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학교인가?
(2001 대안교육센터 포럼 때 발제한 글)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나는 계간지 '당대비평'에 나의 자퇴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붕괴에 관해 쓴 글을 기고했다. 그 글의 제목은 <학교는 늙은 아버지 같다>이고, 맨 마지막 문장은 <..학교는 반드시 붕괴되어야 한다>이다. 늙은 아버지 같은 학교 따위 꼭 없어져야 한다고 소리치던 1년 전의 내가, 지금은 ‘사는 곳 어디나 학교입니다’ 라든가 ‘벽이 없는 학교’ 같은 엄청난 문장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약 한 달 전, 나는 이미 하자작업장'학교'의 학생이 되기를 선택했다. 왜 다시 '학교'인가?


탈학교
- 또 다른 인권 탄압의 시작?

학교 밖에서의 배움이 거친 경쟁 사회 속으로 바로 뛰어드는 것을 의미하던 시절이 있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하여.."라든가 "3년 동안 청소만 하다가.."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런 식의 성공 스토리는 대부분 지금은 성공한 사람이 되어버린 그의 용기와 위대함을 칭송하느라 불합리하고 비정한 도제 시스템에 대해서는 눈감아 버리기 일쑤이다. 그가 제도교육을 받지 않았다(못했다)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사회는 그의 시간과 노동력과 인권을 무시하고도 잔소리하지 말 것을 뻔뻔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에게 이 모든 시련을 참아낼 수 있게 하는 단 한가지 명분은 ‘언젠가 올지도 모르는 경쟁사회 속 성공의 그 날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어떤 10대들은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어하지 않으며 사실 살수도 없다. 그들은 제도교육에 대한 거부가 왜 인권무시와 배울 수 있는 권리의 박탈로 이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학급붕괴의 바람을 타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탈학교생들을 위한, 혹은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대안적인 공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간디 학교나 성지 학교처럼 한적한 산 속에 위치한 대안학교들도 있고, 도시에 살면서 문화작업자로서의 꿈을 키우는 10대를 위한 하자센터, 다른 10대들에 비해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비교적 적었던 탈학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 속 작은 학교, 민들레 출판사를 중심으로 모인 민들레도 있다. 나 역시 하자에서 이것저것 배우고 기획하고 돈도 벌면서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학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왜? 어떤 학교가?


이제 다시 학교를 말한다
- 수동성의 늪을 지나 자기주도학습으로

..학교를 다녔던 기억은 그저 기억으로만 아니라 내 몸 속 깊이 내 성질 깊이 자리한 채,
귀찮지? 힘들지? 그냥 넘겨, 그냥 재껴, 그냥 담배나 뻑뻑 피워! 넌 아직 애잖아, 
미성년이잖아, 괜찮아, 그냥 놀아.
돈은 엄마가 벌지. 일은 어른이 하지. 
넌 그냥그냥저냥저냥 성냥에 불이나 붙여..(중략)
<haja collegio slam CD 수록곡 '여름'중에서>

자퇴를 하고 하자센터로 간 뒤 스스로에게 가장 놀랐던 점은, 내가 전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뭐든 해보렴! 난 널 믿어!의 메시지가 가득 담긴 착한 눈망울로 나를 망글망글 바라보던 판돌들과 언제나 나의 손길이 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반짝반짝 기자재들을 보면서도, 나는 그저 놀고 싶고 자고 싶고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피곤하기만 했다. 십여 년 간 학교에서 갈고 닦아온 이 수동성의 기운은, 게다가 만만해 보이는 동료 자퇴생을 만났을 때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하여 하자 초기, 모두가 수동성의 늪에서 헤엄치고 있을 때 나와 친구들은 게으름을 스스로에게 합리화시키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정말 힘들고 긴 여름을 보내야만 했었다.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무척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자퇴한 직후의 사람들에게 최소한 석 달 정도는 잠도 많이 자고 실컷 놀러다니면서 자퇴로 인한 몸과 마음의 긴장상태에서 벗어나는 게 좋을 거라고 충고하는 편이지만, 충분히 쉬었다 해도 다시 본격적인 배움과 일에 들어서면 뼈 속까지 스며있을 스스로의 수동적 사고와 태도를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가 올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어린이는 순수하고, 10대는 참신하다는 말은 어른들의 순진한 바램일 뿐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 몸을 휘감는 '사회화'는 어린이와 10대에게 더욱 가혹한 법이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 자기만의 언어를 찾기도 힘들 뿐더러, '애들은 순진해야 맛이야'라든가, '그 시기엔 누구나 반항을 하게 마련이지'따위의 편견들이 조심스레 벌린 입마저 다물어 버리게 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탈학교생이 되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지금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삶과는 다른 '질'의 삶의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그것이 다른 질의 삶을 위한 다른 질의 생각과 태도 또한 준비되어 있다는 이야기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 '다른 질의 생각과 태도'란 게 도대체 뭔지,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이지 않은가.

