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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수정한 내용 ‘정선에 가는 불안한 마음’ 정선에 가기 전 밤을 샌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버스에서부터 깨달았다. 깨어있는 정신으로써 가야될 정선에 모자란 잠과 추위에 벌벌 떨며 정선에 도착했다. 첫 날에는 가는 곳마다 추웠다. 고한 구 읍사무소도, 마을 자체도 추웠다. 어느 외진 곳에 떨어져 버린 느낌이었다. 정선에 가기 전 적었던 깨어있겠다던 마음은 사북과 고한에 도착하자마자 추위와 피곤으로 인해 사그라졌다. 정선에서의 아름다움을 찾겠다던 마음은 가지고 있었지만, 무엇을 아름답다고 해야 될지, 그리고 지금 정선에서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서 이틀 동안 정해진 스케줄의 동선만 따라다녔다. 그렇게 따라만 다니다 보니 어떤 정보를 얻더라도 잊어버렸고, 보고 느낀 것 그냥 내 생각만 남은 리뷰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이틀 동안의 리뷰시간에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삶과 죽음의 마지막 장소’ 사북에서 아름다움을 찾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나는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열심히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동원탄좌에서 문구, 사진, 사물, 전시물 등을 통해서 광부들의 삶을 유추해내어 보았다. 그 중 문구들을 통해 광부들이 만들고자 했던 일터의 모습들을 상상해 본다. 광부들에게 광산은 살기위해 가는 길이자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광부들이 만들고자 했던 일터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안전’ 이었다. 모든 일에 안전을 가장 중요시 했다. 제일 머릿속에 남는 문구는 ‘안전 점검 정리정돈으로 밝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자.’ 이었다. 어두운 갱도, 석탄가루가 날려 건강할 수 없는 일터 탄광이 정말 광부들에게 밝고 건강한 일터 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암울해졌다. 그렇게 ‘안전을 의미하는 말들이 곳곳에 적힌 동원탄좌를 돌아보다가 보았던 전수천 작가의 ‘Reality in Time’에는 장화 앞에 적혀있던 ‘오늘도 다행히 사랑스러운 아내와 자식들을 볼 수 있겠구나.’ 라는 문구와 뛰고 있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통해 일이 장화를 씻으며,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통해 진정으로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동원탄좌들을 돌아보다가 사북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카지노가 개설된 이유도, 뿌리관 앞에 있던 사진전시를 보다가도 “제 2의 사북사태를 만들면 안 된다.” 라는 이야기에 사북사태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광부들의 삶에 사북사태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사북사태가 일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아름다움을 찾겠다는 마음을 접은 이유는 내 생각만이 담긴 아름다움을 찾기 전에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과 상황들에 대해서 먼저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북사태는 무엇이며, 왜 일어났고, 무슨 일이 있었는가?” 동원탄좌는 광부들에게 희망이었다. 하지만 사북 사태는 그들의 마지막 희망마저 앗아가는 지옥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동원탄좌에서 정말 궁금했던 사북 사태에 대해서 동탄보존위원회에 계신 분께 이야기를 듣고, 문서, 영상자료실에서 사북 사태에 관련된 자료들을 읽어보았다. 1980년 4월에 일어난 사북사태는 임금요구에 대해 노조와 합의한 내용과 달리 회사와 노조들끼리 상의한 내용을 통해 합의한 내용과 달리 매우 적게 올려준 것에 대한 광부들의 분노로 시작되었다. 광부들은 이 시위를 통해서 어용노조의 지부장(이재기) 사퇴와 임금인상에 대한 요구만 있었지만 시위 도중 경찰지프가 광부 둘을 들이받아 중경상을 입히고, 회의를 하기로 했던 어용노조의 지부장은 계획했던 회의마저 회피하고 달아나자 광부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들은 경찰지서를 불태우고, 노조원들의 집기들을 부수고, 철도와 사북읍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북을 점거했다. 그 점거는 4일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체 치안과 규율에 대해서는 철저히 지켜졌다고 한다. 점거 나흘 후 4월 23일 최종협상이 이루어졌는데, 11개의 조항을 통해 광부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었다. 11개 조항의 내용은 이렇다.
