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센터의 새로운 일년을 준비하면서

하자센터 콜레지오 김희옥

나는 하자센터의 '판돌이'입니다. 하자센터의 판돌이란 대개는 이삽십대의 어른이면서, 무언가 가르칠, 기술적인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시각디자인, 웹디자인/정보기획, 대중음악, 영상미디어, 시민문화의 다섯 개의 작업장(factory)에서 판돌이들은 청소년들에게 '수업'이 아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교실'이 아닌 '공방/작업장'을 운영하는 '교사'가 아닌 '작업자'들입니다. 이러한 판돌이들은 서로 young and youthful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과 의사소통하고, 함께 작업하며, 또 자기작업을 계속 진화시켜나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판돌이가 아니면, 기술적인 전문지식을 습득해나가면서 '배우는 연습'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십대들만 위한다고 투덜거리는 20세에서 24세의 '법정' 청소년들도 있고, 다른 곳에서 우리는 찬밥신세란 말이에요!라고 항의하는 십대들-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가방을 든 채로 뛰어들어오는 중고등학생도 있고, 일어나면 어슬렁어슬렁 센터로 발길을 옮기는 게 일인 자퇴생이나 휴학생이나 특수고등학교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들중에 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우리는 '죽돌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엔 그저 시간만 많이 보내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개인적인 작업들을 시작하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어떻게 배울까를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연습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자신에게 맞는 배움을 찾아내려고 한다는 의미에서는 매우 좋은 '학생'들입니다. 하자에 '교사'는 없지만, 좋은 학생들이 많이 있고,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판돌이들도 항상 '좋은 학생'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자의 모토가 바로 "스스로의 삶을 업그레이드하자"이기 때문이지요.

하자센터는 99년 12월 18일에 개관했는데, 그 전에는 "영등포에 위치한 남부근로청소년회관"이었지요. 근로청소년들은 선반공이나 용접공이 되는 훈련을 하였고, 특히 여자아이들은 '미용기술'을 배웠다고 하지요. 그런 근로청소년의 모습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보다는 삐끼를 하거나 단란주점에 취업하는 것이 보다 손쉽고 그럴듯하게 보인다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있을 정도였지요. 98-99년의 학교붕괴현상은 청소년들을 그런 '거리의 아이들'로 내몰고 있었고 서태지가 '컴백홈'을 열창하였지만 학교의 혼자 힘만으로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IMF가 닥쳤을 때, 서울시 실업대책위원회를 만났던 연세대학의 조한혜정교수(현재 하자센터장)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청년실업문제의 방안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직업훈련원이 필요하고, 단순히 직업훈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업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갖게 하는 다양한 직업체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소비사회에서 '직업'의 의미는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지만, 생산적인 노동과 그 노동의 문화적 의미를 연결하는 직업체험은 청소년들에게 앞으로의 삶을 숙고하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하자센터의 정식명칭은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입니다.

