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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숍 퀸 오로라 창업 보고서 (2001. 6. 16 / 퀸 오로라, 창업, 17세) ▶ 1. 사람들과 만나기 Ⅰ
찐빵은 1인 창업프로젝트 유리가게 아트숍 Queen orora의 담당판돌이자 앞으로 내 파트너가 될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찐빵에게 처음부터 나는 미숙하고 밋밋하게 다가섰다. 나는 모든 내 낯선사람들에게 하는 방식으로 허리를 살짝 구부리며 허공을 바라보며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면서 찐빵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 2. 1인 창업 "하자의 직원들은 다들 대학을 나왔나요?" 라고 물어봤다. 하자에서 창업을 하는 이유는, 정확하게 직업을 체험하면서 창업을 가르치는 이유는. 하자의 목표인 새로운(혹은 다양한)문화를 만들고, 하자센터 구멍 안 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통념아저씨를 거쳐서, 아시아의 문화를 바꾸는 (혹은 다양하게 하는) 것이잖아요. (연관되어 있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 아 내가 누군지 말을 안했네, 나는 1인 창업 유리가게에 처음 손을 대고 있는(사실 처음은 아니지) 오로라에요. 나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면서, '나'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문화바꿈'을 실험하려고 해요. 물론 유리가게를 통해서... 내가 초인도 아니고 .!?! 아무튼 그래서 하자에서 창업십대를 지원하면서 전망하는 건, 하자센터가 대한민국을 돌아서 아시아의 문화의 뭐뭐이잖아요.(위에 것) 겨우 건물하나인 하자센터가 대한민국을 얘기하고 아시아의 문화를 왈가왈부하는 것도 초인적으로 거창하지. 그래도 계속 말을 해요. 가능하니까. 해부해보면 아시아도 대한민국도 하자센터도 개개人(인)의 도화지이잖아요. 그렇지만 '나'는 더이상 해부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나'와 '아시아'를 얘기하는 건 너무 가능해서 광대의 덕담처럼 이나 들릴 정도이지요. 아무튼 여기까지는 혹시나 1인 창업. 오로라 하나에 200만원 어치의 돈을 지원해 주는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서 가치를 설명했구요. 그러면 나는. 1인 창업 유리가게에 손을 대고 있는 오로라에요. 이 오로라의 전망. 물론 유리가게에서의 전망은 궁극적인 목적인 하고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아보려는 춤놀이 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 있어요. 가게가 어느 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여야 되는지. (연장될 수도 있지만) 계약기간인 6개월 동안의 발전은 무엇인지. (발전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나'뿐만이 아니라 '아시아'가) 이게 queen orora의 전망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십대와 아시아와 문화에 끊임 없이 관심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하자센터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내가 아니라, 나 뿐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유리가게의 다소 외로운 광대들을... (알림게시판 발췌 글: 오로라) "문화를 바꾼다고?" ▶ 3. 나와 만나기 많은 부분에 있어서 "Queen orora" 안에 있는 오로라 여왕에게 '내가 뭐다'라고 명시해준 사람은 찐빵이었다. 욕망과 의욕에 불타있는 때에 이면에서, 나는 "내가 뭔데?"라는 질문에 있어서는 꽁무니를 내빼며 대답하기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 명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디렉터'라는 사실을 알고있을 것이다. 나는 나는 이 인식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이 단어로 쉽게 변명을 할 수 있는 구멍을 찾자는게 아니다. 생각해 보라! 나는 어디까지고 "학생"이다. ▶ 4. 나 자신을 구현하기 건방지게 들릴 정도로 떳떳하게 "나는 학생"이다라고 말했듯이, 내가 여왕에게서 하사 받은 제일 첫 번째 임무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제일 처음에는 나에게, 두 번째로는 너에게. "나는 먹고 살아야 한다." 이 명시가 나에겐 '나 자신을 구현하기' 위한 첫 번째 수수께끼 스핑크스였다.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스넥바 코코봉고'의 부사장이었다. 이쯤에서 그 사람 이야기를 해야겠다. 희옥스는 나를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만든 사람이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애시당초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다. 사진은 나름대로 나에게 각별하다. 학교를 뛰쳐 나올 때도 변명과 이유의 역할을 해 주었고, 지금도 내 인생의 방향 역할을 해주고 있다. 재미있는 얘기는 지금부터이다.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유는 실은 다름아니라 '나는 그림을 못 그리니까!'였다. 나는 정말이지 그림을 못 그린다. 