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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이상한 시간의 공간 서울은 내 삶의 터전이고, 강진은 조금 익숙한 곳으로의 여행이었지만,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고한읍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다. 여행자의 시선은 또는 탐사자의 시선은 그곳에서 삶을 일구는 현지인의 시선과 다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짧은 기간도 아닌 1주일의 시간을 낯선 공간으로 간다는 것은 굉장히 긴장되고 걱정되는 일이었다. 여행자의 눈으로 카메라(자신의 기록도구)를 들면 모든 장소를 그 누구 보다 멋지게 찍고 싶고, 나의 마음을 담아서 찍고 싶은 욕심 때문에 제대로 공간을 탐사하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정선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삶은 사는 것이지 옆에 서서 관찰하는 구경거리가 아니라고 하는 말이 떠올랐다. 직접적으로 그 삶에 뛰어 들지 않는 한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의 삶에 존재는 나의 모든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생활을 하는 장소만 옮겼을 뿐이지만 실제로 장소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나는 좀 특별한 나날을 보냈다. 나는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말하고 적고 오감을 총 동원하는 탐사를 위해 느끼기에 힘을 다했다. 풍요의 땅 랜드 오브 플렌티 (Land of Plenty). 정선 -사북 고한- 처음 정선에 도착했을 때 향한 읍사무소라는 "공간"은 어느새 우리가 작품들을 관람했고, 짐을 놓고, 워크숍을 하고 밥을 먹는 "장소"가 되었다. 나는 일주일 동안 이 사북과 고한이라는 낯선 공간을 탐사하며 이전 보다 더 잘 알게 되고 각각의 공간에 공을 들여 뜯어보고 가치를 부여하게 됨에 따라 공간은 “그 곳”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북과 고한, 두 장소에 대한 감정은 내가 획득한 지식의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어 경석 산이라는 곳이 자연적인지 인공적인지. 그리고 그것이 상대적으로 큰지, 작은지 어떤 물질로 만들어졌는지 와 같은 기본적이고 사실적인 것들을 먼저 알아내면서 그 곳에 대한 감정을 일으켰다. ‘ 그때 그 공간 일제 강점기 탄광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60년대 해방 이후 산림녹화정책과 70년대 유류 파동을 거치며 80년대 노동자들을 오히려 탄압하려 했던 노조에 대한 분노로 공권력까지 무력화 시켰던 사북항쟁, 그리고 석탄증산정책 덕분에 너도나도 전국에서 모여들어 한 때 30만 주민들이 막장에서 먹고사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정부는 석탄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엄청난 국고를 지원해 주었고, 덕분에 모두 단층건물에 살고 있을 때, 사북에 있던 탄좌에서는 사북 최초의 아파트를 지어냈고 그 최신식 사택에 광부의 가족들은 없는 것이 없는 생활을 했었다. 그렇게 누렁이까지 최고의 호황을 누리던 탄촌은 얼마 가지 않아 석탄 소비 감소에 의한 구조적인 불황을 겪게 되고,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석탄산업합리화 사업을 시작해 약간의 보조금을 주며 소규모 탄광을 중심으로 폐광을 유도했다. 예상과 다르게 적극적인 폐광 요구로 사북과 고한에는 실직자와 빈집들이 늘어났다. 마을은 보다 빠른 속도로 황폐해졌고 지역 안에서 경제 활동을 해오던 상인들 까지 모두 폐광으로 인한 타격을 입었다. 누군가 말하길 탄광촌이 거대한 슬럼가로 변해 버렸다고 했다. 단 10년 만에 모든 게 끝이 난 것이다. 그 이후, 주민들이 자본금을 모아 세계 최초의 시민 주식회사를 만들고 내국인 출입 카지노 허용 특별법을 통과시켜 적극적으로 카지노를 대체 산업으로 내세워왔다. 지금은 강원 랜드 그리고 하이원 리조트가 정상에 들어서 있다. ` 그때 그 장소 : 한 때, 풍년 (a year of abundance, once) 무엇이 지속 가능한가? 공간만 같을 뿐 시간이 흐르고 그에 따라 가치가 변함에 따라 공간 안에 있던 장소들도 다 변해 있다. 일전에 최신식이었던 사북의 사택은 헝클어진 옷가지와 널브러진 가제도구들이 이곳에 누군가가 살았었고 갑자기 떠났다는 것을 짐작가게 해준다. 침체된 지역 산업을 다시 한 번 일으키기 위한 시민 주식회사의 노력으로 폐광이 된 직후 대체 되었던 가치 또는 산업인 카지노를 들여오게 된다. 그것은 또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초래했지만 많은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얻게 되었고 관광객들로 인해 침체했던 시장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었다. 고한의 경우, 안정적인 지역주민을 확보하기 위한 강원 랜드 직원사택으로 또 다시 신도시의 아파트가 들어왔고, 보다 나은 환경을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고자 카지노 산업, 유흥가가 밀집되어 있는 상업시설과 학교를 분리시켜 놓았다. 시장과 아파트를 연결해주는 모노레일은 하나의 구경거리가 되어있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면서 깔끔하고 세련되게 꾸며진 강원 랜드 사택을 바라보면서, 사북에 있던 탄좌 사택, 복지아파트가 생각났던 것은 왜였을까? 외부인의 눈으로 봤을 때, 그곳에 사람들은 사북과 고한의 주민들은 단 시간에 굉장한 산업의 흥함 뒤에는 쇠함이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관찰한 사람들이다. 20년 전 그때의 전차를 밟고 싶지 않다면, 언젠가 자신들이 결정하고 들여온 카지노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예술마을 사북 고한 감+동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레옹이 꼭 필요한 것만 있는 이곳에 불필요한 것이 들어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나는 사북과 고한을 탐사하면서,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에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하는 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제 정말로 지속가능한 대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빠르게 변해버린 세상 때문에 메마르고 척박한 이 공간에 이제는 물질적인 풍요가 아닌, 예술마을로 풍요의 땅 Land of Plenty가 된다면 그들이 삶을 좀 더 윤택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작업 ` 공공 미술 “저게 예술인가요? “ 내가 작업을 하려고 할 때도 똑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것은 예술일까? 나는 이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까? 무슨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을까? 