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 갈 준비를 하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주제들을 고한, 사북에 가서 풀겠다는 생각보다는 그곳을 잘 보고 오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리고 실제로도 사진 아뜰리에 같이 작가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보다는 개인 탐사 시간에 좀 더 집중해서 둘러보게 됐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잊혀져가는 시간들을 봤다. 그것들을 봤다, 그래서, 본 것에서만 그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을 찾을 것인가. 나의 시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보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우리가 STUDIO 프로젝트 때 항상 하던, 매일매일 뭔가를 진행했던 것처럼 생각하고 시도하고 싶었다.

  늘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하고 그 때마다 걸음이 멈춰진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도 정선에 가서 생활을 하면서 더욱 크게 느꼈는데 아마도 하자 밖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건 처음이라 신경을 더 써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저 문제를 내 손에 닿지 않게 옆으로 치워버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어느 정도 받아들이려 하고 문제를 문제에서만 끝내고 싶지는 않다, 는 것 또한 정선에 있으면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우리는 꼬박 24시간씩 일주일을 뭐든지 함께 했다.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대부분의 일정도 같이 했는데 알 게 모르게 서로 돈독해지는 것 같기도 했고, 쌓여가는 것도 있었지만 여전히 같이 생활하는 데에 불편함이 있었다. 일주일동안 머무르면서 매일같이 가진 모임에서는 나눠진 이야기보다 어느 순간 멈춰서고 그 시간들을 침묵으로 보내는 일들이 더 많았다. 할 말이 없다기보다는 습관적으로 지금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말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이 이야기를 멈추게 하는 것 같았다.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입을 열지 않는 것은 그 자리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런 자리에서 아무것도 풀어놓으려 하지 않는 것은 하자에서도 반복되던 일이었지만 정선에 와서는 아무래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하니까 할 이야기도, 들어줄 이야기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좀 달라지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생각했던 것만큼 잘 되지 않아서 아쉽고 꼭 하자 밖으로 나와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서로 할 얘기가 생기는 것은 아닐 텐데 하자에서 얘기할 때도 생각하는 것들이나 할 말을 하는 것을 노력해봐야 하지 않을까.

  고한, 사북에 머무르면서 꼬박 이틀을 살펴봤던 동원탄좌에는 당시 광부들이 썼던 물건과 그들이 지내던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그들이 쓰던 물건들은 물론 바닥이나 벽, 샤워실 까지도 석탄 가루로 새카맣게 뒤덮여 있었다. 그 안에 남겨진 그들의 흔적들인 과거와 지금 우리가 내뿜는 현재의 공기가 묘하게 맞물리는 느낌을 받았고, 그들과 마주하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석탄을 캐고 남은 찌꺼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경석산은 보기에도 이상했지만 직접 올라갔을 때는 더 이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칠고 딱딱해 보이기만 하던 산은 생각보다 까맣지도, 딱딱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나무들까지 자라고 있었다. 4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맞은 편 산만큼이나 커다랬던 경석산을 보면서 놀랐고, 40년 동안 쉼 없이 어두컴컴한 탄광에 들어가 석탄을 캐고 온 몸에 검댕을 묻히며 말 그대로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했음에 감사했을 광부들이 생각났다.

  나는 동원탄좌의 시간이 멈춘 것 같다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오히려 시간이 굉장히 빨리 흐른다고 생각했다.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마치 시간이 멈춰진 것처럼 느껴지는 동원탄좌와 그들에 대한 기억, 공간, 움직임.

  대부분의 사람들과 공간에게서 등 돌려진 채로 동그마니 남겨진 동원탄좌와 경석산은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탄광에는 더 이상 광부들이 보이지 않고,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경석산도 쌓여가기를 멈췄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탄광을 내려다보는 높이에 세워진 뾰족한 카지노와 호텔, 콘도들과 전에는 보기 드물었을 마을에 줄줄이 들어선 전당포들이었다. 광부들이 매일 아침 걸어서 탄광으로 향했을 그 길에는 마을과 카지노, 호텔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다니고 이제는 그 길을 걷는 사람보다 쌩 하고 지나치는 차가 더 많다. 그곳 사람들에게 경석산과 동원탄좌는 지우고 싶은 과거일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광부들의 피땀이 만들어낸 곳이고 하루하루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라짐‘ 은 연속된다는 생각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냥 사라지게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나를 ‘사라짐’ 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일주일동안 고한, 사북에 있으면서 그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잊혀져가고 시들어가는 것을 느낀 것을 지금 우리 주변에서 잊혀져 가고, 시들어가는 것들을 찾고 그것들을 담아두고 싶다.

  ‘팝콘과 다큐멘터리’ 때, ‘앞산전’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더랬다. 다큐에 나온 이진경 작가는 전시에 필요할 카탈로그를 만들 돈이 한 푼도 없을 때도 있었고, 심지어 작업실이자 생활공간이었던 곳도 불에 홀라당 타 없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불에 타고 남은 잔재들을 이용해서 작업을 하고 전시를 했다. 그걸 보면서 그 작가가 멋있고, 꿋꿋하다고도 생각했지만 처절하다고 느낀 것이 더 컸다. 다큐가 끝나고 정현 씨가 하신 말씀도 지금 이 작가는 굉장히 처절하게 살고 있는 거라고, 이 작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도 처절하고 힘들다고, 작가로 사는 게 결코 멋지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순간 겁이 났다. 그리고 작업자가 되면 스스로 결정과 판단,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히옥스의 말씀과 함께 내가 작업자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부터 그렇다면 과연 내가 생각했던 작업자는 무엇일까, 내가 작업자로써 할 수 있는 말을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될지, 까지 모두 해야 되는 생각이고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하게 될 생각이었지만 막상 다가오니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이진경 작가는 ‘일‘과 ’작업‘을 확실하게 구분지어 놓았다. ’일‘을 하는 동안은 힘들고 지쳤지만 ’작업’을 하는 동안은 굉장히 활기차고 즐거워보였고 작가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다. 난 지금까지 ‘일‘과 ’작업‘이 구분지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앞산전’ 을 보고나니 ‘일’과 ‘작업’의 차이가 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래도 작가로 살기 위해서는 ‘일’과 ‘작업’을 대하는 방식에 확실하게 행동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삼키지 않고 입안에만 가두고 있어서, 결국엔 내가 뭘 먹었는지, 소화는 시켰는지, 그 전에 목구멍으로 넘기기는 했는지 조차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무감각 한 채로 전시를 보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는 상태가 오기도 했다. 찾고, 찾고, 찾고 찾기만 하다가 끝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그래도 찾는 것은 끊임없고, 찾을 수 있는 것 또한 끊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고, 보는 것만이 나에게 있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듯이 집중하고 있는 것과 순간과 기억, 그리고 내가 느끼고 알아낸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그 순간에 집중해 끄집어 낼 수 있는 뭔가를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