내가 다니고 있는 하자작업장학교는 교육원리로 "자발적이고 적극적 학습(active learning)"을 강조한다. 자원과 정보의 다양하고 원활한 유통 역시 매우 중요하지만, 널려있는 자원/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스스로를 가슴 뛰게 하는 일에 제대로 이용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또 다른 방식의 배움을 통해서 가능한 일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없다

작년 여름 일본에서는 '세계 민주 교육 대회'라는 것이 열렸었다. 하자 센터 죽돌로서 그 대회에 참가하려고 했던 나는 비자가 쉽게 나오지 않아 꽤나 고생을 했다. 일본은 심사가 느슨한 편이라는데도 어설픈 미성년자에다가(아예 나이가 아주 적으면 쉽게 갈 수 있다고 한다), 학생증도 없고, 가진 재산도 없고, 직업도 없고, 직업과 재산이 있는 가족도 없고, 아무튼 내가 일본에 눌러 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일 자료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뭐 돈을 빌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일본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한 것뿐인데 이렇게 힘들다니 대한민국과 일본 정부 앞에서 나는 믿을 수 없는 인간, 더 나가서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뜻일 거라는 생각에 몹시 괴롭고 슬펐었다.

스무 살이 된 지금이라고 사정이 달라졌느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도 처음 본 사람이 나에게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을 때마다 꽤나 고통스런 상태에 빠진다. 나는 하자에서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고 심지어 바쁘기까지 하지만 상대가 하자를 모른다면 내가 하고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하자센터라는 것이 무엇이며 탈학교생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 할 지도 모른다!(나는 실제로도 그런 경험이 있다) 

그렇다고 예술가요! 이럴 수도 없는 일이고, 백수요! 하기에는 하얗게 지샌 나의 지난 밤들에게 미안한 일.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해왔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노는 사람이거나 돈이 좀 없는 사람일 수는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일 수는 없다. 

아무튼 이런 문제는 비단 처음 만난 사람과의 어색한 대화 차원의 심각함이 아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나의 존재는 명쾌하게 이해되거나 인정할 수 있는 구조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직업을 갖거나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데에도 많은 불이익을 받고 있다.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고 스스로를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평가하고 싶지만, 노동 시장에 선 나의 모습은 신분조차 불확실한 저급노동자(그것도 여자)일 뿐이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학습법을 익히는 곳의 이름이 "학교"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탈학교생들은 대학에라도 들어가지 않는 이상 사회에서 증명될 수 없는 존재, 혹은 본인이 될 수 없는 존재(미성년자는 그의 보호자가 '본인'이다)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들이 힘들게 쌓아온 경험과 능력은 인정받을 수 있는 그릇 안에 담기지 못한 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러한 손실을 막기 위해서 학교가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와 경험의 가치를 이해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학교가 필요하다.   

하자작업장학교는 '하자의 친구들(비자도 잘 나오고 일반에게 인정받는 위치에 있으면서 하자의 이념을 이해하고 동의하는 사람들)'과 학생들을 멘토 시스템으로 연결해보려는 시도와 전공 프로젝트를 이수한 학생들을 위한 인턴쉽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문화작업자로서 나의 존재를 스스로에게 그리고 일반에게 증명해보려는 노력이다.


