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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2009 가을 시민문화워크숍 세상을 구하는 시인들 시즌 2. 詩인 조원규 <너의 시선이 바로 불빛이다> 일시 : 2009. 10. 22. 목. 19:00~ 여러분, 반갑습니다. 기타 연주와 노래 잘 들었습니다. 이 따스하게 맞아주는 이 공간이 새삼스레 고맙게 느껴집니다. 지난 일주일동안 여러분 만날 생각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나? 란 생각을 계속 했었는데 이렇게 도착해서 여러분 노래듣고 나니 다 된 것 같습니다.(일동 웃음)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러 왔는데 여러분이 ‘시(詩)’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워크숍의 제목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세계를 구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이지만, 참 멋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시간은 절반정도로 나눠서 앞부분은 주로 제가 이야기하고, 뒷부분에는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작업하는지 같이 보면서 공동으로 체험하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밖에도 주제가 몇 가지 있는데 ‘시민사회’, ‘공동체’, ‘치유’, ‘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도 할 예정입니다. 세계를 구하는 ‘시’ 혹은 ‘시인’에 대해 생각해본 저의 결론은 예전부터 생각한 것인데 우리의 마음도 세계에 한 부분이며, 우리의 내면도 하나의 세계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세계를 구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내면을 구하는 것이다‘ 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사고와 감정이 세계의 한 조각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나의 내면에 대해 치유하고 행동하는 것은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며 치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니고 발도로프 학교 창시자의 생각과도 맞닿아있습니다. ‘초감각적 세계의 인식’이라는 책의 구절에도 나옵니다. 사실 예술가들은 항상 매개를 통해 이야기하는데 ‘장르’, ‘형식’을 통해 예술가들은 자기 자신이 주체이면서 악기처럼, 매개로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이야기, 감각으로부터 이야기를 하며 이것이 예술가의 특수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나의 자아를 구하는 것이 곧 세계를 구하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의 ‘자아’인가? 라는 질문이 들 것입니다. 개인의 크기라는 것이 유동적입니다. 아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데 예전에 김지하 시인이 쓴 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음에는 ‘막’이 있고, ‘막’이 어디까지 커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 적 있습니다. 자아와 내면이 종교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 도 있지만, 막이 커지거나 줄어들 수 있는 것처럼 자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시민과 시민성에 관한 이야기와 연결 짓자면, 우리가 24시간 온전히 ‘시민’으로서 살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내가 집에서 라면 끓일 때 ‘시민’으로서 끓이지는 않습니다. 커다란 톱니바퀴가 있고, 여러 개의 톱니가 있는데 하나의 톱니에는 학생인 나, 또 하나의 톱니에는 아들인 나, 또 다른 것에는 기타를 치는 나가 있다면 상황에 따라 ‘시민’이라는 톱니가 부각되는 경우가 있고, 그럴 때 ‘시민’으로 자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우주 속에 작은 모래일 때도 있고, 때로 시민일 때도 있습니다. 용산참사를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죽으려고 올라간 것이 아니라 살려고 올라갔는데 어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민’적인 삶을 사려고 애쓰는데 국가가 혀용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참사가 난 것인데, 나 같은 사람은 이렇게 안전하게 잘 살면서 어떤 사람은 죽거나, 저렇게 유가족이 되어 애도를 하며 비참하게 있어야 하나 라는 것을 보면 슬프고 이런 질서를 바람직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 ‘다른 질서 속에 살고 싶다’ 라고 생각 했을 때 ‘시민’으로서 사고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민으로서의 ‘나’, ‘시민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누구나 그렇듯 인생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고, 저마다 다른 인생의 과제가 있습니다. 나는 중년이고, 여러분은 청년인데 여러분의 과제는 무엇인가? 라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나 역시도 어떤 ‘정체성’을 탐색하며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면 살 것인가? 로 남은 인생에 대한 계획, 설계, 원칙을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도 마찬가지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시민됨, 시민, 시인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더라도 이런 우리의 입장을 중요하게 바탕에 깔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환하고, 따뜻하고, 호의적인 이런 공간이 바로 공동체적인 느낌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공동에 대해 평소 어떤 생각을 하고 살고 있을까요? 