〈합의문 내용〉 이재기와 노조집행부 사퇴 부상자 치료 및 보상금 회사 부담 피해주택 복구 회사 부담 하청업체 노임과 상여금 상향조정 건의 신용협동조합 미지급금 회사부담 1979년도 징계자 상여금 삭제금 지급 파업 4일간의 휴업수당 지급 1,2월 임금인상 소급분 20%를 5월에 지급하고 탄가인상 때 재조정 상여금 250%를 400%로 인상 경찰 실력행사 절대 삼가 회사와 당국, 사태 해결에 절대 노력
(하지만 요구조건을 들어주더라도 사북 고한 영상에서 봤듯이 사북은 물자를 전달하는 것이 어려워 그 지역의 물건들은 다른 지역보다 비쌌다고 하니 그들에게 임금으로 인해 나아진 부분은 딱히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협상 이후 사북 사태 환경조건 개선 중 목욕탕 설치와 여론함 설치 등이 있었다. 하지만 전두환은 11개 조항 중 ‘경찰 실력행사 절대 삼가’의 조항을 잊고 주도자들을 잡아들인다. 주도자들을 잡기 위해서 전두환은 (무슨 회의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회의를 주최하여 회의에 모인 31명의 주도자들을 군인들로 잡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온갖 고문과 취조를 당하였고, 그 뒤에는 병치레를 하다가 모두 죽었다고 한다. 그 이후 사북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시위는 계속해서 일어났고, 사북은 많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들 자신들의 삶을 끝까지 외치고 결국엔 이루어낸 대표적인 좋은 예로 불리고 있다. 사북사태를 듣고서 나는 광부들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얼마나 많은 소외감을 느꼈는지, 답답함을 느꼈는지, 그 이후로 계속되는 감산과 감원으로 인한 폐광의 소식에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느낄 수 있었다. 동원탄좌는 사북에서 혹은 사북으로 올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마지막 희망인 곳이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나는 광부들처럼 무언가에 절망적으로 간절하게 그리고 목표와 희망을 가지고 삶을 살고 있을까? 탄을 캐는 그 순간처럼 무언가에 주의 깊게 집중하고 있을까? 정선 덕분에 나는 내 삶에 목표를 끊임없이 이어나가고 내 작업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이건 여담이지만, 동원탄좌를 3번이나 갔다 오는 동안 동원탄좌의 건물들을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계속 음산한 기분이 들었다. 날씨 탓도 있고 혼자였기 때문도 있지만, 난 동원탄좌의 흔적들과 모습들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무서웠다. 동원탄좌에서 죽은 많은 광부들의 영혼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탈의실을 열어볼 때도, 세탁실에 갈 때도,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갈 때도 그들은 나를 주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대신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나는 동원탄좌를 무섭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로도 볼 수 있었다. 사북-고한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북 동원탄좌에 관련된 작품 중 본 것들을 찾아보니 내가 본 것은 ‘찬사’, ‘검은 산’, ‘샤워실’ 밖에 없었다. 그 외에 많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주의 깊게 보지 못해 아쉽다. 작가들의 작품은 동원탄좌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와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느낌을 하나의 작품으로써 표현함으로써 나에게 새로운 부분을 인식케 하여주었다. 그리고 난 다시 한 번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면 안된다.”를 깨닫게 되었다. ‘정이든 경석산’ 첫 번째로 갔던 경석산은 작업장학교 학생들이 모두 같이 가게 되었는데, 그 전에 동원탄좌에서 윤주경 작가의 경석산으로 만든 작업인 ‘검은 산’ 을 보게 되었다. 그 영상에선 윤주경 작가는 끊임없이 산을 뛰어다니며, 바람 소리와 자신의 거친 숨소리를 영상에서 보여준다. 그 영상의 의미는 탄광 내에서 숨쉬기 힘든 광부의 마음과 상황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 후 경석산을 나도 뛰어올라가고 싶어서 뛰어 올라갔다. 탄광 내의 느낌은 아니겠지만 힘든 심호흡을 나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뛰다보니 작가가 뛰었던 장소들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그 후 나중에는 아이들의 꼬임에 넘어가 경석산의 능선을 타고 오르는 것으로 등산을 끝냈다. 다 뛰어오르고 나니 나는 꼭 이 산을 다시 한 번 오르고 싶었다. 내가 아름다움에 대하여 찾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이 산이었다. 