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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하자 인문학 5 : 애전별친愛錢別親글 수 387
090424 금 -애전별친 <전> 언제부턴가 '돈이 없어'라는 말이 입에 찰떡처럼 붙어버렸다. 나는 매순간 소비자이다. 자고 일어나면 30만원 내고 사는 자취방에서 돈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땡그랑".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담는 접시에서 돈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땡그랑". 저녁이 되면 굶기 싫어 애써 사먹거나 집에서 밥을 먹고 다시 하자로 온다. 내 발걸음에서 돈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땡그랑". 내가 입은 옷에서 돈이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내 앞창 뜯어진 신발 수리비가 돈을 부르고, 알바를 갈 때 5714가 인사하는 '삑' 소리조차 돈 소리로 들린다. 나는 매순간 소비자이다. 우리 집은 '유복하다'는 표현보다 '남들만큼 어려워요'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자세히 설명하는 건 내 영역의 문제이기 때문에 힘들지만, 아무튼 어려운 편이다. 돈 때문에 일어난 문제가 꽤 많은 편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손버릇이 나빠서 집에 있는 물건도 돈도 다 훔쳤다. 밖에선 '외상이요'하고 갖고 싶은 건 모두 얻어냈다. 친구 집에 가도 500원이라도 가져오고 봤다. 어떤 날에는 만 원짜리를 가져와서 그 친구랑 쌩을 까야 했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때 용돈을 다른 애들보다 많이 받아서 모두 내가 부자인 줄 알았다. 만족했다. 그 때 내게 돈은 큰 가치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터닝 포인트가 있는지도 모른 채 나는 벌써 자본주의 체제의 개가 되어있다. 내가 돈에 얽매어 있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은 건 중학교 때의 일이다. 등록금이 밀려 호출이 들어온다. 나는 1층 서무실에 내려간다. 공무원 아닌 선생님은 잔뜩 화가 나 내게 소리를 지른다. 가끔은 침착하지만 눈을 흘기며 나를 미친 고양이처럼 나를 노려봤다. 늘 주눅이 들어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급식을 못 먹을까봐 불안해한 적도 많다. 3년 내리 등록금 문제로 서무실 사람들과 싸웠다. 나는 아직도 '서무실'이 싫다. 그 때마다 어른들 탓을, 가족 탓을 많이 했다. 모든 게 다 부모님 때문이라고 곱씹은 적도 많다. 그 뒤로 돈이 없으면 없다고 확실하게 밝혔다. 친한 친구의 생일에 2천 원짜리 스프링 노트를 사주는 건 예삿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우리 집 형편과 다르게 유달리 돈을 펑펑 쓸 수 있기도 했다. 할머니는 나의 '스폰서'였다. 야채장사로 얼마나 번다고, 매달 학원비 40만원과 급식비, 핸드폰 비, 심지어 한 달에 4만원씩 언니와 내게 꼬박꼬박 용돈을 주셨다. 계산해보면 한 달에 약 200만원을 야채장사로 벌고 계셨던 것이다. 나와 50살 차이가 나는 할머니. 매일 다리가 아파 계단을 기어오르셨던 할머니. 매일 춥다고 전기장판에 드러누워 드라마를 시청하시던 할머니. 글이 점점 자서전이 되어가는 듯하지만, 매일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할머니를 그린다. 생각해보면 나는 돈에 죽고 돈에 사는 사람인 것 같다. 돈이 내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돈에 내 보이지 않는 어떤 가치를 팔수는 없다. 내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 돈은 그저 상대적인 비교급의 수단으로, 지금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에서 계급을 만들어내는 도구일 뿐이다. 문제는 내가 과연 돈이 만들어내는 어떤 상대적인 지위로 야기되는 심리적 불안함을 극복할 수 있냐는 점이다. 탕기의 경우, 원래부터 유복하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얻어먹는 것이 당연해졌고, 결국 중국으로 떠났어도 동양의 ‘부모님과 함께 살아요’가 편해서 잘 살고 있다. 현실의 문제를 다른 나라로 가져가 비추는 것일까? 의문이다. 또한, 영화에서 보여 지는 웃음 포인트는 마음속으로 울게 하면서 겉으로는 자꾸 웃게 만든다. 일부러 웃게 만든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 웃음 장치들이 내게 문제를 제기하라고 다그친다. 이미 웃어넘길 수 있는 현실이 아닌 지금 이 상황에, 감독은 왜 자꾸 사람들을 웃게 만든 걸까? 나는 영화에서 한 가지 희망을 찾았다. 희망이라고 하기엔 빨간불인지, 초록불인지 알 수 없는 신호등이었지만, 적어도 주황색 불 정도는 될 거라고 안심하게 만들어준 탕기의 긍정적 마인드이다. 다행히 탕기의 가족에는 사랑이 있었다. 부모님도 그걸 인정했다. 아파하는 탕기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자신의 속내를 끄집어내는 순간 법정으로 도피하긴 했지만, 나는 다시 가족의 사랑을 찾아 중국으로 떠난 탕기가 부럽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게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섣불리 답을 내릴 수 없다. ‘부양’과 ‘양육’의 의무는 사랑이 없는 가족을 만들어낸다. 한국은 이미 혼자 먹고 살기도 바빠졌다. 교과서에 뻔질나게 등장하는 ‘핵가족화’는 아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가족에 대한 생각만큼 골치 아픈 게 또 있을까…. ![]() ㅎㅎ
2009.04.29 02:33:57
철없던 시절에 친구랑 수다떨다가, 부모와 사는 것이 괴롭다며 빨리 시집가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남편돈보단 부모돈이 덜 치사하지 않겠니. 라고 했다가, 친구가 나는 부모돈은 아예 없으니까. 라고 대답해서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 된 적이 있었지. 정말 미안하고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머리를 쳐박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후에, 왜 우리는 완전한 독립을 생각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겨났어.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자들의 의존적 심리, 가족관계, 그리고 경제활동까지 혼재되어 버린거지. 많은 키워드가 동시에 출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그것들이 너의 사고와 실천을 훼방하는 것이 아니었음 좋겠구나.
2009.04.29 04:28:52
음... 좀 더 깊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도인이 되려나..
농담이구욧! 하지만 지금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게 저는 신기해요. 나중에 30대가 되어서도 왠지, 어떻게 저떻게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아요. 우스운 이야기지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잖아요. 일가족 자살사건이 늘어나고 있지만, 저는 왠지 잘 살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세이랜과 같은 경험을 했어요. 물론 입장은 반대였지만. 하하하 그 뒤로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을 턱턱 내뱉는 것 같아요. 저의 어떤 자존심 내지는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아요. 이건 아닌데... 음... 아무튼.. 그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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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고민해보고, 다시 써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