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선에 가는데 어떤 큰 Vision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대하는 부분은 1분도 안 되는 거리에서 서로가 개인의 공간과 시간을 조금 양보하면서 1주일동안 살게 되고 같은 것을 보는데 각자의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 다른 입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어떻게 다르고 같은 부분은 무엇인지. 평소 대화가 적어서 그런지 이번 1주일간의 기간은 기회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죽(판)돌과 무슨 얘기를 할지 기대가 많이 되었다.

! 매체

매체
(媒體)【명사】 
어떤 작용을 널리 전달하는 데 매개가 되는 것.

 나는 정선에 가서 사진을 촬영하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내가 카메라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 이라곤 셔터를 누를 때 숨을 쉬지 않고 촬영 하는 것 뿐이었다. 이곳에서 나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제임스 해리스James Harris의 작품이었다. 그의 정교한 작품에 묻어나는 노력과 의도에 나는 놀랐다.(제임스 같은 경우에는 그가 사진에 담는 것은 단 하나 뿐만이 아닌, 그 주변을 이해하는 것에도 신경을 쓴다. 그것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색상, 빛까지 이르른다.) 그리하여 나는 기본 지식이나 촬영 방법을 죽돌들에게 물어 보면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나 자신을 보면서 왠지 처음 기타를 잡았던 날 처럼 두근 거리며 더 알고 싶었다.

 사진기를 들면서 가장 인상깊게 느꼈던 것은 사진기는 공간을 사로잡는 능력이 있었다고 느꼈다. (뭔가, 들고있고 하나에 집중하고 있으면 내가 보는 것 외에도 많은 것을 신경을 쓰게된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까지 나의 손가락 말고도 전신이 대상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한 그 카메라의 옵션을 어떻게 내가 다루느냐에 따라서 표현하는 것이 크게 달라지게 된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것은 또한 음악과 일치된다.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연주하느냐에 따라서 보여지는 것과 들려지는 것이 달라질 수 있고, 매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서도 크게 변화된다.

 나는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 하나를 알려면 그 주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지 뿐만이 아닌, 음악도 그렇고 영상도 그렇다. 많은 것들이 조화를 이루려면 적당한 밸런스가 요구되고 주변이 어떤 것이 있고 그것이 무엇을 뒷받침해 주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 결국에 이것은 하자에서 다루는 매체에 연결이 된다.

 내 매체는 무엇인가? 상대와 나를 연결 시키는 지점을 찾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음악이라면 할 말들이 있겠지만 나는 다른 많은 입장도 취하고 싶다. 상대방이 이미지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상대방의 매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나는 조금이라도 말 할 수 있게 되고 조금이라도 나눌 것이 생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누구와 나누고 싶은게 있다면 나는 상대방의 매체와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조금 더 동지애를 돈독하게 다져야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이 하자 안에서 서로의 작업을 관심있게 들여다보는 이유다.

 페차쿠차 시간에 어설프지만 이미지(사진)매체를 이용해서 나의 시점과 이야기를 풀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 예술?

예ː술
(藝術)【명사】 
특종의 재료나 기교·양식 따위에 의한 미(美)의 창작 및 표현

Q, 나는 어떤 것을 예술과 작품이라고 하는가?

 나는 사북에 있는 광부들이 있던 사택에 중점적으로 많이 다녀왔었다. 버려진 주택단지들의 사람 없는 방은 그 전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나간 것이 아니라 사라지거나 쫓겨나 진 것 같았다. 헝클어진 옷과 이불들, 부서진 장롱, 찢어지고 낡은 벽지, 이 자리에서 누군가 잠을 자고 나간지 1년이 지난 듯한 반듯한 이불들. 그것들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서 누가 살았는지,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때 나는 [이것들은 어느 무명 예술가가 해놓은 설치미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장소에 있던 물건들은 깡패들이 나가라고 이물건 저물건 부수고 지나간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내가 인식 하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왜 이렇게 되었지?  방 자체가 부스Booth일지도?] 그렇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뒷면이 완전히 밟힌 액자, 어느 20대 남자의 일기장, 곰인형과 녹슨 탈(가면), 부서진 의자와 장화. 그리고 포커 카드가 널려져있는 장소. 단순히 나의 착각인가? 폐허를 내가 멋대로 설치미술로 인식 한 것인가?

