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의 마무리: 모네와 마네가 모더니즘 시대를 열었다.

제 2차세계대전 후, 미국은 강대국이 되었다. 자본이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문화는 천박하다. 라는 식의 유럽의 목소리와 미국스스로의 자괴감과 열등감.
>미술품을 수출하고 세계에서 인정받자는 정치계의 목소리.

그러나 미술가들은 그 반대를 추구한다.(그렇지만 정치계에선 그걸 또 팔려고 했을 것이다.) 현실을 등한시하고 내면으로 내면으로 빠져들어간다. 결국, '미술 그 자체로써의 독자성'이란 걸 강조하며 추상표현주의를 내세운다.
액션페인팅을 한 잭슨 폴록, 추상적이고 작품과 몸과의 상호작용이 더 컸고 그럼에도 형태가 있던 드쿠닝.
폴록이라는 영화에 폴록이 하루종일 캔버스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그것에 몰입할 수 있는 정신이 말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추상까지 그리게 되는데 그 사람들은 칸트철학의 추종자라고.....'미라는 것은 우리를 덮칠수도 있는 폭풍같은 것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라는 철학의..... 
나는 이 부분에서 자연의 숭고함을 담겠다는 게 어이가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작품의 크기가 매우 커서 그 작품들을, 혹은 전시를 실제로 보면 사람을 짖누를 듯했다. 내가 전시장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중압감으로 답답했다.

그렇지만 로스코의 그림은 답답하지 않았다. 그게 크다고 생각하니 역시 답답했지만.....
로스코의 그림은 뭔가 심연을 담은 것 같고 예뻐보였다. 세이렌은 추상이 막 어이없게 찍어 바르고 <고뇌> 하면 되는 게 아니라고 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이상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도 내 기분을 물감으로 찍어바르고 <고뇌>라고 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렇게 하면 안돼 라는 게 자꾸 걸린다. 따라하긴 싫지만 뭘 따라한다는 거지?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 유럽은 우울한 것들을 그렸다. 자코메티의 소조는 많이 보던 거였다. 어릴 때 우리집에 있던 작은 조각상은 바이올린과 첼로를 켜고 있었는데 그건 좀 자코메티의 그것 스러웠다. 그래서 딱 보자마자 익숙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난 그 조각상이 예쁜 것 같았다. 마르고 긴 몸과 다리를 가져서.....부러웠다ㅋㅋㅋ

그리고 다시 미국. 거기에서 팝아트 장르가 나왔는데 제스퍼존스, 라우센버그 같은 사람이 추상주의에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의 삶은 현실이다. 너희의 나이브한 태도가 현실에 기여한게 뭐냐. 너희 엘리트주의도 반대이다.'
(이건 앞서서 다다이스트들의 예술 허무주의와 연결되는 것이다. )

이어서 자본주의를 써먹으며 비판하며 좀 이상하게 리히텐슈타인과 앤디워홀이 나왔다. 앤디워홀전시에 갔던 적이있는데 참 쉽고도 머리아픈 계획이다. 그냥 편하게 예술하지 뭘 자기의 몸까지 써가며 그랬을까? 라고 생각하고 답답했다. 
앤디워홀이 잘생긴 것이 자신을 스타로 만드는 것에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 볼 때도 역시 어렵고 부럽다고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