내 그림은 뚜렷한 형상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색칠도 못해서 검정색 밖에 쓰지 못하거니와, 오로지 사람의 얼굴이나 '눈' 밖에는 소재가 없다. 처음 콜레지오에 들어와서, 희옥스와 얘기를 하면서 스윽 앨범을 꺼내며 "실은 나는 사진가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희옥스가, 사진을 찍기 6달도 채 안된, 동네 '현대 사진관' 주인 아저씨의 제자로 머물러 있을 때의 어설픈 내 사진들을 말 없이 한 장 한 장 넘겨 보고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눈을 멈추더니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유일한 사진 몇장이 있었다. 꼽사리로 맨 뒷장에 넣어두었던, 내 그림들이었다.(나중에 와서 안 사실이지만 히옥스는 꼭 맨 뒷장을 보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앨범이든, 공책이든, 생각의 끝이든...) 나에게 말한다. 그 뒤로 내가 '나 자신을 구현'하는데 필수로 집어넣는 방식은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코코봉고를 통해서 '하고싶은 일 하면서 먹고살기'라는 명시를 또렷하게 인식시켜준 것도 히옥스였다. 그리고 "Queen orora"의 기획자도 히옥스이고, 그 탄생의 기반은 '그림그리기'가 아닌 '먹고 살기'가 먼저라는 것은 내가 '창업자/사업가'로, 나를 구현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그 방식을 본격적으로 모색하는 단계로 까지 발전하게 된 근거를 그 사람에게서 찾고 싶다. ▶ 5. 마인드에 대한 고민 앞서 말했듯이 나는 새로운 단계를 밟고있는 것이다. 세가지 면에서의 궁금증을 가지고 ssamzie의 천호균 사장을 만났다. 허둥지둥 녹음기를 꺼내면서 "인터뷰 처음해봐요" 했더니 씩 웃었다. 천호균사장이 오늘 인터뷰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고 해서 하자신문이 개편되면서 프랜즈 옵 하자를 관련이 있는 10대가 만나서 얘기를 들어본다는 말부터 해야 했다. 그랬더니 "프랜즈 옵 하자가 뭐지?"하고 나에게 묻는다. 순간 나는 비둘기가 되었다. 천호균 사장이 비둘기 눈에는 주름이 잡힌 손가락으로 보였다. "주름이 잡힌 손가락씨. 지~잉. 지 이 이 잉, 나는 내 부리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하자의 창업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트숍 Queen orora라는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제는 부리로는 그림을 그리면서 왼쪽 발로는 '경영 마인드'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부리로는 그림을 그리면서 왼쪽 발로는 경영 마인드라..." "네, 부리로는 그림을 그리면서 디자인 마인드를 생각해야 하고 왼쪽 발로는 경영 마인드를 생각해야 하는데, 주름이 잡힌 손가락씨는 어떤 식으로 하시는지요?" "ssamzie의 경우에는 ..... 감각경영을 하지요." "감각경영이오?" "그렇소, 소비자의 감각을 중심으로 ssamzie의 모든 직원들은 움직이지요. ssamzie의 경영자, 사원, 디자이너가 다 소비자의 감각을 디자인 해야하기 때문에, 디자인 마인드와 경영 마인드를 따로 생각 하지를 않소." 그러면서 주름이 잡힌 손가락씨는 두번째 마디를 움직여 자세를 바꿔 앉았다. 나는 그 몸짓을 주시하면서 감각경영에 대해 더이상 묻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로는 두 가지를 따로 할 수 없다는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리도 있고, 왼쪽 발도 있고, 날개도 있는데...' 하면서 잠시동안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화들짝 깨면서 말을 이었다. "아! 그러면 아티스트는요? 그러니까 저...아티스트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 . 무슨 ..말씀 이신지..." "아니 저... 그러니까 ssamzie는 젊은 아티스트들을 후원하고, 기성 아티스트들로 하여금 상업적인(ssamzie의 아트광고라 하는)광고를 찍게 하기도 하지 않나요?" "그렇소만..." "그래서 주름이 잡힌 손가락씨는 아티스트들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아티스트로서의 순수한 작가 정신을 침해하는 걸로 보여지면서, 또 그 사람들의 감추어진 상업성을 충족 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듯 보여지는데요." "지금의 아티스트들이 바라는 것은 '예술의 민주화'이오. 그런 아티스트들에게 ssamzie는 아티스트와 대중이 만나는 갤러리가 되 준다는 입장이고 ,또 하나는 (ssamzie도 그렇고,)대중들을 디자이너가 끌고 가고,아티스트와 같이 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하면서 손톱을 쓸어넘겼다. "그렇군요. 예술의 민주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라면, 제가 한 질문은 어리석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아티스트가 불만스러워 한 적은 아직까지는 없었지요." 나는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말을 했다. "이 곳까지 날아오는 동안 공기가 참 낯설었지요." "비둘기 선생은 모르셨나 보군요. .....아침에 비가 왔었오." 나는 주름이 잡힌 손가락씨의 비장한 말투에 짐짓 당황했다. 어쩌면 그의 다채로운 지식에 놀랐던 것일 수도 있었다. "주름이 잡힌 손가락씨는 어떤 문화에 관심이 있나요? 