다는 음식만들기의 의미에 주로 골몰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지지큐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에, 오로라는 하자문화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에 푹 빠져 버렸다. 두 사람이 있는 동안 코코봉고에서는 '김밥페스티발'과 '칵테일파티', 세미다큐인 '코코봉고 스토리'를 만들었는데, 김밥페스티발은 스낵바의 '존재드러내기'(홍보)의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고, 칵테일파티는 하자의 음주/금주관행에 대한 문화적 평론과 제안을 위한 것이었다. 지지큐는 코코봉고 스토리를 시작으로 '핑계'라는 작품으로 디스토리페스티발로 가버렸다. 오로라는 와인파티를 문제삼고, 청소년인권에 손을 들더니 106호, 107호, 코코봉고의 포스터와 디자인을 그리고는 하자 담장벽화에로 나가버렸다. 지지큐와 오로라는 코코봉고의 담론형성을 담당했지만 스낵바의 직원으로서 음식만들기에 그 만큼의 열의를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두 사람 모두에게 그 3개월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 turning point의 시기였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음식만들기, 설거지하기, 샌드위치 만들기를 배웠고, 특히 이 기간동안 '먹고 살기'의 문제에 대한 생각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고는 있는데, 하지만 실제로 스낵바의 부사장으로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그것은 이 두 사람에게 특히 그런 것이 아니고 코코봉고의 다른 사장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코봉고에서 이름을 바꿔 우주선이라고 불리는 시기에 스낵바의 직원으로 일했던 십대들의 경우 대부분 스낵바의 일과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을 분리해서 생각하였던 것 같다.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은 스낵바가 더디 진척하다가 우주선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자마자 침몰(?)하는 상황으로 연결되어 버렸다. 이 일들이,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게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의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스낵바의 주축이었던 김사장은 사진에 대한 자기욕구를 확인하게 되자마자 스낵바에서의 일이 시들해져 버렸고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사장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으네는 고교졸업과 동시에 음악과 관련된 직장을 찾아 떠났고, 윤정이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밴드에 몰입할 것을 말했고, 혀누는 황보령의 스맥소프트 밴드의 베이시스트가 되더니 시간지키기가 어려워져 버렸다. 혼자 남은 우주인은 결국 8개월간의 부유로 지친 나머지 손을 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그것도 스낵바 그 나름대로의 역할이었던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러기에는 스낵바는 에너지가 대단히 많이 소비되는 일이고, 이후의 스낵바는 적어도 요리만들기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으로 구성되기를 바란다. 그럴 때라야 스낵바에서는 어떤 메뉴를 어떤 정도로 선보일 것인가, 어떻게 매출을 늘릴 것인가, 스낵바에서 무엇을 찾고 발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등이 본격적으로 고려되리라고 생각한다. 명함숍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십대에게 '아르바이트'를 하게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돈'만이 목적인 경우, 그것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소비적 주체'가 되는 지름길이 된다. 동대문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은 일 자체에서 소외되고 의미부여를 할 수 없다. 그 아이들이 소비문화의 한 '현상'으로 보도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일부 사실이다. 아이들이 돈 버는 동안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돈을 쓰는 동안 의미를 찾게 될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 아닌가. 우주인은 스낵바일을 그만 두던 지난 달, 일하던 기간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별로 기쁘지 않다고 했다. 돈을 버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떻게> 버느냐, <어떻게 해서> 그 만큼의 돈을 벌었느냐를 이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것이 '먹고 살기'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십대를 생산적인 주체로 자리잡게 하는 것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것이 먹고 사는 일로 되는 방법을 알게 해주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업무 보조 인턴이라는 것은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 일만을 하는 사람이란 언젠가는 의욕과 자기동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문제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우여곡절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난 해 10월에서 12월간 참여했던 사장들에게 그 기간동안 만큼은 스낵바에서의 일들이 '하고 싶은 일'에 속했다고 짐작한다. 