저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하고 싶은데, 우리의 발달과업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공동체 안에서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서로 시선을 주고, 말을 걸고 서로 지내면서 나도 오케이, 너도 오케이인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볼 때 “괜찮다” 라고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저러나, 그런 상황을 많이 보게 되고 괜찮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볼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성장발달의 과업을 하는 와중에 공동체를 체험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제가 어떤 공동체에 속하기도 했는데 나, 너, 우리가 괜찮지 않은 시간 속으로 들어가더라도 더 좋은 것이 뭔지 경험한 적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뜬금없이 왠 공동체냐? 라고 생각 할 수 있을 것인데 문화의 새로운 모델로 연결 짓고 싶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4가지 경우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일상적으로 나도, 너도 오케이, 그리고 서로 괜찮은 사람인가? 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나? 내 생각에 날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괜찮지 않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자기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도 글렀고, 너도 별로고 나도 별로다 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은 슬픕니다. 공동체, 문화, 그리고 나를 엮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에서 “함께 모여서 가면, 붉은 신호등이라도 건널 수 있다”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굉장히 유행했었는데, 자칫 집단행동으로 읽힐 수 도 있지만 새로운 실험으로 읽힐 수 도 있습니다. 혼자서는 너무 파편적이기 때문에 불안하게 살지 않고 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규범과 윤리성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여러 가지 키워드를 말씀드렸는데, ‘공동체’, ‘문화’ ,‘성장과 발달’, 그리고 ‘문학’에 대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지난 6월 이후, 젊은 30대작가들이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신 후 300명 정도 모여서 시국선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장면이 뜻밖으로 보였습니다. 젊은 작가들이 그런 행동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온라인 카페를 만들고, 시국선언문을 작성했습니다. ‘시를’쓰듯, 문장을 만들자고 했고, 한 줄 씩 시국선언을 했습니다. 이들은 혼자 해낸 생각이 아닙니다. 저는 그 날 제 마음 깊은 곳에 조용한 정원이 내려 앉았다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입 있는 자여, 이제 말을 하자” 라는 문장을 어떤 시인이 썼습니다. 그래서 젊은 작가들이 말하길, “나는 시민으로서 하는 것이다. 나는 시민이면서 작가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 라고 했습니다. “너무 어둡지 않은가, 비좁지 않은가, 희박하지 않은가?” 라는 문장을 쓴 분도 있t습니다. 나는 정부를 규탄하기 전에 젊은 작가들이 움직이는 그 모습이 좋아서 ”동료들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사랑의 말들이 흘러나왔다.“ 라는 문장을 썼습니다. 작가들의 행동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최근 저는 ”조금 다른“ 질서로서의 공동체가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젊은 작가들을 보고 마음껏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가들의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기존에 '문학'이라고 할 때에는 텍스트를 두고 그 작품에 대해 좋은가? 나쁜가? 라고 이야기하는 미학적인 판단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문학을 하는가? 가 더 중요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려운 개념으로 이야기하면 ‘미적 자율성’에 대한 비판입니다. 서양의 경우, 근대로 들어서면서 과학, 종교, 예술이 독립된 영역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는데 예술작품에 대해서 평가를 할 때에는 미적인 기준에 의한 독립적인 무언가로 여겼고, 아름다움은 미적인 기준에 의해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문학으로 보면 ‘순수문학’이라는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입장이 도외시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문학도 상품이다” 라는 것입니다. 문학 작품을 평가하는 권위라는 것, 어떤 작품이 실리고 어떤 출판사가 영향을 미치는가, 누가 교통정리를 하는 가라는 텍스트 밖의 논리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적인 부분들이 있습니다. 70년대에는 시집이 나오고, 뒤에 설명글이 들어갔는데 그 때에는 시인이나 작가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런 표현들을 많이 썼습니다. “시인, 작가는 잠수함의 토끼다” 라는 것. 