제가 보기에 는 꽤 넓은 범위의 나름대로의 문화를 형성했다고 보는데요." "나는 쉽게 말해서, 청년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소. '크리에이티브'가 나는 젊은 곳에서 나온다고 믿고, 그것이 곧 경쟁력을 갖는다고 확신하오." "그렇군요...." "이제 질문은 끝인가요?" "아 아닙니다. 잠시 생각을 했지요. 그런 면에서 haja와 비슷하군요." "그렇소. " "젊은 문화에 관심이 있고, 아시아를 염두에 둔 사고를 하는 것도 그렇고,자기 기획, 자기 경영 능력을 중요시 여기는 것도 그렇고... 기본 이념이 같은데요? " "그렇군요. 새로운 것에 대한 익스펙트를 한다는 것은 서로가 많이 같군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 haja라는 데는 자기들 끼리 놀고, 계급화되고, 차별화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요오~" "그렇지는 않지요. 주름이 잡힌 손가락씨가 잘못 보셨거나, 잘 모르시고 계신게 아니라면, 어떤 일면을 보신 것일 테지요." 나는 날개를 조심스레 푸드닥 거리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소만 어찌됐든 앞으로는 ssamzie도haja도 자기 중심적인 것을 기피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소. '자연스럽게, 자유스럽게, 평화롭게...' 주름이 잡힌 손가락씨는 첫번째 마디를 구부려 나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주름이 잡힌 손가락씨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비가 왔었다'는 의미심장한 말과 손가락 마디마디를 움직여 앉은 자세를 바꾸는 모습이나 주름이 잡힌 손가락씨가 했던 지~잉... 지 이 ...이 이 잉 말들을 어떤 식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인가를. . . . 결국 나는 한 회사의 경영자를 만나고 왔던 것이다. (하자신문 발췌 글:오로라)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 6. 사람들과 만나기 Ⅱ (1) ssamzie 천호균 사장 천호균 사장은 그다지 그 두 개의 마인드 사이에서의 내 고민에 해답을 주고 영향을 주진 못했다. 인터뷰 기사의 대화만 보더라도 그는 철저한 사업가였다. 그의 사업에 '문화'(청년문화와 음악, 미술...등의 다양한 매체)를 끌어들인 것 정도는 높이 살 만하지만 그는, 디자인 마인드와 경영 마인드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2) 앤디 워홀 Andy Wahol "Queen orora"가 가지려고 하는 공간의 성격은 앤디 워홀의 'FACTORY'와 같은 것이었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안 것은 1월달이었고 그 후 책을 통해서 '팝 아트'와 '비즈니스 아트'라는 말을 들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 단어는 충격 그 자체였다. 또 불길한 징조를 보이며 내 '마인드'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왔다. 평소 나에게 "오로라는 예술가 기질이 강해서 장사를 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돼" 라고 말하는 어떤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그렇지만 조심스럽게 '세일즈 맨'같은 말을 꺼낸 후로 그 사람이 실망하고 당황한 기색을 얼굴 만면에 드러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앤디 워홀에 흠뻑 담궈져 나온 뒤였다. 나는 앤디워홀에게 분명한 영향을 받았다. '팝 아트'와 '비즈니스 아트'라는 말은 그가 '디자인 마인드'와 '경영 마인드'에 대한 고민과 시도를 철저하게 한 사람이라는 걸 입증해 주었고 그런 사례가 나에겐 필요했다. (3) 고객 고객과 만나는 일은 도무지 어렵다. ▶ 7. artshop Queen orora 준비과정 '나는 머리카락 끝에 뇌가 있다.' 이 문장은 artshop Queen orora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었다. 준비과정에 있어서 첫 번째 작업도 촉수를 드리운 유리로 된 두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값싼 '폴리코트(투명한 플라스틱 비슷한 것)'로 만들긴 했지만, 어찌 됐든 찐빵과 내가 만든 "Queen orora"의 첫 번째 작업물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보랭(황보령)을 만났고 그 뒤로 많은 도움을 주는 후원자(?)가 되 주었다.(일본에 갈 때도 통역으로 같이가 주었다.) 또 '나는 머리카락 끝에 뇌가 있다.'는 '나는 머리카락 끝에 뇌가 있다. 나는 머리카락 수만큼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한다. 이제 내 생각들을 풀어놓기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그 문장으로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다는 것이다. 폴리코트 두상을 만드는데만 한달을 소비하게 되었고, 일하는 감을 잡는 시간 치고는 너무 길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간꾸미기, 그림 그리며 상품 만들기, 시장 다니며 조사하기, 홍보하기.....모두를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알아가면서 해야 했기 때문에 찐빵과 잡은 일정은 일주일에서 이주일로 한 달 뒤로 두 달 뒤로 계속 어긋나고 있었다. 찐빵은 내 엉덩이에 붙은 껌을 떼어주었고, Queen orora의 추진력에 불을 붙여주는 역할을 했다. '미련할 만큼 하나씩 차근차근'해나갔다고 찐빵은 말했다.
