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야 할 벽이 있어.



정선에 가기 전부터도 난 나의 답답함과 허술함을 마주했었다. 용산으로 작업을 한다며, 매주마다 그곳으로 향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해왔던 내가. '그래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니?'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나에 대한 적지 않은 배신감에 힘들었었다. 때문에 정선으로 향하는 날 또한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난 이런 내 상태를 여행이라는 것으로 망각해버리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그 낯선 공간에서도 같은 고민이 이어진 건지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계속되었다.


같은 고민을 지속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여행이라는 위험한 것을 떠났을 때는 더욱 더.

정선에서 확실하게 보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인 것 같다. 고민을 지속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행을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입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것. 허나, 그것이 너무 지나쳤다는 것이 이유였다. '너무 지나침'. 무엇이든 너무 지나치면, 그 원래의 효과에 반대되는 더 무서운 효과를 불러온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난 정선에서 이것을 몸소 체험한 듯하다. 사실 서울에서도 계속 느끼고,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허나 '낯선 곳', '여행'이라는 것의 긍정적 효과 때문에, 그것이 더 강하고 뚜렷하게 느껴진 것 같다.  


갇혀있는 생각. 갇혀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느껴 알게 되는 것도 무섭지만, 알면서도 쉽게 변화하지 않는 나를 보는 것이 더욱 힘들다. 정선에서의 난, 낯선 곳에 존재해 온 검은 산과 사북 고한을 내 생각과 알고 있는 것의 틀에 끼워맞추려하고, 억지를 부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내겐 그럴 듯 했다. 허나 타인에겐 전달되지 못했고, '드라마틱'하다는 평을 끌어냈다. 


정선이 나에게 더욱 위험하고, 충격이 되었던 이유는, 어쩌면 이 공간이 자본과 개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나에겐 1차적으로 그렇게 다가올 수 밖에 는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난 용산과 정선을 정말 별다를 차이 없이 보고, 느꼈었다. 그리고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역시 이곳에서도 자본이 사람을, 공간을 헤치고 있군.'이라고. 용산과 정선은 정말 많이 닮았다. 거의 똑같았다. 자의든 타의든 공간을 채우는 사람은 없이 망가진 사택, 그 마을을 지배하는 카지노(관광) 자본, 또 그것들로 인해서 생겨나는 관계의 문제들. 주거공간인 아파트들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텔에. 일시적 주거공간에 더욱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이 이상했다. 사실 용산보다 정선이 준 충격은 더 강했던 것 같다. 난 용산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정선은 검은 산과 탄광촌이라는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곳에 '군림하는 자본'에 대한 생각이 뚜렷했다. 이것이 섣부른 생각이라는 것은 며칟날 밤 리뷰를 하며, 내가 해석하여 내린 '자본이 헤치고 있군.'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일삼아 왔다는 것을 앎과 동시에, 내가 이제껏 관찰해왔던 부분들에 접근 할 때의 태도들에 대해 보게 했다. 그러니 당연하게 나에게 정선에서의 시간과 고민들은 '정선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나에 대한 배신감을 안고 떠난 정선인 만큼, 거의 지금까지의 내 모습에 대해 되묻기 하는 시간이고, 고민들이었다. 내 맥락에서 보이는 것을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폭이 더 넓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무엇보다 닫혀있어서는 안되었다.


근데 정선에서의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보이고 생각하게 되는데…….  눈뜨면 검은 산과 카지노가 함께 보이고, 버스를 타면 눈이 '쾡'한 사람들이 쏟아져 타고 내리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카지노와 지역에 대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것으로 인한 변화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난 그것만 보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봐야했었다.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것이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하지만. 뭔가 그것이 있고, 내 시야가 너무 좁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바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겠다. 이제까지 관찰해 온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입장에서 출발한 관점. 난 내가 이 관점에만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을 '충격'이라고 말했다.