김사장, 우주인, 오로라에게 스낵바는 하자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언어를 갖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스낵바에 앉으면 하자가 보인다>는 김사장의 표어(하자 1주년 비디오)는 의미가 있었고, 스낵바에서 생산되는 음식, 디자인, 언어, 영상, 그리고 MBC스페샬 등이 스낵바를 단순한 <분식집>의 의미를 넘어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스낵바 안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니 사실은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 부분에는 판돌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우주인이 느끼는 피로와 상실감에 대한 뼈아픈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해가 바뀌자마자 지지큐와 오로라는 원이와 함께 자료실로 자리를 바꾸었다. 나는 지지큐와 오로라가 스낵바로부터 문제의식을 확실하게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데다, 콜레지오에서 자료실 만들기는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가 될 것이었다. 자료실은 하자에 소리없는 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게시판에 있었고, 비디오를 시사할 수 있는 시청각실 같은 것이 없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처음 나는 해외교류팀과 몇몇 대학생을 중심으로 자료실을 만들려는 생각을 했었다. 자료실은 그만큼 수준 있는 담론과 정보창출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었다. 세계 최초로 도서대여를 시작했던 건 전시의 파리였는데, 남자들이 전장으로 간 동안, 파리의 여자들은 살롱과 북까페를 했다. 북까페는 책을 직접 출판하는 일도 했으며, 맛있는 커피와 담소가 있었고, 쇼윈도우의 진열장도 세계최초였다. 판매의 규칙은 매우 특이했는데 다 읽은 책이라는 것이 분명한 경우에만 책을 살 수 있었다. 하자의 자료실은 커피와 담소를 함께 할 수 없지만, 분명 다른 방식의 생산과 유통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사이버 자료실이 됨으로써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물론 이때, global network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앞으로도 그 작업은 자료실에서 핵심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나는 운영자를 꼬라지들로 바꾸었다. 하자의 모든 행사와 작업이 그러하듯이 자료실 프로젝트는 하자만들기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자마인드를 담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원도 필요하지만 결국 그 진화의 핵심에 하자의 죽돌이 서있는 게 좋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돌들은 하자 만들기에서 배제될 수 없으며, 하자의 이상과 철학을 설정하고 그로 향해가는 변화의 중심에 서서 그 변화의 힘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이 자료(정보)를 가공하고, 컨텐츠로 만드는 실제 작업을 할 수 있을까? 6개월에서 1년을 하자에 있으면서 많은 일들을 겪은 세 사람이었고, 글쓰기 방식은 제각각 달랐지만, 나는 세 사람의 글쓰기에 그런대로 만족하고 있는데, 문제는 더 이상 끌어낼 내적인 구성력이 약하며 사실상 자원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어떤 종류의 (넘어서야할) 벽을 보기 시작한 무렵이었고 나는 그것이 '기회'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이제 본격적으로 글을 읽고 영화를 보는 일을 시작하자. 그를 통해 자료실은 콜레지오의 구체적인 언어생산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가시화하는 것, 즉 자료실을 만들고, 그에 대한 홈페이지를 구성함으로써 자료실 프로젝트가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일종의 연구비랄까, 서비스비용이랄까 그에 대한 '인건비'를 청구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106호는 어느 정도 기능할 만큼의 수준이 되었지만, 홈페이지는 아직이다. 적어도 이 달이 끝나기 전에 오픈할 수 있기를 바라는 중이다. 오로라는 예민한 문제의식(의 감수성)과 그림/사진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것이 웹으로 옮아가길 바랬다. 자료실 홈페이지는 오로라의 디자인으로부터 시작할 것이었다. 지지큐와 원은 각각 도서자료와 영상자료 모두에 코멘트를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각자 그것으로 '문집'과 '영화제'도 기획할 것이었다. 문집의 반은 오로라 특유의 감성과 글쓰기가 채울 것이다. 그런데 오로라가 아트숍에서 일하는 강도가 높아지고, 원이 '눈물영화제'와 '소녀들의 페미니즘'에 정신없는 동안, 지지큐의 늦잠도 늘게 됐다. 이제는 지지큐도 알바센터로 잠이 깨고 있는 중이지만, 자료실이 애초 조용한 방으로 구상되었다고는 해도 정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방이 되고 말았다. 물론 세 사람은 자료등록을 하고, 책을 싸고, 비디오에 스티커를 붙이고, 대여와 회수(코멘트받기와 더불어)를 하고 있지만, 그런 일들은 사실상 자료실을 만든 목적 자체는 아니다. 거기서 끝난다면. 