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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영상글 수 646
-문경의 작은 시골마을. 이곳에 내가 사는 곳이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이곳에서 2년을 뛰어놀며 즐겼다. 날좋은 봄날에 나무아래서 친구들과 다과를 즐겼다. 여름에는 자전거를 타고 계곡으로가 수영을 했다. 추운 날에는 산아래 정자에 앉아 수많은 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보면 놀거리 많은 신나는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지냈다. -그러던 한 겨울날, 부모님께서 나에게 하자를 제안하셨다. 2년을 있어 보았으니 더 큰 세상으로 한 발자국 더 - 내가 당장 무엇을 배우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천천히 배우는것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학교생활을 - 어느새 일학기가 끝났다. 순식간에 방학도 지나갔다. - 하지만 너무나도 어려웠다. 탈핵과 밀양 뿐만이 아니라 하자에서 배우는 수 많은 것들을 생각하며 살면, - 하지만, 내가 이곳으롤 와 옳다고 느끼는 그 모든것들을 차마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 기다리고 있다. 어떠한 계기로 어떤 노력으로 하자의 배움이 마음속에 더 물들 수 있을까. 다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번 에세이 글은 '부담스러움' 으로 끝을 맺었었습니다. 하자를 다니는 의미, 이야기를 생각하기에 아직도 뒤숭숭한 제 마음을 어떻게 정리하고 표현할지 모르겠어서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 생각을 조금 더 전진시켜 보았습니다.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마임, 시, 단편영화 등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직 번쩍하고 떠오르는 영상의 이미지는 없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하나의 이야기도 못잡았고요. 일단은 위에 쓴 내용이 에세이의 큰 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수정 오프닝시퀀스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 변화라는 키워드를 그대로 이어가고 싶습니다. 이번 글을 다 쓰고 나서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인데! 지금 오프닝시퀀스를 바꾸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현재 오프닝시퀀스 소스를 영상에세이 처음 부분(문경에서의 생활, 하자작업장학교를 택하기까지의 과정)에 비슷한 느낌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각한거~
2013.11.15 23:51:15
제목 : 큰 세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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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에세이. 굴의 하자 작업장 학교
마주보다
(오프닝 시퀀스 노래를 계속 끌고 이어폰을 빼면 노래가 끝나는 느낌? 눈을 클로즈업해서 찍고, 나레이션 넣기)
작업장 학교에 들어와서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게 되었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후쿠시마의 핵사고가 그리 컸는지, 핵이 무엇인지, 아파하는 생명들은 어찌 그리 많으며, 말도 안 되는 일은 늘 일어나고, 나 자신은 얼마나 나 안에서만 살았는지. 더 알면 알수록 슬퍼져버렸다. 그리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예전의 나처럼 많은 것을 못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꿈꾸는 것 그림으로 표현)
나는 모두가 함께 사랑하면서 사는 삶을 꿈꿨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했고, 아름다운 풍경이 변하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생명 하나의 소중함을 함께 느끼고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작업장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차가 다니는 도시 위에 밭으로 된 카펫을 까는 그림이 나에게 크게 박혔다. 꿈꾸고 바라던 곳을 향해 가까워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이틀)그리고 입학한 작업장 학교는 나에게 낯설고 어려웠다.
(등교하는 모습 지하철, 지하철의 모습) 하루에 두 시간씩 서서 지하철을 타야 하고, (탈핵, 나비문명 자막으로 넣기)탈핵, 나비 문명, 모든 것이 처음 접하는 얘기였다. 떠오르는 게 많지 않아도 모두에게 내 얘기를 들려줘야했다. 많은 것을 질문했지만 그 많은 모든 것에 대답하지 못했다. 버겁다는 생각을 했고,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하지만 잠시 머물다가 가고 싶지는 않았다.
송전탑 문제에 대해 본질부터 차근차근 알아나갔다.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밀양의 어느 마을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와 우리 모두가 연결 돼 있었다. 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상동면 여수마을에 감을 따러 갔다.
(어릴 때 밀양에서 찍은 사진 넣기 그리고 그림) 어렸을 때 그 여수마을에 아는 선생님 댁에 매년마다 감을 따러갔다. 내가 아는 시골은 밀양이었고, 어렸을 때에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다. 도롱뇽과 놀고, 함께 놀던 강아지가 죽고 울고, 흙집을 짓고, 매화꽃을 보고, 농사일을 했다. 그리고 밀양은 부산보다 다음 계절이 빨리 다가온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도 송전탑 때문에 싸웠던 게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의 난 어렸고, 나에게 감을 따는 행위는 그저 과일을 먹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 밀양에서의 감따기는 아주 다른 의미였다. 열여덟살인 내가 밀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감을 따려고 고개를 치켜들면 요란한 헬리콥터가 구름 밑으로 지나갔다. 어렸을 때 나와 함께 했던 밀양이 생각나고, 마음이 정말 아팠다. 많은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에 박혔다.
밀양에 갔다온 뒤에 나는 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되물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나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감사히 모두 먹게 되었다. 그리고 밀양말고도 다른 일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연결 돼 있었고, 더 공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업장학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나는 어떤 위치에 서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와닿게 되었다. 그리고 실천하려 한다. 그것은 내가 직접 가서 감을 따면서 경험하고 느낀 뒤의 일이었다. 내 마음의 변화로 인해 행동과 생각이 달라졌고, 더 크고 넓은 우리가 진짜 봐야할 세상을 마주보게 되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을 끝없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펼쳐놓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있는 것 같지만 하자 작업장학교의 1년의 배움은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더 넓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밀양에 직접 다녀오고 감을 따면서 변하게 된 것처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도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모두 함께 연대하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걸어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