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12. 7. 히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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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식사공동체 한다니, 편하긴 편했지만...

학교시작부터 '급식'문제는 골치였다. 하루종일 학교에 와있을 학교죽돌이들은 사먹는 밥도 마땅치 않고, 실제로는 돈이 별로 없기도 하고, 있다고 해도 밥보다는 간식이 좋고, 다른 데 쓸 궁리가 많은 때, 용돈이 모자라 밥을 굶거나 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이니 내내 그것을 보고 있는 판돌들도 속상하고, 학부모들은 학부모대로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래서 결단을 내린 학부모회의. 일주일에 두 번씩 '식사공동체'를 시행하기로 했다.

쏘룡과 쓰래는 '처음엔 안하겠다고 했어. 학교에까지 엄마가 와서 나 때문에 수고하는 게 싫었기 때문인데... 식사공동체 하니까 편하긴 편하더라'고 말하면서 멋적게 웃는다. '설거지 잘하는 쓰래'라는 별명이 얻어졌지만, 식사공동체라는 게 말뿐이지 기껏해야 설거지밖에 하는 게 없어서 여전히 불편하다고 했다. 그조차도 좁은 주방에 작은 씽크대 때문에 설거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창피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한다. 하자학교에 입학한 것을 그다지 반갑게 생각하지 않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지지큐는 식사공동체에 불참의사를 밝혔지만 의사소통이잘 되지않으면서 어른들이 보기에 되바라진 아이가 된 것 같아서 내내 아주 불편했다고 한다. 학교가 생기면서 학부모회의는 소통이 제법 좋은 그룹으로 되어가고 있었지만 지방에 사는 것도 아닌데 그 그룹에 참가하지 않는 부모들의 아이는 가끔씩 약간의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군산에 있는 사가어머니는 막 타작한 쌀을 한 가마니 보냈고, 마산에 있는 카오리어머니는 돈을 냈다. 적극 찬성을 하고 있는데도 엄마가 아예 올 수 없는 카오리는 어쩌면 점심시간이 쓸쓸했을 수도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점심준비가 안된 날에는 머리속으로 돈을 계산해보고 아쉬운 날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참여하고 있는 학부모라고 만족스러워 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는 아는 체 하지 않고, 살갑게 함께 일하는 십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공교롭게도 파트너로 식사준비를 맡은 학부모가 결석한 날, 소담어머니는 '하자에 가면 학부모는 외롭다'는 말을 게시판에 썼다. 다행히 다른 날은 타락어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정기용씨의 인문학특강도 듣게 되어 좋았다고 했다. '엄마는 밥 하는 것 말고 다른 것도 잘해!'라고 말하면서 커다란 목소리로 아이들을 휘어잡던 씩씩한 쓰래어머니 최현숙씨가 있었고, 학부모 모임에 오지않는 수줍은 원이어머니 오숙희씨가 살짝 다녀갔고, 또 다른 어머니들이 있었다. (아빠들이 하면 어떨까?하는 말도 나왔다. 걱정스레, '아빠가 바쁘면 어떡해?라고 소담이가 물었다.)

식사공동체를 하면서 좋은 점을 대보았다. 부모는 아이들이 굶거나 나쁜 음식을 먹는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특히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볼 수 있고, 학교의 운영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다. 학생들은 돈이 없어 굶거나 할 필요가 없으며, 화학조미료가 담뿍 든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일회용 용기 등을 쓰지 않고 음식을 남기지 않아도 되니까 환경을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친구들의 집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는지, 집집마다 식문화가 어떻게 다른 지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원이 말한다. '예전에 라디오하자를 할 때였는데, 밥을 같이 먹지 않아서 관계가 불편해진 적이 있었어. 그때 팀장에게는 제일 윗사람으로서 '너희들의 밥은 내가 책임진다'는 식의 분위기가 있었는데 나는 그런 것이 싫었어. 밥을 같이 먹으면서 우리가 한 팀이라든가, 한 패라든가를 확인하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어'라고. 원이가 말한 것은 소위 '한솥밥 식구'라는 것이었는데, 사실상 한 식탁에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제한된 멤버쉽의 표현인 경우가 많다. '배제'의 논리로 밥을 먹는 것. 배타주의. 그러나 식사공동체가 지향하는 것은 학교라는 '제도'를 학교'공동체'로 진화시키는 과정을 실험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학교공동체'라는 개념을 자주 말함으로써 하자작업장학교가 배타적인 집단이 되지 않도록 의식하기,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참여와 체험을 해보면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기,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관련 노동을 공동체문화 속에서 나누고 스타일화하기, 그럼으로써 적극적으로 의미부여하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십대시민으로서 이 사회에서 살기'를 생각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한번은 어리어머니가 식사가 끝난 후 아이들과 작은 콘서트를 열었는데, 어리어머니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하던 아이들은 새로운 느낌 속에서 행복해했다. 그 기억과 더불어 아이들은 부모를 다른 맥락에서 다른 모습으로 만나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고 기대하게 되었으며, 다음 학기에는 아이들 스스로 기획한 식사공동체에 부모를 조언자로 초대하고 싶다는 말로 의견을 맺었다. 그리고 오늘 두레는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반찬을 준비하고, 최근에 스낵바를 연 아람과 코리의 도움을 얻어 식사공동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내년에는 공동체와 환경과 우리 음식문화의 스타일을 생각하는 식사공동체를 기획할 수 있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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