이 충격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정선에 머무는 동안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 충격은 '사진이 드라마틱하다'라는 코멘트를 통해서, 더욱 강해졌었다. 내 사진에 대해 누군가의 평을 듣는 일이 처음이었을 뿐더러, 그 평이 '드라마틱하다'라는 것. 나에게 '드라마틱'하다라는 말은,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모호하고, 그렇기에 더 과장되고 왜곡시킨다는 뜻을 갖았다. 이 평은 정말 직설적이며, 정확했다. 내가 오독해버린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내가 지금껏 해왔던 작업, 이야기들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사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와 연관이 있는 타인에(의 공간)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명확한 지점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한 모호함의 섬세함 혹은 명확함에서 힘들어해왔지만, 적극적으로 채우려 들지 않았다. 어떻게 섬세해져야 하는 건지, 그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어느 순간 막히면, 곧 바로 일어 날 자신감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나의 시선은, 내가 보았던 혹은 보고 있는 공간을 지극히 한 부분으로 규정하는 행위였다. 정선에선 이런 내 모습을 확실하게 바라본 것 같다. 어쩌면 정선에서의 1주일로는 '그 이상의 것'을 보려 노력했던 것이 부자연스럽기도, 그것을 보기엔 시간이 짧았을 수도 있다. 허나, 이 충격은 계속해서 내 속을 긁는다. 지금 서울에 있는 산에게도 이 충격은 유효하다. 그래서 지금 용산을 생각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망설여진다. 어쩜 나는 '그 이상의 것'을 보려는 노력 이전에 지금 단계의 나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한 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돌아가는 것이 싫기도,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든다. 잠시 정말 차분하게 생각하고, 정리 할 시간이 필요하다. 내 안에 너무 익숙한 것들에 대한 되묻기.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왜곡이 생기지 않는 거죠'라는 말이 부럽게 느껴지진 않겠지.



-익숙한 나, 익숙한 사람들. 낯선 공간, 낯선 상황, 낯선 공기. 낯선 이곳에서 익숙한 나는, 익숙한 곳에서도 그러했듯 내가 익숙한 입장, 자료들로 낯선 것을 해석하고, 이야기에 배치시켰다. 그것이 너무 지나쳤다. 인정하기 힘들지만, 익숙한 것들에게 너무도 자비로웠던 것 같다. 그것을 알았기에 혼란스럽고 아팠다. 다시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검은 산과 주차장


아무리 내가 이전의 관점에 갇혀 좁게 관찰했다하여 부끄러워도, 보고 확인 한 것들을 말하지 않으면 안되지 싶다. 나는 정선에서 주로 검은 산과 사택의 주인들인 광부들에 시간의 흔적들을 쫓았다. 나는 그것들을 쫓음으로써, 현재 정선에 무엇이 들어왔고, 변화시켰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어쩌면 '무엇이'에는 이미 자본이라는 대상이 있었던 것 같다.) 이 과정은 '자본이 헤치고 있군.'이라는 판단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근거, 단서를 찾는 과정이었다. 개인 탐사가 주어진 2틀 동안의 이 과정은 너무 순탄했다. 버스를 기다리던 중, 자칭 '하이원 복지사'라는 사체 업을 하시는 아저씨가 먼저 다가오질 않나, 어느 지역 주민이 다가와 마을의 '황패해'짐에 대해서 말해주시기도 하고, 히치하이킹을 통해 지역주민이 아닌 카지노를 목적으로 이곳에 일시 거주하는 사람들 만나기도 하였다. 또 장소로는 검은 산과 카지노가 한눈에 보이는 '앞산'에 올랐고, 그 주변의 망가진 사택과 마을을 다녔었다. 


처음 동탄과 검은 산을 보았을 땐 광부들의 삶을 너무 고단하게 상상하여, 연민하고 대변해주고 싶은 감정에 사로잡혔었다. 하지만, 다시 그 감정에서 넘어와 이 섣부른 연민을 넘어 내가 이 공간을 보고 있는 것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경석산과 동탄은 마치 시간이 멈춰져 있는 듯이 보였다. 허나 사북과 고한은 그 반대로 시간이 흐르고 있는 듯 보였다. 이 느낌을 정리하면, 옛날의 시간인 석탄의 시간은 2004년에 멈췄고, 그 이후 새로운 시간 즉 카지노(관광)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로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북과 고한 어디서든 이 시간의 변화(교환)은 찾아 볼 수가 있었다. 사택은 예전 광부들의 손때가 묻은 스위치, 벽에 쓰인 '만지지 마요, 손이 더러워져요'라는 문구, 광부들의 단체사진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어느 집에는 집 없는 노숙 인이 망가진 사택에 몰래 살고 있기도 했다. 또 가장 결정적으로 40여 년 동안 쌓아올린 석탄 위에 카지노 주차장이 있다는 사실. 또한 광부였던 시간을 회상하며, 지금과 그때를 너무도 확연히 구분하여 말씀하시는 지역주민들이 있었다. 


