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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하자 인문학 5 : 애전별친愛錢別親글 수 387
내가 용돈을 처음 받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다. 엄마가 워낙 돈을 쓴다던가 하는 자기관리 부분을 나와 동생에게 강조하셨기 때문에 분배해서 돈을 쓰는 방식을 가르치려고 하셨다. 첫 용돈이 아마 일주일에 3천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는 용돈을 받아도 집에 오는 길에 500원 짜리 컵복이를 사먹는다던가 100원짜리 오락을 한다던가 불량식품을 사먹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그 정도의 용돈을 받아도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아마 내 기호품을 내 돈으로 사게 된 건 내가 용돈을 받으면서 부터였을 것이다. 머리가 커진 나는 엄마가 주는 용돈으로는 부족해졌다. 그 때부터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가 얼마 씩 주시는 용돈과 받는 용돈으로 옷가지를 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장사라는 것을 해 보았다. 학교를 가면 꼭 우유를 나눠주는데 흰 우유는 별로 맛이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오는 길에 파는 제티를 사와서 타 먹었다. 그런데 깜박 잊고 안 사오는 애들이 있었다. 그걸 노리며 나는 한꺼번에 많이 사서 안 가져 오는 애들에게 문방구에서 파는 가격보다 조금 높여서 팔았다. 선생님이 뭐라 하셔서 금방 접긴 했지만 수입은 꽤 짭잘했다. 중학교 2학년. 알바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중2에게 가장 만만한 알바는 소위 찌라시를 돌리는 것이었다. 동 네 아파트 마다 돌면서 문짝에 붙이다가 경비한테 걸리면 도망가기도 하고. 이건 장 당 30원이었던가? 아무튼. 그러다가 친구와 함께 임진각에 있는 밀레00 식당에 알바자리를 구했고 1년 반 정도 주말 알바를 다니게 되었다. 생각보다 고되긴 했지만 한 번 하고나면 35000원 정도씩 벌리곤 했다. 그 돈으로 사고 싶은 것들은 맘껏 샀다. 아마 나의 과한 소비패턴은 이 때 부터 시작된 듯하다. 돈을 벌면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살 수 있다. 꽤나 유혹적인 공식이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나는 나를 꾸미는 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친구를 통해 처음으로 인터넷쇼핑을 접했다, 그 빠르고 간단한 시스템 때문에 옷도 예전에 사던 것 보다 훨씬 많이 사게 되었고 '굽이 있는 구두'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화장품을 알아갔다. 머리도 수시로 바꾸지 않으면 남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아 적어도 4개월에 한 번은 머리에 무슨 짓이던 해야만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부터 저금을 해서 모인 약 300만원을 이 시기에 7~8개월 만에 다 써버렸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나서 씀씀이를 조금씩 줄였다. 하자에 오고 나서 줄었던 씀씀이가 대대적으로 늘었다. 차비가 많이 드는 만큼 용돈을 더 받게 되었다. 정작 써야할 데에 쓰지 않고 받는 돈이 늘어났기 때문에 더 이것저것 사게 되었다. 교복도 없었기 때문에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는 나 자신만의 룰을 따르기 위해 옷도 더 샀다. 나이를 먹은 만큼 nik0나 adida0같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서 들어가는 돈은 더 늘었다. 결정적으로 씀씀이가 커진 것은 카페를 알면서 부터이다. 시골인 문산에는 카페라곤 없었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서울은 카페가 넘쳐났다. 한창 말 많은 길찾기였던 나는 커피 한 잔을 시키면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떠들어도 아무 말 안하는 카페를 자주 찾게 되었다. 보통 4000~6000원하는 커피 값은 밥 한 끼 안 먹으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정리하고 자주 갔다. 이렇게 크게 늘어난 씀씀이 때문에 엄마와 다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나는 다른 애들은 이만큼 받는 왜 난 그 것보다 조금 주면서 하고 싶은 것도 못하게 하냐고 따졌지만 엄마는 그런 생활은 대학생들이나 하는 거라고 하셨다. 당시엔 별로 이해가 안 갔지만, 안 하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부정했다. 이 때쯤 아마 신조어인 '된장녀'가 유행했다. 분수에 모르게 명품을 추구하거나 돈을 많이 쓰는 여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딱 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 번 맛 들린 카페는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작업을 할 때나 서로의 생각을 나눌 때, 카페만큼 좋은 곳이 없는 것 같다. 요즘도 일주일에 세 네 번쯤은 간다. 그래도 그 때 보다는 엄마를 이해하고 내가 처한 금전적인 상황을 알기 때문에 줄이려고 노력한다. 예전부터 나는 패리스 힐튼을 꿈꾸었다. 스스로 고생해서 돈을 벌지 않더라고 부모님이 상속해 준 돈으로 평생 놀고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왜 우리 집은 힐튼 가가 아니지, 왜 우리 부모님은 남겨줄 돈이 없지, 왜 내가 쓰고 싶은 만큼 돈을 주지 않는 거지 하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울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패리스 힐튼이 아니고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물려줄 돈 대신 스스로 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려고 노력했고 그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치려 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 후로 좀 더 마음이 편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상류층 사회를 꿈꾼다. 돈은 결코 없는 것 보다 많은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주어진 상황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기 보다는 내가 원하는 목표치를 향해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 나에겐 훨씬 쉽다. 그러기 위해선 내 지적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알바로 먹고 사는데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 내가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 그 만큼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 사실 앞으로의 돈에 관련된 생각을 깊게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을 내기가 참 어렵다. 앞으로도 쭉 생각해 봐야겠다. 신용불량자는 되지 않기 위해서............... 미적지근한 끝맺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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