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디 셔먼(Cindy Sherman) - 자화상이 아닌 자아상(Self-portrait,自我像)으로 미국의 80년 대의 ‘여성스러움’ 대해 질문을 해보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157p 


(사진이 크게 첨부되군요, 컨트롤+스크롤해서 전체 크기로 사진을 보시길..)



1324776098408_DSC_1238_PhotoWonder28329.jpg 나.jpg 얼굴없는_당신.jpg 우두커니2.jpg


(2011-2012) 


2년 전, 일반학교에 다닐 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이미지가 있으면 그저 닥치는대로 찍었다. 무엇을 찍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마구마구 찍었다. 가끔은 타이머를 설정해놓고 카메라를 위치 시킨 후에 자화상을 찍곤 했다. 그 때의 자화상들을 보면 대부분 채도는 흑백에 가까울 정도로 낮았고, 나의 표정은 무겁거나 우울했고 꽤 고독했다. 또한 사진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알 수없을 정도로 모호했고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도록 포토샵처리를 통해 몽환적으로 꾸밀려고 애를 썼다. 내 자신도 그것들을 탈출하려고 아등바등 애를 썼지만, 답을 찾지 못한 채 번번히 좌절했고, 그 답을 찾지 못해 살려달라는 메시지만을 보내면서 그 방법은 모호하게 표현했던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우울함을 아름답게 승화(사진이니까 가능했겠지)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고립되어 있는 나를 구해달라는 긴급 구조 메시지를 계속 날렸다. 내 최초의 ‘자아상’을 시작한 이유였다.



20101110_cindy_sherman_untitled.jpgcindy-sherman.jpg

sherman_56.jpg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라는 읽으며 자신을 ‘전형적인 미국의 여성상’으로 분장하여 사진으로 표현한 ‘신디 셔먼’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신디 셔먼은 '구성사진* 분야에서 크게 빛난 인물이‘이라고 한다. 사진은 80년대 전까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기록을 하거나 우연의 순간을 포착하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런 사진의 경향은 80년대에 이르러서 작가의 의도에 맞게 구성과 연출을 하는 구성사진을 하는 장르가 생겼다고 한다. 신디 셔먼은 특이하게도 자신을 모델로 해서 그 당시의 전형적인 미국 여성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 시리즈가 Untitled Film Still(무제 영화 스틸)다. 그 시리즈 속에서 신디가 연기(분장한)해서 연출한 미국 여성들의 모습은 청순한 듯하면서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섹시했다. 미국의 대중매체가 나타내는 여자들의 모습(이를 훤히 드러내면서 남성들을 유혹하는 육감적인 핀업걸의 모습과도 같은 소비되어지는 여성의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도시 속의 여자들을 주로 연출해서 그런지, 도도하거나 정색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슬퍼런 표정 속에서 날 건들면 죽여버린다는 협박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군데 군데 남성에 의해 성적으로 소비되는 여성의 모습이 보여졌다. 책에서 보면 ’대중문화 이미지에서의 전형에 의해 인간성의 정체성이 생성되고 좌우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라고 했는데 처음엔 읽고서 그것을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찾은 자료에서는 “<무제 영화 스틸>들은 실제 영화나 포스터에서 그 이미지들을 차용한 것이 아니고 순수하게 자신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한다. 다만 그녀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이 낯설지 않은 데다 제목을 <무제 영화 스틸>로 했기 때문에 대중들은 자신이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이미지들을 떠올리는 일종의 착시 현상을 빚어낸 결과였다.”라고 이야기했다.

 

기존의 사진가가 타인 혹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찍음(포착)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려고 했다면 반대로 신디 셔먼이 구현한 자아상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자신이 모델이 되어 직접 재해석했고 그것을 찍힘(포착당함)으로서 ‘보는 존재’가 아니라 ‘보여지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모습을 찍는 자화상이 아니고, 자아상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 때 당시에는 꽤 남성우월주의 시대였을 텐데, 대중매체가 상상한 여자들의 모습 속에 들어가 독백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용기가 느껴졌고 대단한 생각이 들었다. 연기하는 신디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것을 느꼈을까? 아마도 대다수의 남자들은 반성하긴 커녕 예쁘게 생긴 여성 예술가가 대중영화 속의 예쁜 여자들을 재해석했구나라고 넘어갔을 거 같다는 추측이 들었다.

 

요즘 시를 읽고서 사진으로 재해석하는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신디 셔먼에 대해 알아보고 나니 내가 시 속에 들어가 화자가 된다는 기분으로 상상을 해보면 시를 사진으로 재해석하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 또한 시가 전하고자하는 낯선 것들 혹은 익숙한 감정들을 더 실감나게 느끼는데 도움이 될 거 같다. 지금까지 3개의 시를 재해석했는데 작업을 할 때마다 시의 내용을 그대로 사진으로 연출한다는 생각으로 했고, 단지가 시적 상상을 해보라고 조언을 하셨다. 들었을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가 시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읽자 마자 왜 마음에 드는 지 생각을 하지 않고 이 시가 마음에 든다고만 생각을 하고 재해석하는데 급급했다. 시를 읽는데 있어서 시를 쓴 시인을 나타내는 시 속의 화자와 소통해보려고 노력해야겠다. 시라는 낯선 사람을 통해서 소통을 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깨우친다. 혹은 잊혀졌던 가치들을 다시 되짚어보게 되는 계기가 될 거 같다. 그 느낌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연출하거나 포착함으로서 사진이라는 매체로 소통을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앞서 설명했었던 예전의 사진처럼, 사진이라는 매체로 나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나의 메세지를 ‘일방적’으로, ‘강압적’으로 외쳤다. 다시 시작한 사진이라는 매체를 더 알아감으로서 내가 무의식 중에 사진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것들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든다.

 



*구성사진(혹은 구축構築 사진)- constructed photo

뉴컬러와 함께 1980년대 사진의 주요 흐름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작가는 콘스트럭티드 포토라는 장르에 속해 있다. 이 용어는 1984-85년 경 사이에 사용되기 시작한 말이지만 개념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 단지 관습적으로 이해되는 바로는 "사진에서의 우연성을 극도로 배제하고, 사진가의 의도대로 만들어지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1960년대 현대미술의 일환으로 사진을 모티브로 사용한 라우션버그나 앤디 워홀의 경우를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으나 좀더 명확해진 것은 1980년대부터의 일이다.


구성사진의 대표 작가는 우선 신디 셔먼을 들 수 있다. 그녀는 영화 속의 유명한 여배우들의 행위를 본따 자신이 그와 똑같이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이는 그동안 미국이란 사회가 축적해 온 이미지 체험을 셔먼이라는 한 매개체를 통해서 포스트모던화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경향의 다른 작가들로는 기형인(freaks)에게 명화의 고전적 포즈를 취하게 하여 찍는 위트킨, 거울과 조명이란 독특한 오브제를 서로 다른 공간을 창출해내는 캐스틴, 폴라로이드를 사용해서 기묘한 색채 속에 자신을 촬영하는 사마라스, 마네킨을 모델로 해서 소년 시절을 환상적으로 연출하는 포콘 등이 있다. 최근 이 분야네는 연출 및 허구라는 말도 출현해서 한층 세분화되어 가는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이토 도시하루, 20세기 사진사 중에서 발췌 수정>



출처 : http://windshoes.new21.org/photo-cindy.htm

profile

트위터 : @0_wh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