굳이 그런 목적이었다면 애초에 대학도서관과 시립도서관을 이용하는 프로그램을 더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운영했을 것이다. 나는 하자에서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사람이 언젠가는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심지어는 이미 일이 너무 많을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른 꿈을 꾼다 . 일식씨가 목공과 원예와 배전에 관심 있는 아이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인우씨가 아이들에게 회계와 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는 그림을 그린다. 언젠가는 패기 있는 경비원이 아이들에게 호신술을 강의하며 안전한 센터와 하자스쿨을 만드는 것을 주도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런데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 회의를 하는 동안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세 사람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6개월을 가시방석하며 앉아있는 동안 그 덕분에 자료실에서 할 수 있는 일/해야 하는 일 들이 이제는 정말 잘 보인다는 둥, 자료실이 앞으로 하자 스쿨 만들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둥 때늦은 각오를 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속도가 빨랐나? 나는 이제쯤 회심의 미소를 지을까? 생각 중이다. 지지큐가 생활습관을 바꿀 수 있을까? 원이 진득하게 앉아 컨텐츠만들기를 하게 될까? 오로라가 아트숍과의 일을 병행할 수 있을까? 의심반 기대반 속에 콜레지오 1년 평가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 외에도 라디오하자에서 일했던 제리는 하자생일파티의 프로듀서 일을 끝낸 뒤 콜레지오에 들어왔으며 '온라인 문장사전 만들기 프로젝트'의 웹마스터가 되기로 했다가, 슬램파티의 엔지니어 겸 프로듀서 역할을 맡았고, 현재는 프로젝트 지원팀에서 일하고 있다. 많은 일들에 참여하였으면서도 이렇다할 자기일이 없이 필요한 때 불려다니고 일이 끝나면 할 일이 없어진 채 소속감 없이 서성이기를 반복하는 제리는, 표가 항상 주장하는 '하자는 십대를 소모시킨다'의 예일지도 모륻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제리가 프로젝트 지원팀에서 다른 십대들을 가이드하는 동안 자신의 삶에도 유용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자 내외에서 다양한 경험과 일을 해본 제리와 같은 십대들이 많이 생길 수 있다. 하자는 그런 십대들의 경험이 누수되지 않고, 그 의미를 읽어내는 법을 보여주고 그것이 의미있는 경력이 되도록 가이드 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턴 프로젝트는 그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주문은 오로지 '시간만 지키자'였다. 제리는 초기에는 열심히 지켰고, 그러다 점점 지각이 잦아졌다는데 최근에 다시 제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10시에 인턴만이 홀로 출근하는 시스템은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사항이다. 프로젝트 지원팀에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아마도 그 시스템은 바뀌었을 것이다. 십대 상담이든 학부모 상담이든 제리가 혼자 그 일을 하는 것도 이해가 안되었다. 제리말로는 프로젝트에 대한 안내와 개인적인 상담이 구분되기가 어려운 탓도 있다는 설명인데, 상담의 경우는 가능하면 판돌과 함께 했으면 한다. 나는 자유게시판지기인 하토가 왜 게시판지기인지 알 수 없다. 아무런 권한도 없었고, 명확히 할 일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토에게 인트라 접속 권한이나마 준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것도 디스토리 페스티발의 인턴경험과 합쳐져서 하토의 역할에 대한 평가를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게시판지기들이 몇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눈에 띄는 건 비니루와 하토였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게시판지기는 하이텔/천리안이 주된 BBS의 역할을 하던 시절의 시솝(system operator)과 같은 역할일까? 당시 하이텔과 천리안의 동호회들은 청소년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하였고 비정상적인 형식으로 밤의 문화를 주도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 수준이 매우 일천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재는 고속인터넷과 무료계정의 등장으로 청소년 사이버문화는 더욱 좌표를 잃고 헤매는 중이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대안적인 청소년 사이버문화의 가능성 또한 비례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이버유스나 하자와 같은 사이트의 등장은 그 증거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자의 게시판/채팅 문화는 적극적으로 평가되고 제안적이 될 필요가 있고, 그래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게시판지기의 역할은 사실은 중요한 빈 자리로 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역할은 게시판을 넘어서서 사이버 시민 문화의 감수성을 가진 digital citizen으로의 성장을 예기하면서 열어놓아야 한다. 