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가을 시민문화워크숍 세상을 구하는 시인들
시즌 4. 施인 권혁일
<‘시민됨’ : 그 행복한 습관을 만드는 씨앗>


일시 : 11월 19일 목요일 19:00~
장소 : 3층 마루

‘시민됨’ : 그 행복한 습관을 만드는 씨앗

 안녕하세요?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뭉게구름>과 <All Together Now>를 들으니 긴장이 풀린다. 반겨주셔서 고맙다. 문득 기타를 치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까 옛날 기타를 끌어안고 살았던 시절이 생각난다. 밤새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갑자기 오랜만에 기억이 나서 새록새록 나서 흐뭇하다. 혹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초대되었는데 나란 사람이 여러분들 앞에서 ‘施’라는 단어를 앞세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망설였다. 오늘은 그 ‘施’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알고 있다. 미리 찾아보니 ‘베풀 시’이더라. 그래서 다시 고민을 했다. 내가 과연 ‘베풀 시’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솔직히 나는 개발자이고 한자조차 잘 모르는 공대를 다녔고, 서른이 넘어 이 일 저 일 넘나들다 숙제를 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보기에 제가 베푸는 사람 같아 보이나? 내가 이 한자에 걸맞는 사람인지 내심 고민을 했고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잠깐 소개를 하자면 나는 여러분이 네이버라고 알고 있는 NHN 사회공헌팀에서 해피빈을 만들고 현재 그 포털사이트에서 나눔을 퍼트리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잘 베풀거라는 착각과 천사일거라는 예상을 하게 만들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데 솔직히 그런 일련의 상황들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정말 베푸는 게 무엇인가 생각을 많이 했다. 성경 구절에 이런 말이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자기가 많이 갖고 있어서 일부를 나누는 것 보다 동전 하나가 전부인 사람이 그 전부를 나누는 사람이 베푸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에 비추어 보면 나는 정말 베푸는 사람인가? 이 자리에 나와서 내가 베푸는 것에 대해 나눔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어불성설이 아닌가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초대를 받았고 그래서 내가 나눌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심하다가 살아왔던 삶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기억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나눔 혹은 공유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 살아오면서 정답이 따로 없듯이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고 듣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서로 공감할 때 종종 있지 않은가. 그래서 서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첫 번째 스트림 : 성공, 노력

나는 네이버와 연이 닿아 일을 하게 되었고 일본과 중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나름의 내공을 쌓아 왔고 현재는 사회공헌팀에서 일을 지속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성공과 노력이라는 첫 번째 스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다. 세상에서 정의하고 있는 성공이란 무엇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하고 싶은 일하면서 해야 하는 일 하는 것? 그것도 맞을 것 같고, 또? 먹고 살만큼 돈 버는 것? 사람마다 성공의 정의와 기준이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대략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공의 기준이라는 것은 있지 않은가. 부와 명예? 그 밖에도 다양한 것들이 있을 수 있다.

나는 개발자이다. 공대생에 공돌이었는데 이상하게 이 자리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커리어만 놓고 보면 사회에서 보면 꽤 괜찮은 포지션으로 설명된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일명 엘리트에 해당하는 정규 코스를 밟아 왔다고 예상한다. 솔직히 어렸을 때는 그리 삭막한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축구하고 잠자리 잡으러 다니고 계속 놀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즘과 퍽 다른 환경을 즐기면서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꿈이 많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연애도 하고 싶었고 음악도 하고 싶었고 피아노 치러 다니고 노래도 부르고 솔직히 연애도 많이 하러 다녔다. 그 당시 연애를 하는 사람은 반에서도 대단한 소문거리를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들 중 하나였다. 커리어나 스펙을 쌓기 위해 많은 노력을 일부러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했기에 반대로 열등감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살다보니까 공부는 그럭저럭 1등은 아니지만 언제나 상위권을 맴돌면서 스스로 나의 한계를 확인해왔다. 고등학교 때에는 대개 내성적이어서 남들 앞에서 한 마디도 못했었는데 이제는 좀 익숙해져서 하긴 하지만 그런 성향으로 인해 열등감을 느껴왔다. 그 열등감이라는 게 남과 비교해서 못하는 것을 확인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가 느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느끼는 게 바로 열등감인데 항상 그 한계를 극복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고심해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그 한계에 닿았었고 그래서 재수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책받침에 영어 단어를 빼곡하게 써서 선물로 주었는데 그 때가 또 다른 계기였던 것 같다. 그 책받침에서 발견한 ‘열등감을 갖는다는 건 자기 자신이 우수하다는 반증이다’라는 격언을 보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내가 나보다 더 우수하다고 느꼈던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극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재수를 해서 들어간 대학에서도 그 계기는 이어지지 못했고 밑바닥에 있던 그 열등감을 깨기는 어려웠다.

