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발표한 [자본주의가 만들어지기 까지의 배경]에 대한 자료야.

책은 강신준 교수의 '자본론의 세계'라는 책에서 가져왔어.

첫번째 시간 때는 3장까지 설명했구 다음에도 계속 이어서 설명하려구 준비중이야.  

 

정리글 -------<!--[endif]--> 

지금의 자본주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이 시스템을 발견한 여러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사람들 중 난 나의 공부를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통해 따라가 보았다. 그가 의문을 품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19세기(1801~1900)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했다(골목에 28개의 낡고 조금한 방에서 151명이 2개의 침대와 2장의 담요 뿐, 200채의 주거구역에 4만 명의 인구 등). 그런데 그 가난 자체가 문제였던 건 아니다. 가난은 오랜 옛날부터 늘 있어왔기 때문. 그러나 문제는 이때 가난한 사람(플로레타리아)들은 노동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정상적인 건강을 해칠 만큼 너무나 많이(수주일 동안 통근과 휴식시간이 하루의 6시간 밖에 되지 않고 모두 일을 해야 하는 여자노동자들, 14~16시간 일하는 8~9 어려서는 5살들). 죽도록 일해도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모순에 가득 찬 마법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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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마법의 세계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기 위해 19세기 전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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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18세기(1400~1800) 때는 유럽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촌에 살았다. 그들은 자영농민으로서 대토지소유자들에게 자신의 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고 토지와 오두막집을 부여받았으며 목초지와 숲으로 이루어진 공유지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약간의 토지, 주택 그리고 공유지에서 소를 키우거나 땔감을 때우며 살아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가난의 방패막이가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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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이 15세기 말에 공유지에 대한 울타리치기를 시작으로 19세기 토지청소 때 모두 사라지고 만다(촌락파괴와 공유지가 개인사유지로 전환). 이때부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위한 노동을 통해 생계비를 벌 수 밖에 없었고 스스로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구입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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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1760년 산업혁명으로 인해 생산속도가 어마어마한 기계에 밀린 농부와 수공업자들과 함께 모두 급속히 확장되는 공업부문에서 노동자로 일하게 되고 부르주아들은 넘쳐나는 부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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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1789년 프랑스 혁명(신분중심에서 부 중심으로)은 부르주아 정부를 만들어 정권을 부르주아들이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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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개미와 배짱이 우화를 배반하는 아무리 죽을똥똥 일해도 가난한 개미와 앉아만 있어도 배를 불리는 배짱이가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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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에 이러한 수수께끼를 설명해주는 경제학이 있었다. 경제학적 원죄설(자신이 예전에 저질은 원죄로 인해 아무리 일을 해도 스스로의 몸 외에는 아무것도 팔 것이 없는 대중의 빈곤과 노동하기를 그만 두었음에도 부가 계속 늘어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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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들은 이런 상상을 해본다. 개미와 배짱이 두 놈을 무인도로 떨어트려 놓으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개미가 가난하게 살 리가 없으며 빈둥거리며 사는 배짱이가 배를 채우긴 어려울 것이다. 이로써 수수께끼는 쉽게 풀린다. 개미가 가난하고 배짱이가 부유한 수수께끼의 마법은 이들이사회로부터 고립되는 순간 우화의 진실로 돌아간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들은 그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탐구하게 된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책을 쓴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론>의 핵심 연구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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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베짱이를 사회로부터 고립을 시킴으로서 부르주아사회의 마법은 원죄가 아니라 사회라는 조직 때문임이 밝혀졌다. 그러자 원죄설을 주장하던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일정한 성질,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거래, 교역, 교환하려는 성향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타고나면서부터 사회적 동물이며 따라서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원죄라는 신의 섭리와 마찬가지로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가 필연적이라면 그 사회로부터 비롯되는 개미와 베짱이 운명도 필연적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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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고고학과 인류학에서는 사회의 기원을 빙하기가 시작되며 나무 위에서 살던 원숭이 들이 나무 열매가 사라져 굶주림에 쫓겨 나무에서 내려와 적응을 하게 되면서 인간이 되었고 나무 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은 무엇보다도 사냥을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사냥의 대상은 거대한 매머드(, 늪지)였으며 그것은 오로지 혼자가 아닌 집단이 되어야만 가능했다. 그때부터 인간은 인간들로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사회가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이것은 사회가 인간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 선택은 살아남기 위한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사냥이라는 생존활동을 수단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 생존활동은 바로 생산(자연으로부터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획득하는 활동)이고 즉 사회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생산의 필요성 때문에 인간이 선택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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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라는 조직 구조가 생산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굉장히 중요, 중요, 중요하다!)

그럼 생산은 어떠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변화를 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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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산 활동은 항상 인간과 자연의 만남에 의해서 생겼고 이를 바탕으로 학자들은 생산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요소로 나눴다. 자연을 인간이 필요한 형태로 가공하는 것을 노동력(인적요소)과 노동력에 의해서 가공된 자연을 생산수단(물적요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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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동물들 역시 생산 활동을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천부적인 것들로 본능적이며 동일하고 반복적인데 인간들의 경우는 생산 활동이 후천적이고. 그렇기에 열약한 신체조건을 보완해줄 것으로 연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이들이 계속해서 연장을 의식적으로 만들고 보완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인간은 그러한 노동활동을 의식적으로 수행되면서 기능과 지식 경험이 축적되며 지속적으로 일상의 변화(노동력의 진화)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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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노동력과 생산수단의 결합이 생산의 목자인 물자, 즉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물자, 재화이다. 재화는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가난과 부를 나누는 기준. 많고 질 좋은 재화는 부의 상징 모자라고 질이 나쁘면 가난을 대표. 그리고 재화 생산의 진화수준을 생산력이라고 한다. 독일제, 한국제, 중국제와 같은 표현들. 사회발전수준.

노동력, 노동대상, 생산수단, 생산력, 생산관계 이런 것들의 구조들을 우리는 통틀어 생산양식이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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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경우.

원시공동체적 생산양식.

사람들 누구나가 혼자의 힘으로는 필요한 생활수단을 얻을 수가 없었을 때. 종족사회로부터 벗어나면 살 수가 없었다. 서로 나누워 가졌다. 공동의 노동과 공동의 분재 그러다보니 지식과 경험으로 생산력이 향상되었고 잉여가 발생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잉여에 의존하여 자신이 직접 노동하지 않고 생활수단을 얻는 사람이 생겼다. 원조 배짱이 탄생이요. 자신이 직접 노동하지 않고 생활수단을 얻는 사람이 나타나 공동체적 관계는 붕괴되고 노예소유적 생산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