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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영상글 수 646
영상에세이. 굴의 하자 작업장 학교 작업장 학교에 들어와서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게 되었다. 어쩌면 알고싶지 않았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후쿠시마의 핵사고가 그리 컸는지, 핵이 무엇인지, 아파하는 생명들은 어찌 그리 많으며, 말도 안 되는 일은 늘 일어나고, 나 자신은 얼마나 나 안에서만 살았는지. 더 알면 알수록 슬퍼져버렸다. 그리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예전의 나처럼 많은 것을 못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오관계 순환하는 삶 나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을 끝없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펼쳐놓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있는 것 같다. 역사 교과서에 '이기적인 21세기 사람들, 서로를 잡아먹다' 하고 내 얼굴이 나올 것 같기도 한 느낌이다. 하자 작업장학교의 1년의 배움은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2013.11.02 01:24:20
인지하지 못했던 것 인지하지 않으려 했던 것 opening 띵똥 이번 정류장은 홍대입구 홍대입구 역입니다. 나는 탈학교 청소년이였다. 타이포 키워드
나는 작업장학교라는 새로운 학교에 입학했다.
후쿠시마 핵사고, 탈핵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비나는 탈학교 청소년이 아닌 작업장학교 죽돌이다.
나래이션
내가 다니던 숭문고등학교를 나와 5714라는 버스를 타고 홍대를 지나면 영등포쪽에 있는 하자작업장학교에 도착한다.
탈학교를 한 나는 세상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느꼇고, 작업장학교에 입학하면서 내가 모르는 많은 문제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세상에 일어나는 문제들에 나를 대입해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내가 살아오며 느끼지 못했던 생각들이였다.
이러한 문제투성이인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고, 더 이상 잎을 먹지 않는 나비가 되길 원한다. 매체 매체.작업장학교에서 매체를 접했다.나에게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그린다거나, 게임 카페의 간판을 만드는 것이 다였던 매체를 내가 할수있는 일로써 배웠다.그림을 따라그린다거나 예쁘게만 만드는 인터넷카페 간판과는 달리 나의 생각을 담는다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공부가 부족해서 나의 생각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 하는데에 부담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행동이 변하지 않았기에 나에겐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봐줄 나의 매체에 넣는 것에 부담이 있었다. 내가 말하면 거짓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많은 분들을 만나며 들었고 많은 곳을 가며 느꼇으며 그 경험들을 통해 생각했다. 나는 그 생각들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탈핵 졸업
2013.11.02 01:54:13
나는 충청북도 청원군 작은 시골마을 양업고등학교를 다녔었다. 그때 난 그저 학교안에서의 역할만 찾았었다. 양업고 학생으로써 본분에 충실하는것이 나의 가장큰 목표였고 친구들과 노는것이 중요했고 좋았다. 하지만 학교를 나서고 전혀 다른 공간에 오게 되면서 좀 더 큰 세상을 만났다. 서울시 영등포에 위치한 하자작업장학교의 창밖에 보이는 풍경과 양업고등학교의 풍경은 많이 달랐고 보이는 풍경 외에도 전혀 다른 세상이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많은 일들을 꼬리에 꼬리물듯 알게되었다.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한것이 그 시작점이라고 해야할것 같다. 24시간 쉬지않고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소가 내가 쓰는 전기콘센트와 관련이 있고 그 전기를 이동시키기위해 송전탑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 밀양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이 산에서 잠을 주무시며 8년째 그 송전탑과 싸우고 있다는 것. 원전을 짓는데에 어마어마한 돈이 오가면서 비리들이 존재하고 산업전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 우리 학교가 있는 하자센터의 전기세는 내 상상을 초월하기도 했다. 좀 더 답답해진 공기와 촘촘하게 들어선 높은 건물들만큼 내 머릿속에 들어온 문제들은 어렵고 복잡했고 내 개인의 힘으로는 풀 수 없을것 같았다 .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멈추는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일도 할 수 있었다. 크리킨디 이야기처럼 몸소 실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내 몸은 춤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도리 시간이 되면 뻣뻣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오도리 시간에 배운 춤이나 학교에 오면서 새롭게 배우게된 노래가 밀양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응원의 목소리가 된 것은 원전건설을 중단하게 하는 거창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를 비롯한 작업장학교 죽돌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일은 즐거운 일이라 ... 할 수 있는 일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난 많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데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지속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 부담이 들기도 하고 마음과 몸이 일치하지 않을때도 있다. 전기플러그를 뽑는다거나 신발을 벗을때 후진주차를 하고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고 손수건 가지고 다니는 것 등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것이 공존한다. 한편으로 나는 학교에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보고 느끼는 것이 나에게 어떤 새로운 발상이나 아이디어를 주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다양한 문화생활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자주 생긴다. 난 그런 일들이 반갑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고 내가 사는 이 세계에 느끼고 있는 문제의식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난 양업고를 다닐때랑은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역할? 위치를 느낀다. 학교 안에서 아떻게 생활해야할지 고민하는 것만이 아니라 밀양과 송전탑과 전기와 핵발전소의 문제가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2013.11.02 02:57:07
영상 에세이. 굴의 하자 작업장 학교 작업장 학교에 들어와서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게 되었다. 어쩌면 알고싶지 않았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후쿠시마의 핵사고가 그리 컸는지, 핵이 무엇인지, 아파하는 생명들은 어찌 그리 많으며, 말도 안 되는 일은 늘 일어나고, 나 자신은 얼마나 나 안에서만 살았는지. 더 알면 알수록 슬퍼져버렸다. 그리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예전의 나처럼 많은 것을 못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모두가 함께 사랑하면서 사는 삶을 꿈꿨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했고, 아름다운 풍경이 변하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생명 하나의 소중함을 함께 느끼고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작업장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차가 다니는 도시 위에 밭으로 된 카펫을 까는 그림이 나에게 크게 박혔다. 꿈꾸고 바라던 곳을 향해 가까워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입학한 작업장 학교는 나에게 낯설고 어려웠다. 하루에 두 시간씩 서서 지하철을 타야 하고, 탈핵, 나비 문명, 모든 것이 처음 접하는 얘기였다. 떠오르는 게 많지 않아도 모두에게 내 얘기를 들려줘야했다. 많은 것을 질문했지만 그 많은 모든 것에 대답하지 못했다. 버겁다는 생각을 했고,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하지만 잠시 머물다가 가고 싶지는 않았다.