각 작업장의 죽돌이들은 다섯 작업장에서, 일견 놀이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이 일들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직업'으로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고, 판돌이들의 도움을 받아 그러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시각디자인의 강좌를 수강하던 죽돌이들이 명함숍을 열거나 한글디자인대회에 나갑니다. CF나 뮤직비디오의 작업에 따라다니던 죽돌이가 M.net의 CF를 직접 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대중음악작업장의 죽돌이들은 인디레이블의 CD를 제작하기도 하고, 인터넷라디오방송국을 기획하고(라디오방송국은 좀 크게 판을 만들려고 했다가 좌초한 상태이지요), 또 주말이면 거리, 양로원, 청소년감호소 등에 찾아가 콘서트를 열기도 합니다. 죽돌이들끼리 웹진을 만들기도 하고, 다른 인터넷기업에 아르바이트를 다니기도 합니다. 완전히 충분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풍부한 미디어환경을 갖추고 있어서, 정보시대의 신인류인 청소년들에게 웹과 영상의 초보수준 이상의 기술을 가르쳐주고 작업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아이들이 거리로 흩어지지 않고, 청소년문화와 커뮤니티를 가능하게 해주는 새로운 장소가 되고 있다는 점을 잘 압니다. 
  아이들이 그저 힘들지 않은 일만 찾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자의 구내식당을 '접수'한 십대들의 스낵바가 생기면서 약간 다른 양상도 생겼습니다. 그럴듯하게 주방을 차려놓고, 라틴재즈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코코봉고'라는 이국적인 이름의 스낵바를 만들었습니다. 음식도 만들지만 경영도 합니다. 돈 버는 것이 힘든 것도 알았고, 하루종일 제대로 앉을 시간도 없이 수십그릇의 라면과 샌드위치를 만들고 설거지하고 청소를 해야하는 '수고'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윤을 내기 위해서 좀 더 싼 재료를 어떻게 구입하고 분위기를 내기위해서는 '청결'에 대해서도 신경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코봉고의 아이들은 허드렛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하게 되면서, 손쉽고 익숙하게 그런 일을 해내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여유를 갖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자센터에는 올해 '미용'과 관련된 작업장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남부근로청소년회관과 더불어 없어졌던 '미용기술'이 아니라, 손톱/발톱아트, 자기만의 패션, 머리염색, 액세서리 등 최근 청소년문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미용작업장'입니다. 

나는 하자센터의 판돌이면서, '콜레지오'의 판돌이입니다. 콜레지오는 다섯작업장과 별도로 '대안교육'을 생각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인문학교실입니다. 죽돌이들 가운데 전문적인 기술뿐 아니라, 좀더 배움을 지속하고 싶다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아이들에게 문학, 미학, 철학을 가르치면서 다른 인문학/어학의 강사진을 구성해 아이들에게 토론위주의 수업을 진행합니다. 이 아이들은 작년에 도쿄와 타이페이를 다녀왔고, 동북아시아의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청소년들을 만났습니다. 서로 비슷한 경험속에서 서로 다르게 대답했던 경험들을 공유하는 것이 새롭고 다양한 대안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노력은 한국사회뿐 아니라, 동북아시아를 통해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거리로 뛰쳐나가는 대신, 보다 정교하고 소통적인 네트워크를 만듦으로서 보다 숨쉬기 편한, 동북아라는 큰 장소를 우리 삶의 터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 그 교류를 지속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엔가 칠순이 넘은 나의 아버지가 센터를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오전. 센터가 잠자는 시간. 아이들은 없었지만, 이 방 저 방 소개를 둘러본 후, "센터는 아이들의 안전한 놀이터처럼 꾸며져 있고, 자, 마음대로 놀아보아 하는 느낌이다. 이게 꼭 필요한 일이냐?"고 물으시더군요. 나는 '안전한 놀이터'라는 말에 마음이 걸려서, "그만큼 마음을 다친 아이들이 있으니까요"라고 답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수긍을 한 눈치였지만, 내게는 분명한 경고로 들렸습니다. 하자가 '안전한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점. 분명 나의 대답은 거짓은 아닙니다. 이토록 다양성을 강조하는 시대에 제도교육만을 주장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획일성을 폭력적으로 경험하는 아이들은 점점 더 섬세하게 상처를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콜레지오 아이들을 하자로부터 어떻게 졸업시킬까에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사회와 학교로 아이들이 갔을 때 아이들이 새로운 시도와 배움을 지속하면서, 또 다른 아이들과 어른과 사회에 건강한 대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민들레, 2001)

* 2000년 12월, 하자센터가 개관하고, 하자센터에서 일을 시작한 지 꼭 1년이 되던 그 무렵에, 대안교육잡지인 “민들레”로부터 하자센터를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당시 하자센터는 다섯 개 작업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저는 “학교를 그만 두었지만, 배움을 그만 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몇몇 죽돌들을 위해, 다섯 개 작업장이 아니라, 조직도에도 없는 꼴레지오라는 인문학교실의 담당 판돌로 일하게 되었고, 꼴레지오는 만들어진지 일 년 반이 되었을 때, “하자작업장학교”라는 이름으로 발전적 해체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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