재수해서 들어간 그 전자공학과에서 만난 신입생들은 거의 대부분 현역으로 들어왔었고 그 사실이 다시 나를 주눅 들게 하였고 나와는 다른 괴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처음엔 학과에 적응을 쉽게 하지 못했다. 전자공학이라는 학문이 너무나 어려웠고 로봇을 만드는 학과라고 예상하고 들어왔던 터라 낯설기까지 했다. 막상 들어와서 보니 로봇 손끝의 한 부분을 15명 정도가 함께 연구하는 것이 바로 전자공학이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학문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그 열등감의 그림자가 쫓아 다녔는데 한 번 극복한 경험은 다시 항체가 생기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 두고 군대를 가는 것이었다. 차마 혼자 학교를 나가는 것을 결정을 못하고 어떻게 3학년을 마치게 되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음 해에는 몸이 좀 안 좋아져서 한 학기를 허술하게 보내고 그러면서 나 자신과 한번 다시 부딪쳐 봐야 하지 않나, 다시 도전해 봐야 겠다 라는 다짐을 했다. 사실 그때까지 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솔직히 그 학과에서는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었는데 마이크로 로봇이나 뭐 그런 것을 만들어야 했었는데 나는 잘 못하니까 다른 잘 하는 아이들이 속해 있는 팀에 들어가서 무임승차를 눈치껏 해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을 먹었다. 그 전과는 다른 삶을 기대하였다. 누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새벽 5시에 학교에 등교해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도전해보고 그렇게 생활을 하면서 삶을 바꾸는 노력을 해왔다. 큰 차이는 아니었다. 삶을 바꾸는 것이 그 전과는 아주 큰 차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한 예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중에서 C 언어라는 것이 있는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이다. 그 공부를 하기 위해서 1학년 때부터 전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나는 어렵다 해서 4학년 때까지 어려워서 미뤄두었던 공부였다. 4학년 때 한 교수가 C 언어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하겠냐는 제안을 했고 불쑥 나는 거기에 참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손을 들 수 있었던 것은 생각이 바뀐 후라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해 본 경험도 없고 잘 하지 못하고 그 교수도 믿을 수가 없어서 대신 서브 프로젝트를 제안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도전하게 되었는데 그 날 이후부터 3주 동안 C 언어에 대해서 관련된 책을 다 찾아서 미치게 공부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떤 상황에 자신을 스스로 던져 버리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해결책이나 극복점을 찾게 만들었다. 그렇게 3주를 보내고 나서는 C 언어에 대한 열등감은 어느 정도 극복되어 있었고 그 다음은 또 달라져 있는 것이다. 도망가지 않고 그 상황에 들어가서 무조건 하겠다는 의지로 그 과정을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그렇게하다보니 스스로 열등감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고 다시 한 번 도전을 하게 되는 경험을 마주하게 되었다. 네이버 기술팀장을 맡게 되었는데 그 팀은 검색 엔진을 만드는 파트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실제 웹의 상황에 대해서는 다른 전문적인 팀원들에 비해 잘 모르는 형편이었는데 그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팀장이었다. 어떤 느낌이었을까 상상해봐라. 나보다 더 뛰어나고 잘 하는 사람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팀장의 역할을 과연 잘 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사실에 대해 말을 했는데 전문적인 능력보다는 경험의 연륜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상사의 코멘트를 받고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에 또 나를 던져야 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그 사람들이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내가 지원하고 서포트 해주는 역할을 자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2년 뒤에는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 있는데 어느 순간 그것들을 알아채고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서버에 대해 사람들이 필요하거나 요구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미리 알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닥을 함께 구르면서 경험을 했던 것들이 나를 성장시켰던 것 같다. 그렇게 현재의 모습을 만든 가장 큰 경험 중 하나는 일본에 가서 네이버 재팬을 만들게 되었는데 CTO라는 이름과 포지션으로 혼자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1월 달에 서버 11대를 가지고 가서 2개월 동안 준비해서 네이버 관련 서비스를 혼자 일본어로 프로그래밍했다. 갈 때만 해도 혼자 하기 버거운 일이었는데 2개월 동안 나를 변하게 했던 일이었다. 남들이 함부로 뛰어들지 않은 일이었고 내가 해야겠다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해결해나가고 묻고 도움을 요청을 하고 맨바닥에서 혼자 무언가를 다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현재의 내공이 생긴 것이다.