분명 작업자인 나에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할 의무 같은 것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설사 설명할 수 있을 때조차도 말이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작품을 보면, 그것이 몹시 궁금하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을 때가 있다. 덧붙여 내 경험과 나누고 싶을 때도, 나는 개인적으로 윤주경 작가의 검은산 이라는 작품이 그러하였는데 내가 해석한 의미와 작가가 의도한 의미는 온전히 같을 수는 없었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이해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는 작업자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다.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다. 의미는 작품을 보는 내가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작품을 보고 작가의 의도를 들었다고 해도 작가가 의도한 모든 것을 작품으로 읽어내기란 힘들다. 작품은 항상 독립적인 하나의 사물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입장에는 예술이 되기도, 아니게도 되는 것 같다. 작품을 보는 사람이 어떤 작품이 무엇에 관한 것 이라고 분석하고 해석해서 말하는 것과 작업자가 의도한 것 사이에서는 분명 부조화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없지 않을까? 누가 옳고 그르고를 판단하기 이전에 작품 자체가 가진 이야기를 우리는 무시 할 수 없을 테니까. 작품 자체로 말하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작업의 방식이고 어떤 형태의 예술이건 작업자가 가장 힘써야할 부분 일 것 같다. 1. 윤주경 작가의 작품을 보고 Q 인공으로 만들어진 자연의 산 “경석산” 과 카지노 “강원 랜드”를 함께 보니 어떤가요? 경석산은 멈춰있지 않았고 시간의 배열이 조금 뒤틀린 장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산을 오르내렸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참 묘해요. 석탄이라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 겹 두 겹 싸여 아주 깊숙한 곳에 묻혀 있어야 하는 것들을 밖으로 캐내서 쌓인 것인데, 글쎄요. 경석산이 과거의 산업의 상징물이라면 그 위에 현재의 산업의 상징인 강원 랜드의 뾰족한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게 너무나 위풍당당 하다고 할까? 폐광 이후로 몰락한 지역사회를 일으키겠다고 돈을 모으고 법을 만들었던 언제나 산업 전사인 지역 주민들의 의지와 확신이 이 곳 두 장소에서도 확연히 들어났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공공 미술 팀과 함께한 정선에서의 일주일은 예술가들이 감+동에 대한 고민을 가까이 지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보다 새롭고 다양한 의미의 시도는 가까이에 있는 그리고 지역 외에 있는 우리들을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했지만 지역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끌어내는 일은 아직 서툴러 보인다. 창작과정을 지켜봐 주고 흥미를 가지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제 서로의 반응을 이해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북과 고한, 그리고 예술가와 예술은 주어진 기간을 섣불리 예측하고, 고안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계산하려 하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뜯어보고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또한 모두가 한편으론 양보하고 어떤 부분은 다른 한편에서 노력하며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감+동이라고 했을 때, 특히,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내가 믿는 것 이상으로 덜 의도적이었기 때문이다.
2. 고한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 같은 시공간 안에 있으면서 서로의 보이지 않는 벽 때문에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을 때. 놀이터라는 장소, 운동장이라는 장소, 처음 초등학교를 찾았을 때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보이지 않는 벽이 보일 뻔 했었다. 사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어떠한 것의 관계의 친밀감을 형성하고 그 친밀감은 그 장소의 가치를 만드는 것. 하루는 탐색전, 이 틀 째는 적극적인 행동과 친밀감. 아이들과 나의 보이지 않았던 그러나 단단했던 벽이 깨졌을 때 나는 정말 당황스럽고, 나의 카메라가 행여나 다칠까봐 노심초사 불안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얼떨떨했다. 그것이 모두가 공감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작업자로써 기록해야할 의무를 느꼈다. 경험으로만 기억되지 않고 작업으로 끌어드리려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으로 확신을 갖고 작업을 완성시킬 것은 아니다. 특히 공공 미술이라고 했을 때, 이제 내가 겪는 문제는 “저게 예술인가요?”의 문제를 넘어서 나의 작업으로 타인에게 어떻게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예술 마을 고한 사북 감+동 프로젝트를 함께 경험하면서 공공미술이라는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공간을 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교감하고 싶어서 작업을 결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선에서 돌아 온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과 교감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나를 알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나의 작업을 통해서 그 세상과 교감 할 수 있도록, 서로 감동을 주고받는 작업을 했으면 한다. 작업을 통해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고 피사체도 깊이 들여다보고 내 마음과 피사체의 마음을 동시에 열어 결국 세상과 대화를 하는 작업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 When we meet a desert, make it a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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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한초등학교에서의 너의 '작업'에 대해서도 지면을 더 두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생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