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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연말이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새빨간 구세군 냄비와 딸랑딸랑 종을 흔드는 모습들이 지하철 역사와 거리에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의 열매 광고도 어제 봤다, 크리스마스 씰도 판매하기 시작한 듯 하다.
나는 기왕이면 기부에 참여하려고 하지만, 지갑에 잔돈이 있을 때나, 가끔가다 천원~오천원 정도의 돈을 기부, 자선행사에 참여하는 편이다. 권혁일 이사님께서는 자기가 많이 갖고 있어서 일부를 나누는 것 보다 동전 하나가 전부인 사람이 그 전부를 나누는 사람이 베푸는 사람이라는 말에 자신이 정말 베푸는 사람인지 고민하셨다고 하는데, 나도 냄비에 동전을 넣고나서 그 생각이 자꾸 든다. '이 돈이면...' 하는 욕구와 잉여생산물에 대한 그 욕구를 잠시 참고 나누면 많은 아이들이 꼭 필요한 한끼를 이어나가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다. 럭셔리라는 말은 돈이 많아서 된장을 바르고 다니는게 아니라, 돈을 잘 쓰는 게 럭셔리란다. 부자도 마찬가지여서 돈을 '잘' 써야지 부자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저 푼돈을 주고 '아 도와줬어.' 하는 식의 안도만을 할 뿐인걸까. You threw the bums a dime in your prime, didn't you? 지난 주에, 1호선 열차를 타고 집에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한적한 시간대의 사람이 드문 마지막칸의 문이 열리더니 헐렁한 옷차림을 한 왜소한 남자가 종이뭉치를 잔뜩 가지고 탔다. 그 남자는 승객들의 무릎 위에 그 종이를 올려놓았는데, 그 내용인 즉슨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둘이 힘겹게 살았지만 이제 어머니마저 암에 걸리셔서 몸져 누우셨고, 많은 고민을 한 뒤에 용기를 내어 이 흔들리는 전철 위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어디에서 했는지, 볼펜 글씨가 복사되어서 삐뚤삐둘 떠있었다. 잠시 뒤에 이 남자는 종이를 다시 걷어갔고, 몇몇의 사람들은 종이와 함께 돈을 같이 주기도 했다. 나도 천원을 한장 꺼내서 드렸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 때 쯤 1호선을 타고 어딘가를 가고 있었는데 어젯밤과는 다른 사람이 똑같은 종이를 돌리는게 아닌가. 나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내가 속은걸까?! 분명 조그마한 성의라도 보탰다고 생각했는데, 뭐야 이거?!' 형제인건지, 같은 처지인건지, 아니면 진짜로 속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전에 내게 돈은 별로 필요치 않았다, 시골에서는 돈 쓸데도 없고, 교복뿐이라 옷도 별로 필요없어서 그냥 모아두거나 가끔씩 과자나 필요한 것을 사는 정도였다. 길찾기 때, 인천터미널에서 시골에 내려갔다 오려고 서성이고 있다가 한 부산남자가 나에게 와서 통사정을 했다. 부산에 내려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으니 2만원만 빌려줄 수 있겠냐고...계좌번호 불러주면 나중에 돌려드리겠다고 하기에 나도 고향 내려가는 처지인데 딱해서 그냥 드렸다. 계좌번호는 어차피 내거 몰랐으니까 뭐.... 그 때는 그냥 좋은 마음으로 드렸는데, 나중에 애들한테 말하니 '멍청아, 너 속은거야.' 라는 말이나 들었다. 무언가 베푼다고 했을 때, 돈으로 도움을 보탠다는게 그 때부터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줬는데 다른 사람들은 기껏 한다는 소리가 속았다는 식의 말 뿐이고, 그나마도 구세군, 적십자, 자선단체 등에 기부하는 돈도 추후에 어떻게 될지 몰라 내 기준에서 약간 많이 넣는다고 했을 때 자그나마 불안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하철 역사에서 바구니를 두고 앉아계신 분들, 검은 안경을 쓰고 지팡이질을 하고 다니시는 맹인분들, 하반신을 고무로 감싸신 채 시장바닥을 바퀴에 의지해서 움직이시는 분들을 볼 때 의심을 하는 게 너무 죄송하고 껄끄럽다. 분명 누군가는 사람들을 속이고 그런 '행세'만 하고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적은 돈을 건네드린 많은 사람들중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을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말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누군가는 적게 가졌고, 누군가는 너무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을 점점 골고루 나누는게 기부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갑자기 재단설립까지 해가면서 자기 돈 전부를 지키려고 한다. 심지어 나조차도 내 전부를 나누지는 못하겠는데, 과연 나는 어떻게 베품을 실현할 수 있을까? 권혁일 이사님의 해피빈처럼, 너무나 일차적이고 일시적인 기부가 아닌, Process의 디자인이 필요한 것 같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눔을 구상하고, 실현하고 있는 각자의 기부말이다. 베푼다는 것은 그저 돈이나 구호 물품을 던져놓고 자기안위를 얻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의 시선으로 지켜볼 수 있는, 즐겁고 행복한 일이 되어야 한다. 일시적인 호의에서 비롯되기보다는 행복한 습관을 디자인하는 것.
