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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시퀀스 업로드 완료했어요..음..ㅎㅎ 영상 에세이. 굴의 하자 작업장 학교 (오프닝 시퀀스 노래를 계속 끌고 이어폰을 빼면 노래가 끝나는 느낌? 눈을 클로즈업해서 찍고, 나레이션 넣기) 작업장 학교에 들어와서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게 되었다. 어쩌면 알고싶지 않았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후쿠시마의 핵사고가 그리 컸는지, 핵이 무엇인지, 아파하는 생명들은 어찌 그리 많으며, 말도 안 되는 일은 늘 일어나고, 나 자신은 얼마나 나 안에서만 살았는지. 더 알면 알수록 슬퍼져버렸다. 그리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예전의 나처럼 많은 것을 못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모두가 함께 사랑하면서 사는 삶을 꿈꿨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했고, 아름다운 풍경이 변하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생명 하나의 소중함을 함께 느끼고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작업장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차가 다니는 도시 위에 밭으로 된 카펫을 까는 그림이 나에게 크게 박혔다. 꿈꾸고 바라던 곳을 향해 가까워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입학한 작업장 학교는 나에게 낯설고 어려웠다. 하루에 두 시간씩 서서 지하철을 타야 하고, 탈핵, 나비 문명, 모든 것이 처음 접하는 얘기였다. 떠오르는 게 많지 않아도 모두에게 내 얘기를 들려줘야했다. 많은 것을 질문했지만 그 많은 모든 것에 대답하지 못했다. 버겁다는 생각을 했고,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하지만 잠시 머물다가 가고 싶지는 않았다. 송전탑 문제에 대해 본질부터 차근차근 알아나갔다.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밀양의 어느 마을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와 우리 모두가 연결 돼 있었다. 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상동면 여수마을에 감을 따러 갔다. 어렸을 때 그 여수마을에 아는 선생님 댁에 매년마다 감을 따러갔다. 그때 나에게 감을 따는 행위는 그저 과일을 먹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 밀양에서의 감따기는 아주 다른 의미였다. 열여덟살인 내가 밀양을 위해 할 수 있는일이었다. 감을 따려고 고개를 치켜들면 요란한 헬리콥터가 구름밑으로 지나갔다. 많은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밀양에 갔다온 뒤에 나는 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되물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나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직접 가서 보고 경험한 뒤의 일이었다. 나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을 끝없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펼쳐놓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있는 것 같다. 역사 교과서에 '이기적인 21세기 사람들, 서로를 잡아먹다' 하고 내 얼굴이 나올 것 같기도 한 느낌이다. 하자 작업장학교의 1년의 배움은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더 넓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밀양에 직접 다녀오고 변하게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감사히 다 먹게 되었다. 나는 왜 공부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진심으로 모든 생명이 사랑하며 함께 살길 바란다. |
비노. 에세이 자유글.
일상.
아침은 언제나 익숙한 알람소리로 시작된다. 피곤에 절어 힘겹게 일어나면 할머니가 정성스레 차려놓은 밥상 앞에 앉는다. 전날 골라놓은 옷을 입고 가방을 매고 할머니와 인사를 하고 집밖을 나선다. 100분이 넘는 거리이지만 남들보다 나쁠건 없다. 하고 못하고는 내 의지에 달려있다. 요즘 그 의지가 약해지고 있다만 놓아버리지 않겠다.
5분이라도 더 자고 나오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계산해놓은 완벽한 시간대로, 언제나 10시 1,2분전에 딱 도착한다. 아침박수 시간을 시작으로 글로비쉬, 오도리, 점심을 먹고 매일 다른 수업을 듣는다. 현미네홉, 자급의기술, Spoken word, 즉흥춤, 팀별 매체 등. 샨티와 마찬가지로 다양하며, 일반학교의 국수사과에 얽혀있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각 수업마다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현미네홉을, 그것도 시농을 하는 의미, 모두가 모이는 오도리와 자급의 기술은 어떤 의미인가. 돈과 소비적 삶에 의존하지 않는 자급자족과 공동체 혹은 식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렇게 하는 활동들이 제각기 달라 보여도 그 안에는 연관성이 있다. 그 연관성을 찾고 의미를 찾는 것은 나의 몫. 쉽지만은 않다..
