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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내가 구한것이 세계를 구하는 것
"세상의 변화의 첫 걸음은 나를 바꾸는 것이다!" 정말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행동을 실천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나를 바꾸는 것이 첫 걸음이라면, 나는 그 첫 걸음을 떼기가 어려운 것 같다. 나의 이런 생각이 행여나 주변에서 자신을 바꾸고 가꾸려는(세계를 구하려는) 사람들에게 발목을 잡는 생각이 아닐까? 나는 아직 '시민'으로서 실격이다. 이 사실을 알아챈 지금으로부터는 주변에 그저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첫 걸음부터 떼는 것이 내가 한명의 시민 or 시인으로써 이 워크숍을 들을 자격을 갖추는 필수적인 요소중 하나 일 것이라 생각된다. -공동체 나는 중학교때부터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있다. 아니, 잘 따져보면 아버지의 영향이 커 어릴적부터 나이, 성, 위치를 떠나 한 사람으로써 서로를 돕고 도움받는 공동체에 익숙하다. 나에게 공동체는 [상대를 통해 알아가면서 학습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느 공통된 주제에 따라 모이는 공동체는 파편적인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큰 구성을 이루는데, 그 사이사이의 부족한 조각의 모서리들을 서로가 채워준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와 나, 그리고 우리가 중요한데 우리도 공동체 요소가 잘 충족 되고 있을까? "너의 시선은 불빛'이라고 말씀 하셨듯이, 각기 다른 우리는 서로의 등대가 되어, 빛이되어 다양한 방법으로 비추어 주고 있을까? 글쎄, 나는 만족 안되는 것 같다. 나는 내 눈에 불을 지피고 상대를 뚫어져라 비춰주는 경우도 있는데 반대로 돌아오는 빛이 없을 때에는 나는 '토라진 등대'가 되어버린다. 나는 시선을 돌리고 다른 곳을 비추거나 불을 꺼버린다. 빛의 교환이 제대로 안 이루어지는 것에 불만이 있다면, 이것은 나부터 바꿔야 하는(시민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임을 다시금 알 수 있다. -~이면서 시민이기 때문에 말한다. 나의 상상속의 '시인'은 어딘가에서 뒷짐지고 걸어다니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시적 언어로 풀어내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것은 실로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다. 허나, 요즘의 시대의 시인은 무엇을 말하나? 아직도 달빛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나? 아니다. 사물에 빗대어 사람과 사건과 감정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세상을 말하기도 한다. 자신의 매체를 통해서 세상에 알리는 것 아닐까? 음악을 하는 사람들로만 봐도 언제나 즐거움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으며 슬픔을 표현하기도 하고 세상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나는 어떤 매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통해 하고 싶은말을 담을 줄 아는가? 이것이 관건이다. 음.. -작품의 상품화 "어느 날 통장으로 들어온 많은돈이 나를 당혹 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하고싶은 말들을 했는데 말이다. 나의 작품 때문에 나의 심장도 은으로 바꿔버려질 것 같았다." 이 말은'9월이여 오라'를 쓰 아룬다티 로이 작가가 한 말이다. 이것은 자신이 써낸 책이 흥행이 되면서 자신의 통장으로 많이 들어왔을 때 꺼낸 얘기다. 자신이 말한 것이 이렇게 높은 액수로 평가되니, 누가 보면 [뭐야, 돈 많이 번거를 저런 표현으로 자랑하는거?]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다. 허나 그녀는 그녀의 작품이 의도와 다르게 큰 액수로 교환 된 것 같아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이것을 그녀는 '작품의 은화화'라고 했다. 그녀가 하고 싶은말이 잘 전달 되었을까? 아니면 어느 누군가의 추천으로 인해 생각없이 베스트셀러에서 좋은책이려니 골라서 본 사람들이 올려준 매출일까? 이제 예술도 상품인가? 단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면 좋겠는데 말이다. -문학 작품은 죽었다? 아니다, 죽지 않았다. 만약 죽었다면 수많은 문학작가들은 그 문화를 살리려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어떤 누구가 무슨 위치로 문학이 죽었다고 단정짓는것인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순간에 문학작가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문화 구독자'들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죽은 작품들을 구입해 읽을 필요가 없다. 충분한 가치가 없는데 어찌 그것을 들여다 보겠는가? 이 말의 전제는 오늘날 [영상매체에 밀렸으며 문학이 핢에 대한 윤리적인 힘이 사라졌음]을 깔아두고 하는 얘기인 것 같다. 영상의 힘이 오늘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래도 문학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하며 영상을 하는 사람들도 문학을 찾는다. 죽은게 아니라 그들이 누렸던 영광들의 날들을 회상하며 그날에 비해 인기가 떨어졌음에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닐지 추측해본다. -"호흡이 편한가요?" 조원규 시인이 시를 강의하는 타이밍때 얘기를 꺼내신 말이다. 나는 이때 나의 들숨이 일정하지 못 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자신을 더 알아보고 들여다보는 것은 중요하다. 허나 나는 그 중에서 [생각, 표현, 의사]같이 자신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주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호흡을 급하게 하고 있었고 어깨에는 힘이 무척 들어간 상태였다. 나는 무엇때문에 이렇게 급하고 긴장한 상태였는지.. -언제 '제대로' 인가? 작가들이 자신의 글에 써놓은 얘기만 보아도 '이것은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할 부분이다'라고 하지는 않잖나. 계속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허나, 정제된 대답은 언제쯤 나올 것 인가? 이거 정말 질문만 던지다가 시간 다 지나가는건지 모르겠다. 질문에 깔려서 숨도 못 쉬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진짜와 제대로, Real을 보여주려면 얼마만큼 시간이 걸릴까? ![]()
2009.12.08 05:26:44
하하 토라진 등대라니.
어떠한 생명도 '교감'하고자 하는 지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해. 하물며 적극적으로 소통의 활동을 하고 있는 인간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토라진'이란 말은 충분히 이해가 감. 그렇다고 불빛을 보내는 일을 중단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질문에 대해서. 정답이 나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은 질문에 대한 성실한 / 집요한 / 치열한 열정과 더불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2009.12.08 11:30:31
사이에 대답.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다음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는 대답을 생각해보면 좀 두려울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정답'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부메랑 비유는 내가 던질 수 있는 거리가 어디 만큼인가에 따라 다르겠지.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대답의 부메랑들이 돌아올 것이고 그 부메랑들을 내가 던진 것이 아니야.라면서 정답의 부메랑을 요구한다면 그야말로 제 것이 아닌 남의 것을 탐하는 것 밖에는 안 될지도. 그런 점에서 네 말대로 '사이에 답'이란 건 내가 던진 질문의 부메랑이 대답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좀 성숙해진 나의 질문의, 돌아온 얼굴이 아닐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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