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출신 사회사업가, 권혁일 실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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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 사회공헌실의 권혁일 실장님은 기부 포털 해피빈의 성장 과정을 함께해오신 '해피빈의 아버지' 같은 존재이십니다. '일기남'도 평소 온화한 미소의 권 실장님의 '과거'가 사알~짝 궁금했었는데요. 알고보니 네이버 초창기 개발자 출신이셨어요! 권 실장님의 흥미진진한 네이버 초창기 이야기와 사회공헌 사업에 대한 열정을 함께 들어보시죠 :D |
안녕하세요. NHN 사회공헌실의 권혁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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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빈 콩 캐릭터와 함께 찰칵~> |
저는 2003년부터 해피빈으로 대표되는 NHN의 사회 공헌 사업에 깊숙이(?) 개입해 왔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마을도서관, 책버스 등 NHN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자연스레 많은 분들을 뵙게 되고요 제가 해피빈을 시작하기 전 무엇을 했을까 궁금해 하시는 분도 많이 계시더군요. 어떤 분들은 제가 빈민 운동가 혹은 성직자 출신은 아닌지 묻는 분도 계시고요 (조금 마른 제 외모 때문일까요? ^^;)
그래서 제가 밖에 나가서 “저 개발자 출신 입니다” 라고 자기 소개를 하면 놀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창업자이신 이해진님(NHN이사회 의장)을 제외하고 네이버 입사 순번이 가장 빠르다고 하면 더 놀라시더라고요 ^^ (참고로 제 사번은 3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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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꾼 한마디 “같이 한번 해보자”
저는 1994년 모 대기업의 연구소 신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멀티미디어랩’이란 부서에 배치 받고 옆 자리를 둘러보니 수더분한 인상으로 조용히 뭔가에 몰두하고 있던 분이 계셨는데요 바로 이해진 의장님이셨습니다 (당시 사원이셨죠).
어느 날 빈 회의실로 저를 부르시더니, 칠판 가득 뭔가를 써가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MS같은 외국 기업과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는 우리나라엔 전무한데, 유일하게 한국어를 기반으로 한 분야, 특히 검색은 한번 해볼 만한 분야라고 생각한다”며 사업 계획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외국엔진이 한글에 적응해가는 3~5년 사이에 경쟁력있는 검색엔진을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그러니 나와 그 일을 같이 해보자" 란 제안을 던지셨답니다. 세상물정 모르고 어수룩하기만 하던 저는 그냥 “같이 한번 해보자”는 말에 순순히 응했고요. 그렇게 시작했던 검색 사업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지금의 네이버로 발전하게 되었지요.
전선 잘라주며 배운 개발자 노하우
저는 초창기 네이버 검색엔진의 색인파트(형태소분석 및 인덱싱파트)를 맡아 나름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몇 년을 보냈지만 이를 제외한 웹기반기술, 서버, 네트워크, OS, 웹서버 등 네이버를 구성하는 여러 기술에 대해 처음에는 완전 문외한이었습니다.
너무 몰라서, 도저히 개발총괄 역할을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고, 그러겠다고 의사를 밝혔는데,
그놈의 ‘나이 때문에 (제가 다른 분들보다 조금 연장자였거든요 -_-)’ 할 수 없이 개발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 개발자 인생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것이죠.
워낙 실력 있는 거물급 팀원들을 모시고(?) 팀장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한솥밥 먹는 관계라 실명을 밝히기 어려운 점 양해 바랍니다 ^^). 저는 유능한 팀원들이 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부수적인 모든 일들을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예를 들면, CS (Customer Satisfaction 혹은 Customer Service) 메일 응대라던가, 서버모니터링이라던가, 서버 죽으면 달려가서 전원켜는 일이라던가, IDC (Internet Data Center) 들어가서 네트워크 세팅하는 것 (이건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몰라서 직접은 못하고, 저는 '전선 잘라주는 역할' 같은 것을 했지요 ^^) 등을 말이죠.