공동체성.
하자센터의 센터장이신 조한은 하자의 모든 죽돌과 판돌을 ‘식구’ 라고 부르신다. 고 참 하자라는 공동체는 보면 볼수록 깊이가 깊은, 그래서 들여다보기엔 아직 내가 부족한 것 같다. 하자의 ‘식구’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본다.
하자센터에서 매주 모여 자신들의 음식을 나누는 공동부엌. 언제부턴가 찾기 힘들어진 마을이라는 개념과 그에 따라 보기 힘들어진 이웃간의 정. 지금 사는 할머니댁, 성남의 아파트에서 반년을 산 나조차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겠다. 이웃과 다섯마디 이상의 대화를 나누어 본것도 단 한 번 뿐이다.
3만엔 비즈니스 책에도 나오듯이, 자급자족의 삶은 나 혼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하는 친구들과 가족, 이웃이 있어야 한다. 일을 나누고 웃음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책상 앞의 공부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운다.
나의 모습, 샨티, 그리고 가치관.
하자 안, 하자작업장학교라는 공동체와 샨티간의 다른 점 중 하나는 서로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건 아니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나는 욕지거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은 안부를 물을 때에도,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대화를 나누며 잘못된 점을 지적할 때에도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며 단어와 말투의 선택에 있어 신중하다. 가끔 문제점을 우물쭈물 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대신 말하기를 바라는 모습은 답답하기도 하다.
나는 하자에 있으면서도 샨티와의 교류를 멈추지 않았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샨티친구를 자주 만난다. 샨티에서의 나는 욕을 잘 쓰는 편이다. 어른에게 반말도 한다. 생각하는 방식 마저 바뀌는 것 같다. 하자와 샨티의 사이에서 나의 모습은 이리저리 번갈아 바뀐다. 하자에선 하자의 모습으로, 샨티에선 샨티의 모습으로.
샨티친구들과 하자죽돌들의 말과 행동, 가치관 사이의 갭에서 내 추구함에 혼동이 올 때가 있다. 가끔은 하자에서의 내 말이 샨티에서의 내 행동과 다른 모순이 일어나지 않는지 무섭다. 하자센터와 샨티 친구들의 가치관은 다르다. 샨티의 친구들은 ‘내 맘 끌리는 데로 살아라’, ‘옷좀 멋있게 입고 다녀라’ 라든지 ‘내 모든 행동에 책임을 생각할 필요는 없어’ 등의 말을 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옛것을 고쳐쓰고 소소하게 살고 모든 행동에 생각을 더하려던 나의 모습이, 행동이 조금조금씩 바뀌어간다. 풀어 말하면 내 몸이 하자의 배움을 거꾸로 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귀농하여 시골집에서 사는 상상은 기분 좋았는데 이제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창의서밋 때 숭문중 환경부 친구들의 발표를 들었다. 스스로의 활동에 즐거움과 뿌듯함을 느끼며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들은 보기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무언가가 달랐다. 나는(우리는) 탈핵을 외치고 송전탑을 반대하는 대에 있어, 그들처럼 즐거움과 뿌듯함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 문제들이 나의 삶과 얼마나 가까운 연관성을 지니고 있고, 그러기에 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책임져야 할 문제로 생각하며 우리는 공부하고 경험한다. 즐거움을 가질 순 있어도 즐거움만으로는 안 된다. 페이스북의 한 책에서 보았듯이, 내 발 밑에 지식과 경험이라는 책을 하나하나 쌓아갈 수록 가려진 담 너머의 어두운 세상이 보인다. 그 어두움을 외면하고 내려서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 야속하다. 그렇기에, 외면할 수 없기에, 이 세상을 안고 세상에 맞추어 내 인생을 결정해야 한다. 예전에 생각했듯이 단순히 산이 좋고 물이 좋고 소박함이 좋기에 귀농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역류하는 세상에 발맞추어 하나의 작고 큰 행동으로서의 선택이라 생각하니 부담스럽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