 레옹은 동사무소에서 지나가는 신발을 파는 트럭을 보며 [예술이 도착했어요!]라고 했다. 내가 상황을 집적 목격하지는 못 했으나 어째서 신발을 파는 트럭을 예술이라고 했을까. 탄광 or 카지노로 알려진 이 마을에서 장사라고 한다면 전당사, 콘도, 식당. 거의 이정도 협소한 사업종류 속에서 보통은 과일/야채/고장난 것들 수집 하는 트럭들이 있는데 좀 처럼 볼 수 없는, 생전 처음보는 신발 판매를 하고 있다니!
이것은 어떤 누구의 전래 없던, 독창적인 행위인가?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기는 정말로 어렵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정의느 전 세기에 걸쳐서도 정확한 대답은 없지만 예술가를 자칭하는 하는 사람들이 시대에 맞는 대답을 내린다. 돌이켜 나에게 질문을 던지자면 나에게 예술이란 무엇일까? 상상에서 현실로 꺼내는 작업이랄까.(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음악작업 스타일이다.)  눈에 보이는 사물 너머를 상상하게끔 만드는 것이 지금 내가 보는 예술적 시점이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질문들이 정선에 다녀오면서 생긴 것들이 대부분이라 지금으로써는 이 대답 말고는 더 이상 대답을 못 할것 같다. 나는 뮤지션을 지향하면서 Artist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예술의 한 부분인 음악매체가 있고 이미지, 영상 등 많은 것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생각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 마을
[정확하게 정해진 것은 없고 오늘은 마을을 이해하려고요.]

 내가 개인 집중 탐사를 하는 날 출발 전 그날의 행선지를 공유하는 시간때 꺼냈던 나의 포커스였다. 조금 아차 싶었다. 오늘은 마을을 이해한다니.. 그것이 단 하루동안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인지.. 시작은 '오늘은 이 마을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은 어떤지 알고 싶다' 였는데, 마을을 이해한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 뿐만을 이야기 하는것이 아님을 눈치챘다. 광산촌이 사라진 지금, 그 곳에 살고 있던 이들은 지금 어디로 갔고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쥐고 있던 곡괭이를 두고 지금은 무엇을 쥐고 있을까?

 내가 만난 사북 사람들은 외지인에 대해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과거의 이야기들을 궁금해하는 우리들에게 옛날이야기라도 해주시는 듯, 한편으로는 씁쓸한 미소도 지어 보였다.

! 예전에 있었던 광부들은 어디에 가고 무엇을 하고 있나요?
 = 제가 광부는 아니었지만, 그때 광부셨던 분들의 대부분은 모두 도시로 가셨어요. 일부는 아직도 이 지역에서 식당이나 전당사나 가게를 차리고 있으시죠. 광산이 폐지되면서 보조금을 받고 그 뒤로는 흩어졌어요.

! 여기 앞에있는 제일병원이 사라진다는 얘기가 있는데 왜 그런것인가요?

 = 그 건물은 너무 오래되었어요. 건물 환경 자체도 구식이라 구조형태도 요즘의 건물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낡고 헐었죠.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 건물을 없애겠다고 결정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의 대안이 없다는 것이예요. 그게 문제인거죠.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 속에서 다시 문제가 벌어지고 있어요. 이 마을에 있는 (종합)병원은 그곳 단 하나 뿐이예요. 오늘날과 같이 신종플루가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데 이것을 막는다면 당장에 누군가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 우리는 대책이 없는거죠.

                                                                                                                    -무브와 어느 식당 아저씨의 대화 中

 이 날은 동탄을 보고 온 다음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궁금했던 것은 광부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궁금
했었는데 마을에 걸려있는 팜플렛이 예상치 않았던 질문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주민이다 의료혜택은 받고 살자
제일병원 앞에 붙어있는 팜플렛에 이렇게 써있다. 이 곳 주민으로써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러면 내가 하자에서 당연하게 받아야 하는 혜택은 무엇인가? 나는 불만에 의해서 나오는 주장이 아니라, 내가 놓치고 있는 혜택이 있는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동원탄좌와 광부와 경석산, 그리고 광부들이 살던 복지 아파트. 나는 그것들에 대해서 알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왜인지 정선에 다녀오고 느끼는 것은 당시 1주일이라는 제한적인 시간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감지능력이 전보다 더 트여졌다고 생각된다.