자칭 '하이원 복지사'아저씨와의 인터뷰

이 아저씨와의 만남은, 내가 맑은 날에 장화를 신고 있음으로 이루어졌다.

산-"안녕하세요."

복지사 -"뭐셔?, 이런 날에 장화 신나?"중략)

복지사 -"젊은 사람이 이 버스타고 어디갈라고?"

산-"경석 산에 가려구요. 혹시 아세요? 그 카지노 옆에 검은 산."

복지사-"어디?, 경박산?"

산-"아뇨, 그 검은 석탄산요, 동원탄좌 있는 곳요."

복지사-"알지, 잘 알지. 내가 광부였는디."

옆에 있던 어른들 - "크크크, 여기 있는 광부였어.사람들 다 광부였어~"

회상의 이야기(중략)

산-"그럼 지금은 뭐하세요?"

복지사- "나? 음……. 나 복지사여. 하이원 복지사. 강원 랜드에서 나 모르면 간첩이여. 크크 (옆에 사장님에게) 안 그렇습니까? 크크. 정식 직원은 아닌데, 직원들도 다 알어."

산 - "복지사라구요?, 하이원 복지사라…….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모르겠어요."

복지사 - "아 뭐 그냥, 돈 없어서 집에 못가는 사람들 도와주고 그러는 거지. 좋은 일 하는 겨. 더 이상 알면 다쳐. 크크크"

산 -"아,,, 네."

복지사 - "혹시 젊은이, 카지노 가는 건가!?"

산 - "아뇨, 저 미성년자에요."

복지사 - "아니, 그래도 카지노 가긴 가는거잖여, 절대 그 근처도 가지말어. 절대로"

산 - "왜요?"

복지사 - "묻지말어, 다쳐."

산 - "안갈꺼에요. 크크. 근데 아저씬 카지노가 직장이면서 왜 그러세요?"

복지사 - "아, 내가 거기서 일을 하고 먹고 살긴 하지만 서도, 절대 내 주변사람들은 못가게 해."

산 - "왜요?"

복지사 - "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카지노는 음……. '악마'여. '악마'. 카지노에 한번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적어도 주변사람 8명은 멍들게 해. 왜냐하면, 그게 중독성이 엄청 심하거든. 그래서 돈은 어차피 잃게 돼있는디, 계속해서 주변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끝내는 거짓말해가면서 빌려다가 노름하고, 그러다보면 인간관계 다 멍들고 쫑나는겨."

"특히 젊은 애들이 심해. 젊은 애들 카지노에 빠져가지구 부모님한테 거짓말해서 돈 다 날려먹고 좌절하고. 카지노는 정말 '악마'여. 이 지역의 관계를 다 망가뜨려놨어. 지역에 큰거라곤 카지노 밖에 없으니, 애들이 재밌을 건 노름 밖에 더있나... 아무튼 자네는 거기 가지 말어. 말어. 말어. 말어. 말어. 마."

산 - "헉.... 인간 관계까지... 정말 악마라고 할 만 하네요.."

      "근데, 혹시 지역 주민이세요? 제가 알기로는 그래도 카지노가 지역 주민들에게 복지에 많은 힘을 주고 있다던데, 그런 부분들로 카바가 안되나요?. 듣기로는 식당도, 사우나도 뭐 여러가지 혜택이 있다던데."

복지사 - "내가 지역주민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지역주민이여. 이봐 자네, 생각해봐. 자네 동네에서 식당가서 밥 먹고, 목욕탕가서 목욕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나?, 복지혜택은 거의 없다고 봐야뎌, 오히려 물가만 올랐지 뭐."


인터뷰 이후, 아저씨는 자신의 일터인 카지노에서 내려 유유히 그 안으로 멀어져 가셨다.


⁃이 분과의 인터뷰는 가히 결정적이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카지노에 대한 비판의 생각들을 거의 모두 증명해주셨다. 그래서 난 더욱 더 이 지역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광부로서의 삶으로부터 약간의 해방감을 느끼셨을 지도 모르겠다. 허나, 나에게 광부에서 사채업자의 직업은 가슴아픈 변화고 좋지 않은 변화로 느껴졌다. 지금 사회에서 언제든지 누구든지 사채업을 할 수 있지만, 광부가. 그것도 사북고한에서 그런 변화를 했다는 것은 나에게 충격이고 문제로 다가왔다. 그래서 탄광이 있는 마을에서 카지노가 있는 마을 주민로 변화하는 시간 동안에 그 혼란들, 그리고 변화된 현재의 주민들의 생활이 궁금해졌다. 허나, 시간이 너무도 없었던 지라,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한 체로 돌아와야 했다. 






