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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낯선 곳에서 나를 발견하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또 다른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내가 아직 나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을 지라도, 내가 나를 다 아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톱니바퀴들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싶었다. 하나의 톱니바퀴에 나사들을 덧붙여 그 거대한 톱니 하나만으로 세상을 본다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많은 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궁금해지는 건 작업자로서의 내 정체성이다. 나는 정말 이야기 전달자가 되고 싶은 걸까? 그리고 청소년 문제나 페미니즘에 정말로 관심이 있고, 그것이 내 화두라고 당당하게 말 할 자격이 있을까?
- 대안을 원한다면
토요일, 6일째 되는 날 리뷰모임에서 원이 썼던 season1의 시작에 대한 글을 들었고, season1을 어떻게 마감할지에 대한 리뷰를 했다. 나는 일주일간 했던 리뷰모임 중 그 날만큼은 할 말이 너무 많았다. 원이 있던 시기와 내가 지금 있는 시기에서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당장은 설명하기 힘든 다름은 존재했다. 비슷하다고 느낀 건 하자라는 환경을 갖게 된 거였다. 하자는 안에 있는 10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학교 자체가 바뀐다. 사실 나도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season2를 시작하는 게 하자에 올 청소년들에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이 있듯, 지금의 청소년들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일반학교에서 바로 하자로 넘어온 사람이 지금 하자에 얼마 없다는 사실에 나는 크게 놀랐다. 대안학교는 공교육의 대안을 목표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반학교처럼 빡빡하거나 답답하거나 크게 형식적이지는 않다. 일반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조금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어쨌든 그래서 지금 10대 중에 학교에 불만을 갖고 있고, 문제의식을 크게 느껴서 혁명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학교에 다닐 때 문제의식을 느끼긴 했지만, 딱히 그 문제를 어떻게 바꿔야 하며, 그걸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상상하다 포기했다. 학교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선생님이 별로라는 둥, 다 현 대통령 때문이라는 둥의 책임을 전가해버리는 경우밖에 없다. 하지만 하자에 와서 나는 내가 의외로 할 수 있는 게 매우 많고, 내 손에 어떤 도구, 예를 들어 카메라나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어도 나는 충분히 내 생각을 지구 반대편까지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또한 학교에선 생각을 하다 말아버린 공교육, 청소년, 성매매, 가부장제에 대한 불만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정리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나에겐 정말 큰 감동이고 기쁨이다. 그런데 하자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면 부분적인 공감은 하되 같이 토론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또, 학교를 벗어나 대안을 선택했다면, 지금 있는 공간에 대한 불만족을 얘기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일이 하자에서 얼마나 있었나. 정선 마지막 날 팀으로 갈라져 얘기했던 것, 나는 그 얘기가 하나의 작은 사건(이라고 불러야 하나)을 매개로 터진 게 불만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하자에서 일어나는 작은 불만들을 얘기하지는 않고 있어 반성해야 한다. 마지막 날 밤에 영상 팀은 서로에 대한 불만이 거의 없었다.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 서로에 대한 불만이 없다면, 영상팀 안에서 우리는 팀으로서 같이 한 게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무리 화목해도 작은 불만은 생긴다. 그걸 ‘저 사람은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만을 지우고, ‘쟤 왜 저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만을 터뜨리거나 자기 속에서 키운다. 나는 그래서 무서웠다.
우리는 우리를 서로 동료작업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정말로 티끌만큼도 불만이 없을까? 또한 죽돌이 서로 서로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할까. 그것이 1차원적인 부분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거나, 하자와 별개의 문제더라도?
- 너의 정체성, 나의 정체성
나는 정선에서 일주일간 작업자로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을 것이며, 내 삶과 연결된 타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으로 story telling하고 싶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동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인지 질문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질문한다. 나는 story teller로서 작업하고 있던가? 나는 정말 내 삶과 연결된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나? 혹 내가 경험한 일과 비슷한 일을 타인이 겪었을 때,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내 마음대로 단정 짓지는 않았을까?