게시판지기들의 회의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일인 이상의 판돌이가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그런 감수성을 성숙시키고 훈련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보시대를 살고, 준비하기 위해서 이 부분은 미뤄두기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나는 양양이 돌보고 있는 웹방 독서클럽이 앞으로 그런 지향을 가질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하자스쿨이 오는 9월에 오픈할 계획으로 추진 중에 있다. 개인적으로 하자스쿨은 '책임전가'가 없는 학교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대개의 학교들이 존재의 정당화(정당성이 아니라)를 '책임전가'함으로써 취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등학교는 아이들을 중학교로 보내는 것을 목표삼고, 중학교는 고등학교로 진학시키는 목표삼고, 고등학교는 대학에 목숨 건다. 대학은 직장으로 아이들을 넘기고 직장은 아이들을 데려다 그 직장에 맞는 사람으로 연수시키느라 땀을 빼고, 그러다가 어쩌다가 퇴직이라도 하게 된다면 다시 연수 시켜주는 새로운 직장을 찾을 수 없는 한, 인생실패의 느낌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사회의 어느 곳도 구성원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사회. 하자스쿨은 그곳에 있다. 하자스쿨이 책임전가할 상급학교가 있을까? 없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평생교육'이란 것이다. 졸업 후에 아이들이 대학을 갈지, 취직을 할지, 창업을 할지, 프리랜서가 될지, 유학을 갈지 그 모든 경우에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하자스쿨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진화가 가능한 사람, 그것이 하자스쿨의 학생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인턴 프로젝트는 그러한 기대를 실현시키기 위해 하자 스쿨에서 진행할 핵심적인 프로젝트 중의 하나이다. 아이들은 추상적인 차원에서 교과서를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의 경험 속에서 구체적인concrete 지식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적절히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과 현장 mentor와의 관계 속에서 사려 깊은 지혜를 배울 수 있어야 하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정보를 다루고 판별하는 능력을 성숙시킬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자스쿨은 하자센터에 비해서 비교적 안정적(제도학교에 비하면 결코 안정적이랄 수는 없겠지만)인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자스쿨은 하자센터가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실험의 결과들을 토대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정도나마 확보된 안정성은 하자스쿨의 학생들이 보다 '외부적인' 관계로 네트워크하며 인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생각한다. 하자스쿨은 바깥의 사회자원-기업, 상점, 문화작업자 등을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인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한다. 하자스쿨과는 대조적으로 하자센터의 경우, 특히 콜레지오의 인턴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내부적 자원(문화)의 창출, 형성과 축적에 기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인턴 프로젝트는 일종의 진화된 '하자 만들기' 프로그램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하자센터는 몇몇 뜻있는 어른들이 만든 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십대들의 문제제기와 배움과 결정이 녹아있는, 십대와 십대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대안적 문화공동체가 되어왔다는 것이다. 하자센터의 내적인 실험은 계속 되어야 하고, 그 실험의 사회적 의미와 반향은 지속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사회적 맥락에서 검토할 수 없다면 하자센터의 실험들은 전혀! 의미가 없다.) 하자센터가 십대와 함께 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사회에 제안하는 '세대간 함께 살기/관계 맺기'의 내용이고,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자원이다>라는 슬로건은 하자센터가 우리 사회에 내놓는 하나의 해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자스쿨의 인턴 프로젝트가 우리 사회의, 역할 있는 시민이 되려는 인턴쉽 프로그램이라면, 센터의 인턴 프로젝트는 하자만들기를 함께 할 동료이자 스탭이 되려는 인턴쉽 프로그램이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쓴 글은 순전히 하자와 콜레지오의 판돌로서 개인적인 견해이고 제안이다. 인턴 프로젝트에 대한 포럼에 대한 발제를 겸하여 그동안 생각했던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컴퓨터가 다운되었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다시 써야 했는데 급하게 쓰느라 몇 가지 생각을 놓친 것이 아쉽다. 나중에라도 다시 생각이 나면 업데이트를 할 셈이다. (2001. 6.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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