현재의 내공이라는 것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과정이 있어야 한다. 대충 공부하고 노력하고 남들 하는 만큼 해서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들 하는 만큼 하다보면 그 만큼뿐이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내가 꼭 해내야겠다고 의지를 품는다면 그것을 해내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자기가 성장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가 느끼는 것이다. 이때는 남과 비교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성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내가 성공했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남들이 먼저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극복이라는 부분에서 어느 누구든지 성공해야겠다는 전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자기 극복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바닥까지 던져보는 그 과정을 거쳐야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성공에 대해서 생각을 다르게 하게 되었다.

 

두 번째 스트림- 미션.

무엇을 위해서 성공하려 하는가? 나는 이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서 성공하고 싶은가? 자기 삶을 위해서? 윤택한 삶을 위해서? 여기 혹시 돈 벌기 싫은 사람 있는가? 돈은 벌기 싫고 돈은 쓰고 싶다? 사실 돈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는 뒤에 나올 이야기들이다. 인생에서 자기가 의미를 새기는 것이 무엇이냐. 결국은 사람들한테 자신이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고 사랑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고. 그런 존재감에 대해서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왔느냐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져 왔느냐가 중요하다.

현재는 성공하려면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에 다녀야 하고 그 다음은 어떠해야 하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된다. 혹시 여기 공부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 있나? 진짜예요?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는 것 좋지만 입시와 경쟁을 위한 공부는 싫지 않을까?