검은 석탄 산을 처음 본 내게 그 산은 아름다움 자체였다. 막연히 그 산의 크기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나무까지 자라고 있는 경석산은 그냥 석탄 더미로만 보게 하지 않았다. 경석산의 겉모습, 그리고 담고 있는 의미들을 통해서 이 경석산을 꼭 내 작업에 담고 싶었다. 두 번째로 경석산을 오르게 된 것은 11월 4일 개인탐구주제 시간이었다. 동원탄좌만 볼 거라 다짐하던 나는 쇼를 만나 경석산을 지나 숙소로 가게 되었는데, 수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올라가보자고 합의했다. 그 때까지도 나는 경석산을 만만하게 바라보았다. 이 정도의 각도의 산은 쉽게 올라가겠거니와 했다. 시작은 좋았다. 경석산은 3개의 석탄 계단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산이다. 첫 계단은 쉽게 올라갔지만 두 번째 계단은 정말 힘들었다. 쇼가 이미 두 번째 계단을 올라간 상태였지만 나는 앞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길을 잘못 골라 발과 손을 디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라가려고 하면 석탄은 계속 흐르고 내 손은 얼룩지고, 장화에는 폐탄 들이 들어가고 가끔 내 몸은 같이 내려가기도 했다. 그 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나 또 한심한 짓거리 했구나.’ ‘경석산을 너무 만만하게 봤구나.’ ‘오르다 죽을지도 모르는 산이 이런 느낌이구나.’ ‘길 찾기 걸바가 생각나네.’ ‘아 엄마 보고 싶다.’ 등등의 생각들을 하다가 올라가기 위해서는 다시 길을 정해야 겠다는 생각에 오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그리곤 위에 있는 쇼에게 소리치며, ‘어디로 올라가는 것이 좋을까!!?’를 반복했다. 그 때마다 쇼는 나에게 길을 알려주었고, 쇼는 올라갔던 길을 내려와 옆에서 “발을 놓고 앞으로 튕겨나가듯 뛰어올라가라고 조언까지 해주었다. 나는 결국엔 2번째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남은 3번째 계단은 지난번에 올라가 봤기 때문에 손쉽게 올라갔다. 올라가자마자 ‘정복’ 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기분 좋음으로 들떠있었고, 올라오는 길엔 더러워진 손과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숙소로 갔다. 숙소에 들어와 손에 묻은 석탄가루를 세면대에서 씻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샤워를 할 때 손에서 검은 물은 또 나왔다. 하루 종일 온 몸에 석탄 가루를 묻히고 일한 광부들이 자신의 얼굴과 손을 씻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 지를 상상했다. 그 후 리뷰를 하는 동안에는 내가 경석산에 두 번이나 갔는데,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고, ‘내가 정작 이러려고 정선에 왔나’ 하는 생각까지 들자 괴로웠다. 그리고 경석산을 그렇게 올라왔다는 사실에 경석산에게 예의 없게 군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고, 정복이라는 생각을 했던 나 자신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름답다고 느꼈던 감정이 사라졌다. 이 산을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은 이 산을 올라보지 않은 상태에서 멀리서 겉만 보고 했던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멀리서 바라본 경석산의 겉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석탄산이라는 이미지와 다르게 아름다웠다. 세 번째로 간 경석산은 첫 번째, 두 번째 갔던 것보다 나에게 친근하고 익숙하게 다가왔다. 더 이상 경석산은 나에게 낯을 가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경석산을 오르지 않고 숙소에서부터 천천히 경석산을 내려왔다. 경석산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나는 중간에 걸터앉았다. 내가 정말 이 경석산을 오르락내리락 했던 이유가 무엇 이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며 한 참을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위엔 하이원이 있었고 아래엔 동원탄좌가 있었다. 현재의 동원탄좌는 하이원의 탄광체험문화촌 개발을 앞두고 있고, 하이원은 사북의 지역개발에 힘쓰지만 그 사이에 있는 경석산은 마을 사람들에게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 문득 들었다. 이 질문 대하여 사람들에게 물어볼 생각은 못했지만, 잠깐 들은 이야기로는 지금 현재의 경석산은 마을 사람들에게 없앨 것인가 놔둘 것인가 하는 두 개의 의견으로 갈리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경석산은 탄광마을이었던 사북의 세월을 나타낼 수 있으며, 윤주경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광부들에겐 일종의 기념비와 같은 존재” 라는 의견이었고 다른 의견은 “경석산은 마을의 강을 녹물로 만들게 하는 쓰레기 산에 불과하다.” 