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었던 섬세한 속사귐.
제임스의 작품 설명을 들을 때였다. 사실 난 사진에 정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제임스의 말을 들으며 사진에 약간 흥미가 생겼다. 내게 흥미를 끈 부분은 그 시간 이 아니라 제임스로부터였다. 제임스는 사진을 찍을 때 결코 셔터만 눌러대지 않았다. 아주 정성을 들여서 시간을 계산하고 대상의 체온이나 색의 대조 등 여러 가지를 파악하며 찍었다. 정성을 들여서 사진을 찍는 제임스의 모습에서 나도 사진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첫날의 사진 아틀리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사진을 찍기 전 구상했던 이미지와 찍은 사진을 합체시킨다.”는 말이었다. 아틀리에 시간이 있고 나서 사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제임스가 "사진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의 도구일 뿐이다"라고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추어들 사이에선 사진이 단지 자신의 겉모습을 자랑하며 보여줄 수 있는 도구이겠지만 예술가들이나 시인들에게 있어선 도구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서 예술가란 얘기를 정말 정성스럽게 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이라는 언어는 섬세한 속사귐같다.
-광부들의 입장과 그들의 흔적
아무 생각 없이 동원탄좌를 돌았다. 정신이 좀 팔렸었나보다. 동탄에서는 절단기, 폭약, 펌프등 위험한 작업에 쓰이는 물건들이 많아서 오싹함을 많이 느꼈다. 광부들이 그런 위험한 도구를 가지고 작업했을 거라니 안쓰럽고 답답하다. 그리고 Lighting shower라는 작품이 내게 크게 다가왔다. 그 룸에 다가가면 센서가 작동해 와주 환한 빛이 사방에 켜진다. 문주 작가님이 광부들이 캄캄한 갱도에서 일 하고 탄좌에 들어와서 빛으로 샤워를 했다면 좋았겠다는 의도로 만드신건데 꽤 고마운 작품이다. 그리고 세탁실에 들어가면 티비가 있는데 그 앞에 "광부들이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씌여있었다. 정말 멋진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 광부들은 일 끝나고 탄좌에 돌아와서 잠깐 티비를 볼 수 있고 집에 가면 피곤해서 뻗어버려서 티비로 잠깐 세상을 내다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티비말고는 볼 게 없어서 티비만 봤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건 상상하기 나름이다. 당시엔 신문도 있었을테고 티비도 있긴 있는데 그때 당시 상황이 정말 궁금하다.
사북을 헤메다 뿌리관에 도착했다. 뿌리관을 보면서 강하게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뿌리관을 먼저 갔다가 동원탄좌를 갔다면 '광부'라던가 위험한 작업 도구들, 탄핵의 흔적 등을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거라는 거다.
뿌리관을 돌며 광부의 입장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뿌리관에 가서 알게 된 것들은 광부들이 석탄을 캐러 갱도에 들어가는 것부터 어떤 작업들을 하는지, 고한과 사북이 석탄마을이 된 배경, 석탄 마을이 되어서 생긴 문제점들도 있었다. 이 중 정말 슬펐던 것은 어느 시절엔 광부의 안전보다 석탄의 생산량이 더 중요해서 광부들이 많이 죽고 다치고 했다더라. 언제 무슨 일이든 보통 사람이 우선인데 좀 잔인하다. 상상이 간다. 간접적으로 채찍질 당하며 땀흘리며 일하던 광부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정말 아쉬운 것은 1층밖에 못 봤다는 것이다. 2층은 리모델링 중이라.. 사북고한이 탄광 마을이었던 시절, 광부란 돈을 빨리 모을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몰린 직업이었지만 무지 위험하고 힘든 직업이었다. 지금 강원랜드는 돈을 굴리며 도박을 했는데 이 때는 돈과 목숨을 굴리며 도박을 한 건 아닐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들었다.
정선에 오기 전 경석산의 존재를 매우 특별하게 여겼던 나는 경석산을 오를 때 매우 들떠있었다.
광부들의 큰 흔적인 경석산에서는 산을 직선으로 오르며 그들의 숨참을 느껴보기도 했다. 경석산은 40여 년 동안 버려진 석탄이 쌓여서 만들어진 검은 산이다. 멀리서 봤을 때는 전체적으로 검지만 나무가 잡초처럼 듬성듬성 나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올라가보니 여기저기 큰 나무, 조그만 나무들이 많았다. 검은 바닥에 붉은 나무들의 조화는 아주 괜찮았다. 경석산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 나중에야 든 생각은 경석산은 고한/사북에서 가장 큰 흔적, 광부들의 흔적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트래킹 하다가 보통 경로로 안가고 아주 경사진 대로 일부로 올라갔는데 헉헉거리며 잘 올라가서 광부들의 흔적 속에서 그들이 숨찼던 것을 조금 느낀 기분이었다.