- 도시형 대안학교 : 더 이상 학교는 '준비하는 곳'/상아탑이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에도 대안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자퇴한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 학교들의 특성이 예전에 인터넷으로 찾아본 서구의 보편적인 대안학교들과 비슷하다는 것 때문에 꽤나 실망스러워 했었다.
"위대한 평민"이 모토라는 성지 학교나 농사짓는 과목이 있다는 간디 학교.
물론 나의 개인적인 취향(?)탓도 있겠지만 누구를 대상으로 한, 무엇에 대한 '대안'학교라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했었다. 솔직히 21세기의 탈학교 10대들 중에 몇 명이나 도시문명에 대한 거부를 이유로 산골짝 대안학교를 찾아 올 것이며, 위대한 평민이라는 알쏭달쏭한 이데올로기와 감수성을 견뎌낼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실제로 방문하게 된 간디 학교의 모습은 나의 그런 생각을 더욱 확실히 해 주었다. 간디 학교 아이들의 책상 위에는 대입을 위한 참고서들이 가득했고 책상 밑은 클래식부터 홍대 앞 인디 밴드까지 다양한 음악 CD들로 채워져 있었다. 대입을 생각한다면 매우 불리한 조건에 있는 대안학교 학생의 책상 위의 참고서, 읍내(?)에만 한번 나오려 해도 택시를 타고 한참을 가야하는 기숙사 책상 밑의 CD들. 왠지 현실의 삶과 이상향의 삶을 칼같이 나눈 이분법 속에서 끊임없이 헷갈려하는 10대들의 모습인 건 아닐지 씁쓸했었다. 나는 간디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을 좋아하고 간디와 하자의 연계에 대해서 긍정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도시 문명의 대안이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경쟁 사회의 대안이 위대한 평민이 되는 것이나 간디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밤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많은 별을 보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흙을 밟는, 단순하고 명상하는 하루하루로 몇 년을 쌓아올린 사람이 가지는 내공은 분명 아름답고 강한 것이리라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10대들을 둘러싼 삶이 이미 그렇게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10대 개개인의 삶에 집중하지 않고서 섣불리 꺼내놓는 대안은, 10대들에게 그들이 접하는 어떤 삶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 제도 학교를 그만둔 후 짐을 싸들고 공동체 성격이 무척 강한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어떤 10대에게는 맞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혼자서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 한 칸을 마련하는 그 날까지 끊임없이 돈을 모으며 큰 트렁크를 이리저리 옮기는 10대, 주유소부터 나이트 삐끼까지 안 해본 게 없는 10대, 청소년 인권에 관심이 있는 10대, 여성운동을 하는 10대, 자기는 대단한 아티스트라고 굳게 믿고 있는 10대, 홍대 클럽에 삶의 희노애락을 몽땅 묻어둔 10대, 무지랭이로 살다 죽을 수는 없다고 영어를 공부하고 운전을 배우는 10대, 연애타령 하다가 날이 새는 10대.. 이미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10대들에게도 그들의 삶을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들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가 곧 우리 사회의 문제이며,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혼자서 견뎌내기 벅찬 일들도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내가 어젯밤에 겪은 성적인 희롱은 "그러게 여자애가 그 시간까지 거길 왜!"로 이어지거나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자책 속에 알아서 정리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로 와서 이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면 곧 성 위원회가 조직되고 그 성희롱범에게 어떻게 사과를 받을 것이며 무슨 벌을 받게 할 것인지를 정한다. 그리고 울고있는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사건해결 능력을 가진 개인으로서 이 문제를 처리하게 된다. 그 과정에 학교는 때로는 공식적인 이름으로 때로는 사적인 모임으로 나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준다. 이것은 실제로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
Please consider the planet before printing this post

hiiocks (hiiock kim)
e. hiiocks@gmail.com
w. http://productionschool.org, http://filltong.net
t. 070-4268-9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