가장 예민해서 사회의 변동을 감지하는 존재이다라는 비유가 있었고, 아울러 시인은 예언자다 라는 것. 그런 찬사가 가끔 있었습니다. 80년대에는 민중문학, 현실참여문학이 강했고 그 때에는 투사적인 경향이었다면 90년대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때 제가 한국에 없었지만 변명거리는 안되고, 한 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지점이 많습니다. 2000년도는 시인, 작가에 대해 “문학은 죽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쓰고 있는데 문학은 죽었다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영상매체에게 밀려서 사람들이 더 이상 문학을 보지 않는다는 것, 또 하나는 문학이 어떤 삶에 대해 윤리적인 전망을 줄 수 있는 힘과 자격을 잃어버렸다 라는 것.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IMF등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쇼크를 먹고,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경제적 욕망과 공포를 동시에 겪는데 신자유주의적인 질서 속에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들이 있고, 문학이 그런 질서들에 대한 증언을 할 수 있나? 라는 비판이었습니다. 자본주의적인 질서를 따르고 편승하고, 성공하려는 문학이 그 질서를 비판할 수 있나?라는 것입니다. 과도하게 상업적인 마케팅을 하기도 하고, 이야기 시작하면 착잡하지만 예술의 초월성이나 비판, 능력, 진지한 윤리적인 입각점을 갖고 있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공동체 이야기로 돌아가면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통해 다른 문학을 해 볼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가장 전형적인 장면은 출판사에서 청탁을 해오면 원고를 쓰고, 그 작품에 대해 좋은 비평을 해주면 팔리는 것인데 순수하게 주는 문학, 팔지 않은 문학을 할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젊은 작가들의 공동체 멤버 중 몇몇이 한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의 심사 대상으로 선정된 것을 거부하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의 대다수의 사람들의 복지에 도움이 되지 않은 신문이라 작가들이 그 신문을 치장해주고, 이미지가 좋아지는 것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그 공동체 안에서 꽤 논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이후, 처음에는 함께 행동했던 시인이 후에 입장을 철회한 적이 있습니다. 전자의 시인들은 공동체를 자신의 행동의 근거로 삼으면서 거부하는 입장을 했다면, 후자 경우 문학상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분위기가 썰렁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이 대목에서 80년대 수준을 넘어 섰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난폭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하지? 란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선택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 이런 것을 할 줄 아는 구나 란 생각. 공동체 안에서의 하나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젊은 작가들이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것 같다 란 생각도 했는데, 혼자 있을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을 같이 있을 때 다르게 행동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이런것이 공동체의 의미인가? 란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문학 공동체에 대해서 다룬 것은, 시민으로서 시민에게 돌려주는 문학, ‘증여’라는 맥락에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댓가 없는 증여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그런 문학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권력에 편승하기를 거부하는 문학. 한국 20세기의 문학에서 권력에 아부하거나, 권력에 편승하지 못해서 흉한 꼴을 보인 장면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젊은 작가들은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정말 ‘꿈’입니다. ‘시인의 주도’라는 개념이 한국사회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 90년대 초반부터인데, 공동체적 가치로 대응하는 문화, 문학이 죽었다라고 말하는 시대에서 문학이 남을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출판사에 팔지 않으면 작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학상 받으려고 애쓰지 않고, 그런 작가들은 무엇을 하는가? ‘직접성의 문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의 장면들을 문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용산참사에 릴레이 피켓팅을 했는데 이 사람들의 행위를 문학이라고 하면 안 되나? 이런 질문 자체가 문학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얼굴을 마주하고 문학적인 정열에서 삶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이 자체가 ‘문학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곤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는 곤란하지 않지만 다른 작가들은 곤란할 것 같습니다. 