2009.12.08 05:11:34
해피빈의 process 디자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를 돕는지 안다'는 전제가 훨씬 더 많은 기부를 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하지만 일단, 그것이 정말 자신의 재산(적지않은)도 기부할 수 있게 하는 전제가 될 수 있을까? 김장훈이라는 가수가 언젠가 "꿔서라도 기부"한다고 하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런 기부라도, 어디에 기부할 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현금유통'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지지할만할까? 어쨌든 그 가수 덕에 기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늘어난 셈이니, 결과적으로 좋은 일? 차라리 만원씩 모아서 365만원 현금으로 밥상을 차리는 연예인부부는? 너무 적은 돈? "돕는 일"에 대해서 이런 금융자본주의 시대에는 좀 복잡한 심경이 돼. 그러나 네가 계좌번호를 알리지 않은 채 누군가를 도운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지난 경제인류학시간에 "호혜" 혹은 "증여"에 대해서 얘기한 칼 폴라니에 대해서 잠깐 배웠는데 이번 겨울엔 그 책을 볼까 생각중이네. <거대한 전환>이라든가. 그가 생각하는 증여의 가장 좋은 모델은 부모-자식간의 모델이라는데, 부모는 돌려받을 생각 없이 준다는 것, 자식은 그 자식에게. 해피빈 모델은 이상적인 모델은 아니지만, '최선의' 혹은 '차선의' 모델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돼. 이 체제에서는. 내가 누구를 돕는지 몰라도, 그 보상과 상관없이 도울 수 있는 체제. 그런 호혜의 관계가 더 적극적으로 필요할 것이지만... 참고로, 폴라니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 게시판에 올려둘게.
2009.12.08 05:35:46
아, 제가 기억하는 그 폴라니가 맞는건가요?
길찾기 때 리빙리터러시 게시판에 댓글 달아주신 걸로 기억하는데, 뭐였더라,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 3의 모델을 제시한 사람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여태 찾아보지를 않았네요.... 사실 해피빈은 좀 더 기부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걸 스스로 충전까지 해서 할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것 같아요. 그 재산의 커다란 덩어리일지라도 나누는 것은 심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것보다 훨씬 큰 체제에 전제되고 있는 기브&테이크, 등가교환 식에서 벗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증여, 더군다나 기부富라고 생각하면 더욱 선뜻 내놓기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그라민 은행이 생각나기도 하구요, 그건 오히려 사람들을 수혜자로 보지 않고 고객으로 바라본다는데 빈곤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도 대부분 다시 돈을 갚는다고 하죠. 그것도 하나의 Process디자인인 것 같아요. 좀 의외의 방법이었지만.
2009.12.08 11:35:26
그 폴라니 맞아.
그라민은행도 그런 점에선 권이사의 구상과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시기의 자본주의적 전략을 거꾸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폴라니의 주장이나 혹은 우리나라의 '품앗이'같은 것들은 (아... 품앗이는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도...) 좀 다른 전략이 아닐까 싶은데. 그러나 같은 시스템을 사용해도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 것, 그런 것이 사회적 창의성이 요구되는 지점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군. 이 체제를 흔들까봐 누군가를 불안하게 하지 않고도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면. 아무튼 그 <거대한 전환>을 읽어보고 더 얘기해보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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