이런 사실과 단서들은 40여년 동안 사북과 고한에 흘렀던 시간들의 흔적은 지금의 시간과 섞이고 쌓인 것이 아니라, 지워지고 묻혀지고 삭제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내 표현데로라면 지금 흐르는 시간이 이전의 시간 위에 '군림'하는 듯 했다. 그치만,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여전히 망설여지는 부분은, 내가 왜 시간이 흘러 쌓인 역사를 무시 할 수 없는 것인지를,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를 감정적이지 않은 명확한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 내가 채워나갈 부분이다. 그래도 섣부른 나는 질문해보기로 했다. '어떻게, 어떤 시간을 맞이하고, 흐르게 할 것인가'. 좀 더 섣부르게는 '지금의 사북 고한의 시간은 건강한가'. 그래서 난 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검은산 위로 흐르는 구름을 통해 표현고자 했다. 구름을 시간으로. 그것을 흐르게 하는 바람을 '주민'으로. 검은산에는 '현재'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이 3가지의 흐름을 찍었다. 이유는 지금까지의 이 마을의 역사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이며, 이렇게 시간들이 조화를 이루지 않고 '새로운'시간이 군림하는 상황에서 내 상상력이내의 결론은 지역의 암울함이기 때문에, 이 시간들에 대해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다행스럽게도, 이 부분은 똑같지는 않지만 좀 더 섬세한 관찰을 통한 10년 간의 계획을 갖고 있는 공공예술 팀이 이미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난 이런 부분에서 공공예술팀의 계획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정말 이 시간에 대한 부분을 넓게,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계획에 감동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계획은 정말 나에겐 턱 없이 부족한, 섬세함과 넓게보기라는 부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문제의 접근에 충분히 관찰하고, 조심하면서 10년이라는 시간을 계획한 것. 예술가가 사는 마을. 자기 자신이 그 마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분위기를 만드는 것. 언제부턴가 '계몽주의'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나에겐 그들의 계획은 매우 친근하고, 공감이었다. 그들의 계획과 작업들은 내가 지역에 접근하고, 뭔가를 하고 싶어 할 때에 생각 할 수 있는 부분들에 큰 자극과 배움이 되었다.  





구경 - '흥미나 관심을 가지고 봄'

관찰 -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 깊게 조직적으로 파악함'

탐구 - '필요한 것을 조사하여 찾아내거나 얻어냄'

개방 - '금하거나 경계하던 것을 풀고 자유롭게 드나들거나 교류하게 함. '열어 놓음', '열어 둠'으로 순화.

해석 - '사물이나 행위 따위의 내용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일'

판단 - '어떤 대상에 대하여 무슨 일인가를 판정하는 인간의 사유 작용'



같은 하늘아래.

                                               산


그것에 보이는 별, 안개, 추위

내 앞 

익숙한 사람들

낯선 것들과 아주 새것들, 놀이들


어느 오전

날것들에서 추측할 수 있는

가족, 사랑, 삶, 그것들을 트라우마

섣부르기에

가슴이 아려오는, 경고 다짐들

그들만의


나에겐 생소한 삶과 다짐들

검은 어둠으로 향했던 이들의

공간, 흔적, 이야기노란 화살표, 노란 기차, 노란 문, 노란 지붕들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안도현의 시)

난 왜 그것들을 보게 되는지.


석탄산

검은산

지역, 그들의 역사 섣부르게는 삶.

현재의 상황

그것들의 압축, 축적


그것들에 사로잡혔다

허나 그것들을 '스팩터클'이라 할 수 있을까?


위험한 상황 그 뒤의 

안도의 한숨과 재회의 순간들

그것들의 반복

그것들이 만든, 쌓인 산

검은 산


그 위에 지금 올라서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 위에 올라선 것은 불청객인지.


삶의, 지역의, 시간의 압축 축적

그것들이 만들어낸 아이러니한

아름다움

하지만 지금 그것 위에 군림하는 불청객

안타까움




시간 작업과 함께 썼던 글 


검은 산, 시간의 축적 40년의 일관된 축적, 삶의 축적

폐광.