라는 의견이었다. 이 두 개의 의견에서 나는 어느 한 편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경석산이 보존되기를 바란다.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 했던 자신의 마을의 자랑거리가 필요하다면 경석산은 정말 희귀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 있는 탄광들의 석탄더미에서 유일하게 나무가 자라난 곳이기 때문이다. 이 의견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경석산에 대해서 더많은 정보를 알아 볼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지나간 것에 후회한다. 내가 경석산에 대해서 쓸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내가 느꼈던 경석산에 대한 이미지와 경험뿐 이다. ‘진심으로 작업해야 한다.’ 7일간 정선에 있으면서, 나는 깨어있겠다고 말했고, 나는 많은 것들을 관찰할 거라고 말했고, 공연 팀과 함께 연주할 거라고 말했고, 아름다운 것들을 시와 그림으로써 담겠다고 말했다. 위에 있는 것들 중에 지금 리뷰를 쓰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하겠다고 말한 것 중에 마음을 담아 집중해서 완성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혹은 시작하기 전에 확실하게 다짐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곤 바탕화면에 있는 <예술가> 라는 시를 읽으면서 썩은 예술가였음을 생각하며 자기비하에 빠졌다. 나는 일을 함에 있어서 마음을 담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예상했던 목표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성실히 해야된 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이번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리뷰시간이었다. 리뷰를 한 뒤 듣게 되는 판돌들의 코멘트, 다른 죽돌 들의 눈빛 그리고 대화가 될 수 없었던 나의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특히 이번에 썼던 두 개의 시에 대해 사이다와의 대화 속에서 내가 멋만 부리려고 했다는 사실에 많이 괴로웠다. 예전에 썼던 시 중에 보석함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의 마지막 문단은 “난 빛나는 보석들을 담고 있는 보석함이고 싶어.”의 문장의 마음은 잊은 채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종이에 싸구려 보석들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 같았다. 시 뿐만이 아니라 행동과 말에서도 한 동안 계속 그래왔던 것 같다. 길거리 공연에서도 퀄리티를 따지던 모습, 리뷰 시간에서 공공미술에 대한 내 문장구조, 혹은 사북의 모습들을 내 느낌과 시각으로 단정지어버렸던 것들이 생각난다. 이리하여 그동안 내 이야기들이라 했던 것들은 내 이야기 내 생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대화로써 이끌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될까? 일단 여기에 드는 첫 번째 생각은 내가 생각과 그 생각을 들게 한 상황과 사건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 되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마치면서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점은 11월 7일 날 오후에 고한 시장에서 했던 바투카다 공연이다. 공연의 가장 기본인 공연을 하는 이유와 의미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그리고 기본 연습도 부족하고, 공연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성 부족까지 더해져 보기 민망한 공연까지 했다. 이번 정선을 통해서 나는 다시 한 번 기본과 초심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리고 자신의 작업 과정을 다시 한 번 짚어보고, 그 과정을 잊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에 대해서 괴롭게 깨닫고 왔다.
![]() 오앙! 엽입니다.
e-mail: yeop@haja.or.kr
2009.12.02 10:25:54
너의 시간 너와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선에서 너를 세 번째 본 순간 10년은 강과 산을 변하게 하는 시간인데 사람들은 생활쓰레기를 몇 십 년 동안 쌓아온 난지도엔 네가 폐자재로 쌓아 올린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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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란 무엇인가> 책의 중간에, 노먼 포터가 인용한 톨텍 족의 시
<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