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와르 모네는 프랑스의 화가였다. 상류 계급 출신이고 도시 생활을 주로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급진적인 사람들은 이 사람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긴 했지만, 미술계의 주류들은 이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했다. 난 책에서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라는 그림을 골랐다. 그런데 1865년도의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분노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했다.

 

"검은 고양이와 함께 있는 저 미개인 비너스는 시체처럼 침대 위에 완전히 벌거벗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어리석어 보이고, 그녀의 피부는 시체 같다. 그녀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 이런 말을 들은 이유는 예전 사람들은 벌거벗은 여자들을 많이 그렸는데, 이 여인이 그냥 아름다운 여성, 신화속의 인물이 아니라 매춘부를 상징하는 오브제(?)를 가지고 있는 ... 매춘부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찾아보니 그때당시 프랑스 혁명이 있었고 도시 개발사업에 착수하면서 더럽고 악취풍기는 파리의 모습이 형성되고.. 파리의 밤거리가 퇴폐적인 분위기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시기라고 한다. 사람들은 마네가 그런 시기에서의 부르조아들의 위선을 비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고...) 그때 당시 사람들에게 왜 엄청나게 논란거리인 것일지 좀 수긍이 간다.

내가 이 그림을 고른 이유는, 그때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혹평을 하게 한 그림이라서도 있지만, 상징적인 것을 그림에 넣은 것이 관심이 가서였다.

 

그래서 갑자기 찾아보고 싶어서 다른 그림들은 어떨지 찾아보았다.

몇백년을 거슬러가 중세에 가서는 얀반에이크의 “지오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부인의 초상” 이라는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충직함의 상징인 개와, 중세의 결혼을 상징하는 대낮의 촛불, 나무궤짝 위의 과일은 아담과 이브의 원조 이전에 순결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미술가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관련된 오브제따위를 놓음으로써 전달하고 싶은 것을 더 직접적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음.. 어쩌면 직접적일 수도)

 

마르크 샤갈의 “수탉”이라는 그림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적어놓았다. 수탉은 남성의 정욕을 상징하기도 하면서 샤갈 본인 스스로를 상징한다. - 그러나 샤갈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결국 가장 그리워하는 고향의 모습일 것이다. 그의 캔버스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대부분 일상적인 풍경에서 발견되는 것들이라는 점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특히 수탉은 그의 작가 인생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다.

상징적인 오브제롤 대놓고 숨기지 않고서도 그림을 보고도 이렇게 해석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샤갈은 정말로 이런 의미를 가지고서 수탉을 그린 것일까? 아니면 샤갈이 난 그냥 수탉이 좋아서 그려왔는데..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샤갈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 이런 말 하는 걸 수도 있다.)

 

어쨌건 뭔가를 상징하는 것들을 그려넣어서 그림에 대한 설명을 더 할 수 있다는 건 엄청 해석하고 아~ 하는 데에 있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느꼈다.

이 그림을 보고 열받은(-_-ㅋㅋ) 관객이 지팡이로 그림을 찢어버리려고 까지 했다던데, 이 사람이 그림이 좋았건 나빴건 신화속의 여인이 그려지는 그 시기에 이런 시도를 한 것이 놀랍다고 느껴졌다. 엄청나게 도전적이다. 미술작품들을 하나 둘 씩 알게 될 때마다, 사람들의 쇼킹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혼동을 주기도 하고 정말 그런 요소를 가지려고 노력 한 작품을 많이 보게 되는데, 예술가들은 뭔가.. 변화를 주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건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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