그곳을 지키는 자, 남아있는 검은 산.

검기에 어두운 산, 그 위에 자리잡은 질긴, 노란 나무들.

어쩜,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의 희망일지도.

그 위로 구름이 흐른다. 

멈춰진 시간, 쌓여진 시간 위로 구름이 흐른다.

그 위로 시간이 흐른다.


그 축적의 검음 위로 구름사이로 빛이는 햇볕이 떨어진다.

정말 시간은 그 순간에서 멈춰 버렸나?

그 시간은 어디를 향해 흘러가고 있나

이 시간은 어디서 온 것이며, 어디로 흘러가는가

검은산은 그져 묵묵히

흐르는 구름, 시간의 햇볕을 받으며

쌓아진 체로 남아 있다.

여전히

지금도

앞으...






벽에 문과 창을 내는..


 정선에서의 나는 섣불렀다. 내가 정선에서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해도, 그 짧은 시간에 어떠한 '시간'에 대한 물음과 작업물은 그저 맛보기 수준에서 나온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굳건한 사회의식과 지금까지 접해온 시대의 문제점들에 대해 굳게 믿고, '이것이 문제다'라는 식으로 '문제'들만을 거들먹거렸었다. 정선에서 또한 그 공간의 '사회적 문제'인 카지노(자본)을 발견한 뒤 망서림 없이 그 이야기에만 집중했었다. 이번 학기 동안, '사회 문제!'에 꽂혀버려 한쪽 눈만 뜨고 달리는 나를 보게 되었다. 항상 목적은 단순했다. '다같이 잘 살고 싶어서'. 그치만, 자꾸 복잡한 고리들을 섬세하게 보지 못하고, 그냥 '문제'로 1차적 인식 수준에서 뱉어내기를 반복해게 된다는 것이 보였다. 이런 생각이 든 뒤로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이 과정 중에선, 섣불렀던 1차적 '뱉어내기'를 반복해왔던 섭시인 나를 인정하는 것이 오래걸리기도, 폭풍처럼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계속 'art in village 예술마을 고환사북'팀의 10년이라는 계획과 접근에 대해 생각하게되곤 했고, 정선 이후의 3명에 시인들과의 만남에선 주로 그들의 문제인식과 접근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해야 '맛보기'가 아닌 맛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떤 것의 맛은 다른 맛들을 알고, 그것들과 비교를 통해서 구분을 해낼 수 있다. 그래서 난 벽을 허무는 것이 아닌, 문과 창을 내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치만, 나는 여전히 '정선의 시간', '용산 참사와 자본'과 같은 내 눈에 보이는 거대한 고리들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또 여전히 시대의식만 키워가는 책들을 읽어가고 있었다. 학기 중반 정선을 다녀 온 후, 내 눈 앞에서 하자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나와 관계있지만 멀리서 벌어진 '사회문제'들과 균형을 잡지 못해 휘청거려왔다. 난 섣부르지 않기 위해선, 더욱 더 근거(논리)있게 비판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다'라는 것을 내가 확인하기 위한 학습을 했다. 불과 얼마 전에 발표한, 내 연구주제 또한 그러했다. 몇일 전 히옥스는 나에게 '80년대 사람 같다'는 코멘트를 하셨다. 이 코멘트는 휘청거림에 마지막 힘을 더해, 균형을 잃고 쓰러지게 만들었다. 섣부르지 않기 위해 했던 과정 중에 어떤 부분의 '시대착오'라는 오해를 생각해보게 했다. 학기 중간 점검을 하며 문뜩, '나는 나아가고 있는 걸까'라는 회의감이 든다.



 지금 나는 앞으로를 상상한다. 지금까지 중요하게, 내 중심에 있었던 '시대의식'과 그것으로 인해 보이는 '사회문제'들은 이제 확실히 기본이다. 내가 시민으로서 마땅히 관심을 갖을 수 밖에 없는 것. 이제는 작별이 아닌, 내 안에 있는 많은 방들 중 한 방으로 위치시키려 한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해온 학습 방식인, 사회문제인식에서 시작된 관찰과 그것을 파내고 바꾸기 위한 요구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카메라라는 매체에 많은 시간을 쏟으며, 알고 싶기도하다. 매체에 몰입하고, 매료된다. 헌데 나는 둘 정말 중요한 학습이지만, 이 둘을 항상 나누어 놓았었다. 그리고 난 늘 전자의 학습을 택해왔다. 전자의 학습은 정말 중요했지만, 불편하고 어려웠다. 그래서 매번 섣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행히도 이쯤되면 '기본이다'라는 확신이 선다. 