송전탑 문제에 대해 본질부터 차근차근 알아나갔다.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밀양의 어느 마을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와 우리 모두가 연결돼 있었다. 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상동면 여수마을에 감을 따러 갔다. 예전에 어렸을 때 여수마을에 아는 선생님 댁에 매년마다 감을 따러갔다. 그때 나에게 감을 따는 행위는 그저 과일을 먹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 밀양에서의 감따기는 아주 다른 의미였다. 열여덟살인 내가 밀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감을 따려고 고개를 쳐들면 위에 헬리콥터가 지나갔다. 많은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밀양에 갔다온 뒤에 나는 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되물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나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나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을 끝없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펼쳐놓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있는 것 같다. 역사 교과서에 '이기적인 21세기 사람들, 서로를 잡아먹다' 하고 내 얼굴이 나올 것 같기도 한 느낌이다. 하자 작업장학교의 1년의 배움은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2013.11.05 20:01:37
+ 큰 세상을 만나다 나는 충청북도 청원군 작은 시골마을에 위치한 양업고등학교에 다녔었다. 그때 난 그저 학교안에서의 역할만 찾았다. 양업고 학생으로써 본분에 충실하는것이 나의 가장 큰 목표였고 친구들과 노는것이 중요했고 좋았다. 하지만 학교를 나서고 전혀 다른 공간에 오게 되면서 좀 더 큰 세상을 만났다. 서울시 영등포에 위치한 하자작업장학교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만큼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수많은 일들을 꼬리에 꼬리물듯 알게 되었는데 후쿠시마에서 핵사고가 그 시작이었다. 24시간 쉬지않고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소가 내가 쓰는 전기콘센트와 관련이 있고 그 전기를 이동시키기위해 송전탑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 밀양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이 산에서 잠을 주무시며 8년째 그 송전탑과 싸우고 있다는 것. 원전을 짓는데에 어마어마한 돈이 오가고, 비리들이 존재하고, 값싼 산업전기가 잘못 되었다는 것. 캠페인작업을 하면서 알게된 하자센터의 전기세는 내 상상을 초월했다. 좀 더 답답해진 공기와 촘촘하게 들어선 높은 건물들만큼 내 머릿속에 들어온 문제들은 어렵고 복잡했고 내 개인의 힘으로는 풀 수 없을것 같았다 . + 새롭게 익히게 된 것. 일상과 큰 세상에서의 내가 할 수 있는 일 난 춤과는 거리가 멀었다. 몸을 쓰는 운동은 좋아했지만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작업장학교에 오면서 일본어로 춤 이라는 뜻에 "오도리" 시간에 춤을 추게 되었다. 동작을 익히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따라하기 위해선 상대방의 춤을 자세하게 볼 줄도 알아야 했다. 춤이 꼭 혼자 추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모여 손에 손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오도리 시간에 배운 춤이나 학교에 오면서 새롭게 배우게된 노래, 브라질리듬, 삼바는 즐거운 활동이었다. 우리는 학교만이 아닌 현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렇게 죽돌들과 함께 추고 배운 춤과 노래가 밀양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응원의 목소리가 된 것은 원전건설을 중단하게 하는 거창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를 비롯한 작업장학교 죽돌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었다. 사회의 여러문제를 인식하고 멈추는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크리킨디처럼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 중 하나였다. 또, 밀양에 가서 벽돌을 나르기도 하고 송전탑반대송 뮤지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했다. 쓰지 않는 플러그를 뽑고, 형광등을 끄고 절약하는 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새어나가는 대기전력을 아끼자는 내용의 캠페인영상도 만들었다. 내가 마주하는 사회의 커다란 문제와 내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잘 연결되지 않다고 많이 느꼈지만 작은 실천을 하면서 큰 결과까지 바꿀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 알면서도 아직 일상에서의 변화를 해야한다는 생각과 마음이 몸과 일치하지 않을때도 있다. 전기플러그를 뽑는다거나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고 손수건 가지고 다니는 것 등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아직이다.