 이 마을 속에는 동완탄좌, 경석산, 복지아파트, 카지노가 있다. 경석산의 정상이 카지노의 주차장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 사북은다양한 이들에 의해 다시 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카지노 뿐만이 아니다. 내가 다녀온 사북 시장에서도 공사진행중이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콘크리트를 다시 깔고. 시장 골목 사이사이로 들어가면 한쪽은 새집이고 한쪽은 헌집이 있다. 그것들은 계속 새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쪽은 예술마을로 바꾸어가겠다는 아티스트들, 한쪽은 카지노상업에 더 열중하는 특정 다수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경석산을 없애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주민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 중 하나다. 이렇듯 서로의 현실은 이렇게나 다른데 끝을 알 수 없는 의견대립속에서도 계속 변해가는 시대에 이 마을은 어떻게 적응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의 다른 현실이 함께 공존하며 살 수 있을까? 예술마을 고한사북 프로젝트는 이제 막 시작단계지만 이들은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이 마을에 어떻게 하면 오직 카지노를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술마을로 보고 오게 될 것인지, 이 마을과의 소통은 어떻게 할 것인지 Etc.......

! 그래서 나는

 
"이곳에 사진 찍으러 오셨나봐요. 하긴, 이곳에는 사진작가들이 많이 오곤 해요"
나는 그저 카메라를 들고 있었을 뿐이고 잡은지는 3일도 지나지 않은 초보 포토그래퍼인데 나를 사진작가로 보았다. 실제로는 나는 기타를 잡고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것,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이 나를 인식하는 시선은 다를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내가 취하는 행동, 말, 표정 등등 기본적인 생활에서부터 묻어나오는 것들도 또한 나의 책임이고 정체다. 내가 정말로 중요시 여기는 가장 중요한것들은 가장 소소한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나는 이곳에서 본 것을 다시 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다. 나에게 '질문의 지속'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다시 질문을 던지고 그 과정 속에서 유추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북에서 공식적으로 다녀온 장소에 사적으로 다시 다녀와봤더니 그것은 내게 다시 새로운 질문을 주었다. 하자에서도 함께 하는 공동 프로젝트 속에서도 개인이 가져가는 질문이나 고민, 정보들이 있고 리뷰Review를 하듯이 다시 되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기록으로 남든, 스스로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든.

 "어라! 말도 안돼. 그게 말이 돼?"
나는 내가 알고있는 정보에 의해서 틀림을 감지했을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실 그렇게까지 주장할 마음은 없었으나 약간 장난스러운 반응이 나왔고 정말로 의문이 들어서 한 것이기도 했다. 이것은 곧 [고정된 지식이 발견과 이해를 방해한다]에 연결이 됨을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확실한 정보인 것인지 가끔 의문이 들지만 나는 부정적인 반응을 너무 섣불리 하는 것 같다. 나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그 반응을 해야 할 것 같다.

 선재 아트센터에서 있었던 <욕망과 마취 / Desire and Anesthesia-함경아 개인전>에서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에 대하여 주변에게 각자가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물었다. (사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고 어느정도의 답을 갖고 있었다.)그리고 나는 "아_ 그렇구나" 라는 허무맹랑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기무사에 다녀오고 나서 '작가의 의도와 내가 이해한 부분이 만나 새로운 세계를 발생시킨다.' 라고 얘기를 했었지만, 나는 가끔 다른 누구에게서 정보를 알아내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누구의 것을 나의 생각으로 만들어버리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예술을 중요시 한다면 본인의 시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고유정체성을 만들고 자리잡는 것은 중요하다.

 나의 감각들은 굉장히 이기적이었다. 왜냐하면 나에게 직접적인 touch가 아닌 이상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각은 내 몸안에 흐르는데 어떻게 스쳐 지나간다고 말 핤수 있을까? 나는 내 상황, 내 것이 아닌이상 중요성을 느끼지 못 할때면 나는 감각이 스쳐지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감각들을 붙잡고 더 들여다 보아야겠다. 이번에 정선에 와서 갑자기 예민해진 감각들은 내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들이 간접적으로 내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상상하고 그 속에서 나와 연결 지을 수 있는 위치를 찾아내는 연습방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놀랍게도 나의 감각이 예민해진 것이 아니라, 둔해져있던 나의 감각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이것은 곤두세울만큼 예민하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주 당연한 것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감각의 활성화가 일어나는 것은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범위를 넓혀주는데 그것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급하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에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이제 나의 몫이다. 오늘을 살고 있음을 느끼면서, 감각이 더 이상 마취된 상태로 멍하니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그냥 흘러가버릴지 모를 감각들을 붙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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