내가 현장에서 신입사원을 뽑아서 함께 일을 하게 되면 반복되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게 되는데 요즘과 과거의 사람들이 다른 게 뭘까 하는 지점이다. 한 예로 강남 8학군 학교를 나오고 좋은 대학 나오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 온 엘리트가 일을 하나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지 시범을 보여주면 그 다음은 스스로 알아서 잘 해결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문제해결이라는 것에 대해서 모범을 따라하면서 일을 잘 습득해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공부하는 방식으로 갔을 때 10년 뒤에는 어떻게 될까?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시스템에 익숙한 아이들이 살아갈 다음 세상은 과거 엘리트들이 시범을 보여주면서 문제해결을 할 수 있던 시대와는 다를 것이다. 좋은 대학 나오면 인재라고 해서 좋은 대우를 받고 했던 시대와는 다르게 요즘은 아니다 싶으면 다 떨어뜨린다. 학벌을 안 보지는 않지만 옛날처럼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참고사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트를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졌다. 밑바닥에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올라 온 사람들을 더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10년 후 다음 세대들에게는 현재의 이런 시행착오들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잘 된 친구들이 있는데 어떤 부류라 하면 박사과정을 밟아 정식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았던 친구들이 훨씬 잘 된 케이스가 더 많다. 일반 사람들이 정답처럼 생각해왔던 그런 삶의 코스들이 다르게 부딪쳐 보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제 삶, 네이버와 해피빈을 하게 된 이야기를 하면 좀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이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과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 결정이 현재의 삶을 예정했었는지 모른다. 어찌어찌 고 3을 지내고 재수해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어렵게 대학을 다녔다. 현역이 아니었던 나는 재수를 한 친구를 찾게 되었고 그래서 나에 대해 과 친구들에게 고백을 했다. 학과 대표를 선발을 하는데 4명 정도 후보가 나왔는데 뒤에 조용히 서 있었는데 누군가 나를 추천을 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하여 5명의 후보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포기를 했었는데 투표 결과 3등이 되었다. 재투표를 하게 되는 과정에서 나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연애도 했었고 여러분이 원하는 미팅? 그런 것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포부를 밝혔으니 어떻게 되었을까요? 학과 대표가 되었다. 87학번이었는데 교수들을 종종 만나는 기회가 있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이상한 학과였다. 이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왔으니 좀 놀아야 했는데 우리 과가 이런 형태의 단합도 되지 않는 과라고 하는데 나는 이런 식으로 가면서 학과대표를 해야 하는 것이라면 하지 못하겠다. 제대로 단합해서 가자라는 말을 했고 함께 의기투합을 해서 가기로 했다. 이후 아침 10시에 일어나 앞서서 놀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공부 열심히 하면서 로봇을 만들고자 했었지만 2학년 때 다시 학회장이 되면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그 이후 학과 엠티는 5명이 참가했던 초반과는 다르게 35명 이상이 가게 되었고 여기서 바뀌었던 것 같다. 잘 놀지 못하고 내성적이면서 어울리지 못했던 성격을 바꾼 것이다. 87학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 시대에는 대모와 민주항쟁이 빈번했는데 종종 아이들을 함께 끌고 나가기가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삶이 변화하고 있을 무렵 나는 대학원에 우여곡절 끝에 가게 되었다. 당시 처음으로 소프트웨어를 하셨던 교수가 오셨고 그 교수님과의 인연을 만들게 되었다. 만약 내가 재수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들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학과 대표를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대학원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그 교수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나의 삶은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이후 교수님께는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삼성 SDS에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한 후 병역특례자는 모두 연구소로 가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였다. 처음에는 화가 무척 났었지만 멀티미디어 연구소라는 곳에서 일하게 되었고 거기서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고는 현 네이버 창업자를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그 선배가 빈 회의실로 불러서 하는 말이 “소프트웨어엔 미래나 희망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잘 할 수 있는 것은 ‘언어’다” 그게 계기가 되어 검색 엔진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고 함께 네이버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여정이 우연일까요? 아니면 인연일까요?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았을까? 그 이후 네이버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를 풀려면 밤을 새워야 할 것 같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97년 네이버 웹 포털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10월 15일이었고 25일에 결혼을 했다. 이때는 밤낮이 없이 작업을 했고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당시에는 네트워크만 연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여러 가지 스토리가 많이 쌓여 있는데 이것은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겠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시작했을 무렵 불현듯 나는 왜 여기에 이 멤버와 함께 일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일본에 있을 때 내 인생에서 35년의 한 단계의 인생이 있고 그 다음 단계의 인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때 1년 반 동안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몸도 많이 망가지기도 했다. 많은 일들이 진행되면서 회사를 떠나지 못하게 되었고 회사의 큰 흐름 안에서 사회공헌 팀이 만들어지고 이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어렴풋한 생각을 가지고 사회공헌 관련된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 밖에서 혼자 일을 도모하는 것보다 네이버 안에서 무언가를 도전해보고 바꾸어 보는 게 아직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네이버라는 풀랫홈 안에서 어떤 흐름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피 빈으로 이동했고 나라는 존재가 사회공헌이라는 파트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2000년부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1년에서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안정이 될 것 같다. 초기 헤매는 과정과 그 시기를 넘기고 현재는 좀 안정된 흐름을 타고 있다. 지금까지 해피 빈을 통해 기부에 참여했던 사람은 370만 명 정도가 되고, 콩이라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670만 명이 된다.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 앞으로의 해피 빈을 상상해 가고 있다.

내가 계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미션이란 네이버를 통해서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우리 나라는 기부가 잘 될까요? 지금까지 오면서 드는 생각은 기부를 하는 사람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하는 적극적인 사람. 이런 사람들은 참여를 권유하면 적극적으로 하는데 1%도 되지 않는다. 기부에 소극적인 사람은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눈물이 나는 스토리를 가져가면 하는 사람이며 10%가 되지 않는다. 정은 있지만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불우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 지금은 없고 나중에 벌면 하겠다는 사람. 우리나라의 모든 기부 사이트를 비롯한 다양한 기부활동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기부를 하게 하는 일을 한다. 다른 이들은 어떠한 말을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3종류의 반응이 있는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면서 기가 막혔던 것은 결식아동을 돕는 것에는 많은 반응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 결식아동이 몇이나 있을까? 결식아동은 쌀이 없어서일까? 결식아동은 굶어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도시락을 싸주는 부모가 없거나 주변 사람들이 없는 경우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것은 제대로 도시락을 싸주는 것이 필요하지 쌀을 보내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소년소녀가정의 경우 지원금을 보내주는데 한 달에 200-300만원씩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고 고민하며 해결하고자 했을 때 바뀌게 되는 것이다. 기부라는 것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기부에 무관심한 80-90%의 사람들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해피빈이 하는 것은 피상적으로 해피빈 사이트를 통해 기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1500만 명이 해비핀을 방문하고 있지만 이중 10% 외에 무관심하고 바뀌지 않는 20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을 기부에 한 발자국 가까이 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사이트에서 캠페인을 벌이면서 기부하라고 하더라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 해피빈을 만들고 했던 시행착오는 바로 이런 것이다. 기부라는 문화는 커뮤니티로 엮어서 끌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해피빈을 통해서 방문한 모든 기록들을 가지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간다. 카페에 들어가서 어떤 글들을 쓰고 나면 해피빈과 연결되었다는 메시지가 튀어나오게 하면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많은 반대도 있었다. 기부라는 것은 직접 하는 것에서는 거부반응이 있지만 해비핀의 기부콩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없었다. 콩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 나서서 콩을 찾는 사람들이 생기는 단계까지 왔다. 지금까지 이러한 단계를 거쳐 기부활동을 하게 된 사람들은 200만 명 정도가 된다. 앞으로 더 진행하면1500만 명이 한 번쯤은 콩을 서로 나누게 되지 않을까 한다. 지식인에 콩이 뭔가요 라는 질문이 올라오면 댓글로 설명들이 올라온다. 그 답변들을 보고 콩의 의미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되면 콩을 기부하게 된다.