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오고 있지만 난 많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데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밀양에서 공사가 재개된다는 소식이 얼마나 슬프고 절망적인 일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속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 부담이 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다. + 다른 의미의 큰 세상 한 편으로 나는 학교에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보고 느끼는 것이 나에게 어떤 새로운 발상이나 아이디어를 주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다양한 문화생활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자주 생긴다. 난 그런 일들이 반갑다. 최근에는 영화관에 가는 것이 취미다. 학교 방과후나 남는시간에 가까운 영화관을 찾는다. 또 여러 전시회나 축제에도 참여한다. 이상하리만큼 얽힌 문제가 있는 세상이 아니라 다른 의미의 큰 세상을 만나게 된 것 같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도 작업장학교에 있다보면 가까이에서 만날 기회가 생긴다. 그런 기회가 우리가 배우는 문제에 실마리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공유도 의미가 크다. + 다른 위치 지금까지 긴 시간을 보낸 초등학교, 중학교, 양업고등학교의 1년 반 동안 난 지금과는 다른 위치에 있었다. 학교안에서 나의 역할을 찾았지만 지금의 난 학교안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다. 이 세상이 참 넓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쉬운문제가 하나도 없다는 것도 느낀다. 사회의 일부분으로 살아가게되면서 스스로 해야함을 생각하게 된다. 나와 사회를 바꿔줄 구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학교에서 친구를 따라가던 수동적인 역할이 이제 자주적이면서도 삶이라는 큰 틀에서의 협동적인 삶으로 바뀌고 있다. 위험한 에너지보다 적절하고 안전한 자연 에너지를 지향한다. 탈핵을 지지하고 송전탑을 반대한다. 앞으로 큰 세상에서 살아갈 나의 위치는 점점 확장될 것이고 깊어질 것이다. 오프닝시퀀스 복잡한 세상의 이미지와 춤을 추는 나의 모습이 차례로 나온다. 원전, 자동차, 건물, 사람들, 밀양, 도시의 이미지를 빠르게 편집. 영상이어도 좋고 스틸이어도 좋을 것 같다.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 그리고 밝은 모습의 내가 오도리 시간에 춤을 추는 모습과 스톱모션(기타,한평집)이 함께 나온다.(스톱모션은 편집에 따라 생략)자전거 발전기의 모습이 보여도 좋을 것 같고, 혼자가 아닌 함께 둥글게 모여 춤을 추는 모습도 추가한다. 춤에 맞는 배경음악 아니어도 어울리는 신나고 밝은 음악 셀렉트. 전혀 다른 분위기가 포인트. 타이틀이 나올 배경이미지를 촬영. 춤을 추는 나의 모습과 일상의 모습을 담는다. (+스톱모션사용) 제목(윤명조) : 큰 세상을 만나다. 큰 세상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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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세이 “하자작업장학교를 다닌다는 것,
그것은 나에
게 어떤 의미?”
Vino
오프닝 시퀀스
키워드. ‘변화’
문경, 샨티학교를 나와 하자작업장학교에 들어왔다고 해서 나에게 딱 눈에 띌만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난 강동원이라는 이름으로 샨티의 친구들을 만난다.
변함없이 담배를 피며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
를 생각해본다. 라면도 먹고 전기도 쓰고 tv를 본다. 웃는모습도, 잘 정색하는 성격도 똑같다.
그렇지만 나는 변화를 느낀다.
시골이 아닌 도시, 매일 바라보는 하늘색의
차이를 느끼며기숙사가 아닌 할머니 집에서 통학을 한다. 매연을 들이마시고 서로 밀치고 밀치는 지하철 안에 익숙해진다.
생활하는 장소와 생활패턴. 음식. 운동. 취미
와 인간관계 등과 같은 변화가 있다.
그리고 다른 교육, 다른 시각을 가지어간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지구 사는 사
람으로서 책임져야 할 것,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
배우는 것에 나의 행동을 조금씩 맞추어 가기 시작한다.
또한 조금씩 마음도 움직인다. 잘 느낄 순 없지만, 천천히 배워가고 달라지는 내 변화의 시작부분을 오프닝시퀀스로 담으려 한다.
하자에 왔으므로 나에게 일어났던 가장 첫
번째 변화를
오프닝 시퀀스로 표현하고자 한다. ‘내가 있
는 곳’. 문경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큰 도시 서울로 옮겨온
것이 나에겐
작업장학교의 시작이었다.
최근 장염으로 문경에서 빌빌대던 때에 휴대
폰 카메라로
찍어놓은 영상이 있다. 화질도 낮고 흔들림
도 많다. 하지
만 여기서 표현하는 문경이란 곳은, 작업장
학교 재학을 기
준으로 보았을 때 나의 이전을 보여주는 장
면이기에, 낮은
질의 영상을 사용하는 것도 현재와 과거를
표현하는데 있
어서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래이선을 넣을까도 생각중이다. 하자를 선
택하는 데에
내가 고민했던 것들을 말로서 표현하고 싶기
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