-무턱대고 봤댔던 파란색
고한의 이 곳 저 곳 이 골목 저 골목 안가본데가 없다. 돌아다니면서 강제욱 작가님의 어린아이들 사진이 눈에 많이 띄었고 신종플루나 좋지 않은 환경에 의해 못 보던 아이들을 사진으로 대신 볼 수 있어 따뜻했다. 그리고 이 날 파란색을 많이 찍었다. 고한에는 파란색이 정말 많더라. 내가 왜 파란색을 많이 찍었을까? 그리고 내 입에서 왜 파란색이란 말이 많이 나왔을까? 단지 색이 마음에 들어서? 이런 생각들을 그 때 당시엔 하지 못했다. 파란색을 무작정 1차원 적으로만 보았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아도 내가 무턱대고 파란색을 많이 본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인가?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정선에 가기 전 하자에서 사이다가 파란색을 많이 보셨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눈이 저절로 가게됐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파란색은 나와 묘한 인연이 있었는지 가는 곳바다 많이 나왔다.
-블랙 홀 카지노
어느 날은 카지노도 갔었다. 평일이었지만 사람들이 많았다. 주차장은 부족해서 차들이 그냥 도로에다가 주차했다. 어떻게 도로에다 주차를 하는지 그런 건 처음 봤다. 카지노에는 무서운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 3일을 센 사람의 눈 처럼 눈이 충혈되고 머리는 떡졌다. 카지노를 구경한 것은 블랙홀에 들어갔다온 경험이었던 것 같다. 분위기가 너무 달랐고 어서 빨리 나가고 싶었다.
그날 그날 리뷰의 리뷰.
우리는 정선에 갔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리뷰를 했다. 리뷰를 하며 생각할 거리나 알게 된 것, 느낀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감동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주민과의 교류가 있는 것이었는데 교류를 위해서나 궁금한 것을 인터뷰 할 때 먼저 자신을 소개해야했다. 감동 프로젝트를 빌리지 않고 어떻게 나를 소개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생각을 했던 이유는 감동 프로젝트를 빌리면 그 프로젝트가 메인이 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메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더랬다. 근데 지금은 감동 프로젝트를 빌리면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더 짙어지고 상대방에게 이해도 더 시켜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탄광마을이었던 정선에 카지노마을이 들어서며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궁금하고 왜 지붕이나 대문에 다양한 색깔들이 있는지, 경석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궁금한게 많은 학생의 입장으로 다녔었다. 내가 하고 있던 작업들은 궁금증들을 더 부풀리기 위해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일이었다.
무엇을 발견할 건지가 아니라 발견한 것이 무엇인가? 내가 발견한 것은 광부들의 큰 흔적 경석산. 정이 무척 가는 산이었다. 검지만 포근한 산. 공기는 그저 그렇지만 다정한 산이었다.
우리는 정선을 관찰하고 구경하고 기록하며 다녔다. 덕분에 우리는 외부인이라는 도장이 얼굴에 찍혔나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를 안좋게 보고 계속 주시했다. 여기서 외부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관찰자는 관찰 대상 밖에 있기 때문에 외부인 일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했는데 조금 더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으면 그냥 외부인 보다는 가까운 외부인이 되었으리라. 만약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다면 외부인 티를 벗고 가까운 외부인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일주일동안 과정을 너무 즐긴 것이 아닐까? 앞으로 과정과 결과를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까? 조금 자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프로젝트의 맥락을 이해하고 섬세해지면 과정 뿐 아니라 결과도 너무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보고 서로 관심을 가져주면 결과나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는 범위도 배가 될 것이다. 좋겠다 좋겠어.
리뷰들을 정리하는 데 판돌들이 한 줄로, 또는 두 줄로 정리해 보라고 했다. "짧은 문장으로 정리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길게 설명을 해도 늘어놓기만 할 뿐"이라는 것에 동감을 하고 한 문장으로 정리 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난 우리가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우리가 '예술마을고한사북:공공미술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어떤 작품들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만의 궁금증이나 관심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했었고 그 과정을 작업으로 만들어서 페차쿠차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잖아. 그저 본 것을 기록한다는 것에서 그치면 스스로 나서서 할 일도 아니겠지만, 그 기록은 오피의 시각, 주관에 의해서 움직여진 것을 읽을 수 있는 하나의 단서라고 생각하고 또 그 기록이 전혀 그 대상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각자가 생각하는 공공미술이라는 것이 달랐고, 나도 거기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이거다! 하는 게 없어서 뭐라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지역에서 무언가를 보고, 말하고, 느끼면서 움직이는 것, 그리고 그곳을 조금이나마 움직이고 느끼게 해보려 하는 데에 우리가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생각치 않아.
하자센터가 없었다면 서울이라는 지역에 대해 관심이 없었겠듯이, 이번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이 지역과 이 일들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을테고 말이야. 산은 10년의 계획이라면 우리도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는데, 자꾸 그게 생각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