그러면서, 짬짬이 관련된 것들을 어깨너머로 조금씩 배우게 되고, 테스트해보게 되고, 조금씩 익숙해지다 보니 차츰 대화를 할 때, 아는 것들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2년 이상을 보냈습니다. 다들 꺼려하던 고객 메일 응대를 2년간 하고 나니, 사용자가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더군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네이버, 한게임, 원큐의 합병이 이루어졌고, 저는 한국일을 그만두고 일본에 가서 NHN Japan의 초기 세팅부터 기술총괄을 맡게 되었습니다. 실은 말이 기술총괄이지, 그냥 저 혼자 가게 된 거였답니다 -_-;
혈혈단신 떠났던 일본행
2001년 2월,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일본땅에 PC서버 11대를 들고 들어가서, IDC 선정부터 시작해서 서버팜(Server Farm)구성, 네트워크 세팅 등을 홀로 수행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 개발자 인생에서 실력 향상이 가장 많이 이뤄졌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상황이라, 자존심이고 뭐고 한국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테스트해보고, 안되면 찾아보고, 도움요청하고, 자료 찾아보고, 거기에 일본어 환경 배워가면서 코드 뒤집고, 디버깅(Debugging)해가며 1분 1초가 아깝다는 생각으로 몇 개월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두루두루 알고 있던 저의 얕은 지식들이 실제 경험들과 결합해서 '살아있는 하나하나의 전투력'으로 승화되더군요. 거기에, A부터 Z까지 혼자서 할 수밖에 없다 보니, 웹서비스 전체를 다 꿰뚫어보는 나름의 안목도 생겼습니다.
짧지만 치열했던 개발자로서의 기간 동안 배운 교훈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상황이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안겨주었다’는 것 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정말 열정을 갖고 제대로 부딪치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일이 좋고 나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겨났죠. 오히려 남들이 하지 않는 가장 열악한 상황의 일들이 결과적으로는 본인에게 가장 좋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일이든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부딪쳐서 그것을 자신의 실력으로 만들어 내자”는 것이 제가 개발자 경험을 통해 배웠던 소중한 가르침이고 해피빈에 몸담고 있는 지금도 항상 명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루하루 성장하는 해피빈과 함께
2003년에 시작한 해피빈의 경우도 실은 개발자 경험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난관을 극복하며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점에서는 말이지요.

<작년 2월 충북 진천의 한 초등학교 마을도서관 개관을
기념해 열린 주민백일장 시상식에서>
철저한 사전조사와 고민을 거듭해 기획을 하고 ‘이렇게 하면 잘 되겠지’하고 해피빈 1.0을 시작했었지만 1개월이 지나고 ‘이게 아니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막막했던 심정이 잊혀지지 않네요 ^^;
현재 여러분이 네이버를 이용하시면서 접하는 ‘콩’ 중심의 해피빈 인프라는 2007년 7월에서야 기반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기부에만 사용될 수 있는 아이템인 콩을 활용해 콩메일, 마일리지 변환, 카페에서 콩저금통 만들어 기부하기 등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기부문화를 조금씩 꽃피워 왔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노력으로 기부금은 올해 벌써 119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기부자도 260만 명이나 되고요, 사회복지 단체가 모여있는 해피로그만도 3,600개로 증가했습니다. 현재 77개의 후원파트너 기업이 해피빈과 함께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에는 비영리재단 ‘해피빈’이 설립되기도 했는데요. 해피빈은 이제 시작이고 할 일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음을 매 순간 느끼며 각오를 새롭게 다지곤 합니다.

<네이버 해피빈에 놀러오세요~>
치열했던 개발자 경험 그리고 해피빈과 함께 했던 수많은 시행착오는 어느새 저의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해피빈에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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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2009년 05월 22일 금요일 _ 사회공헌실 권혁일 |
갖추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기부 포털 해피빈을 운영하는 등, 건전한
나눔문화를 뿌리내리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네이버러브북'을 통해 오프라인에서의 지식평등을
실현해 가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문화 사업을 지원하며 보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네티즌과 도움이 필요한 공익 단체를 이어주는 국내 최초의 온라인 기부
포털입니다.
곳곳에 총 9개의 'NHN희망소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연계하여 불우이웃에게 전달하고 있으며, 매달 급여에서 2,000원씩을 모아 사회
단체에 전달하는 기부 프로그램 '이천원클럽', 사내 봉사단 'n'gels' 등 다양한
직원 참여 봉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맞춤PC'를 제공하고 있으며,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진행하는 장애인
게임 여가 문화 체험관, '해피스페이스'사업을 지원합니다.
100개가 넘는 '마을도서관'을 설립하고, 총 28만 권의 책을 지원하였습니다.
행사를 방문하고 있으며, 산골마을도서관과 공부방의 이동 도서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재'를 통해 제공하며 사람들이 함께 책 읽는 즐거움을 나눌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캠페인 후 책들은 '책읽는버스'와 '마을도서관에 전달됩니다.
돌려드리고, 반납된 도서는 '책읽는버스'와 '마을도서관'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사용자들이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며 지식과 감성을 공유하는 새로운
문화체험 캠페인 '컬쳐플러그'를 진행합니다.
펜타포트락페스티벌 등의 문화 행사를 후원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