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 (화)


내 내면적 괴로움이 너무나 찌질하게 느껴진다


어쩌다보니 제목이 저지경이 되었다. 나의 내면적 '괴로움'이 너무나 '찌질하게' 느껴진다. 정.반.합. 정이 있고, 반대하는 것이 있고, 그 반대하는 것이 합이 되어 모였을 때 다시 정이 되어, 또 반이 생기고 그 반이 합이 되어 정이 되는, 끝나지 않는 구조. 나의 '반'은 괴로움과 찌질함이다. 나의 '반'이 모여 '합'이 되면,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드쿠닝, "형태를 그리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형상을 그리는 것이다. 고로, 형태를 제거하는 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 이후의 화가들은 시각적인 자극, 가시세계에서 이탈하여 내면의 세계에 머무른다. 동양의 뭍에서 벗어나 산세에서 도사노릇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오리엔탈리즘이 마구 떠오르도록, 뉴만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동양화 '난'이 정신을 그리는 것이라며 유명해졌다고 한다. 극동지방의 그림에서 정신(혼)을 느끼고자 하는 그 노력이 대단하다.

이후 화가들은 장자연의 이름이 매체에 오르게 된 계기인, 소위 '스폰서'가 생긴다. 매니저라고 부를 수도 있다. 스케줄 맞춰 전시회 열어주고, 돈 벌어다주고, 유명 인사들 소개해주고, 그림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어준다. 이만큼 고마운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내 추측에, 이 '스폰서'겸 '매니저'들은 돈을 조금 받더라도 일단 화가의 그림에 만족하고 도움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내가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자 노력하는 화가였다면, 나는 스폰서보다 안티가 더 많아졌을 지도 모른다. 이제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건 하나의 '유행' 정도가 되어버렸다.

스폰서 덕택에 소식이 빠르게 전달되다보니, 대충매체가 생겨난다. 지금 내게 대중매체는 크게 도움 되지 않는 정보 덩어리에 불과하다. 연예인의 스캔들, 스포츠의 승패, 정치인의 비리, 일가족 자살이 전부인 지금의 뉴스들에서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건 분노가 전부일 것 같다. 대중매체는 사회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하는데, 대개 사람들은 뉴스를 보고 태초로 돌아가 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무섭다.

대중매체는 미술의 한 장르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리히텐슈타인의 POP 아트는 대중매체가 재현하는 형태의 어떤 여성을 만들어낸다. 이 POP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끔 해준다. 하긴, 내면의 있는 '무언가'를 발기발기 찢어내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무너지고 있는 사회가 눈에 보일까!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보라!"라는 메세지를 던져주는 듯한 그 정신은 가히 내 내면의 괴로움을 끌어올린다.

수업 내내 나는 괴로웠다. 나도 내면에 있는 어떤 괴로움을 몸 밖으로 표출해내고 싶은데, 그게 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내가 느끼고 있는 그대로를 드쿠닝처럼 그려내는 건 이제 다 지난 유행이다. 영화를 찍어도 진부하다. 내가 겪었던 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 혹은 내가 생각했던 걸 구성 없이 무미건조하게 촤르륵 보여주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표출하고 싶다. 내면에 있는 나의 괴로움을 찌질하게 가둬두고,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하고 싶지 않다. 예술가들은 어쩌면, 그들도 자신의 내면에 있는 괴로움이 찌질하다고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을까? 무조건 엘리트적인 생각만 한 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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