삶에서의 문학, 공동체에서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외롭고 고독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공도 필요하고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한 것 같다. 이런 일들을 하고 있을 때 서로 시선을 주는 것이 필요하고, 말을 걸면 받아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생각을 작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초중생과 영화도 함께 찍고 작업한 적이 있습니다. 활동을 마치고 시골마을에서 나오는 길에 골목길이 고즈넉하고 예뻐 보였는데 그 고요한 골목을 내 시라고 할 수 없나? 란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시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를 잘 썼을 때처럼, 내가 본 그 장면이 나라는 사람한테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쓰여 진다는 것. 그런 것은 고독한 인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작가들에게 같이 해보자 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치유라는 말의 어감이 어떻습니까? 치유라고 하니 뭔가 좀 불편한 느낌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치유서사, healing narrative 라는 개념을 작년부터 썼는데 어떤 문학작품에 감동을 받으면 내 마음이 치유된 것 같은 생각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개념으로 쓰고 있습니다. 시나 단편소설을 쓰고 난 후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는데 그것도 치유서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보편적 정의일 수 있습니다. 이야기, 서사라는 개념을 크게 잡으면 이 우주에 이야기 바깥의 것은 없다 라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치유와 연관 지어서 지혜로운 은유/ 은유를 제안하는 일 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문학의 전망, 희망의 하나라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치유는 기본적이고 원초적 차원에서 시작합니다. 시를 쓰면서, 시 쓰는 것의 의미가 줄 수 있는 의미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숨 쉴 때 숨이 항상 편안합니까? 자에게 시를 쓰는 것은 불규칙하게 엉켜있는 호흡을 제대로 돌린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들숨과 날숨에 해당되는 여러 가지 계열들이 있습니다. 쥐고 펴고 등. 이것이 여러분의 성장발달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 우주 안에 유일한 ‘나’라는 존재와 공동체 안을 왕복하는 것. 이 과정이 들숨과 날숨/ 쥐고 펼치고/ 돌아오고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이런 균형을 잡는 커다란 지혜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회의주의의 시대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보편적인 것을 언어로 포착할 수 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공동체, 시민됨을 가치개념처럼 말씀드렸는데 동시에 여러분이 창작을 할 때 굉장한 자유가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민으로서의 내가 윤리적인 판단, 행동, 창작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제목 <너의 시선이 불빛이다>는 이런 그림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컴컴한 밤바다에 불빛을 기다리는 상태. 누군가 나를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 미디어가 강성한 시대. 개인을 인증한다는 측면에서. 시선을 기다리는 상태는 나르시시즘과 연관이 됩니다. 지향해야한다는 것은 다양하고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고 시선을 줄때 시선 자체가 등대의 불빛이라는 것입니다. 언제 내가 쓴 글이 제대로 읽고 느끼고 있나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한다면 나는 계속 수동적인 존재로 남습니다. 예술창작을 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대상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인데, 그것의 더 심오한 뜻은 그 대상이 있기 위해 존재해야하는 시선과 시선의 장소가 필요한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시선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불빛으로 조명을 시작하는 등대가 되는 것. 이것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미친 사람이거나... 눈빛을 기다리고 말을 걸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인데 이런 수동적인 상태와 맞설 수 있는 (고독하지만)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는 것. 두 면이 들숨과 날숨처럼 짝을 이루는 상태를 말합니다.
