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제 8 회 국제 민주교육 회의(IDEC, International Democratic Education Conference)

일본서 7월 9일부터 15일까지 7일간 개최

김희옥 7-19-2000. 한겨레신문

지난 7월 9일 동경시내인 유라쿠조 아사히홀에서 열린 오프닝 심포지움을 시작으로, 동경 올림픽 기념관 청소년 센터와 치바현의 테가언덕 소년 자연의 집으로 숙소와 강연장소를 옮겨가며 진행되었던 국제 민주교육 회의(이하 아이덱)가 참가자들의 열띤 토론과 교감 속에 15일 막을 내렸다. 1993년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이래, 아이덱은 규모의 성장을 거듭, 현재는 20여개국의 50여개 대안학교가 참여하는 거대한 회의가 되어 있었고, 3회째부터는 십대들도 논의에 참가하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활동도 두드러지는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모델로서 손색이 없다.

아사히홀의 오프닝 무대는 인도의 아룬 간디가 "Forthcoming Society and Child-Centered Education"이라는 제목으로 비폭력적이고 상호적인 교육의 의미와 방법을 역설하였고, 실제 자신의 할아버지였던 마하트마 간디가 자식과 손자들에게 어떻게 대했는가를 일일히 열거함으로써 감동을 자아냈다. 민주주의 교육은 더 이상 초기 근대 시민사회에서처럼 시민을 계몽하려는 훈육을 통해서는 불가능한 것이 되고 있었다. 현재는 그야말로 '일반화될 수 없는' 개인들을 위한 교육이 요청되고 있고, 개인들을 고려하지 않는 어떤 교육도 이미 '폭력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학교는 가정의 확장이고, 사회는 학교의 확장이다. 그 안에서의 민주주의 교육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가장 신뢰할만한 상호교감의 관계여야 한다. 그는 그럴 때라야 비로소 아이들이 평화와 안정과 사랑 속에서 비폭력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일본 내에서 대회의 명칭은 '세계 프리스쿨 대회'였는데, 프리스쿨에 대한 개념정의가 모호하여 잠깐 혼란이 있었다. 한국사회처럼 학벌위주의 사회인 일본에서, 비인가학교인 프리스쿨이 사회적 지위를 누리면서 존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회를 주최하고 있는 비인가학교인 도쿄슈레는 아예 이번 기회에 일본사회에서 자신들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했고, 일본내 일반인들과 방송, 언론의 참여가 대폭 이루어진 가운데, '프리스쿨'이라는 개념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한국이나 일본처럼, 제도교육을 받거나 아니면 교육을 포기하게 되거나 하지 않고, 이미 다양한 교육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서구인들은 어쩌면 그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서구인들에게는 '프리스쿨'은 별로 매력이 없었고, 인가학교든 비인가학교든 학교사회가 보다 민주적이 되고, 그안에서 아이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을 논의하면 될 것이었다. 그런 탓에 이 행사가 좀더 괜찮게 보이도록 세심한 것까지 신경을 쓰고, 빈틈없이 스케줄을 준비한 도교슈레 사람들은 오히려 욕을 먹기 시작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옷까지 입혀 밥도 챙겨 먹이고 학교에 보내는 부모 같았고, 서구인들은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라고 저항하는 아이들 같았다. 아무리 작년 서머힐에서 주최한 아이덱이 훌륭했었더라도 서구의 참가자들이 서머힐 워크숍에서 보였던 '한 수만 가르쳐주세요'하는 맹목적인 분위기는 너무 과장된 것이다. 그들은 아시아측에서 주최하는 워크숍에는 별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서구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 안보이는 갈등이 내내 계속되었고, 그런 양쪽의 갈등이 모두 읽히는 한국측--하자센터--참가자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불편한 심사가 되어 있었다.

특히 일본과 비영어권 국가들에 대한 무관심과 때로는 무시로 일관하는 서구인들을 처음 접한 하자센터의 아이들이 느끼던 불만과 당황스러움이 어느 정도 해소되기 시작한 것은 두 가지 이벤트를 통해서 였다. 첫째는 미국의 시카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제시 럼이 네트워크를 제안하면서 였다. worldwide real education network로 명명된 이 네트워크는 서구의 청소년 문화가 가지는 지향성을 보여준다. 네트워크의 명칭에는 'real'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지만, 그 '진짜'의 내용 속에는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비현실적 체계가 개입되고 있었고, 그에 따르면, 하나의 조직에 기대거나 예속되기보다는 서로의 의사소통과 정보공유만으로도 만족하는 건강한 개인주의가 들어 있다. 마침 아이덱 내부에서는 단일한 조직의 구성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냐는 제안이 2-3년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모두들 의견이 분분했다. 아이덱에 처음 참가했던 하자센터의 사람들은 그런 의견들을 듣고서야 전세계적으로 교육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단일한 해법이란 존재할 수도 없고, 나라마다 얼마나 다르게 문제가 드러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 다름은 완전히 서로 이해되고 있지 못한 것 같았다. 네트워크도 조직도 어느 하나 속시원하게 합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이덱에 참여하는 이유는 모두가 또한 같은 희망--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공유하기 때문이라는 점은 확인되었다. 제시 럼의 시카고 학교의 아이들은 마약거래로 학비를 벌고 매일 죽음의 위협과 공포 속에 산다고 한다. 학교에 와 있는 6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죽을까봐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열심히 학교에 온다는 설명은 깊은 인상을 남겨 주기에 충분했다.

두번째 이벤트는 하자센터에서 몇 번의 워크숍을 통해 한국사회의 교육문제와 하자센터를 설명한 것이었다. 워크숍에서의 호의적인 반응과 입소문을 통해 주목을 받은 데다가, 하자센터의 아이들이 8월 11일부터 15일까지 이어지는 유스 페스티발 2000의 광고지와 일회용 카메라들을 들고 각국의 십대들을 찾아가기 시작하면서, 하자의 아이들은 다른 나라의 십대들과 직접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자센터의 아이들은 유스 페스티발로부터 홍보사절의 임무를 받고 있었다. 일회용 카메라를 건네주며, 본국에 돌아가 자기들이 속한 학교나 단체에서 다른 십대들의 일상을 찍은 다음 보내주면 유스 페스티발에서 사진전을 하겠다는 말에 대부분의 십대들은 매우 흥미 있어 했고, 아시아 지역--일본, 대만, 홍콩, 태국, 인도, 필리핀 등--십대들은 유스 페스티발의 오프닝 프로그램인 '아시아 유스 포럼'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는 홍보사절이라는 이름이 막연하게 재미있게 들렸던 하자센터의 아이들이었지만,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아시아 네트워크의 중요성과 민주교육의 모델이 아시아지역이나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다르게 형성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자센터의 아이들도 일본인들의 조금은 전체주의적으로 보이는 사고가 갑갑하게 여겨지고 있었지만, 충분히 일본사회의 어떤 측면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역사적, 문화적 경험을 공유했었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이 지나갔다.

일주일간의 회의는 앞으로의 미래가 청소년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다양한 노력 속에서만 풍요와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결론과 더불어 내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회의를 기약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비록 모두가 일치하는 의견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청소년들과 특히 제도권 단일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는 회의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소박한 꿈이었고,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그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회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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