지금 해피빈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는 기부단체는 4012개 정도가 있다.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보면서 스스로 이러한 기부단체들을 찾아가고 기부활동을 하게 되고 있고 이렇게 기부문화가 점점 바뀌어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제는 해피빈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나의 미션 혹은 숙제라고 말한다.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 일이 저의 일입니다 라고 한다면 그분에게 줄 것이다. 언제쯤 그런 분이 나타날까? 그날이 올 때까지 충실하게 해나갈 생각이다. 자기 삶이 소중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삶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로 엮이고 엮이면서 나누면서 살아가는 삶을 바라고 있다.

 

세 번재 스트림 - 행복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있지만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제가 단언하건데 저 사람 참 좋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공해면 행복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성취감 뒤에는 더 많은 욕심이 생기면서 하나에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 자신은 행복한 순간이 많았고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때 행복감을 느끼지만 허와 실을 느끼면서 간다고 생각한다.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과정이 행복한 것이고 행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1억의 돈이 있는 사람이 mp3를 사기 위해서 돈을 모아가는 과정이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의 기준에는 절대치가 있지 않고 절대적인 기준에서 판단되어지지 않는다.

릭 부이치치라는 사람을 아는가? 검색해보면 이 사람에 관한 동영상이 나온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영상을 보면 첫 인사로 여행을 좋아하고 수영을 좋아하고... 저는 행복합니다(i am happy) 라는 이야기가 나온 후 사람들의 영상이 나오는데 팔이 없는 사람, 발이 없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바로 릭 부이치치다. 이 사람은 수영을 비롯해서 수학을 전공하기도 하면서 일상의 모든 일들을 한다. 영상 안에서 8살에 인생을 끝내고 싶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살다보면 사람들은 슬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안돼 라고 하면서 멈춘다면 실패하는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시도하고 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그 사람은 모든 사람은 행복하다 라는 말을 하는데 정말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성공을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에서 살게 되면 자신의 자존심을 가지기 위해서 자신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대충 다른 사람과 비슷해서는 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내공을 가진 사람은 내공을 가진 사람을 알아본다. 그 사람의 지식, 배경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의 내면의 내공을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내공을 키우지 않고 자신을 탓해서는 안 된다. 이제 공부 잘해서 될 수 있는 것은 의사와 판사 이외에는 남아있지 않다.

자기 자신의 능력이 다른 이들과 다르고, 하고자 하는 것이 확실하게 있다면 그것을 적당히 해서 다른 이들과 비슷비슷한 노력을 하면 안 된다.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노력의 과정을 두려워 하지 말고 해야 한다. 성공은 노력이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에서의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순간 한 순간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현실을 잘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그것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감히 행복하다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많은 순간들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고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메일을 주고받아도 좋겠다. 이게 인연이 되어 다른 자리에서도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메일 주소는 hikwon@nhn.com이다. 현재는 그렇지만 NHN과의 인연이 달라질지 모르니 뒤의 주소에 naver.com으로 보내면 환영이다. 이 주소는 영원히 바뀌지 않을 테니 걱정 안 해도 좋다. 오늘 인연 소중하게 생각하겠고 이런 자리에 초대해주어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