3월 초 open 예정에서 결국은 5월에서야 조용하게 문을 열 수가 있었다. 5月5日 "open" (artshop Queen orora 장부에서 발췌) ▶ 8. 도쿄 디자인 페스타와 춘천 아티스트 벼룩시장 (1) 도쿄 디자인 페스타 도쿄 디자인 페스타의 화려함은 나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한 괴리감으로 다가왔다. 어디에도 "Queen orora"와 같은 느낌은 없었고, 내가 만든 '눈'(로고)만큼 함축적인 느낌을 주는 생명체는 있지 않았다. 실적으로 보자면 페스타 참가는 실패였다. '도쿄 디자인 페스타'의 방향은 오로지 '디자인'이라는 통념 안으로 모아졌고, "Queen orora"는 그 당시 모호한 아트와 디자인의 혼합체였기 때문에 나는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게 되었고, 세분해서 디자인 페스타는 나는 booth를 차리고 앉아있는 동안 내내 소심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이틀째 되는 날. 한국의 '우먼 타임즈'라는 신문기자가 나를 취재했을 때에만 한 짐 싸들고간 Queen orora 물건들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도쿄에 있는 동안 나는 내내 고민했다. '실패'에 대한 걱정스럽고 자학하는 고민이 아니라 '발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방향을 바로잡기 위한 고민이었다. Queen orora artshop Queen orora는 haja센터에서 지원하는 청소년 창업 프로젝트 중의 하나이다. (도쿄디자인 페스타와 춘천 아티스트 벼룩시장에서 쓰였던 소개서 중, '퀸 오로라 소개글') 1시간 여의 토론 끝에 '발전한다'는 것은 '자기 불만족'에서만 나올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가 만족'하게 되면 거기서 멈추게 된다. '불만족'하게 되면 나는 분명 만족하기 위해 덤벼 들게 될 것이고 이 말은 '해답'처럼 들렸다. 나는 다시 '천천히 침착'하다.
아티스트 벼룩시장 은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명함하자'팀과 같이 참가했는데요. 아무리 마임축제의 부대행사였다지만, 칠성사이다 파라솔에다가 부스를 차리라니요. 바람에 부스가 날라가고 그러더라구요. 참가한 아티스트도 별로 없었고요. 아티스트 벼룩시장과 도쿄의 디자인 페스타의 그 것과의 차이는 눈 여겨 볼만했어요.(이 얘긴 '도쿄 기행 보고서'에서 자세하게 쓸 겁니다.) 아무튼 이 '차이점'의 영향인지 Queen orora의 반응이 좀 좋더라구요. 게다가 모두들 '아! 하자'하면서 알아보더군요. (하자신문을 50부 정도 가져갔었습니다.) 정리하면, 주최측의 준비가 부족했고. 사실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판매금의 10%를 주최측에다 지불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퀸오로라에게 사람들이 반응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기대하지 않았지요. (알림 게시판에서 발췌 글:오로라) 경험을 통해서 도쿄의 디자인 페스타와 한국의 아티스트 벼룩시장에서의 차이점은.춘천에서의 '상품'이라는 것은 '매체' 자체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령,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사진 자체를 액자에 끼워 넣어서 판다든가, 찰흙같은 데에 자기 손바닥을 찍어서 '기념비'를 만들어 주는 것처럼, '어설픈 상품화'라 그래야 하나? 일본에서는 사진을 판다 싶으면 차라리 사진 한 장을 돌돌 말아서 주거나 슬라이드 필름으로 판다. 적어도 '벽에 걸어 놓으세요.'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9. 사람들에게 "말 걸기" 제일 처음 'Queen orora'는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앤디 워홀의 'FACTORY'가 되는게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게 두렵다. 아트샵 퀸오로라가 오픈 자축 파티를 합니다. (5월12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자축파티 초대장에 쓰였던 초대글 중)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동료가 되고. 고객과 만나는데 여유가 생기고. 파트너와 일하면서 언젠가 도움을 줄 수 있기 위해서. 나는 이제 말 걸기를 시도하는 과제만 남아있을 뿐이다. "안녕하세요" 나는 물 속에서 헤엄쳐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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