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탐구생활 3/31 KINO EYE/Montage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에서 계속 해서 보여주는, 부담스럽기도 한 ‘렌즈 안의 눈’, 그 당시의 카메라라는 매체는 어떤 의미였을까. 영화 노동자들의 도구; 감시, 선동, 등 단순히 기록만이 아닌 인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 의무가 있었다.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사물과 이미지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메세지(사회주의 사상)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더욱 더 대단한 것은 이런 뚜렷한 목적이 있는 작업 과정 안에서도 굉장한 매체, 예술적 실험을 해냈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드는 순간부터 가장 중요해 지는 것은 렌즈를 통해 내가 보는 광경이 아니라,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내 시선/입장인 것 같다. 베르토프는 사회주의 체제 안의 영화 노동자, 국가와 국민간의 매개자, 노동자들 사이에의 전달자라는 뚜렷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지금 나는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얘기하려고 카메라를 들고 있나. 2009년 서울에서는 국가가 나에게 어떤 특정한 책임을 주지 않는다. 나에게 영화를 찍으라는 얘기도 안하고,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라는 강요도 하지 않는다. 감독도 관객도, 제작의 자유와 시청의 자유가 너무나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한 쪽도 의무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스스로 의무를 만들어가면서 찍고, 볼 것인가.

유리가 수업을 마무리 하면서 던지신 질문, “나에게 있어서 내가 선택한 매체는 어떤 의미인가” 영상이라는 매체는 내 관점에서,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보는 형상들을 다시 한 번 새로운 이미지로 재창조함으로써 강조, 또는 ‘현상화’ 하는 것이다. 카메라에 기록한다는 것은 첫 번째로 기억하고 싶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기록이란 보고 또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기록된 이미지를 남들에게 보여준 다는 것은 보는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왜 기억하고 싶은지), 그리고 이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자라고 말 하는 것 같다. 하자에서 얘깃거리를 꺼내놓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어떤 것을 보고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는데,(여기선 남들과 같이 공유하고 얘기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이 얘기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보통 글이나 말로 자기의 의견을 설명하곤 한다. 자연스럽게 얘기를 들은 사람들안에서 토론/행동이 시작된다. 영상도 나에겐 이것과 닮은 원리인 것 같다. 그래서 혼자 대단한 의견이나 결론을 제시해 박수를 받는 것보다 내 얘기로 부터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영향을 미치는 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09년 서울에서 매체작업은 어떤 의미로 해석 될까?”

2009년, 서울. 년도와 장소를 얘기한다는 것은 이러한 배경이 매체작업 안에서 드러날 때를 말하는 것 같다.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영화 노동자들은 동일한 하나의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 서울에서 영상작업자들은 소재를 선택하는 것도, 내용도 모두 자유다. 특정한 시선으로 보라고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카메라를 통해 보는 시선도, 자기가 구축해 가야 한다. 이런 대답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시대에는 훨씬 더 자기 정체성 이라든지, 시선, 이슈와 같은 것들의 비중이 커진 것 같다. 장점이라고 하면 다양한 관점의 작업들이 나오는 것 같다. 다양성이 감지되는 것은 그것들이 한 자리에 모아지고 공유가 되었을 때이다. 지금의 매체작업은 다양한 의견들을 세상에 발표하고 서로에게(관객과 동료 작업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까 한다.

20세기 러시아와 비교해서 쓰긴 했는데 사실 이게 지금 2009년 서울, 이렇게 특정한 시기의 성향인지는 모르겠다. 지금을 기후변화시대로도 읽을 수 있고, 신자유주의시대라고도 읽을 수 있고, 세계화 등 다양한 맥락이 있지만 아직 그 안에서 내 위치가 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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