동탄의 샤워실과 탈의실을 가기 전까지 본 전시들에서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모든 전시를 볼 때 나는 생각을 잘 못한다.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내가 그 전시물을 보며 느낀 생각이나 감정과, 작가가 작품을 만든 의도나 감수성을 연결시키는 게 어렵다. 그래서 나는 책이나 영화가 좋다(하지만 <빨간 풍선> 같은 영화는 고역이다). 하지만 탈의실에 있는 캐비닛 무리에선 정말, 정리가 하나도 되지는 않았지만 전시 속에서 최초로 뚜렷한 생각을 잡아냈다. 광부의 캐비닛을 하나하나 열어보면, 손이 조금 많이 더러워지지만 볼 수 있는 게 많다. 빨래를 해도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장갑과 작업복, 먼지가 쌓이다 못해 굳어서 뭉친 흔적, 박박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 그 중에서 내 눈에 띈 건 깨끗한 거울이었다. 그 많은 캐비닛 중 내가 발견한 건 고작 세 개뿐이었지만, 거울은 다른 물건보다는 훨씬 깔끔했다. 하지만 크기가 너무 작아서 눈 보고, 코 보고, 입을 보고, 허리를 재껴서 얼굴 전체를 보는 게 전부였다. 그 작은 거울을 과거에 광부와 지금의 내가 공유했다는 게 기뻤지만, 거울 속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게 힘들었다. 광부의 그 열정적인,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의 곡괭이질과, 내가 작업자가 되겠다고 하는 포부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또한 속으로 눌러왔던 정부와의 갈등을 뜨거운 목소리로 동료들과 함께 외친 그 외침을 할 용기가 내게는 있던가. 나와 타인을 비교하고 그 차이에 실망하여 땅굴을 파는 건 정말 한심한 짓이라 하고 싶지 않지만, 그냥 내가 한심하고 작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나의 개인 탐구 행적은 과거와 현재로 나뉜다. 사북에선 과거를, 고한에선 현재를. 사북 동탄에서 본 그 흔적과 냄새를 간직하고 고한중고교로 갔다. 학교가 파하기엔 먼 시간이고, 하교길에 붙잡고 말을 걸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학교 운동장에 ‘너넨 꿈이뭐니?’라고 크게 쓰고 반응을 기다렸다. 학교 밖 원두막에 앉아있는데 종이 쳤고, 창밖으로 몇 아이들이 튀어나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들어갔다. 사실 그냥 종이비행기로 장난을 친 거였겠지만, 나는 내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믿고 싶었다. 다시 운동장으로 가 종이비행기를 찾아 열어봤지만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종이비행기는 운동장으로 수직낙하했고, 빈 종이였다. 그 빈 종이가 나에겐 힘든 사실이었다. 갑자기 학교 밖에 하나밖에 없는 강원관광대학교 현수막이 크게 느껴졌다. 서울로 가기에는 힘든 형편, 갓난아기 때부터 본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보는 좁은 세상. 나에게 세상은 너무 넓고 무한한 곳인데, 고한의 아이들에겐 정말 좁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상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공공미술의 힘에 기대고 싶었지만 내가 돌아본 고한에서 아이들이 찾을 수 있는 희망은, 적어도 지금 당장은 없었다. 마을의 정체성의 변화로 인해 사람과 자연, 구조가 긍정적으로건 부정적으로건 크게 휘둘렸다. 쉬는 시간 내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세상 모든 청소년이 지금 웃는 것보다 더 많이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의 테두리 밖으로 나가 더 큰 테두리를 경험한 순간의 짜릿함은 평생 잊지 못한다. 대충 살아도 살 수는 있다는 생각보다, 내가 나에게 구멍을 내고 내 몸에 굴을 뚫더라도 나는 그게 더 행복하다. 11월은 춥고, 추우면 겨울이 오고, 한겨울은 연말과 연초다. 연말이 지나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고, 나는 19살이니까, 결론적으로 두 달만 지나면 나는 여자성인이 된다. 무섭고 두렵다. 나는 지금 작업자라는 톱니바퀴를 계속 붙들고 있지만, 내년 4월 즈음 수료하고 나면, 나는 작업자라는 톱니바퀴를 계속 붙들고 있을 매개가 없다. 그 사실이 정말 무섭고 두렵다. 내 살 후벼 파서라도 나 스스로 나를 키우고 싶은데(이걸 성장한다고 하던데), 그만큼의 의지가 내게 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정말 작업자로서 살고 싶을까? 작업자는 대체 뭐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교복이 멀고, 중학생이라는 타이틀이 낯설었으며, 청소년이라는 단어를 나에게 대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가 지나고 문득 중학생이 되었고, 교복을 당연하게 입었고, 정말 당연하게 두발자유를 받아들였으며, 나는 내가 청소년이라고 굳게 믿었다. <뷰티풀 그린>을 보고 낯선 곳에 발을 들여놓다, 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익숙한 강원관광대학교를 갈 것인가, 아니면 낯선 서울로 끝 모를 여행을 떠날 것인가. 나를 포함한 모든 청소년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마을 사람과 대화하긴 했지만, 정작 내가 원했던 청소년 인터뷰를 못해서 아쉽다. 또, 전직 광부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듣지 못했다. 더욱 아쉬움이 드는 건 같은 죽돌 중 누군가가 전직 광부를 만났다는 거다. 원하던 것을 실천하지도, 이루지도 못해 아쉬움 가득한 여행이었다. 내가 정선에 가서 본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쳐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쓸 때마다 내 몸속에 있는 모든 것을 쭉 짜내서 글에 펼치는 노력을 하는데, 이번에는 잘 펼쳤는지 궁금하다. 질문만 가득하고 결론은 없는 이 글의 결론을 나는 2010년에 맛볼 수 있을까? 내 방 벽에 사북·고한 지도를 붙일 것이다. 그리고 10년 후에 그 지도를 들고 사북·고한에 찾아가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같이 갔던 죽·판돌들도 함께 가고 싶다. 너무 먼 얘기 같아서 조금은 머쓱해지지만.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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