Q: 어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은화화’ 된다 라는 책의 문장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목적이 돈이 아니었는데 출판이 되면서 돈과 연관되는 상태.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요? A: 시를 쓴다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상관이 없습니다. 소설과 차이입니다. 순수한 문학을 하자고 할 때 무얼 먹고 사나? 이것은 지역사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에서 활동을 하는 것. 지역사회 복지론. 국가의 돈(세금)으로 보조를 받고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Q: 시국선언 기사를 봤습니다. 시인의 관점을 바탕으로 지금의 시대에 참여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를 쓰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시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의 가치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 17세부터 문학에 관심이 컸습니다. 문학하는 사람이 멋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가치 있는 일이고, 평생을 걸고서 추구할 만한 일이구나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옹색하지 않고 멋있고 패기 있길 바랍니다. A: ‘이것도 문학이 될 수 있나?’라는 질문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Q: 시가 어떤 부분에서 괴롭고 슬픈 자기의 배경을 글로서 말을 건네고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를 하면서 저항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기 위해 찾아다니는 것이 있으신지? A: 시집을 5권을 냈습니다. 그때는 ‘써야지’. 이 생각만 했습니다. 처음 두 권은 내 얘기하기 바빴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 것은 3번째부터. 표현을 잘 해야지라는 생각을 그 후에 하게 됐습니다. 나는 비사회적인 사람이고 단계나 공동체에 대한 얘기를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찾아다니는 것이 있냐라고 했을때.. 없었습니다. 이제 생겼습니다. Q: 톱니바퀴 비유를 듣고 시인의 톱니바퀴가 궁금했습니다. 시대의 촉수가 예민한 글쟁이들이고 사회를 기록하는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는 것이 시인이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정체화 했을 때 톱니가 돌아가는 순간은 어떤 것인지. 사회적 사건이 있을때 시인은 어떤 입장을 갖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A: 삶, 생활을 문학하는 것과 혼동하는 것은 순진하고 어리석을 것이라는 입장이 있습니다. 반면 그렇지 않고 24시간 예술가이고 시인인 것이 좋지 아니한가 라는 입장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시인의 모세혈관이 더 많이 퍼져있다 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A: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30살 무렵이었습니다. 갑자기 그걸 느끼기 시작해서 2년 동안 하루도 안 빼놓고 가슴이 아파 쩔쩔맸습니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하게 됐나? 아주 오랜 동안 생각만하고 느끼는 것은 안 하고 싶었습니다. 비정상적이라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꽤 아팠던 거고 함께 괴로워한다는 느낌이 이었습니다. 20대 때 감정을 차단한 것에 대한 복수를 철저히 당했다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낫게 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낫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기독교리가 있습니다. 세상이 치유되지 않으면 내가 나을 것 같지 않을 기분. 이건 사람의 일반적인 심리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내가 나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낫게 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연극무대를 상상하고 그 위에 앉아있습니다. 한 편의 시를 창작하는 것 입니다. 하나의 스토리가 아니라 불연속적인 이미지들이 축적되는 것. 독일시인 브레이크만의 시를 이런 식으로 공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성적. 여러 개의 목소리가 합해져 말로, 시로 낭송이 되는 것. 저마다 살고 있는 자기만의 생의 기억의 이미지들이 한편의 공연에서 축적이 되는 것입니다. <시 없는 생> 올해 가을 시간은 나 없이 흘러갔네 생은 조용히 정지하여 있고 그 시절 우울을 이기려 타자를 배우던 때처럼 저녁이면 창문없는 대기실에서 수업을 기다렸지 네온등은 물밀듯 넘쳐들었고 타자시간이 끝나면 비닐커버는 다시 타자기 위에 덮였네 그렇게 갔다가 그렇게 돌아왔네 나는 자신에 몰두했고 그런 사실마저 자각되었네 절망이 아니라 오로지 만족스러웠네 자신에 관한 아무런 느낌도 없이 타인에 대한 느낌도 없이 걸었네, 망설이며 배회하다 자주 걸음걸이와 방향을 바꾸었지 쓰려했던 일기에는 겨우 하나의 문장 “우산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 그 말조차 속기로 은밀히 하여 두었지 넉 주 동안 볕이 났고 나는 발코니에 앉아 있었네 뇌리를 스치는 모든 것에 대해 눈에 뜨이는 모든 것을 향해 ‘그래 알았다니까’라고 말하며 날들은 정말 속절없이도 가고 일하는 친구들은 나를 찾아와 함께 발코니에 앉았고 “일 하러 다니느라 사는 일은 까마득히 잊었네“ 하고 말하였네 그들에게 생의 예술가인 척 내가 꾸며보일 수야 없었지 올 때 보다 기분이 좋아져서 그들은 돌아갔네
사이사이의 침묵들을 견뎌내는 것도 좋았습니다. 처음과 끝이 아니라 파편을 보는 느낌.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고. 이미지사이의 연결이 없는 삶의 느낌과 닮아있다고 느꼈습니다. 자, 그럼 각자 자기만의 생에서 기억이나 이미지들을 떠올려 보고 끄적여 보기도 하고 불연속적으로 연결해서 다성적인 시를 만들어 봅시다. 이후 모인 사람들끼리 함께 즉흥적으로 다성적(多聲的 polyphonic) 연극적 공유형식의 실험을 즐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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