요즘 다시 '관찰', '학습', '작업'이라는 것에 다시 생각하게 된다. 

관찰이라는 것은 '문제를 확인하고자하는 상태에서 하는 파내기'가 아닌 '열린 상태에서 보이는 것들을 능동적으로 잘 정리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학습'이라는 것은 '두서를 갖춰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변화)'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작업'은 내가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목적에 있다. 나는 맛보기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  이 '관찰', '학습', '작업'이라는 이 세가지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을 지속할 것이다. 아직 더 쪼개진 작은 그림이 그려지진 않는다. 앞으로도 섣부를지도 모른다. 난 계속해서 다 같이 잘 살기 위해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을 것 같다. 그치만, 해답은 제대로 된 관찰과 '학습'이라는 것에 작업(내비치기) 를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내 머릿속에 잘 쌓이고 있는지를 확인 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앞으로 사회문제들과 나의 관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할 것 같다. 


정선에서 난 '무엇을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하기 시작했었다. 다시 하자로 돌아와 섭시인 나와 시인들을 비교하며, 질문이 변하기 시작했다. 내 눈이 보는 것을 '<어떻게> 말 할 것인가'로. 사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 한 볼 수 있는 것들은 충분했다. 그래서 난 일단에 항상 우선 순위에서 밀려왔던, 위에서 말한 후자의 학습에 좀 더 무게를 실어주고 싶다. 능력이 좋다면 두가지를 한번에 하면 좋겠지만, 또 다시 문제들로 인한 '분노'와 '말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균형을 잃게 될 것 같다. 짧지만 2달 동안 '자기언어'와 '판'을 갖은 3명의 시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나는 허물벽이 아닌, 그 벽에 새로운 문들을 내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가 앞으로도 '사회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한다면, 생각할 수록 복잡해져 풀기를 꺼려왔던 '복잡한 고리'들을 섬세하게 보려 해야 한다. 그리고 기르는 과정 중에 그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문'을 내어 계속해서 밖으로 내비쳐야 한다. 난 앞으로 이 '문'에 대한 학습에 집중하고 싶다. '나의 언어'라는 것. 그것이 '매체'일 수도, 나와 바깥이 소통 할 수 있는 '문'이 될수도 있지 싶다. 그렇게 내 안에 섣부른 것들을 체크받고, 나누고 싶다. (그렇게 어떤 '시대착오'를 머릿 속에 넣고 있는 사람이 아닐 수가 있겠지.) 이렇게 '판'을 기본으로 나눔을 통해 '복잡한 고리'들에 대해 내 눈만이 아닌,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이 보고 있는 고리들을 보다보면 섬세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난 내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싶어 자신감도 없고 두려워하곤 했다. 이제는 나의 첫 창(매체)인 '이미지'라는 것으로 지금까지 용산을 통해 쌓아온 이야기들과 만들어 갈 이야기가 밖으로 내비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싶다.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작업자'이고 '시인'이라고 떳떳하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입으로, 내 매체로 말해보기. 그렇게 머리와 손의 조화를 훈련하는 것. 그 훈련에서 나온 작업물로 스스로를 체크하고, 보는 이에게 영감이나, 움직임을 주는 변화들이 이곳 하자에서 내가 해야 할 '학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창(언어)을 갖은 '시인'으로의 성장이길 바란다. 그래서 좀 진득하니 나의 '언어(매체)'라는 것에, '<어떻게> 말할까'라는 것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앞으로 내가 갖고 있는 시대의식들을 잘키워나가는 것 또한 소중히 할 것이다. 난 지금 '중심'을 '기본'으로 옮겨가고, 다시 '중심'을 잡는 것이 필요한 '전환'의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난 지금 이 '중심'이라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도데체 내가 어떻게 하면 투철한 '책임감'으로 인해 균형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무엇을 읽어야하는걸까.. 나의 중심이었던 '시대의식'이라는 생각과 이야기는 어떻게 뻗고, 커나갈 수 있을까..등의 아주 기본적인 물음들로 '전환'의 결과는 앞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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