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큰 세상을 만나다
(댄스하록/오도리 하로쿠/하록, 춤을 시작하다/춤추는 하록/하록, 큰 세상에서 춤을추다)
시나리오 (나레이션 사용)
난 춤과는 거리가 멀었다. 몸을 쓰는 운동은 좋아했지만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작업장학교에 오면서 일본어로 춤 이라는 뜻에 "오도리" 시간에 춤을 추게 되었다. 동작을 익히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따라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춤을 자세하게 볼 줄도 알아야 했다. 춤이 꼭 혼자 추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모여 손에 손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오도리 시간에 배운 춤이나 학교에 오면서 새롭게 배우게된 노래, 브라질리듬, 삼바는 즐거운 활동이었다.
난 춤을 추면서 큰 세상을 만나기 시작했다. (춤을 추기 시작함=내가 생활하는 공간의 변화=하자에 오게됨)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함께살기와 기후변화, 평화를 키워드로 세상의 일들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나는 수많은 일들을 꼬리에 꼬리물듯 알게 되었다. 후쿠시마에서 핵사고가 그 시작이었다. 24시간 쉬지않고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소가 내가 쓰는 전기콘센트와 관련이 있고 그 전기를 이동시키기위해 송전탑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 밀양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이 산에서 잠을 주무시며 8년째 그 송전탑과 싸우고 있다는 것. 원전을 짓는데에 어마어마한 돈이 오가고, 비리들이 존재하고, 값싼 산업전기가 잘못 되었다는 것 등. 좀 더 답답해진 공기와 촘촘하게 들어선 높은 건물들만큼 내 머릿속에 들어온 문제들은 어렵고 복잡했고 내 개인의 힘으로는 풀 수 없을것 같았다 .(영상 - 원전, 송전탑, 후쿠시마, 높은 건물, 도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 하기위해 나와 작업장학교 죽돌들은 사회의 일부분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내가 일상속에서 배웠던 춤,노래가 현장에서 응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알았다. 또, 대기전력을 줄이자는 캠페인 영상을 만들면서 핵발전소, 핵폐기물, 송전탑이 더 이상 지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작은 실천의 중요함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작은 실천을 통해 큰 세상이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뀌는 모습을 상상했고 한번에 바뀔 수 없지만 작은 실천들을 모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의미에서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나의 학교안에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사회의 일부분으로써의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줬다. 내가 할 수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사는 큰 세상에 나의 역할,위치가 넓어졌다고 느꼈다.
숲이 타고 있는 상황에서 작은 주둥이로 물고 온 한 방울의 물로 불을 끄는 크리킨디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만약 크리킨디가 숲을 덮을 정도로 큰 새 였다면 어땠을까? 그 큰 크리킨디는 어쩌면 숲의 불을 끌수도 있지 않았을까?
난 크리킨디처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싶지만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아니라 더 큰 크리킨디가 되고 싶다. 사회의 일부분으로써의 나의 역할이 확장된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넓어지고, 좀 더 깊이를 가지고 싶다.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지금의 '나'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힘,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영상
춤에 대한 영상 - 오도리시간 춤을 추는 나의 모습, 함께 춤을 추는 작업장학교 죽돌들, 자전거 발전기,2012하자네트워크학교 실험교실 첫번째 영상
원전 : Second Explosion At Fukushima Nuclear Plant - http://youtu.be/W69thuv4e3o /
Deconstruction of Nuclear power plant - http://vimeo.com/22618813
후쿠시마의 거짓말 - http://youtu.be/2cuCqcG1EEA
106회. 밀양 765송전탑 공사중단 촉구를 위한 주민 촛불문화제 - https://vimeo.com/68355747
밀양관련 영상, 이미지 / 위치에 변화에 대한 이미지 / 크리킨디 애니메이션, 이미지
시나리오
내가 십대가 되기 전 나와 친했던 동네의 작은 산을 힘쌘 사람들이 부순다고 했을 때 나의 손으로, 사람들과 함께 지켜나갔던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십대 후반 쯔음에 조금 더 힘쌘 사람들이 부순다고 했을 때 지키지 못하고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던 경험도 있었다.
나는 지켜보기만 했던 내가 어떤 일을 할수 있을까? 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던 것은, 어릴땐 동네의 작은 산을 정말로 친구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라면서 산을 친구로 생각할수 있는 감수성이 없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어릴적 동네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산을 잃고 난 후 나는 후회했고, 다시 산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원했다.
작업장 학교에 왔을 때 후쿠시마 핵 사고가 터졋다. 핵 사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었겠지만, 나에겐 아주 큰 변화를 주었다. 탈 핵이라는 것은 작업장 학교의 키워드가 되었고, 나는 핵에 대해서 공부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라고 생각했던 텀블러와 수저집을 사용 하는 아주 간단한 약속을 했고, 매체를 통해서 나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 했다.
나에게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그린다거나, 게임 카페의 간판을 만드는 것이 다였던 매체를 내가 할수있는 일로써 배웠다. 그림을 따라그린다거나 예쁘게만 만드는 인터넷카페 간판과는 달리 나의 생각을 담는다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공부가 부족해서 나의 생각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 하는데에 부담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행동이 변하지 않았기에 나에겐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봐줄 나의 매체에 넣는 것에 부담이 있었다. 내가 말하면 거짓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많은 분들을 만나며 들었고 많은 곳을 가며 느꼇으며 그 경험들을 통해 생각했다. 나는 그 생각들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졸업 전 마지막 학기인 나는 밀양 송전탑 문제를 필두로 공부하고 행동하고 있다.
나는 밀양의 부족한 일손을 더하기 위해 밀양에 있는 여수마을 이라는 곳을 갔었다.
여수 마을에서 시위를 하는 곳에는 들어갈수 없었지만, 데모를 가기위해 밀려있던 농업의 일들을 도왔다.
밤마다 환하게 빛나는 시위장을 보며 지키지 못했던 동네 산이 생각났다. 이곳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무엇을 위해 이곳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은 사라졌다. 내가 동네산을 생각하는 마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화악산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우리 마을어른들이 자식들을 위해 성미산 투쟁을 같이 했던 마음, 할머니 할아버지가 후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같다는 것을 느꼈고,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돕기를 원했다.
졸업
소비가 없는 이윤은 없다. 그 소비의 옳고 그름은 누구도 정확이 판단할수 없다. 왜냐하면 소중함에 가치는 누구나 다르기 때문이다. 송전탑을 지으려는 사람은 핵발전소에서 오는 대량의 전기를 전송하기를 원하기에 화악산과 밀양주민들의 땅을 소비하려 하는 것이겠지만, 그 화악산은 밀양 주민들에게는 전부일수도 있다. 이렇듯 나는 소비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을 배웠다. 나에게 졸업은ㅁㄴ,ㅇㄴ,ㅁ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